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00화 (200/325)

[200]

"진리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진리다. 하지만 진리를 알아도, 진리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적다."

"적은 수준이 아니라 극소수겠죠."

"그렇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대는 진리의 행동을 했다."

인디언의 말에 지완은 쑥스러웠다.

"그냥 딸바보가 된 아빠일 뿐입니다. 아내의 말에 꼼짝도 못하는 남자죠."

밖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거액의 연봉을 받는 대단한 투수다. 하지만 집안에선 아내와 딸에게 껌뻑 죽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인디언은 단언했다.

"그것이 그대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그대를 수렁에서 건져줄 것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지완의 현재 상황.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막을 수 없는 파국을 아는 민희는 그 말이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적어도 하얀 늑대의 벗의 말을 들으니, 어둠만은 아니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지극히 신중해야 할 때. 모든 것의 때가 차게 되었을 순간을 위해 지금은 비밀을 지켜야 하니까.

***

뉴욕 양키즈와 캔자스시티의 경기는 서로 원정과 홈을 오가며 각 2경기씩 치렀다. 그리고 동팔이 뉴욕에 가기 전, 민희와 하얀 늑대의 벗도 뉴욕에 왔다.

뉴욕에 온 민희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마크의 부모님과 만나는 것.

"그럼 이제 마크 루스 학생은 제가 운영하는 MH 에이전트에 정식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좀 안심이 되네요."

하지만 단순히 등록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 이참에 이것도 작성해 주시면 안 될까요? 마침 여기와 연관된 분도 와 계세요."

"네? 어떤 건가요?"

혹시 설마 다른 걸로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닐까 싶어 경계하는 마크의 부모님. 하지만 민희가 내미는 서류를 보자 깜짝 놀랐다.

"어, 이건……."

"의료보험 가입신청서?"

한 두 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트로 묶으니 전부 마크의 가족들의 숫자와 맞아떨어졌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병원비가 껑충 뛰는 걸 이미 겪으셨죠? 마크 학생이야 에이전트에 가입이 되었으니 자동적으로 처리하겠지만, 가족분들은 아니잖아요? 이왕이면 마크가 훈련에 집중해야 하는데 가족분들 중, 혹시라도 다치면 신경이 많이 쓰일 거예요. 그걸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네?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중에 마크가 트리플 A에 진출하면 여기에 대한 비용은 자동적으로 마크가 책임을 질 거예요. 저희가 계속 지원하는 것은 아니고, 그때까지 선수가 훈련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입니다."

마크가 트리플A에 진출하기만 해도 고정적인 수입이 나온다. 그리그 그 중 주전으로 활동하기만 해도 한국 프로리그에서 받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거기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 민간 의료보험에 들어가는 돈 정도는 우습다.

그래도 마크의 부모는 알고 있다.

마크에 대한 지원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해주는 곳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혹시라도 사고가 생겨 아이들이 다쳐도 병원비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마음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설마 이런 것까지 챙겨주실 줄은……."

이들의 격렬한 감사에 민희는 당황스러웠다.

"아니요, 이러실 것까진… 말씀드린 대로 이건 투자에요. 마크가 성공하면 자동적으로 해지가 되는 거예요."

"그래도 그때까지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세상을 살면서 서러운 순간이 많이 온다. 그 중에서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서러움. 더군다나 자신이 아니라 자식이 그런 서러움을 당하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 최악의 순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집안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마크가 부상을 당하자 크게 절망했다.

만약 민간 의료보험에 마크 혼자라도 가입을 했더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수술을 빨리 받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무릎을 다쳐도 수술을 받지 못했고, 아들이 꿈을 포기하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지역 교회에서 마크의 이야기를 듣고 수술비를 지원해 주었다. 하지만 그 수술경력으로 인해 모든 에이전트에선 마크를 거부했다. 지금 앞에 있는 민희의 에이전트를 제외하면.

이젠 수술 결과가 좋아 회복되었고(당연히 부모님은 완전히 회복한 진짜 이유를 모른다.) 프로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과 만났다.

순간 순간이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럼 이제 마크가 어떤 팀에 가기를 원하시나요?"

"그거요? 그야 마크가 원하는 팀에 가면 되겠죠. 그럴 상황이 될지 모르겠지만."

프로에 도전하는 야구선수에게 있어 팀을 고를 자유는 거의 없다. 일단 뽑혔다는 사실만으로 감지덕지다.

선수가 특정한 팀을 원하더라도 대놓고 말할 수 없다. 그 팀이 해당 선수를 원하지 않으면 어느 팀에서도 데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이전트가 선수의 의중을 미리 듣고, 적당히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미리 말을 해둔다. 원하는 팀에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 각오는 해 두라고.

그러자 민희가 말했다.

"그럼 일단 뉴욕 양키즈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뛰어난 외야수를 구하려고 하는데 마크가 여기에 적당할 것 같거든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잘 하면 빠르게 진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크의 영혼을 악마가 욕심을 낼 정도였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마크의 잠재력이 뛰어나서 다가온 것이었다.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좌절의 고통은 크다. 좌절이 크면 클수록 악마의 유혹은 더욱 강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그걸 알고 있으니 민희는 과감하게 마크를 밀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마크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좋겠죠.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워낙 쉽지 않은 곳인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너무 큰 기대로 마크의 어깨를 누르고 싶진 않아요."

어찌되었건 마크의 등록은 마무리되었고, 마크는 가족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어내며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

프로야구의 정규 리그 일정은 길다. 중간에 올스타전을 하고, 원정과 홈을 오가며 계속 경기를 치르며 승리와 패배를 쌓아 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정규 리그 일정이 길더라도 끝은 오기 마련.

정규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면 각 리그의 각 지역 우승이 정해진다. 올해 양키즈는 지난 시즌과 달리 적어도 패배를 막아주는 행운의 요정이 있었기에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역 우승에 성공했다.

"에이~!!"

"이겼다!!!"

"드디어 우승!!!"

지역 우승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이젠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하는 진정한 승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정규 시즌은 이 승부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았다.

각 지역의 우승팀. 그리고 우승팀을 제외한 제일 높은 승률을 기록한 두 팀 중에 하나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각 리그에서 4개의 팀이 나오면 토너먼트로 또 다른 야구가 시작된다.

총 8개의 팀이 노리는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그 첫 관문인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룩한 팀은 다음 관문인 디비전 시리즈를 통과해야 한다.

그 전에 해야 하는 것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해당 리그에서 승률이 제일 높은 두 개의 팀이 단판 승부로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을 정하는 경기다.

단판 승부이기 때문에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서 아메리칸 중부지역의 우승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다. 지완이 속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높은 승률을 기록한 덕분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참가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승부. 거기에 캔자스시티가 상대해야 하는 팀은 역시나 높은 승률을 기록했지만 지역 우승을 하지 못한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당연히 단판 승부에서 이겨, 와일드카드로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해야 하는 만큼 양팀의 총력전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캔자스시티의 선봉으로는 이제 1선발로 인정을 받은 남궁지완이었다.

그가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 감독이 그에게 말했다.

"욕심은 나겠지만 토너먼트야. 3이닝만 막아 줘."

"알겠습니다."

바꿔 말해 3이닝을 막더라도 전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남궁지완에 대한 분석을 마쳤을 텍사스 레인저스.

제일 경계하는 것은 물론 그만 공략하면 이후가 상대적으로 편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경계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공략이 가능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 안 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텍사스 레인저스는 의외의 행운을, 그리고 상대에게 있어서 크나큰 불행이 생기고 말았다.

"으윽!!"

정확한 때는 3이닝을 마무리하기까지 원 아웃, 거기에 원 스트라이크만 남은 상태에서 남궁지완이 어깨와 팔을 잡고 주저앉았다.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상황. 또한 이전부터 조심해야 하는 상태였으니 캔자스시티의 코치진들은 다급해졌다.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 어서!!"

결국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자 남궁지완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부축을 받으며 실려 왔다는 표현이 맞았다.

지완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불펜의 가동이 더 빨라진 캔자스시티. 그리고 이와 반대로 텍사스는 여유있는 투수 운용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결국 그 차이로 인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승리한 쪽은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캔자스시티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 힘들지도 모릅니다."

정확히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남궁지완의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선고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좌절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1차 진료 결과입니다. 정밀 검사를 하고 난 다음 파악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확정은 금물이라지만, 이미 지완은 짐작하고 있었다.

'끝났어… 전부…….'

이미 팔과 어깨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으려 하지만 팔과 어깨,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그의 영혼을 좀먹기 시작했다.

근육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파열. 그리고 인대와 힘줄의 손상.

이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결과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재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밀 검사가 진행된 후, 지완은 스스로 예견한. 그러나 도저히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안타깝습니다만…이제 선수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재활에 성공하더라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정도가 최선입니다."

그 결과는 선수 생명의 끝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슬퍼할 그때, 아무도 보지 못하는 악마 스크레이치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곧 얻을 수확의 기쁨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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