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나도 알고 있다. 그의 눈에선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방향이 잘못되었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몸에 나쁘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몸이다."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심하면 일상생활도 어렵게 된다. 회복하고 재활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말에 민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럼… 다른 것은 없었나요? 이질적인 다른 힘이 있다든가……."
악마와 계약을 했다면 틀림없이 그와 연관된 힘이 서려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 알고 있다면 대처할 방법도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혜진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자신이 최대한 처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인디언이 한 말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마사지를 했을 때,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을 제외하고 특이한 점은 없었다. 몸의 상태가 나쁘다. 단지 그뿐이었다. 몸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다른 힘은 없었다. 그건 나도 의외였다."
"네? 정말이에요? 아니, 사실이겠죠. 당신의 느낌이라면……."
말한 사람이 이 분야의 전문가였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런 분야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럼 대체 지완 오빠의 능력 향상은 어떻게 된 거지? 악마의 힘도 없이 그게 가능한 거야?'
분명히 계약을 했고, 그에 따른 능력의 향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야 하는 건가? 사실 확인을 더 철저히 해야 하는 건데…… 계약 자체를 한 것은 맞지만… 계약의 서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는 정도가 확실한 사실…….'
쉽지 않지만 모든 것을 지우고 확실한 것만 체크하는 민희. 그녀가 집중할 수 있게 인디언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숨소리도 죽였다.
'계약의 서를 이용하면 악마의 힘을 사용한다. 이것은 확실해. 계약의 서를 이용한 계약은 1년에 1회 한정이지. 동팔 오빠와 동욱 오빠와 이어서 계약한 그 악마는 5년간 계약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이후에 계약한 지완 오빠는 계약의 서로 한 것이 아니야. 여기에 대한 확인은 이미 끝이지. 거기에 지완 오빠의 몸에 악마의 힘이 어리지 않은 것을 추가하면…….'
최소한의 사실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여기에서 민희는 사실(Fact)을 근거로 하여 진실(True)을 끌어 올려야 했다.
그러던 중 민희는 한 가지 말을 떠올렸다.
그건 '악마', '사탄'이라는 말의 의미와 여러 가지로 수식되는 말 중 하나였다.
민희의 눈빛이 바뀌자 인디언이 물었다.
"떠오른 것이 있나?"
"네… 아마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 말해보라. 나도 그 의견에 대한 생각과 판단을 말하겠다."
민희는 방금 전에 떠오른 걸 바탕으로 지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예상을 말했다. 민희의 예상에 인디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의 말대로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제일 타당한 의견이라고 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게 맞더라도 방법이 없어요."
민희의 말에 인디언이 말했다.
"맞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자의 계략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수수께끼가 거의 풀렸다.
확신만 하지 못할 뿐이지 사실 해답을 찾은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걸 해결할 방법의 수단을 이들이 가지지 못했다. 이유는 이것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그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말이 바뀌게 된다."
"그럼 지완 오빠가 어떤 것을 추구하면… 희망이 보이나요?"
"간단하다.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 그리고 그에 맞게 주변의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록이나 결과를 추구한다면……."
"한다면……?"
민희의 반응에 인디언은 지금 하는 말을 해도 될까 걱정되었다.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예상을 말했다.
"파국에 치닫게 되었을 때 그는 도피할 것이다."
"도피요? 어디로 도망친다는 거죠?"
"삶으로부터 회피. 즉, 죽음이다."
***
두 사람의 대결은 한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이전 지완과 동욱의 투타 대결도 그랬지만, 이전부터 라이벌로 알려진 두 투수의 대결은 더욱 많은 시선을 끌었다.
당연히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는 한국 중계진은 이 경기를 놓칠 수 없었다.
"이런 코리안 더비도 오랜만입니다. 강동팔 대 남궁지완, 남궁지완 대 강동팔 선수의 선발 더비입니다."
"사실 이전부터 두 사람은 많이 부딪쳤었죠? 고교시절부터 그랬었고, 강동팔 선수가 재기한 시즌의 중반 이후에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많은 라이벌이 있었지만, 역시 최근에 제일 주목을 끄는 것은 이 두 사람일 겁니다. 특히 두 사람의 나이가 같으니 더욱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런 두 선수의 전체적인 양상은 어떻습니까?"
"짐작하시겠지만, 전반적으로 강동팔 선수의 우세입니다. 고교시절엔 모든 투수들 중 확고한 1위였죠. 그리고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투수가 바로 남궁지완 선수였습니다."
동시에 중계화면에선 고교시절의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해설자가 설명한대로 두 사람의 격차는 상당히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1,2위라서 라이벌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만 실제로 강동팔 선수의 압승입니다. 그래도 남궁지완 선수의 성장 가능성이 있어 프로에서도 두 사람이 맞붙는 걸 기대하는 고교 야구팬들도 많았지만, 아쉽게도 강동팔 선수의 부상으로 5년 동안 프로에 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재기하였습니다. 그것도 고교시설보다 더 뛰어난 구위와 구종을 가지고 복귀했죠."
"그럼 그 이후의 기록을 한 번 비교해 볼까요?"
캐스터의 말에 중계 화면에선 지난 시즌, 한국에서 두 사람의 기록을 비교한 표가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강동팔 선수의 우위가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재기하자마자 뛰어난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면 이 격차가 많이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말이 끝나자 화면에선 두 사람의 상반기와 하반기 기록을 비교한 표로 바뀌었다.
"단순히 구위의 기록만 봐도 상반기에는 남궁지완 선수의 열세였습니다. 하지만 중반을 지나 후반기가 되자 마치 각성한 것처럼 구위가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후반기에서 두 사람의 구위와 기록은 거의 비슷합니다. 고교시절부터 차이를 생각하면 남궁지완 선수가 강동팔 선수를 많이 따라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군요. 놀라운 성장 속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강동팔 선수를 제외하고 누구도 잡지 못할 거라 생각한 한동욱 선수의 삼진도 두 번 잡았었죠?"
"네, 당시 한동욱 선수에게 삼진을 허락한 투수는 이 두 사람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동욱 선수는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탁월한 타격 감각을 뽐내며 타율 5할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이 상태만 유지해도 이번 시즌 MVP는 따 놓은 당상입니다."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는 살짝 놀랐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안 그러면 소위 말하는 국뽕스러운 발언으로 보이는데요. 솔직히 우리나라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MVP에 뽑히면 좋습니다만, 그건 무리 아닐까요?"
다른 타이틀도 아니고, 한 경기나 한 주의 MVP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기라성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한 시즌에 제일 뛰어난 선수로 뽑히는 것이 과연 쉽게 될까.
아무리 자유와 정의를 외치고 평등을 주장하는 미국이라도 보이지 않는, 그리고 때론 눈에 보이는 차별이 존재한다.
그 벽을 뚫고, 최고 영예 중 하나인 시즌 MVP라는 타이틀을 백인들이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 뛰어난 성적을 거둔 백인, 또는 흑인을 선정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해설위원은 확신했다.
"그냥 4할 타자도 아니고, 5할에 근접한 타율은 한동욱 선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할 타자가 1940년대에 한 번 나오고 그 이후로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4할 타자에 대한 가치를 잘 몰라서 MVP를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4할 타자가 나온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던지, 윤리적으로 최악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MVP가 확정될 정도입니다.
"
그 말을 하고 중계진은 다시 동팔과 지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이 배출한 세 선수가 국위선양하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럼요. 당연히 보기 좋습니다. 힘든 상황에 국민에게 힘을 주는 선수들이죠."
엄밀히 말해 한국 선수가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국위가 선양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대해 알릴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가 전부.
이들로 인해 메이저리그를 보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고, 때론 전쟁폐허국가라는 오해를 풀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한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거나 위대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저 그런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한국에서 네덜란드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그 나라가 좋거나 위대하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설령 그걸 알아도 중계진들은 그렇게 말해 봤자 시청률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아니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와서 강동팔 선수의 구속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젠 164키로에 달한 반면, 남궁지완 선수의 구속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160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아주 빠른 구속입니다만."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좁혀졌나 싶었지만, 강동팔 선수는 다시 조금 더 달아나고 있군요. 그래도 남궁지완 선수가 아니더라도 강동팔 선수의 제일 큰 장점. 그리고 구단과 팀에서 아주 좋아하는 장점이 있죠. 그렇지 않나요?"
"그건 바로 내구성입니다. 오래 많이 던져도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아요. 이건 정말 대단한 체력을 지니지 않고선 불가능합니다.
정규리그는 장거리 경주와 마찬가지라 페이스 조절이 필수인데 강동팔 선수는 강행군을 해도 컨디션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건 지난 시즌에 확인되었고, 이번 메이저리그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번에 강동팔 선수가 뉴욕 양키즈의 2선발로 올라간 이유 중 하나입니다.
"
그러면서 그들은 동팔과 지완을 계속해서 비교해 나갔다. 다만 이 경기의 승패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하지 않았다.
"분명히 투수전으로 가겠죠? 어느 한 선수가 갑자기 컨디션 난조를 보이지 않는 이상."
"그건 누구나 그렇게 예상할 겁니다. 결국 체력 싸움이 되는데, 이건 강동팔 선수가 우위에 있습니다. 남궁지완 선수는 상황에 따라 정규 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온 경우가 많은 반면, 강동팔 선수는 웬만해서 9이닝을 채우거나 최소 8이닝을 소화하고 내려옵니다."
"그러면서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합니다. 그럼 근소하게 뉴욕 양키즈의 우세로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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