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84화 (184/325)

[184]

"일단 동팔이 형이랑 만나게 되었고, 가르침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공은 공이고, 개인적인 건 개인의 일이라면서 거부하고 계세요."

공과 사를 확실히 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에 대한 구분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병폐를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앞날을 준비함에 있어서 분명한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마크의 자질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에이전트에 등록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부모는 가능한 자식의 좋은 것을 보며,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차라리 조금 뜸을 들일 걸 그랬나? 바로 제안을 하니까 튕기다니……."

기업을 상대로 협상을 잘 해왔다. 하지만 개인을 상대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민희의 방심도 한몫했다.

'바로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래서 방심을 하면 안 된다니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사람의 심리인 걸 잠시 잊고 있었어.'

무릎 수술을 받기 전에는 어느 에이전트에서 오더라도 반겼을 것이다. 그래야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수술을 받았고, 결과가 좋다는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콧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작 당사자가 아닌 부모가.

그러니 처음 보는 작은 에이전트 회사가 눈에 들어올까. 그 회사가 아무리 뛰어난 투수를 가지고 있는 회사라 해도, 고작 한 명 뿐이면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법이다.

민희의 낙담에 마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아무리 부모님이 원하셔도, 다른 에이전트라면 제가 거부할 거예요."

악마가 계약을 제안하는 영혼은 맑고 순수한 영혼이다. 이대로 두면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없는 영혼이 대상이라 마크의 영혼과 마음 역시 맑았다.

은혜를 받았으면, 당연히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소년이었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가 있으니 다행인 민희.

그녀는 자신보다 큰 마크의 머리를 까치발을 들며 쓰다듬었다.

"아이구~ 우리 마크, 참 장하다. 그래도 요즘은 버틸 만하니? 전에 비해 반응이 덜 격렬해졌더라?"

"으음, 우리 마크요?"

아직 한국의 우리라는 문화가 적응되지 않아서 마크는 당황스러웠다. 언제 마크가 민희와 가족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냥 넘어갔다.

"여전히 아파요. 하지만 처음보다 버틸만 해졌다? 아니, 아파도 나아가는 중에 아픈 것이라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크는 민희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 안 가시나요?"

민희가 답했다.

"아니, 가긴 가야지. 거기에 오늘은 인터리그잖아. 뉴욕 메츠랑 하니까 멀리 갈 필요 없어서 편하지. 같이 가 볼래?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선발이라 가 봐야 하는데."

주로 지역 라이벌전으로 진행되는 인터리그는 다른 리그의 팀과 경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다.

같은 리그에 속하지 않으니 경기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게 간다. 하지만, 그래도 승리하는 쪽이 지역 우승에 더 가까이 가게 되므로 양보는 절대로 없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서 지역 라이벌 경쟁인 이상, 가볍게 뛸 수도 없는 경기다.

어떻게 보면 동일 리그에서 경기 결과보다 팬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메이저리그가 침체된 시기에 활력을 불어넣게 만든 것이 바로 인터리그의 도입이었으니까.

그만큼 라이벌이라는 것은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면 좋죠. 분명히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을 텐데. 지금 양키즈가 동부에서 2위죠? 1위는 보스턴 레드삭스이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 지역 우승은 필수다. 만약 지역 우승을 하지 못하면 해당 리그의 팀 중에서 승률이 제일 높은 팀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다른 팀의 상황에 의해 참가 여부가 결정되느니, 우승을 하고 안전하게 진출하는 것이 백번 나았다.

더군다나 1위와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

"응, 반 게임 차이. 그러니 인터리그든 뭐든 지면 안 돼. 처음하는 라이벌 전이라 부담이 되겠지만, 한국에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니 잘 하겠지."

"벌써 인터리그라니… 아, 그런데 그 인디언 아저씨는 어디 계세요?"

마크의 질문에 민희가 답했다.

"응? 우리 집에 들어올 때, 뒷마당 못 봤니?"

"네."

"그럼 모르겠구나. 뒤에서 생활하고 있어. 목사님이 신혼부부 집에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 같이 있자고 하셨는데, 오빠랑 너무 떨어질 수 없으니 뒷마당에 텐트치고 사는 중이야."

집이 넓고 뒷마당이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유용했다.

"네? 그러면 위험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도 가끔 곰이 내려올 때가 있다던데."

그건 동생 로키의 친구인 지미의 목격으로 확인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민희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동물들이 그 아저씨는 잘 따르더라고. 개랑 고양이는 기본이고, 사슴이랑 곰도."

"네? 곰도요?"

"응. 나도 밖에서 보고 놀랐어."

라고 민희가 말을 하지만, 더 자세한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내려온 흉폭한 곰을 때려 눕혔다는 걸 말하면 안 믿겠지? 그것도 같은 곰의 모습으로.'

이미 동팔에게 인디언이 늑대로 변한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나중에 정말로 변하는 모습을 봤으니 안 믿을 수 있을까.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곰은 기본적으로 배고파서 민감하다. 당연히 작은 자극에도 흉폭해지기 마련.

그런데 그런 곰을 상대로 인디언은 지지 않고 오히려 때려 눕혔다. 내려온 곰보다 더 큰 곰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그 광경에 놀란 민희에게 하얀늑대의 벗이 말했다.

'너희 나라에도 둔갑술이란 것이 있는데 놀라는 이유가 뭔가?'

본 적이 없으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의 말로 인해 민희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의외로 다른 나라의 주술이나 영능력자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인터넷은 유용하다. 잘 사용하도록.'

영적인 능력자라고 해서 현대 문물에 미숙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살게 되면서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

민희가 컴퓨터를 못 다루는 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 가능한 혼자서 처리해왔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김대리에게 요청해서 부품을 조달했다.

거기에 고등학교도 상고 계열이라 컴퓨터에 관련된 자격증을 상당수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 민희도 컴퓨터가 고장나면 제일 먼저 이렇게 한다.

탕, 탕.

"이거 또 이러네. 왜 작동이 안 돼?"

가끔 컴퓨터가 멈추면 본체를 손으로 두들긴다. 무식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게 의외로 효과가 좋다.

어느 물리학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손으로 치는 것도 결국 그 충격에너지가 전달되고, 그로인해 에러가 난 부분에 에너지가 전달되어 정상적인 작동을 가능토록 한다고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지만, 실제 실험에서 규명되지 않아 농담처럼 말하는 이론이었다.

다만 가전제품의 경우, 손으로 치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러니 그런 각인이 된 민희는 컴퓨터도 이상이 생기면 처음에는 손으로 쳐 본다.

그런데 그걸 본 인디언이 말했다.

"무식하게 무슨 짓이지? 컴퓨터는 섬세하다. 부드럽게 다뤄줘야 한다."

"네?"

그리고 인디언은 민희가 만지던 컴퓨터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확인해 보았다.

프로그램 확인은 물론, 전원장치의 출력과 이를 공급하는 멀티 소켓의 상태까지 살폈다.

그런 다음 인디언이 물었다.

"종종 컴퓨터가 다운되는가?"

"네. 분명히 처음 샀었을 때나, 매장에 가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이상하게 집에 오면 안 되네요."

분명히 같은 컴퓨터인데, 집에 오면 이상이 발생한다. 그러니 어쩔 때는 컴퓨터를 판매하는 곳에서 수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면 컴퓨터 판매하는 사람은 억울하다. 괜히 에러가 나는 컴퓨터를 팔아 봤자 평판이 안 좋아져 손해만 발생하지 얻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인디언은 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전원 공급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발생한다."

"네?"

"컴퓨터에 필요한 전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한다는 의미다. 사람이나 동물도 그렇지만, 모든 가전제품도 에너지를 정상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양이 높은 컴퓨터일수록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서 지금 민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필요한 전력량과 모니터 및 다른 기기들이 작동하는데 필요한 전력량을 계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기기들의 전력을 연결해주는 멀티 소켓의 사양을 보여주었다.

"이 소켓에서 지원하는 최고 전류에 비해 모든 기기가 필요한 전력량이 더 많다. 다른 기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상관없지만, 프린터를 사용하거나 스캐너를 사용하면 갑자기 작동을 멈춘다."

"아, 그러고 보니……."

가만히 생각하니 방금 전에도 어느 한 자료를 스캔하고 저장을 한 다음, 다른 자료를 출력하던 중이었다.

"누전이나 과도한 전력 사용으로 화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지. 다른 멀티 소켓으로 분할을 한 다음, 다시 모으지 말고, 아쉽더라도 두 플러그에 꽂아야 한다."

정말로 그렇게 하자, 컴퓨터는 다시 멀쩡하게 작동되었다. 그리고 실험삼아 스캔과 프린트를 동시에 했지만, 전과 달리 아주 멀쩡하게 구동했다.

"……."

분명히 문명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쪽은 자신이었지만, 이상하게 야생의 모습을 한 인디언 아저씨보다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민희.

알 수 없는 강렬한 패배감에 몸이 떨려왔고, 민망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

그 사건 이후로, 인디언 아저씨가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봐도 놀라지 않았다.

그가 인터넷과 SNS로 다른 능력자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봐도 마찬가지.

심지어 자신의 텐트 안에서 무선 공유기를 설치하고 랜선으로 연결하는 것은 물론, 전기 공사까지 하는 것을 봐도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텐트에는 의외로 최신형 전자기기가 꽤 많았다. 노트북은 물론 패드와 간이 키보드 및 고사양 스피커도 있었다.

어디서 얻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답했다.

"전에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선물로 줬다. 가끔 물어오기도 한다. 분실물은 신고해서 주인을 찾아준다."

민희는 누가 물어다 주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확인을 위해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뛰어난 해킹 실력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이트를 우회해서 들어가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에 민희는 다시 인터넷과 SNS 및 프로그램 공부를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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