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93화 (193/325)

[193]

"강동팔과 남궁지완의 대결이라… 둘 다 선발이라 쉽게 만나기 어려우니 일정을 조정해야겠습니다. 그쪽에서 생각하는 좋은 날은 언제로 생각하십니까?"

다른 지역에 있으니 서로 경기를 할 때가 많지 않다. 그나마 투타의 대결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지만 둘 다 선발이라 일정이 꼬이면 만날 수가 없다.

물론 어느 정도 타격 능력이 있는 동팔이라면 대타로 나올 수 있지만, 그 정도로는 입맛만 다실뿐인 이벤트였다.

그 이전에 확실히 광고를 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했다.

"동팔이 가능한 날은 이 날들입니다."

양키즈 구단주는 이미 감독을 통해 일정을 조율했을 때 동팔이 등판 가능한 날의 보고를 들었다. 그리고 이는 로열스 구단주 또한 마찬가지.

"지완 투수가 등판 가능한 날은 이 날들인데… 다행히 겹치는 부분이 있군요. 그것도 빠른 날에."

다행히 둘이 만나는 날 서로에게 피해가 있는 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만나는 것이라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고, 일정만 조율하면 되는 간단한 만남.

그러니 협상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는 노력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의 합의점이 맞는 이상, 굳이 약간의 이득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

한편, 동팔은 혜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를 통해 들은 것은 동욱의 약점이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볼넷이 아니라도 아웃카운트를 채울 수 있겠다."

공을 보고 칠 수 있는 동욱이지만 그 방법을 최대한 봉쇄한다.

빠른 공이라도 읽히면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그리고 변화구라도 느리고 볼 끝의 움직임이 밋밋하면 역시 마찬가지.

그동안 동욱이 높은 타율을 유지한 방법은 보고 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신경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으니 그 한계를 이용해야 했다.

-아마 그동안 동욱이가 구종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최대한 먼 곳에서 공을 던지려는 투수의 버릇을 이용한 거야. 공을 어떻게 쥐고 있는지 알고, 회전 방향을 알면 궤적의 예측이 가능하니까. 물론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그렇지. 능력이 있어도 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분석력과 판단력을 얻는 건 그만큼 노력과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그동안 동욱이 한 훈련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배트가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예상된 루트로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동팔이 말한대로 날아오는 공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 이것은 그동안 투수를 상대하면서 쌓은 경험과 훈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것이지만, 투수가 던지는 모습을 정면에서 찍은 장면을 원래 재생속도보다 조금 더 빠르게 해서 안력을 키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동팔은 그걸 아무리 해도 가능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다른 선수들은 같은 방식으로 훈련해도 아무 소용없는 훈련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신경속도가 훨씬 빠른 동욱이라면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분석력과 판단력은 더욱 날카롭게 변한다.

그래서 능력을 얻고도 초반에 상대적으로 고전한(그래도 3할의 타율을 유지했다. 이후의 기록을 기준으로 보면 저조했다는 의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무시무시한 타자가 된 상태. 그 와중에도 스펙과 기록으로 자신의 약점을 숨겨왔다.

그러나 그것도 혜진에 의해 드러나고 말았지만.

"좋은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긴 한데, 그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거야?"

-그거? 미안해서.

혜진의 말에 동팔은 웃으며 말한다.

"어차피 다 과거인데 미안할 것 있냐. 서로 좋은 사람 만났고, 지금 좋게 만나면 되는 거지."

동팔은 이전에 둘이 사귀었다 헤어졌던 일로 미안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혜진이 말하는 미안하다는 의미는 그게 아니었다.

-그건 알고 있어. 내가 미안하다고 한 건, 앞으로 미안한 일이 생길 거라서 미리 사과하는 거야.

"응? 뭐가?"

-나 이번에 캔자스시티의 분석관으로 들어갔어. 처음에는 예은이 키워야 돼서 안 한다고 했는데, 구단에서 보모를 붙여주고, 집에만 있어도 된다고 했거든. 자료는 구단에서 사람이 와서 전해주기로 했고.

전에는 지완이 분석했다고 했지만, 동욱에 대한 분석이 맞아떨어지자 사실대로 감독에게 말했다. 그러자 구단에서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동욱의 약점을 알아낸 것. 더불어 그 이전에도 주의해야 할 선수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공략한 사실을 알자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정말? 그런데 비자는? 너도 P-4 비자라 취업이 가능한 거야?"

-그것도 구단이 알아서 처리해주겠다고 했어. 안 돼도 지완이 연봉에 합산해서 준다고 하니까.

비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불법으로 눌러앉을 사람이거나, 도피할 범죄자의 입국을 미연에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어차피 일한만큼 성과를 내고, 성과를 낸 만큼 돈을 받으면 그만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세금을 내는지 안 내는지가 관건.

이왕 오가는 돈이라면 비자를 허용하지 않아서 세금을 못 거두는 것보다, 이미 미국에 있는 이상 비자를 허락하여 세수를 충당하는 것이 낫다.

불법밀입국자도 아니고, 정식으로 비자를 받은 사람이 다시 새로운 비자를 받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구단은 혜진의 비자 갱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나에 대한 분석도 하겠네?"

-응. 그렇게 되겠지. 미안하지만 이건 일이라서 너의 약점에 대해 말하진 않을 거야. 내가 해고되거나 지완이 방출되지 않는 이상은.

공과 사는 분명히 하는 혜진. 그리고 같은 지역은 아니라도 리그가 같은 이상 챔피언십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반려인 지완을 먼저 생각해야 할 혜진으로선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동팔은 그런 혜진의 상황을 갖고 따지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 그래도 동욱이에 대한 정보를 아는게 어디야. 다른 곳에선 아직 모르니?"

-당연히. 이건 동욱이가 활약을 하면 할수록, 지키면 지킬수록 유용한 정보니까.

상대의 강력한 공격 카드가 다른 팀을 패배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그 공격카드가 자신들에게 통하지 않게 하면 결국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

물론 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가 너무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어 다른 팀과 협력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았다.

아메리칸 중부 지역 1위를 수성하고 있지만, 그 바로 아래로 캔자스시티가 한 게임차이로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한동욱이 아무리 타선에서 크게 흔들고, 수비에서도 만점 활약을 하고 있지만,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결국 투수의 역량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선 실점을 하는 것 이상으로 점수를 얻는 난타전밖에 없었다.

"동욱이라… 하긴 중부지역은 클리블랜드 상대하는 것이 고역이겠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 투수자원이 빨리 고갈되니까. 투수쪽으로 탄탄한 전력이 없으면 이후로 내리 연패를 당하잖아. 사실 그 덕을 우리 팀도 좀 봤고.

"하긴 너네 팀엔 지완이도 있으니 좀 낫겠지. 더불어 상대할 방법도 있으니 난타전이 될 가능성도 낮아졌고."

결국 혜진이 알아낸 동욱의 약점으로 인해 캔자스시티는 다른 팀과 수월하게 순위 경쟁을 할 수 있었다.

클리블랜드가 수성하고 있는 1위 자리는 물론, 그 아래에 있는 다른 팀들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지역이 다르니 많이 만나진 못하겠지만, 이번에 일정을 보면 곧 만날 것 같아. 알지?

"그야 당연히."

지금 하고 있는 주말 경기를 마치고 나면, 다른 지역에 있는 팀과 경기를 치르러 가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상대하는 팀은 캔자스시티.

즉, 지완과 혜진이 있는 팀이었다.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 아마도 너랑 지완이랑 같이 마운드에 설 것 같아. 내부정보로 확인했으니까 확실해.

이것도 우연히 알게된 정보 중 하나. 자료를 가져다주는 여직원이 잠시 쉴 겸 혜진과 이야기하면서 말해주게 된 것이었다.

중요한 정보도 아니었고, 오히려 기자들이 냄새를 맡아주었으면 하는 정보라 보호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지예 누나가 그 말을 하며 기대하더라고. 어쩌면 나랑 지완이의 코리안 더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면서."

이건 지예가 정보를 입수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지예가 파악한 결과, 메이저리그는 물론 미국 대부분의 프로 팀들은 팬들을 위한 이벤트 기획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 중에 한인이 있는 지역은 당연히 한국인 선수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이벤트를 기획한다. 야구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것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서비스였다.

물론 이것도 팬들의 주머니를 어느 정도 노리는 이벤트였지만, 적어도 팬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가능한 일.

그런 이들이 코리안 더비를 모를 수 없었다. 이왕이면 야구장에 잘 오지 않았던 재미한국인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면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걸 두 구단이 주도했다고 하면 너무 티가 나니, 지역 스포츠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넌지시 사실을 풀어 놓는 중이었다.

-그럼 그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희도 많이 좋아하겠지."

-이미 이야기 했어. 그리고 약속도 다 잡아놨으니까 남자들은 오기만 하면 돼.

여자들의 커뮤니티 채널은 남자들이 인지할 수 없을 정보로 빠르고 다양하다. 동욱의 약점에 대한 중요한 정보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외의 것은 지금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자주 해왔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달리 너무 넓은 미국이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아기를 키우고 있는 혜진의 입장에선 다른 주로 이동하는 것은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에 뉴욕 양키즈가 원정을 온다.

더불어 몸이 가벼운 민희가 미리 가 있기로 약속했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 신혼여행을 마치고 난 다음 만난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라 이미 민희는 기분이 들뜬 상태.

또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혜진도 간만에 있을 친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그때 봐."

-응, 그때 봐.

***

한편, 오늘도 컨디션에 맞추어 훈련을 하고 있는 남궁지완.

구위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고 있지만, 지금 그는 답답했다.

'젠장… 더 연습하고 싶은데 할 수 없게 하다니…….'

조금만 더 훈련에 임하면 지금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구단에 소속된 전문의가 반대했다.

'지금 하고 있는 훈련량에서 더 이상 하면 무리가 갑니다. 지금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쪽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힘을 키우거나 훈련에 집중하려면 시즌이 끝나고 몸이 온전히 회복한 다음에 할 것을 추천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