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동팔의 예상보다 너클볼의 움직임은 조금 더 컸다. 그리고 동팔이 팔에 생각보다 힘이 더 들어갔는지 원하는 포인트로 휘두르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의 오차는 오히려 동팔로 하여금 정타를 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동팔이 원하는 포인트로 배트가 날아가지 않았지만, 오히려 우연히 날아간 배트가 회심의 너클볼을 향해 제대로 날아갔다.
따악~!!!
배트를 중간까지 휘둘렀을 땐 동팔은 사실상 포기했다. 그런데 자석에 붙는 것처럼 공이 달라붙듯이 배트로 날아왔다.
공을 확실히 쳤지만 손에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파울볼은 아니었다. 공은 역회전이 걸리며 쭉쭉 뻗어나갔다.
마지막으로 공이 펜스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지자 양키스 팬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와아~!!"
"홈~ 런~!!!"
기대하지도 않았던 타자가 홈런을 쳤다. 그것도 피홈런으로 실점을 낸 투수가 스스로 점수를 냈다.
"자기의 실수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건가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홈런을 쳤습니다."
"설마 제리스를 상대로 홈런을 치는 타자가 또 있을까 싶었는데 멋지게 한 방 먹였군요."
"제리스에게 안타를 뽑는 건 그나마 쉽지만, 홈런은 쉽지 않습니다. 정타가 잘 안 나오는 유형의 투수거든요."
느리지만 절묘한 변화구. 그리고 결정구인 너클볼은 타자의 입장에서 어느 방향으로 빠질지 모른다. 그러니 예상하고 쳐도 정타가 나올 확률은 다른 투수에 비해 떨어진다.
당연히 이런 유형의 투수를 상태로 홈런을 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운에 의지해야 했다. 특히 타자로서 실력이 떨어지는 동팔이라면 더욱 더.
이것은 홈런으로 루상을 도는 동팔도 잘 알고 있었다.
'휴~ 죽다 살았네…….'
자신의 타격 능력을 알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운인지 잘 알고 있다. 우연으로 일어난 일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프로로서 실격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홈런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피홈런을 당한 충격을 상당부분 흘려보냈지만,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 적어도 안타를 치거나 볼넷으로 나가지 않으면 이 스트레스가 해소될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당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대로 맞아 펜스를 넘어갔다.
양키즈의 타선을 못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제리스가 9회까지 계속 던지면 연장전에 가지도 못하고 패배한다.
고작 단 한 점의 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는 건 더욱 싫다.
하지만 행운의 홈런으로 승부의 추는 다시 평형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동팔이 해야 할 것은 두 가지.
'남은 것은 체력전. 이제 방심하지 않고 단단히 지킨다.'
이미 매 이닝마다 몸을 회복했다. 그러니 체력저하는 있을 수 없었다. 매번 경기를 시작할 때처럼 최고의 컨디션으로 이닝을 시작한다.
하지만 제리스는 아니다. 아무리 너클볼을 주력으로 던지고, 느린 공으로 체력 저하가 적다지만 분명히 손실이 발생한다.
그리고 제리스는 동팔과 달리 손실을 바로 회복할 수단이 없다. 즉,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유리한 쪽은 동팔이었다.
또한 나머지 방법은 동팔이 할 수 있는게 한정적인 것이었다.
분명히 크게 기뻐해야 할 순간이지만, 동료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고 간단하게 무시를 했다. 설마 동양인 투수가 홈런을 쳐서 질투한 것일까?
하지만 동팔은 알고 있다.
루키가 첫 홈런을 쳤을 때, 크게 환호하지 않고 일부러 시큰둥하거나 무시한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하는 [silent-treatment]라는 일종의 관례.
불과 1분 정도 지나자, 그때서야 동료들이 크게 환호하며 축하해 주었다.
"브라보!!"
"동팔이 한 건 했어!!"
"축하해 첫 홈런!!!"
동료들의 축하에 동팔도 같이 기뻐했다. 그리고 그 사이, 마지막 타자가 아웃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공수교대를 하며 동팔은 포수인 브라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브라이언, 제리스를 공략할 방법이 있어."
"뭐? 정말?"
제리스를 공략하는 것은 행운의 안타나 홈런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방금 전에 홈런을 친 동팔도 동료들에게 한 말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전부 다 말하지 못했어. 하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너라면 가능성이 더 높아서 그래."
"뭔데 그래?"
공수를 교대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에 동팔은 최대한의 힌트를 알려주었다.
"제리스가 너클볼을 던질 때 습관은 알지. 그걸 이용하는 거야. 그가 주변을 볼 때, 너도 역시 주변을 보며 바람을 살펴. 그러면 볼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짐작이 가능할 거야."
그 말을 하고 동팔은 마운드로 올라갔다.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앉으며 브라이언은 동팔이 한 말을 곰곰이 머릿속으로 되짚으며 생각했다.
'바람을 읽으라고? 아, 설마 그래서 동팔이 내가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 거였나?'
그동안 많은 투수의 공을 받아왔다. 당연히 다양한 구종을 바로 앞에서 보았고, 그 중에 너클볼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을 받는 것은 경기에서만 아니라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니까. 실전에서 너클볼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아무리 희귀하다지만, 연습과 훈련을 할 때 재미삼아 던져보는 투수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동팔의 경우, 투구 동작을 바꿔야 한다는 단점으로 인해 던지지 않을 뿐, 그의 너클볼은 능숙한 경지다.
그러니 동팔의 너클볼을 포함해,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기까지의 경험이 쌓여 있었다.
'나야 너클볼 경험이 많지만 타자들은 아니지. 실전에서 너클볼을 경험하는 것도 어렵지만, 훈련에서도 많이 경험하는 건 아니니까.'
실력이 있으면 경험이 없더라도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그래도 경험은 재능으로 얻을 수 없는 끈기와 노하우를 얻게 해준다.
특히 변칙적인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게 만들어준다.
브라이언은 동팔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당연히 동팔에게 어떤 공을 던질지 사인을 보냈다.
메이저리그의 투수들이 다른 리그보다 더 많은 구종을 던질 수 있지만, 동팔은 더욱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
그러니 상대하는 타자에 맞추어 제일 필요한 공을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은 포수로서 행복한 고민.
평상시처럼 그가 원하는 공을 던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응? 이번에는 다른 걸…설마 너클볼?'
동팔이 너클볼을 던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는 구위만 따지면 제리스 보다 아주 약간 처지는 정도.
다만 제구력으로 따지면 제리스가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동팔이 아무리 힘써 노력해도 절반 이상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으니까.
그러니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변칙적인 공을 던져야 할 때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지금 하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간간히 너클볼을 던져 내 감각을 끌어 올리겠다?'
그러니 제일 안전한 상황인 초구에 너클볼을 던지기로 결정한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동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람에 따라 바뀌니 바람을 읽으면 된다… 그동안 너클볼에 힘을 실어 중앙으로 향해 던질 생각만 했지 바람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어.'
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구종에 신경써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전, 행운이었다고 한들 생각보다 큰 효과를 봤다.
'계산해야 하는 것은 바람이지만 그 중에 제일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해. 나는 제리스처럼 바람을 눈으로 보는 능력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불안전하다. 적어도 다시 승부의 균형을 맞춘 지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체력전으로 가면 인터리그가 끝나고 나서가 문제.
자신이야 바로 회복할 수 있지만, 다른 선수들은 아니다. 지금은 전력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백업으로 있는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그러니 체력이 저하되는 상황은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연장전을 피하되, 피할 수 없으면 승리해야 한다.
체력을 잃고 승리도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동팔은 그 밑작업을 위해 제리스를 상대로 안타를 칠 확률이 높은 브라이언의 감각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했다.
다만 다른 구종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너클볼이라 투수 숫자가 늘어났고, 종종 위험한 상황이 왔었다.
그러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병살타를 유도하거나, 범타를 유도하여 효율적이면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결국 뉴욕더비, 서브웨이 시리즈의 1차전은 2대 1 양키즈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뉴욕더비를 비롯한 인터리그가 마무리되면 다시 같은 리그끼리 경기가 진행된다.
이왕이면 지역 우승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이 좋지만, 혹시라도 와일드카드를 통한 진출을 생각하면 승률도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승리를 많이 하고 패배를 적게 하면 되는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무승부가 거의 없고, 있더라도 몇 년 전에 하나 있을 만큼 희귀한 메이저리그.
거기에 아무리 약팀이라도 메이저리그에 있으니 가볍게 상대할 팀은 어디에도 없다. 지역 내에서 꼴지라도 언제 치고 올라올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실제로 그런 경우가 꽤 많다.
초반에 밀리던 팀이 마지막에 우승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겨우 중반을 향해하는 중에 방심은 절대로 금물.
그리고 지역 라이벌만 더비가 있지 않고, 그 이외의 다양한 더비가 존재한다.
특히 한국 야구팬이라면 제일 기대하는 것이 바로 코리안더비.
한국인이 있는 두 팀이 경기를 치르며, 두 선수가 맞붙는 경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 경기를 하는 팀은 남궁지완이 있는 캔자스시티와 한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
둘 다 아메리칸 리그 동부 소속이라 생각보다 꽤 자주 코리안더비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특히 한 사람은 투수이고, 다른 사람은 타자인 만큼 맞대결을 피할 수 없다.
같은 타자이거나 투수라서 상대적인 평가에 의존해야 하는 것과 달리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니 두 선수에게 더욱 부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거기에 대해 전혀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저거 이번에 어떻게 처리하지?'
제일 먼저 남궁지완은 한동욱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한다.
지금 한동욱은 한국 리그에서도 그렇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마의 타율이라는 4할을 훌쩍 넘어 5할을 바라보는 미친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이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팀의 승률은 물론 경기장에 잘 오지 않던 팬들도 유입되었다.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나오지 않던 5할 타자가 이번 시즌에, 그것도 자신이 있는 지역의 팀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큰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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