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97화 (197/325)

[197]

"확실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일 확실한 곳이긴 하잖아. 다니는 거랑 믿는 거랑 다르지만."

혜진의 말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배당에 출입하는 것과 진짜로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마크라는 아이는 정말로 다 나은 거 맞아?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

혜진의 걱정에 민희는 다른 걱정을 했다.

'다 나은 거 맞아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걸 보면…….'

하지만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래서 민희는 다른 걸 말했다.

"그럼요. 이미 병원에서도 확실히 다 나았다고 했고, 이후에 다시 훈련했는데 이전처럼 잘 뛰었어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아니 아직 어려서 수술 후유증이 작아서 그런가……."

수술은 아무리 작은 거여도 몸에 부담을 준다.

특히 큰 수술, 수혈을 많이 필요로 하는 수술은 환자의 높은 체력을 요구한다.

세포의 반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부담이 아주 큰 수술을 몇 번에 나누어 하는 이유가 있었다.

마취 중이라 머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수술하는 동안 세포는 원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격렬히 활동하게 된다.

특히 배를 가르거나 크게 절개하는 수술을 하면 온몸의 세포들이 비명을 지르며 살기 위해 전력으로 활동한다.

그 에너지 즉, 체력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체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각종 수술 방법이 동원된다.

심장의 박동을 느리게 하거나, 절개보다 관을 삽입하고 링거를 통해 체력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포도당을 비롯한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수술로 인해 손실된 혈액은 수혈을 통하여 공급해야겠지만.

무릎 수술이라면 굳이 절개할 필요 없이 내시경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몸에 부담을 줄여주는 수술이 있다.

이후의 회복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혜진은 동팔이 웜우드의 조작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회복의 힘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끝까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민희는 마냥 숨길 생각은 없기에 아주 작은 힌트를 주었다.

"수술이 잘 된 것도 있지만 마크가 오빠랑 만나면서 회복이 더 빨라졌거든요."

"그래?"

"네. 어쩌면 오빠 주변에 있으면 회복이 더 잘되는 건지도 몰라요. 오빠의 기운이 닿아서 그런 건지도."

민희는 그렇게 진실의 파편 하나를 던졌다. 물론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반응을 했다.

"농담도 참… 정말로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말이 되니."

분석력이 뛰어난 혜진도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 라이벌

동팔과 지완의 선발투수 라이벌 매치가 있는 날.

당연히 한국의 스포츠 매체들, 특히 야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들이라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한국 프로리그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인 이상 미국에 와야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기자가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 했다.

바로 미국에 갈 수 있는 비자가 있어 바로 갈 수 있을 경우 그리고 이동과 관람에 필요한 경비를 신문사에서 주는 경우였다.

반면, 이미 미국에 와 있는 기자들도 있었다.

먼 거리를 갈 필요가 없고, 미국 내에서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경비의 걱정도 적었다. 이미 미국에서 동팔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지예가 여기에 해당했다.

여유가 있는 지예는 일찌감치 뉴욕에서 동팔을 개인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했다. 또한 민희를 통해 지완과 개인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거기 분유 좀 타주시겠어요?"

"응. 이렇게 타면 되는 거지?"

"네."

그건 바로 예은이를 하루 동안 봐 주는 것이다. 애초에 민희도 같이 와 있었고, 베이비시터도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지완과 혜진의 집은 두 사람이 살기엔 좀 넓어서 숙박하는 것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예은이가 먹을 분유를 타며 지예는 생각했다.

'민희를 통해 이전부터 친해졌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좀 고생했을지도…….'

솔직히 말해 아무리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고 한들, 처음 만난 사람을 집에서 재워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기자라면 특히.

기자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는 혜진은 내심 그녀를 묵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쓴 기사를 읽고, 민희의 보증도 있었기에 허락한 것이다.

혜진은 분유를 타는 지예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알던 기자랑 달리 기사도 예쁘게 잘 쓰고, 취재한 사람이 싫어하는 건 쓰지 않는다고 하니까…….'

정치부 기자라면 취재 대상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갖춘다.

정치는 공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니, 상대가 저지른 비리를 캐거나 밝히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로 인해 기자와 정치인들 사이는 마냥 좋지 못했다.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생하지만,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서로 잡아먹을 수 있는 관계였다.

반면, 스포츠나 연예계 쪽의 상황은 달랐다.

대중의 호기심을 많이 얻지만 공익과 연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갔다. 특히 사생활에 대해선 자체적으로 함구해 주는 것이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이전에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사생활 보호를 던져버리고 폭로하던 때도 있었다.

그 폭로가 정권에서 일어난 스캔들을 덮기 위해 터트린 경우인지 알 수 없었다. 증거가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은 공인과 유명인의 차이 그리고 사생활 보호에 대한 인식이 퍼져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얻었다.

그러니 유명인의 깊은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선 폭로보다 친밀함으로 다가가는 기자가 되어야 했다.

그중 신지예 기자도 포함되었다.

지금은 동팔을 중점으로 취재하고 있지만, 이왕이면 지완까지 알게 되면 금상첨화였다.

'취대 대상도 늘고, 숙소 경비도 아끼고 일석이조지. 이 정도 얻는데 아기 며칠 돌보는 것쯤이야 뭐.'

이미 호텔의 1인실에서 묵을 경비가 나왔지만 지예는 자신이 그걸 쓰기보다 출장 와 있는 민철에게 주고 영수증을 가져오게 했다.

회사의 경비로 일도 하면서 연애도 하려는 계획이었다.

엄밀히 말해 방침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들키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그리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니까 더더욱 상관없는 일이다.

지예는 지완이라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좋은 지예에게 단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지예는 다 탄 분유를 혜진에게 주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는 민희에게 물었다.

"그런데 민희야. 너희 집 뒤뜰에 살게 되었다는… 그 인디언 아저씨는 왜 여기까지 오셨대?"

같이 살지는 않아도 뉴욕에 주로 있으니 민희의 집안 상황에 대해 얼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인연이 닿아 같이 산다는 인디언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그가 온 건 동팔이 캔자스시티에 오기 전 날이었다.

인디언이 찾아오자 민희는 사람들에게 일단 이렇게 말했다.

"그거요? 그냥… 우연히 여기에 일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어요."

그는 집안에 들어오지 않고 뉴욕에서처럼 지완의 집의 뒤뜰에 인디언 텐트를 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다.

그가 온 이유는 뻔했다. 동팔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동팔이 원정을 갈 때마다 같이 갔다. 그때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노숙자처럼 생활했지만 이곳은 아는 사람이 있으니 민희의 소개로 그나마 편하게 있게 되었다.

그는 지완과 처음 만났을 때, 인사하기 전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샅샅이 보는 그 눈빛으로 인해 지완은 그에게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지만, 인디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얀 늑대의 벗은 지완을 보며 말했다.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어긋나면 다치니 조심하도록.'

실제 진료를 한 것도 아니고, 보는 것만으로 상태를 알아버리자 지완과 혜진은 그를 가볍게 대할 수 없다.

'잠시 얹혀살게 되었는데 말만 할 수 없다. 침대가 어디 있지? 거기에 누워라. 내가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겠다.'

참고로 이때엔 집주인인 지완과 혜진이 인디언의 숙식을 허락하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여기에 묵겠다는 그의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민희와 아는 사이에다가, 우람한 그의 몸을 보면 차마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상시 마사지를 생각하며 지완은 우락부락한 인디언이 손에 의해 생길 고통을 각오했다.

굳은 근육이 풀어질 때는 시원함도 느껴지지만, 그 전에 상당한 고통이 수반되었다.

그런데 인디언의 치료 방식은 아프지 않았다. 강하게 주무르지만, 생각보다 시원했다.

덕분에 지완은 몸이 회복되고 혈액순환이 순조롭게 되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지만 건장하다 못해 우람한 인디언을 마음에 허락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하얀 늑대의 벗을 받아들이게 해준 것은 의외로 예은이었다.

'으앙~!!!'

예은이는 아빠보다 훨씬 더 큰 인디언을 보고 무서워서 울어버렸다. 전부 그러진 않지만 보통 아기는 아빠보다 더 큰 사람을 보면 위협을 느껴 피한다.

그런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다가오니 도망치지도 못하고 울어버린 것이다.

예은을 귀여워하려던 인디언이 그 반응에 소파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절로 동정을 자아낼 만한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그를 무서워하던 베이비시터도 자신도 모르게 풋! 거리며 웃고 말았다.

덕분에 예은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허락도 얻을 수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라 인디언에게 의외의 것을 알게 되었다.

"네? 실리콘벨리에서 한동안 일하셨다구요?"

"그것도 전기공학 박사?"

보기엔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드루이드나 현대화하지 않은 인디언과 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들보다 학위가 높았다.

꿈에도 몰랐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잘 해야 대학 졸업이거나 고등학교 졸업이었으니까.

제일 무식해 보이는 인디언이 박사라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전기 기사 자격증도 있다. 만약 내부 공사를 하면 말해라. 전기 배선은 확실히 책임져줄 수 있다."

인디언의 말에 민희는 그가 얼마 전 컴퓨터의 문제를 바로 알아차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 전기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는 뒤뜰에 있으며 예은이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일상적인 만남이 이어졌다.

밤이 되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

야밤에 조심스럽게 일어난 민희는 약속한 대로 인디언의 텐트로 들어가 앉은 다음 그에게 물었다.

"지완이 오빠 몸 상태는 어떤가요?"

"나쁘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그는 무리하는 중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지금 던지고 있는 공보다 더 느리게 그리고 힘을 덜 주고 던져야 한다."

그러면 지완의 공은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게 된다. 한국에서는 충분히 통하지만 이곳은 그보다 한 수 위의 선수들이 즐비한 곳이다.

바꿔 말해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건… 불가능할 거예요. 여기까지 온 이상 절대로 포기할 사람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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