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72화 (172/325)

[172]

어떻게 목사가 그럴 수 있냐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이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에 기록이 될 만큼 희귀하고, 고귀한 일이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부상으로 인해 좌절하는 사람을 심정을 알고 있으니, 타인의 회복을 위해 고통을 감내할 각오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동팔의 도움으로 부상에서 회복하면 그 사람이 과연 가만히 있겠습니까?

모두가 은혜를 갚진 않겠지만, 일부는 반드시 그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문을 다시 열어준 차원이 아니라, 악마의 손아귀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

야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철저히 팀으로 하는 운동이다.

당연히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팀 자체적으로 함께 해야 했다. 그리고 팀이 꾸려지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을 제외한 또 다른 사람들이.

"동팔의 제일 중요한 능력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거지. 그리고 어려운 사람이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거절하지 않고 도와줘. 그게 설령 잠재적인 경쟁자라 할지라도. 그래서 선택한 거야.

능력으로 보면 동욱이 더 뛰어나지만, 그에게 없는 것이 동팔이한테 있었으니까. 그가 괜히 신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게 아니거든. 희생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그의 진정한 능력이지.

"

웜우드의 말에 목사는 살짝 웃으며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민희를 보며 말했다.

"계시라고 할까요? 다행히 그 첫 대상의 이름을 천사가 와서 알려주었습니다. 이름은 마크. 그리고 웜우드와 같이 만나라고 했으니…자네가 알고 있는 사람인가?"

목사의 물음에 웜우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마크라는 이름이 보통 흔해야지."

"그래도 악마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라면 제한적이지 않을까?"

목사의 정확한 지적에 웜우드는 항복했다는 듯이 손을 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능력은 이미 이전에 다 사라졌어. 계약의 갱신을 위해서. 이젠 꼬맹이 악마한테 걸려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 내가 한동안 여기를 못 벗어나는 이유가 그거지."

웜우드의 말에 민희가 말했다.

"그럼 확인이 된 것은 악마가 노릴 정도의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겠네요.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꺾이면 그 누구라도 깊은 절망에 빠질 테니까."

"그렇겠지. 그럼 확인이 된 것은 뛰어난 유망주. 그리고 악마가 노리는 사람. 또한 야구쪽에 있는 사람이겠지. 덤으로 부상으로 인해 좌절한 사람."

"하지만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알기론…동욱 오빠의 경우는 단 하나의 능력이 없고 상황이 열악해져서 계약했잖아요."

민희의 지적에 웜우드가 답했다.

"적어도 그쪽은 전혀 아니야. 그 이유는 동팔의 능력을 생각하라고. 동팔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부상의 회복이지 능력의 향상이 아니거든. 적어도 상대가 부상을 입어 좌절하지 않는 이상, 동팔과 만나야 할 이유는 없어."

이들의 말에 목사가 끼어들었다.

"만나는 문제에 대해선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분께서 하신 명령은 만나라는 것이죠."

"하지만 만나기 위해선 찾아야 하지 않나요?"

그러자 목사가 답했다.

"아니요.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만나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것은…이미 그분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것. 언젠가 마크라는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을 때, 거부하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네?"

그 말을 들었을 땐, 민희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웜우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하늘의 그분은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감당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을 맡기지."

민희는 웜우드의 말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을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도움의 손길들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

마크는 자신의 앞에 온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절망적인 소식이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크. 우리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

"축하해. 이제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어서."

마크의 앞에 있는 사람들의 인종은 다양했다.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계와 동양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속은 하나였다. 바로 마크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크의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그래서 의료보험에 들지 않아 많은 돈이 드는 마크가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모으는데 성공했다.

마크는 의외의 도움과 행운에 믿을 수 없으면서도, 기쁘고 또 기뻤다.

"꼭 메이저리거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수술 한 번 못 받아서 꿈을 접기엔 너무 아깝잖니."

아무리 십시일반 모았다고 하지만, 미국이라고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건 아니다. 그리고 마크가 다니는 교회도 잘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가 아니었다.

당연히 20만 달러의 돈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려운 가운데 없는 돈을 쪼개어 모았고, 다행히 진료비와 수술비, 입원비를 겨우 모을 수 있었다.

그들의 정성스런 마음에 마크는 물론, 그의 가족들도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그리고 마크는 가능한 빨리, 병원으로 가서 무릎 수술 날짜를 잡기로 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에 마주치고 말았다.

"수술은 한 달 뒤에나 가능하겠습니다. 많이 밀려 있네요."

"네……?"

지금은 시간이 생명이다. 더 이상 늦어지기 전에 빨리 수술을 받고 재활에 전념해야 했다. 그 와중에 희망의 문이 열린 것은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면 문은 다시 닫히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병원을 찾기란 어려웠다.

'그나마 여기가 제일 싼 곳인데… 다른 곳에 가면 돈이 더 있어야 해……. 그리고 바로 수술날짜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발품을 팔려고 해도 여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 결국 나중에 수술 날짜를 잡아주겠다는 말만 듣고, 마크는 병원을 나왔다.

한편,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모데스는 기분이 나빴다.

"자기 살기도 바쁜 놈들이 무슨 여유를 부리겠다는 건지……."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크의 무릎에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병원의 수술 스케줄이었다.

수술이 꽤 밀려있는지 정말로 한 달 뒤에나 마크의 무릎 수술이 가능했다. 이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지켜볼 상황이 아니었다.

"가능한 빨리 계약을 하기 위해선 작업을 해야겠어. 스크레이치 녀석이 가 있다고 해도, 마크와 동팔이 만나면 계약은 물 건너가고 말아."

대상의 부상을 회복시키는 능력은 마크에게 있어서 구원의 능력과 같다. 그리고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마크가 알게 되면, 당연히 영혼을 건 계약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보통 때라면 느긋하게 한 달 뒤의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팔의 존재로 인해 조급해진 모데스는 작은 수작을 했다.

그는 즉시 병원의 명단을 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뒤, 마크는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행히 한 분이 다른 병원으로 수술을 잡아서 스케줄이 비게 되었어요. 이틀 뒤에 수술 가능한데 그때 하시겠어요?"

당연히 마크는 병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가서 입원과 수술 일정을 잡았다.

***

한편, 동팔은 아침을 먹으면서 민희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뭐? 웜우드가 교회에? 그리고 마크를 만나라고?"

악마인 웜우드가 왜 교회에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민희를 통해 전후 사정을 듣게 된 동팔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그거 그 녀석이 듣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렇다면 스크레이치가 바로 교회로 가서 웜우드를 잡아 죽일 수 있었다. 그러자 민희가 말했다.

"그럴 걱정은 없다고 말했어요. 이미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접근할 수 없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들어올 수 없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웜우드는 특별한 때가 되지 않는 이상, 그 울타리를 넘지 않겠다고 했고."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면 다음 문제가 남는다.

"마크는 어떻게 만나게 된대?"

"그건 저도 모르죠. 때가 되면 만날 기회가 생기니, 그때 만나라고 했어요."

"으음… 그건 설마 기밀유지?"

스크레이치가 옆에 있다면 자신들이 하는 대화를 다 듣고 있을 건이 뻔했다. 당연히 언제 만나야 할지 안다면, 그를 비롯한 악마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때가 되면 만난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일단 마음에 두기만 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선발인데."

이미 첫 선발 때 승리를 했기 때문인지 지금은 그때만큼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4승 4패죠? 중요한 일전이니 지금은 거기에만 신경쓰면 될 거예요."

"응. 그렇지 않아도 이번 시즌에 팀이 처음으로 5할 이상을 넘을 기회니까."

"오빠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민희의 말에 동팔은 싱긋 웃더니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 함께 있어줘서. 오늘도 보러 올 거야?"

"네, 이번에는 교회 분들과 같이 가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오빠 이야기를 했더니 꼭 만나고 싶다면서. 그리고 시간이 되면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나중에 시간되면 우리도 초청하면 되겠지. 그런데 나야 상관없지만, 넌 괜찮겠어?"

다른 사람을 초대한다는 것은 그에 맞추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 숫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준비를 필요로 했다.

한국에서라면 어머니 소환 카드를 쓸 수 있지만, 지구 반대편인 이곳에서는 절대적으로 무리. 당연히 그 모든 준비를 민희 혼자서 하거나, 동팔이 일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죠. 간단히 할 수 있는 것들만 준비하면 될 거예요."

이렇게 말은 간단히 해도, 실제로 준비하는 과정은 꽤 많은 시간과 정성, 노력을 필요로 한다.

같은 한국인 이니까 어차피 한 상에 차리면 끝이다. 국이야 한 번에 끓이면 되고, 제육과 같이 고기볶음도 역시 마찬가지. 반찬이야 이전에 만들어둔 것을 쓰면 되고, 밥도 역시 많이 해서 그렇지 한 번에 가능하다.

다만 그 전에 재료를 사 두고, 미리 고기를 재워두며, 간을 맞추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동팔도 한국에 있었을 때, 부모님의 손님이 오셨을 때에 같이 도와드린 적이 있어 이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이 준비하자. 초대는 우리가 했는데, 너만 준비할 수 없잖아. 나도 운동만 한 게 아니라 엄마한테 반찬 만드는 것 정도는 배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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