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94화 (194/325)

[194]

말이 추천이지 사실상 강제에 가까웠다.

의사의 말과 진단에 코치들도 지완을 각별히 신경쓰며 훈련량을 조절해 나갔다. 덕분에 중반을 항해하는 지금까진 크게 힘든 것은 없었다.

비록 불만스럽지만, 지완이 의사와 코치의 판단에 따르는 이유가 있었다.

'괜히 무리했다가 동팔이처럼 나가떨어질 수는 없지… 지켜야 할 것도 많은데…….'

고교시절, 동팔의 수준을 따라가려다 무리하려는 것을 감독이 막았다.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팔이 방출되는 것을 보자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완으로 하여금 무리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또한 무리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경험과 타산지석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예은이가 더 자라면, 그리고 또 아들이 태어나게 된다면…그때에도 계속 선수로 뛰고 싶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아이가 자라고 성장했을 때.

야구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의 아빠가 엄청난 투수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존경을 받고, 동시에 사랑을 주며, 또한 받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결코 넘어져서는 안 된다.

이 난관을 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것은 이번 시즌을 포함해 세 시즌 안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완은 오늘도 역시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더욱 결의를 다지며 열심히 하는 지완을 보며 웃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동팔의 주변은 언짢고 알아보는 녀석이 있어 귀찮아 와 봤는데…….'

악마 스크레이치는 지완의 몸 상태를 파악했다. 그리고 바로 판단을 내렸다.

'생각보다 열매가 잘 익어가고 있군. 곧 따먹을 수 있겠어.'

계속 있을 생각이 없는지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갔다. 그러면서 지완에게 들리지도 않을 말을 남겼다.

"곧 보자고. 너의 영혼의 맛은 생각보다 괜찮길 바라지……."

# MH 에이전트

마크의 부모님은 힘들게 겨우 시간을 내서 어디론가 갔다. 그곳은 미국에서 알아주는 에이전트 회사였다.

유능한 선수, 또는 장래가 유망한 선수를 발굴하고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선수를 구단에 소개하며 체결되는 계약의 일부를 수익금으로 얻는다.

수익의 배분은 각각 계약마다 다르지만, 계약 금액이 크면 클수록 이익도 크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인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왕이면 큰 회사를 선호한다. 물론 전부 그러는 건 아니고, 개인의 상황이나 회사의 분위기가 자신과 맞지 않다면 작은 회사라도 상관없다.

한국도 분위기가 변해 가고 있지만, 회사는 평생직장이 아니라 거쳐 가는 장소와 같다.

그 회사가 영원히 있다는 보장이 없다. 큰 회사일수록 존속기간이 길 가능성이 높지만 확신할 수 없다.

이전에도 잘 나가던 회사가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사라지는 건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역사라면 동네 빵집이 더 긴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가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취업과는 거리가 멀다.

스포츠 업계는 정보망이 대부분 인적 정보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히 네트워크가 발전되어 더 방대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직접 보고 온 사람이나, 알고 지내던 사람의 정보가 더 큰 신뢰를 얻기 마련.

그러니 선수와 구단의 사이를 이어주는 에이전트가 크면 클수록 유리한 것이 맞았다.

마크의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해서 어떻게든 마크가 좋은 에이전트에 등록되어 든든한 지원을 받길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죄송하지만 무릎 수술을 한 적이 있더군요. 그것도 최근에."

"네, 하지만 이미 완치가 되었고……."

"완치가 되었는지 아닌지 파악은 우리가 합니다. 분명히 장래성이 있고, 잠재력이 있지만… 그것뿐이군요. 이런 정도의 유망주는 이미 넘칩니다."

악마와 같이 뛰어난 시야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없는 인간은 다른 것으로 판단해야 했다.

자신의 판단이 100% 맞다는 보장이 없음을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자료와 노하우는 마크의 진가를 알아내는 것에 부족했다.

그들이 신경을 쓰는 것은 마크의 무릎 수술 경력.

겉으로 마크 못지않은 유망주가 졸업예장자 중에서만 수백명이다. 그 중에 옥석을 골라내며 몇 퍼센트가 메이저리그. 아니면 트리플 A에 진출할 수 있을까?

1%의 확률도 높았다. 그런데 누가 다른 유망주와 달리 흠집이 있는 선수를 쓰려고 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구단에서 거부할 가능성이 높으니 처음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다른 에이전트를 알아보시는 것이 더 빠를 겁니다."

"네……."

어떻게든 자신의 아들, 마크의 장점을 피력하려 했다. 하지만 막상 설명하고 보니 부모인 자신들보다 에이전트가 마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유망주 중에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냈으니 상당수의 에이전트 회사는 마크를 포함해 뛰어난 유망주의 정보를 이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크의 부모가 아무리 설명을 하려고 해도 설득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필을 하려 했지만, 그것도 계속 실패하게 되자 설명할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온 에이전트 회사도 마지막으로 알아본 에이전트였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게 되니 그들은 어깨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상태로 그곳을 나왔다.

나오면서 서로를 보며 말했다.

"차라리 마크가 말한 거기라도 허락할까?"

"하지만…겨우 선수 한 명 있는 에이전트잖아요."

"그래도 마크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한 유일한 에이전트야."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다른 에이전트도 알아보긴 했지만, 대부분 소문이 좋지 않았다.

귀한 자식이 이왕이면 좋은 에이전트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것도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사기를 당하거나 잘못된 훈련방식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그저 지금의 가난한 삶을 청산할 유일한 길이 마크라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자식이 다치지 않고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만이 전부였다.

그래서 좋은 에이전트에 들어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서 접근하는 바람에 다른 에이전트도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니……."

"그럼 거기라도 갈까? 그렇지 않아도 유명 선수가 있으니 사기 치는 곳은 아닌 것 같고, 마크도 가고 싶어 하던데. 지금도 계속 만나는 것 같고."

그들이라고 민희의 에이전트를 알아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신생 에이전트라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극히 희박했다.

그래서 더욱 신뢰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이런 저런 것을 따질 수가 없었다.

"혹시 전화번호 알아?"

"전에 받은 가입신청서에 있었을 걸?"

그들은 혹시라도 모르니 민희가 준 신청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신청서에는 민희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늦진 않았겠지? 혹시 마음이 바뀌었다던가."

"그럴리가. 그럼 계속 만나고 있을리 없잖아."

너무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마크를 인정하는 곳이다. 그러니 시간이 좀 지났다고 해서 마크를 거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 전화를 하자 바로 민희가 받았다.

-헬로. MH 에이전트 매니저 제시카 리 입니다.

에이전트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따왔으면서, 활동하는 이름은 미국식으로 맞추었다. 자신의 이름을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들다는 점을 생각한 것이다.

"아… 저기 미세스 리? 마크의 아버지인 잭 루스 입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마크의 아버지가 전화를 하자 민희는 어떤 일로 전화를 했는지 바로 짐작했다.

'설마 가입하는 것을 허락하시려고? 하긴 그럴 일이 아니면 직접 전화할 일은 없겠지.'

동시에 그동안 알아봤던 에이전트 회사에서 좋은 대답이 안 나왔다는 것도. 그렇지 않고서 이들이 자신에게 연락할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들의 상황. 하지만 민희는 그들의 상황과 자신의 위치를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설마 마크의 가입을 허락해 주시려고 전화주신 건가요?

"네, 혹시 지금이라도…가능할까요?"

갑과 을의 관계는 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있다. 그게 문제로 인식되는지 안 되는지. 그리고 갑의 위치에서 계약한 것을 넘어 을에게 그 이상의 요구를 하면 문제가 된다.

-그럼요, 당연히 가능하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캔자스시티에 와 있어서 당장은 어렵고, 이번 주말에 다시 집에 가거든요. 그때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만약 앞에 한 말만 했다면 완곡한 거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민희는 캔자스시티에 있는 혜진의 집에 와 있었다.

"네… 그럼 언제 가능하신가요?"

-그건… 잠시만요…….

이후로 그들은 짧은 통화를 통해 약속을 잡았다. 만약 신속함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팩스를 이용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사무실도 집이었고, 대표로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람은 이름만 빌려준 상황이라 미국에 없었다.

팩스를 보내도 받을 사람이 없으니 여유있게 행동하는 민희.

통화를 마치고 난 다음, 마크의 아버지가 말했다.

"괜찮을까? 여기……."

"그래도 여기밖에 없잖아. 일단 이쪽으로 합시다. 그리고 우리한테 사기를 친들 얼마나 치겠어?"

순간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질 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크를 받아줄 곳이 없다는 현실에 이들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

한편, 마크의 아버지와 통화를 마친 민희는 핸드폰을 다시 침대위에 던져 놓고 예은이를 보고 있었다.

"예은아~ 민희 이모야. 까꿍!"

"꺄륵~."

민희가 와준 덕분에 한결 더 여유가 있게 된 혜진.

이미 구단에서 붙여준 보모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예은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굳이 보모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아도, 잠시 있는 거라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혜진은 자료 분석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와 줘서 고마워. 베이비시터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역시 그래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안심이거든."

"아기는 없지만 왠지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언니."

민희가 와 주어서 편한 쪽은 혜진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예은이를 봐 주는 덕분에 보모도 집안일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치자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민희가 있을 때 가능한 거라 혜진은 보모가 편하게 있는 것을 알아도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쉬게 해주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누가 전화한 거야? 에이전트 사업 한다더니 그 일?"

"네. 그렇지 않아도 눈여겨 본 선수가 있는데 부모가 이제 허락하겠다고 하네요. 하긴 어린 나이에 무릎 수술을 했으니 누가 신경을 쓰나요.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제품에 하자가 있는데 누가 영입하려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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