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뉴욕은 당연히 뉴욕 경찰이 도시의 치안을 책임진다.
하지만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라며 언제 총소리가 들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총을 쏜다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면 죽을 각오를 하고 쏴야 했다.
단번에 테러범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아니, 확정적이었다.
테러범이나 총기 난사를 하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이곳에 총을 쏠 일이 없었다.
경찰도 총소리에 의한 혼란을 생각해 진짜 위험하지 않으면 발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크가 있다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동팔은 정신 이상자의 총기 난사 소리를 들었다.
투두두두두.
탕! 탕! 탕!!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그 현장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여파로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었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온 많은 차량과 구급차로 도로는 막혔다.
그 사이에 인디언이 말했다.
"방금 말했듯이 너는 거대한 전투 한가운데 들어왔다. 검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자 중에 하나와 계약을 하는 그 순간."
"네. 그렇죠. 그리고 그 전투의 국면을 전환시킬 사람이 저라는 것도…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간단하다. 악마는 계약의 서를 사용해 계약을 한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능력을 얻게 한다. 그런데 그 능력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악마의 힘이 자리 잡아야 가능하다."
"그럼… 제 몸에 그 악마의 힘이 어려 있다… 그 말인가요?"
"그렇다. 그리고 악마는 영혼을 강탈하면서 심어놓은 힘도 회수한다. 그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왜죠?"
동팔의 물음에 인디언이 답했다.
"만약 네가 조건을 만족시켜 해방된다면 악마는 본인의 힘을 회수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언젠가 하늘로 가게 되는 그날이 되면… 회수하는 길은 영원히 없다."
그의 말에 동팔은 또 총소리가 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말했다.
"그럼 국면이 전환된다는 것과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설마 그 악마의 힘이 줄어드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그렇다. 중요하다. 악마들의 생리를 모르겠지만 악마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다른 악마의 힘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인디언의 말에 동팔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깐. 그럼 악마들의 세계는 왜 가능한 겁니까? 듣기로는 서로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던데요?"
"협력은 잘 된다. 하지만 자신이 지닌 힘과 비교해 성과가 없다면 사냥감으로 찍힌다. 차라리 그 힘을 더 유능한 악마에게 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미."
"거 참… 아주 살벌한 동네였군요."
"그렇다. 실적이 떨어지면 사냥감이 되어 죽는다. 그러니 악마들은 영혼을 사냥하는 것에 모든 것을 던진다. 적어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높은 실적을 이루면 그에 따른 상급으로 힘을 얻는다. 너희들의 말로는 권능의 일부라고 말하면 되겠지. 지금 너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도 그 힘으로 가능한 것이다."
"아……."
"그리고 마침 중요한 위치에 있는 악마가 너와 계약을 했다. 그자의 경력에 흠집을 낼 수 있다면 그자가 사냥감으로 찍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그자도 영혼을 사냥하는 것에 집중할 수 없겠지. 덤으로 그자를 사냥하기 위해 달려들 다른 악마들을 생각해라."
인디언의 말에 동팔은 그게 실제로 일어났을 경우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혼란의 도가니가 되겠지만 우리한테는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잡아먹기 위해 싸우는 사이, 악마들이 영혼을 노리기 위해 달려드는 것은 줄어들게 되니까요."
"맞다. 그래서 국면의 전환이라고 말한 것이다. 네가 조건을 이루어 해방되면, 너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냥당할 뻔한 영혼들이 살게 된다."
그의 말대로 지금 동팔이 3년 이내에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는 것은 생존을 위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러니 저것들이 극렬히 저항하는 것. 마침 너와 계약을 한 존재는 지금 옆에 없다. 모종의 일로 인해 빠진 지금이 기회. 그러니 마크라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마크와 만나야 하는 겁니까?"
"모른다."
"네?"
"모른다. 하지만 악마들이 전력을 다해 막고 있으니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목적은 모르지만 현실을 보니 여기가 맞는 것 같다는 그의 짐작.
애초에 마크와 만나라는 계시를 들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차에서 내렸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이유로 차에서 내리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 차가 너무 막히는데요……."
"그런가?"
인디언이 내비게이션을 봤다.
처음 출발했을 때와 달리, 도착 예정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인디언이 말했다.
"길에 차를 세워라. 내가 널 엎고 달리겠다."
"네?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하다."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헬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있더라도 여기에서 헬기를 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동팔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내렸다.
그러자 인디언이 말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곤란하다. 이쪽으로 오라."
"네……."
동팔은 반신반의하며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골목길로 들어가자 인디언의 모습이 거대한 늑대로 바뀌었다.
하얀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의 늑대.
그 늑대는 동팔을 보더니 등을 돌리며 엎드려 동팔이 타기 쉽게 했다.
'어… 음… 설마 이런 것일 줄이야…….'
악마와 계약을 한 것 자체만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동팔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없던 터라 일단 인디언의 의도대로 늑대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늑대로 변한 인디언의 사념이 동팔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있는 힘을 다 해 꽉 잡아라.
"네……."
그래서 동팔은 그동안 단련한 악력으로 정말 있는 힘껏 꽉 잡았다.
만약 보통 늑대였다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을 힘.
하지만 인디언이 변한 늑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간다.
"네. 으아~!!"
동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얀 늑대는 건물의 벽을 타고 높이 뛰어 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동팔은 떨어질까 무서워 더욱 강한 힘으로 움켜쥐며 바짝 엎드렸다.
***
늑대로 변신한 덕분에 차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병원 옥상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마크라는 사람이 어느 병실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가 면회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인디언이 말했다.
"너와 계약을 한 존재와 동급의 존재가 느껴진다."
분명히 마크와 계약하려는 최고위급 악마일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 악마가 있는 곳에 마크가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설령 아니더라도 악마의 주변에 있으면 계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서둘러 옥상에서 내려가려던 동팔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뭐지? 잠긴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병원이 옥상은 응급 구조 헬기가 이착륙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언제라도 열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비켜라."
인디언의 말에 동팔이 비켜 섰다.
그러자 인디언이 주먹으로 강하게 문을 때렸다.
펑!!
주먹의 물리적인 위력도 강했지만 주먹에 서린 알 수 없는 힘에 이해 무언가가 튕겨 나갔다.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동팔은 그게 느껴졌다.
그리고 인디언이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문은 너무나 쉽게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하다. 계단으로 간다."
지금 같이 지속적인 견제를 받는다면 확실히 엘리베이터에 갇힐 확률이 높았다. 아니 확실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대응이 용이한 계단이 나았다.
거기에 다행히도 동팔은 야구 선수였다.
급격한 운동을 버티기 위한 체력은 아니었지만 항상 몸을 관리하기에 체력에 문제는 없었다.
내려오는 과정은 치열했다.
만약 동팔 혼자였다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갑자기 환자가 미쳤는지 동팔에게 달려오지 않나, 멀쩡하던 천장타일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도 타지 않은 휠체어가 알아서 돌진하는 경우도 있었고, 폴터가이스트 현상처럼 주변의 물체가 날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인디언이 처리했다.
주먹으로, 때로는 발로 밟으면서 방해하는 하급 악마를 쳐냈다.
또한 동팔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영안으로 보면 주변은 물질의 세계보다 훨씬 처절했다.
크아앙~!!
퍽!!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하얀 곰이 물건을 조종하는 악마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악마는 머리가 터지며 나가떨어졌다.
간혹 환자 중에 귀신이 들려 동팔을 향해 돌진하면 늑대나 표범이 나와 팔과 다리를 물었다.
사람에게 전혀 상처를 주지 않고, 안에 들어간 악마나 귀신의 팔과 다리를 물어뜯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디언도 주변을 살피며 모데스의 기운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영적인 전투만이 아니었다.
"어…? 혹시 강동팔?"
"설마 그 강동팔인가?"
뉴욕양키즈의 경기가 끝난 이후였다.
그 경기의 선발투수가 설마 병원에 있을까 싶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그에게 다가서려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키가 큰 인디언과 눈이 마주치자 다가오던 걸음을 알아서 뒤로 돌렸다.
덕분에 큰 방해를 받지 않고 마크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 직전, 인디언이 말했다.
"저기 있는 흑인 소년이 마크로 보인다. 그 앞에 지극히 강한 악마가 있다. 내가 신경을 끌 테니 소년과 만나라."
"네……."
곧이어 인디언이 마크의 앞에 있는 모데스를 향해 일곱 마리의 늑대를 보냈다.
한 늑대는 시선을 교란시켰고, 여섯 늑대는 은밀한 움직임으로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팔은 몰랐지만, 목숨을 건 인디언의 행동으로 동팔은 마크에게 무사히 다가갈 수 있었다.
"안녕. 마크."
***
마크는 동팔이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같이 가는 중임을 알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정말 강동팔이……?'
마크는 어떻게 그가 여기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동생이 전화를 하면서 동팔에 대해 뭐라 한 것 같지만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은 적어도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인연의 끈이나 관계가 없었다.
자신은 동팔을 동경하는 한 명의 팬에 불과했고, 동팔은 수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위대한 투수였다.
방금 전만 해도 악마가 나타나 영혼을 건 계약을 요구하더니 갑자기 화를 내며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은 동경하는 선수가 자신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어느 것도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마크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런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가능성이 말살된 상황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의 꿈이 더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창문을 통해 들어온 차가운 바람과 차의 매연 냄새가 현실임을 알려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