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83화 (183/325)

[183]

그러자 인디언이 말했다.

"적어도 지완이란 사람이 한 계약은 계약의 서를 이용한 것이 아니다. 확신한다. 그것은 악마들이 무분별하게 계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든, 위대한 대정령이 만든 허용이자 제약이다."

"그럼 지완이는 대체 어떤 계약을 한 겁니까?"

"아쉽지만 모른다. 내가 직접 보면 알 것 같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런가요. 그럼 남은 사람은 동욱이인데…대체 뭐 때문에 계약의 유지를 해야 하는지……."

동팔의 말에 인디언이 말했다.

"그에 대해선 나 또한 웜우드에게 물어 봤다. 계약의 서의 내용을 볼 수 있으니 조건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 이전부터 만났다고 했으니 분명하다."

"그럼 유지조건은 뭔가요?"

자신과 연관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사실. 그리고 어쩌면 동욱의 계약을 파기하여 예비 경쟁자를 떨어트릴 수 있었다.

"말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내용이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이유는 말해주었다."

"무슨 이유입니까?"

"교란이라고 했다."

"교란?"

교란이라 함은 상대하는 적이 아군의 목적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여러 가지 목적을 보여주거나, 이를 이용하여 시선을 분산시키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가야 할 방향성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행동을 민첩하게 하지 못하게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여 전략, 전술적인 손해를 입게 만드는 것.

힘 대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전력이 아닌 이상, 다른 수를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은 두고 봐야겠군요. 적어도 적이 아닌 이상, 그리고 유용한 존재니까."

"그대의 말대로 일단은 두고 보는 중이다. 안 그랬다면 이미 이전에 내 손에 끝났을 것이다."

***

한편,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온 지완은 이미 마운드에 올라 투구를 하고 있었다.

지완이 상대하는 팀은 서부 리그에 속한 시애틀 매리너스.

지금 상대하는 타자는 시애틀의 4번 타자인 찰리 머피였다.

경기 시작하기 전, 지완은 이미 구단의 분석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찰리 머피의 자료를 봤는데, 페이스가 떨어졌을때 몸쪽 아래가 약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혜진이 말해준 것을 그대로 말하다시피 했다. 지완의 말에 담당자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관점이 있었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다시 한 번 자료를 분석해 봐야겠는데요."

그리고 그는 농담삼아 말했다.

"그런데 분석관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 되겠지만, 나중에 은퇴한 다음, 바로 이쪽으로 오셔도 되겠어요."

처음부터 지완은 혜진이 아닌, 자신의 분석처럼 말했다. 이것은 혜진의 공(公)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남녀평등을 말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여자의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흘려듣는 경우가 꽤 많다.

더군다나 야구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말이라면 더욱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마련.

그리고 지완의 생각대로인지 알 수 없지만, 분석담당관은 그의 말을 깊게 받아들여줬다.

하지만 아직까지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처음으로 상대하게 된 시애틀의 4번 타자 찰리 머피.

분석담당관의 말대로 포수는 그가 몸쪽 아래에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몸쪽 공이 다른 공에 비해 약해. 헛스윙이나 범타로 끝날 확률이 더 높아.'

확률과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록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 위해선 데이터에 상당수 의존하는 것이 필요했다.

특히 경기 초반에는 상대 선수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없으니 최대한 데이터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이후에 경험과 감각이 더해서 각자에 맞는 작전이나 속임수를 유기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 이번에 결정구를 몸쪽으로 빠지는 공으로 생각하는 포수. 하지만 지완은 그게 마음에 걸렸다.

'지금 상대 타자의 페이스가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없어. 겉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으니…….'

그리고 분석담당관도 모르는 확인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혜진이 언급한 내용이었다.

스윽~ 휙!!

초구는 빠른 공. 혜진의 말대로 상태가 좋다면 배트가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지켜보는 쪽으로 나올 것이다.

만약 페이스가 떨어진 상태라면 포수의 의도대로 몸쪽 아래로 향하는 공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삼진을 노린다.

휭~ 퍽!!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상태가 좋아 보이는지 타자의 배트가 휘둘러졌다.

비록 한 끝 차이로 맞지 않았지만, 조금은 위험한 순간이었다.

턱.

다시 공을 받은 지완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혜진의 말대로라면 지금 몸쪽 낮은 공은 위험해. 약점이 아니라는 소리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야구는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이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속여야 하는 전략적인 스포츠였다.

단순히 공을 던지고 받아치는 것 이상으로, 짧은 순간에 서로의 생각과 예상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흘러간다.

지완이 타자의 상태를 파악한 것과 달리, 타자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몸쪽 아래로 오면 받아칠 수 있어. 나는 지금 상태 좋다고.'

이미 자신의 약점을 모를 수 없는 타자. 서로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 당연하니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거나 이용할 줄도 알아야 했다.

'치열한 승부를 하면 대체적으로 몸쪽 아래로 던져. 그걸 이용하면 내가 나가서 흔들면 돼.'

이왕 칠 거 홈런이면 좋겠지만, 상대하는 투수는 만만치 않다.

같은 한국인 투수인 동팔에 비해 기복은 있더라도, 기본적인 역량은 동팔과 동급으로 평가 받는 지완.

동팔이 164로 강속구의 속도를 더 높인 반면, 지완의 강속구는 여전히 160에 턱걸이 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완의 장점은 단순히 구속의 빠름에 있지 않고, 절제된 변화구에 있었다.

동팔에 비해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적지만, 다른 투수에 비하면 많은 축에 속했다.

특히 너클볼로 따지면 동팔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런 현실을 이용하여 지완은 빠르게 작전과 볼배합을 생각해냈다.

휙~ 퍽!!

이후에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곁들여 던졌다. 그래서 볼카운트는 2스트라이크 3볼.

처음부터 전력으로 던지지 않았고, 치더라도 범타나 파울로 연결될 공만 던졌다. 그나마 스트라이크 하나도 볼인 공을 찰리가 치는 바람에 파울지역으로 간 것이다.

한 타자를 상대로 공을 다섯 개 던졌지만, 초구를 제외하면 전력으로 던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풀카운트가 되자 타석에 선 찰리는 올 것을 기다렸다.

'온다, 거의 몸쪽 아래!!'

그리고 포수도 지완에게 타자가 원하는 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말할 수 없는 포수는 답답해했다.

'왜? 약점이잖아? 간간히 맞기는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은데도?'

지금 당장 마운드로 올라갈까? 포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눈빛을 보니 바꿀 생각이 없어 보여. 이렇게 되면 일단 투수 뜻대로 가는 수밖에.'

자신이 던진 공의 결과에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투수다. 리드해야 하는 포수도 책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을 던지는 당사자가 투수인 이상, 이 사실은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다.

투수의 생각대로 진행되어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 아니더라도 이후에 자신의 리드에 더 잘 따르게 되니 포수의 입장에서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 타석, 공 하나가 중요한 토너먼트가 아니었다. 수많은 리그 경기 중에 하나일 뿐.

지완도 다음에 던질 공을 준비하면서 긴장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정말 혜진이 생각대로일까? 아니면 그 반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나중에 알게 될 일.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 해야 할 때였다.

'와라, 와라, 와라.'

타자인 찰리는 자신이 원하는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지완의 공이 몸쪽 아래로 들어오고 있었다.

스윽, 휭~!!

공의 속도와 궤적을 예상하고 찰리는 배트를 휘둘렀다. 약간의 오차가 생기더라도 그 정도는 수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오차의 범위가 예상보다 크다면 돌이킬 수 없는 법.

몸쪽 아래로 빠질 것처럼 보이던 지완의 공이 방향을 바꾸더니 바깥쪽으로 빠졌다.

"……!!"

처음 궤적과 다르게 공이 오자 찰리는 당황했다. 그렇다고 배트를 뺄 수도 없었다. 이미 장타를 만들기 위해 힘을 잔뜩 싣고 휘둘렀다.

지금 빼면 스윙인정이 뻔했다.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니 최대한 정타로 맞추는 쪽으로. 그게 불가능하면 다음 기회를 위해 파울이라도 쳐야 했다.

하지만 지완이 던진 공의 변화는 이미 알고 있던 포수조차 쉽게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바닥에 떨어졌다.

휭~. 툭.

포수는 공이 빠져나가지 않게 확실히 블로킹했다. 완벽한 헛스윙에 주심의 판정은 당연히 이것이었다.

"스트롸잌~ 아웃!!"

그와 함께 과장되고 힘찬 몸짓으로 아웃을 확실하게 증명해주었다. 헛스윙에 삼진 아웃되는 순간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어쩌면 주심의 특권이자 재미였다.

투수의 팀에서 보면 통쾌한 장면이며, 타자의 입장에선 얄미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주심의 권한은 막대하니 과장된 행동에 뭐라 할 선수도, 관중도 없었다.

이 또한 야구를 보는 재미 중 하나였으니까.

"휴……."

다행히 혜진의 분석은 정확했다. 몸쪽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 던진 공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 그리고 그 모션에 타자는 완벽하게 속았고, 보는 것과 달리 여유 있게 삼진 하나를 채워 넣었다.

지완은 포수가 던진 공을 받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혜진이한테 자료를 더 많이 줄까? 분석담당자보다 더 뛰어난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의 지완은 혜진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분석력은 단순히 더 뛰어나다는 정도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리그 중반을 넘어가서였다.

# 암초, 예상치 못한 방해

민희는 마크와 계약을 하는 것은 간단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지금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곳은 집이 아니라 뉴욕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앉아서 쉴 만한 카페에서 학교를 마치고 나온 마크와 만나고 있었다.

"뭐? 부모님께서 반대?"

그리고 그 이유를 듣자 머리로는 납득이 되었다.

'하긴 수술이 잘 되고 몸이 원래대로 회복이 되었으니 이왕이면 더 좋은 에이전트에 보내고 싶으시겠지…….'

이해는 되지만, 속은 답답했다.

"죄송해요. 제가 최대한 설득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말할 수도 없으니……."

원래는 병원에서 반쪽짜리 성공인 회복이었다. 의학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나머지 절반은 지금도 꾸준히 동팔의 도움으로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 없으니 마크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