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78화 (178/325)

[178]

"저기……."

"힘들지? 다 알아. 악마와 계약을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건……."

다른 사람이 말하는 다 안다는 말을 들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크는 같은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강한 동질감을 동팔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리고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어디론가 향해서 갔다. 두리번거리며 찾는 곳은 사람이 없는 곳. 이후에 해야 할 말을 생각하면 사람이 없는 곳이 필요했다.

이미 동팔이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었고, 결국 동팔이 선택한 것은 아주 잠시 동안의 외출허락이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그건 좀……."

"아주 잠시입니다. 한 시간 정도도 안 될까요?"

동팔의 말과, 너무나도 간절히 바라는 마크의 눈동자에 간호사는 어찌해야 될지 몰랐다. 그런데 이때, 뒤에서 마크를 담당하는 의사가 말했다.

"좋은 기회니까 허락하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의사는 생각했다.

'이미 의학적으로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는 선수와 같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것은 없겠지.'

육체적으로 힘든 와중에 정신적으로도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현실을 알게 되어 정신적으로 작금의 현실을 감당하기 버거울 때, 큰 도움이 될 사람이 나타났다.

의사는 이것이 마크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을 알기에 자신의 권한을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간호사는 고민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원래라면 밤이 늦은 지금 환자가 외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하지만 보증인이 유명인이었고, 담당 의사도 허락을 한 이상, 간호사도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네, 한 시간으로 될지 모르겠으니…한 시간 반 안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무사히 다시 데려오겠습니다."

면회 허락에 동팔과 마크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차를 항해 갔다. 그리고 중간에 의외의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오빠?"

"민희야."

동팔은 민희와 함께 목사와 웜우드를 보았다. 그리고 언제 만났는지 그들과 동행한 인디언까지.

"오빠, 여기 이 분은 교회 목사님이셔."

민희의 소개에 동팔은 일단 목사와 통성명을 했다.

"안녕하세요. 강동팔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최 목사라고 합니다."

마크는 동팔이 아는 사람과 만나자 일단 조용히 있었다.

'지금 보니 중계 화면에서 많이 잡힌 사람이잖아? 설마 애인? 아니 아내?'

중년 남자는 어찌 넘어가고, 여자인 민희도 가족이니 넘어갈 수 있었다. 덤으로 방금 전, 모데스의 뒤에 나타나 그에게 말을 한 인디언도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목사의 바로 옆에 둥둥 떠 있는 웜우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특히나 반투명하게 보이니 적어도 사람이 아니란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서, 설마 악마? 아니 유령?'

그리고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저, 저기… 그게……."

'지금 목사의 옆에 귀신이 달라붙었다고 말해도 될까?'

그러던 중, 마크가 웜우드를 보며 무서워하자 웜우드도 알아차렸다.

"아, 설마 내가 보여? 모데스가 달라붙었던 영향인가?"

웜우드의 말은 동팔과 민희, 그리고 영능력자인 목사와 인디언의 귀에 선명히 들렸다.

웜우드의 말에 인디언이 말했다.

"그자가 약간의 작업을 한 것이 있겠지. 악마를 보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가 떠난 이상, 곧 사라질 영(靈)의 눈이다."

혼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자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마크.

"그런가? 모데스라고?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동팔의 말에 웜우드가 답했다.

"저 마크라는 친구에게 어린 기운을 느끼면 바로 알 수 있어. 거기에 하얀늑대의 벗이 말한 인상착의를 보면 그 아저씨가 주로 하는 형상이었으니까."

그의 말에 목사가 말했다.

"모데스라… 아스모데우스의 휘하에 있는 쾌락의 악마군. 악마 장로 중 하나라 상대하기 어려운 작자야."

"그렇게 위험한 악마인가요?"

민희의 물음에 목사는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주 치명적인 악마지. 계약에서 풀려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타락시켜 다른 영혼을 절망으로 밀어 넣는데 사용하는, 사냥개의 관리인이랄까?"

웜우드를 보는 사람,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인디언만이 아니었다. 동팔은 물론 중년의 동양인 남자와 동팔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기…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마크의 물음에 제일 먼저 다가온 존재는 웜우드였다.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난 악마를 배신한 몸이야. 너희들에게 해가 될 생각은 없으니 무서워 할 필요는 없어. 아니, 이 말을 해도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리고 웜우드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이 친구에 대한 것은 동팔이한테 맡기고, 집에 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 친구에게 설명하는 것이 빠를 것 같은데."

웜우드의 말에 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어. 그럼 동팔 선수. 마크를 부탁합니다. 앞으로 당신에게 중요한 힘이 될 친구임을 확신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희와 목사, 인디언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둘이 남은 동팔과 마크. 동팔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한 마크를 보며 말한다.

"먼저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볼까? 이야기 할 것이 많으니까."

단순히 시련을 넘어 재기한 영웅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이, 미스터리한 일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모데스에게 시달렸던 이야기를 해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마크는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병원 주차장. 적어도 두 사람이 깊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

"이렇게 가도 될까요? 자리는 괜찮아요?"

민희는 뒷자리에 앉은 인디언에게 물어봤다.

동팔과 같이 왔고, 목사도 잘 아는 사이라는 말에 일단 같은 차를 타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 차가 아닌 목사의 차에 타는 것이 민희에게 좋았다.

처음 만난 건장한 남자와 단 둘이 차에 타는 것은 많은 의미로 꺼림칙하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쉽게도 목사의 차보다 민희의 SUV가 훨씬 더 좋았다. 인디언이 동팔보다 40센티가 더 큰 신장이니 목사의 좁은 차에 타면 몸을 많이 숙이게 된다.

그러니 인디언의 쾌적한 승차 환경을 배려하려고 민희가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충분히 좋다. 그리고 미안하다."

민희의 마음을 아는지 인디언은 바로 사과를 했다. 순수한 그의 눈빛과 말에 괜히 그를 의심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 민희는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아, 아뇨. 그럼 갈게요."

민희는 익숙하게 시동을 켜고, 핸들을 움직여 운전했다. 가는 사이, 민희가 물어봤다.

"오빠가 빨리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오빠의 상황이나… 앞으로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그걸 말해준 사람은 목사였다. 각자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게 되면서 목사는 전반적인 상황을 민희에게 말해주었다.

이전부터 말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흐르고 있었다.

결국 둘이 있게 되는 이 순간에, 원래는 동팔과 같이 있을 때 말하려는 것을 민희에게 먼저 말했다.

그래서 민희도 지금 동팔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거대한 영적인 전쟁의 판도를 변화시킬 열쇠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대해서 나중에 두 사람이 같이 있게 되면 말해주겠다. 알게 된 만큼 의문도 많을 거다. 하지만 이것은 그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이야기 할 것이다."

"네……."

# 희망

병원 주차장.

늦지 않게 돌아온 동팔과 마크는 차에서 내렸다. 동팔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쉽게 탄 마크는 역시 그의 도움으로 병실까지 단번에 도착했다.

헤어지기 전에 동팔이 말했다.

"그럼 조만간 또 만나자."

"네.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헤어지면서 마크는 병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미 소식을 알고 있었는지 같이 있던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축하해줬다.

"여~ 마크. 영웅과 만난 기분이 어때?"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몰라도 이렇게 보니 운명인지도 모르겠어."

"나중에 마크도 그 동팔 선수처럼 엄청 유명해지는 것 아냐? 미리 사인 받을까?"

이미 자야 할 시간이 지났어도 그들은 마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정형외과 병동이라서 질병보다 외상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몸을 움직이는데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그 이외의 것은 멀쩡한 사람들이라 활기찼다.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마크는 자신의 들떴던 기분과,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간략하게 말했다. 하지만 마크는 모든 것을 말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어떤 존재. 아니, 그토록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포기하기 직전이었는데 하늘의 응답이 방금 전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할 수 없었고, 마크가 이미 언질을 들은 대로만 말했다.

"교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벌써 찾아오려고 했는데 이제 겨우 시간이 생겨 올 수 있었다고 하셨거든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교회인지 성당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정확히 말하면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는 하늘의 연락을 받고 왔으니까.

왁자지껄한 것도 한 때.

이미 늦은 시간이라 마크가 돌아오자 환자들도 잠을 청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빨리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마크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설마… 동팔 선수도 그런… 악마와 계약을 했다니…….'

자신에게 악마가 나타나 영혼을 건 계약을 제안하는 것은 무척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데스가 자주 나타나니 일상으로 느껴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악마와 계약을 하고, 그와 연관된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그토록 동경하던 강동팔 선수가…….

솔직히 말해 처음 들었을 땐, 많이 실망했다. 동팔이 이룩한 업적이 결국 악마와의 계약으로 얻은 힘으로 인해서라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마크는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된 사람은 괴팍하거나 인간이길 포기한 악마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계약하는 것을 주저했다. 물론 악마와 계약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거부감이 있었고, 다른 것도 아닌 영혼을 건다는 것은 죽음 그 이상의 것을 건다는 것.

당연히 계약하는 것에 대해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동팔은 자신이 예상한 악마 계약자와는 전혀 달랐다.

'자상한 사람이었지……? 그리고 이미 대스타나 다름없는데 아직 루키 리그에 가지도 못한 날 인격적으로 대했고…….'

마크가 느낀 동팔은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웃을 줄 알고, 울 줄도 알고, 타인의 아픔에 슬퍼할 줄도 알았으며, 남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처럼 생각해줬다.

무엇보다 자신도 겪었던 일이라며 위로해 주던 동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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