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02화 (202/325)

[202]

하지만 신들의 황혼인 라그나뢰크는 결국 신의 멸절로 이어지듯이 악마들이 이 세상에서 멸절하는 것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나 웜우드는 생각했다.

'방법이 없을까? 절대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배신이었다.

# 생각의 전쟁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하면 각 리그에선 디비전 시리즈가 바로 이어진다.

와일드카드로 진출한 팀은 체력적인 손실을 보게 되지만, 승리의 기세를 이어가면 의외의 반전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 시즌 아메리칸 리그에서 디비전 시리즈에 통과한 팀은 서부 시애틀, 중부 클리블랜드, 동부 뉴욕,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텍사스였다.

대진은 뉴욕 양키즈와 시애틀 매리너스. 텍사스 레인저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끼리 맞붙게 되었다.

남궁지완이 있던 캔자스시티는 지역 우승에는 클리블랜드에게, 와일드카드에선 아주 조금의 차이로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밀려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캔자스시티의 이번 시즌 야구는 끝났지만, 인생의 야구가 끝난 사람이 있었다.

"……."

기본적인 치료를 받고 집에 와 있는 지완은 멍하니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말해주는 의사의 진단 결과를 떠올렸다.

'팔, 어깨, 등… 옆구리와 허벅지의 근육 파열. 통증은 팔와 어깨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다른 곳도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

그러면서 팔에 힘을 주어 들어보려고 했다.

찌릿!

"윽!"

하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 올리려는 팔과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올라가던 팔은 다시 내려갔다.

이젠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 보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러니 지완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상태를 앞에 있는 악마 스크레이치가 말했다.

"끝났군, 모든 것이."

"……."

악마의 말에 지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스크레이치는 연기를 하듯이 지완의 앞에서 조롱하며 말했다.

"능력을 얻어도 결국 이것이 한계였군.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더니, 딱 그 꼴이야. 안 됐군, 안 됐어."

안 됐다고 말을 하지만 스크레이치의 어투에선 전혀 연민이나 안타까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다. 이번 시즌이 끝났으니 다음과 그 다음 시즌 안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해야 하는데…가능하겠나?"

스크레이치는 지완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그래서 더 잔인하게 가슴을 후벼 팠다.

그리곤 북치고 장구치며 혼자서 질문과 답을 말했다.

"불가능하겠지. 자기 몸 상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했으니 당연한 결과……."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하고 자신의 품안에서 작은 약을 꺼냈다.

유리 재질의 작은 병에 담긴 것은 꼭지를 떼어내고 바로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꼭지를 스크레이치가 따지 않았다.

스크레이치는 약을 지완에게 내밀며 말한다.

"안타까워서 주는 거야. 고통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어차피 살아봤자 비참한 인생만 남아 있는데 굳이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어? 공을 더 이상 던질 수 없게 된 투수가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지완을 보며 흘리듯이 말한다.

"언제 마실지는 알아서 정해. 혹시 아나? 내가 없는 사이에 죽어, 영혼만이라도 건지게 될지."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스크레이치가 사라지자 지완은 그가 남긴 독약을 보았다.

"……."

여전히 말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은 복잡했다.

'그 녀석 말대로 더 이상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된 지금 살아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목표로 추구하던 것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동팔을 앞지르기 위해 여기까지 왔지만, 이젠 더 이상 마운드에 서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전에는 동팔이 방출되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방출당할 차례였다.

구단에서 충격에 빠진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 프로에 몸 담은지 오래된 지완은 이후의 과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디서 잘못된 거지? 내가 악마와 계약하던 때? 아니면 동팔보다 앞서려고 하던 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야구를 시작했던? 아니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였을까?'

한 번 시작된 비관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나왔다. 그리고 그럴수록 눈앞에 있는 독약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악마의 말이지만…차라리 단번에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든 것을 잃은 지금,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독약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으려는 찰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크레이치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마셔라. 그리고 죽어라. 격렬한 고통 속에서.'

고통없이 죽을 거라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 죽음의 공포와 함께 고통을 줘야 비명과 절규가 흘러나온다.

그걸 놓칠 스크레이치가 아니었다. 순순히 독약을 마시기만 하면 그 이후는 일사천리.

애초에 악마들이 숭배하는 지하의 아버지는 거짓의 아버지인 이상,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완의 손이 독약을 잡는 순간, 2층에서 자고 있을 예은이가 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앙~!!"

그러자 지완의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지완이 옆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는 지완에게 속삭였다.

'네가 죽으면, 지금 울고 있는 딸은? 아빠 없는 아기로 둘 거야?'

아빠로서 책임감을 세우도록 하자 스크레이치는 바로 받아치는 생각을 넣었다.

'부담스럽지 않아? 지금은 아기라 귀엽지만, 나중에 나라서 무기력한 아빠를 좋아할까?'

그러자 이어서 수호천사가 지완에게 속삭였다.

'능력이 아빠의 전부는 아니야. 이미 많은 돈을 벌어 놨잖아?'

천사의 방어에 스크레이치가 연달아 공격을 했다.

'벌어 놓은 돈도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어.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아내가 바람이 나서 버리고 갈 수도 있지.'

'반대로 생각을 해. 아내인 혜진이는 지금 너를 선택했어.'

'네가 벌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벌 돈을 선택한 거야. 그리고 이제 그건 끝났어.'

'믿어.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로 의심할 필요 없어.'

'맞아. 의심할 필요 없어. 넌 이미 끝났으니까.'

천사와 악마의 치열한 생각의 전쟁. 그리고 마음을 흔들거나 굳건하게 만들기 위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사이 혜진이 예은이를 다독이며 울음을 그치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완은 이전에 들은 한 마디가 떠올랐다.

'선수로서 이승협이 끝날지 몰라도, 인간 이승협은 안 끝났다. 옷을 갈아입듯이 일을 정리하고 잠시 쉬다가, 또 다른 일을 하겠지.'

그것은 팀의 선배였던 이승협이 그에게 한 말이었다.

정규리그 우승이 정해지기 며칠 전. 집들이 겸 만났을 때 나온 말이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랜 시간 달려왔던 순간을 회고하던 순간. 그리고 그때의 말이 지금 지완에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특히나 목청이 좋아 예은이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끝난 걸까?'

그 작은 의심이, 절망 속에 헤매던 그의 상황에 아주 작은 빛을 보게 해주었다.

분명히 선수로서의 자신은 끝났다. 이제 더 이상 프로가 되어 마운드에 오를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수로서 끝났을 뿐, 인간 남궁지완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딸인 예은이의 울음소리가 알려주었다.

'내가 죽으면…예은이가, 그리고 혜진이가…저렇게 울겠지……?'

사고로 지인이 죽어도 충격이 크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이 자살을 한다면?

그 충격을 겨우 이겨내더라도 후유증이 남는다. 그리고 후유증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두 사람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내가 편하자고 두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게 되는 건… 역시…….'

지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크레이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그토록 공들인 영혼 하나가 손을 빠져나가게 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두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거야. 안 그래?

그 생각이 들어오려 하자, 동시에 수호천사가 맞대응을 했다.

'정말로 죽는 것이 두 사람을 해방시켜 줄까? 오히려 족쇄를 채우는 거야.'

두 생각이 동시에 밀려들어오자 지완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이 되자 거의 잡기 직전에 온 스크레이치는 짜증이 밀려왔고, 수호천사는 안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완의 최종 결정. 그런데 그 전에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혜진이 거실로 내려왔다.

"아, 깼어?"

"아니. 그냥 잠이 안 와서."

지완은 서둘러 독약을 숨겼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혜진은 울고 있는 예은이를 계속 다독이며 다가왔다.

"안을 수 있겠어? 배고픈 것도 아니고, 기저귀도 멀쩡해. 잠도 방금 잤으니 아마 무서운 꿈을 꾼 것 아닐까."

"그럴 수도……."

두 사람이 대화를 하자,  예은이가 지완의 목소리를 듣자 바로 몸을 돌리더니 손을 뻗었다.

"으앙~ 아빠~. 흐윽 아빠~, 흑."

예은이 다가오자 지완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뻗어 안으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절로 몸이 찌릿거리는 아픔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지완은 멈추지 않았다. 아픔을 참고, 예은이를 안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혜진도 지완이 편하게 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흐윽… 흐윽……."

예은이는 아빠의 품에 안기자 겨우 진정했다. 그러자 혜진은 신기해하며 말했다.

"어떤 꿈을 꾼 걸까? 혹시 아빠가 사라지는 꿈이라도 꾼 걸까?"

그렇다면 예은이가 아빠에게 안기며 안도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 혜진.

그러나 이미 이 상황 너머에선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뿌드득!

갑자기 난입된 상황. 그리고 이 상황이 결코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안 스크레이치는 자신도 모르게 이빨을 갈았다.

지완의 수호천사만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혜진과 예은의 수호천사들이 공동 전선을 형성했다.

그들은 예은이에게 무서운 꿈을 꾸게 했다. 그리고 꿈의 내용의 일부를 혜진이 알도록 해주었다.

혜진은 단순히 자신의 짐작이라 생각했지만, 그 짐작은 어디까지나 수호천사가 넣은 생각 중 하나.

하지만 혜진의 말은 지완이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그렇지… 내가 사라지면… 예은이가 많이 울겠지……?"

지금 당장 죽으면 서럽도록 우는 한 아이가 있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바로 옆에 있는 혜진도 예외가 아니다.

"울기만 할까? 세상이 무너진 것보다 더 큰 충격이 온다는데."

아기에게 있어서 부모는 세상 그 자체. 세상이 사라지면 죽음에 준하는 충격이 아기에게 가해진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이, 진정된 예은이는 다시금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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