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71화 (171/325)

[171]

"이미 안면이 있었습니까?"

목사가 웜우드를 알고 있었다. 문을 통과하는 것을 봤다는 건데,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저… 저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민희를 보며 목사가 말했다.

"이런 쪽 일은 깊게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이해합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요."

그러자 웜우드가 그 사이에 민희의 앞에 다가왔다.

"그때는 스쳐지나갔지만,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 정식으로 인사하지. 악마를 배신한 악마, 웜우드다. 부모 이름보다 악마장관 스크레이치의 조카라는 걸로 더 유명한 몸이지."

스스로를 악마라 하는 사람이라면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을 것이다. 하지만 마술쇼도 아니고 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니 농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어, 어……."

악마의 소개에 뭐라 말해야 할지 민희는 혼란스러웠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목사가 웜우드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딱!

"어허! 갑자기 그렇게 나오면 무섭게 느껴지잖아. 한 걸음 떨어져 있어."

"쳇."

설마 정말로 악마를 때리는 목사가 있을 줄이야. 이 교회에 와서 사람들과 목사를 보면서 좋은 분위기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악마와 직접적인 인연을 가지고 있을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목사의 행동 덕분에 민희는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아… 저는 민희라고 합니다."

"이미 동팔이란 친구랑 만나면서 알고 있습니다. 직접 볼 수 있는 경우보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렇게 말하자 민희는 과연 내 앞에 있는 웜우드가 정말 악마인가 싶었다.

'혹시 사람 아닐까? 방금 전에 그것이 트릭이라면?'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민희는 웜우드가 통과한 문에 특별한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동팔의 아내여서 많은 돈과 이어져 있다지만, 고작 돈을 뜯어내기 위해 이렇게 정교한 세트를 만들 이유가 없다.

차라리 이걸로 마술쇼를 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특히 문화와 예술, 공연의 심장부인 뉴욕이라면 더욱 더.

두 사람을 보며, 목사가 말했다.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빨라지겠군요. 그렇지 않나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목사의 말. 물론 그가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다. 알고 있는 것은 동팔이 악마와 계약을 했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하지만 그 사실이 지금의 핵심이었다.

또한 목사의 말대로 이야기가 빨라졌다.

"아마 저와 상담하시려는 건 여기와 관련된 이야기일 겁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안으로 들어갈까요?"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는 어느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사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목사라면 모를까 평범한 신도가 듣게 된다면 이후의 여파는 민희가 교회에 있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또한 동팔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생기게 된다. 물론 그냥 듣기론 황당한 내용이라 아무도 믿지 않을 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 소문이 퍼진다면 동팔과 민희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민희는 목사의 제안에 따랐다. 그렇다고 목사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전에 성직자라고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여자를 농락한 경우가 있다는데…조심해야지.'

무엇보다 방에 남자와 단 둘이 있는 상황. 목사나 전도사같이 성직자를 무조건 믿어주는 시대는 이전에 끝났다.

오히려 더욱 경계해야 하는 시대와 사건이 나오고 있는 상황.

그래서 민희는 당회실에 들어가면서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와 마음을 가지고 들어갔다.

다행히 민희가 걱정한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

한편, 동팔은 원정을 나온 상황에서 팀의 훈련을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섯 번 경기를 치렀고, 이번이 원정 마지막 경기. 그리고 지금 팀은 2승 3패…….'

개막전은 패배.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분발하여 승리했다. 그 다음에 있었던 동팔의 선발경기에선 그의 압도적인 구위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아 겨우 승리를 했다.

하지만 원정을 와서 내리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물론 이 패배에 동팔이 관여한 것은 전혀 없었다. 선발로 나서지 않은 그가 책임질 일 자체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다보니 동팔은 전체적으로 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지금 팀의 선발진은 튼튼해. 나만 아니라 1,2선발은 충분히 그 이름값을 하고 있어. 타선도 보강되어 있어서 어떻게든 영패를 하지 않는 수준. 바꿔 말하면 극강은 아니지만 평범한 수준이겠지.'

동팔이 평범하다 말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메이저리그의 평균이 기준이었다. 적어도 못하는 건 아니다, 라는 의미가 전부였다.

'하지만 문제는 수비. 외야수의 발이 느려. 조금만 더 빠르면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쳐서 외야플라이가 장타로 연결이 돼. 그렇게 해서 생긴 점수가 대부분이야.'

그렇다고 지금 있는 외야수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뛸 실력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지금 동팔이 말하는 것은 폄하가 아닌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외야수만 아니라 또 다른 아쉬움이 있었다.

"유격수를 진짜 어떻게 하지? 그렇지 않아도 다섯 경기에서 실책이 경기마다 하나씩 나오면… 좀 위험한데……."

수비가 흔들리면 투수도 흔들린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을 수는 없다. 투수 숫자도 그렇지만, 범타만큼 아웃카운트를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아슬아슬하게 잡는 것이 아니라 수비가 기다리고 있다가 잡는 범타에 한(限) 한다. 그리고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확실히 동욱이가 있다면 편할 텐데…….'

국가대표가 되어 같은 팀에 있었을 때, 동욱이 수비를 하면 적어도 그 구역에 한해서 완벽하게 믿을 수 있었다.

아무리 빠른 강습형 타구에 불규칙한 바운드가 일어나더라도 그의 신경반응 속도라면 충분히 잡는다.

적어도 키를 넘기는 타구가 아니라면, 그가 있는 구역으로 날아가는 모든 공은 생환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동팔도 안심하고 범타를 유도할 때, 동욱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도록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신이 선발로 나왔을 때, 맞은 안타 중 하나가 실책성 안타였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은 동팔이지만, 야수 실책이 본인의 피안타로 기록되는 것은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동팔이 하기도 전에, 이미 감독과 코치들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좋은 외야수 없나?"

"구단에서 찾아보고 있는데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젊은 유망주 중에 한 사람이 있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재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상이 심해?"

"그건 모릅니다. 수술하고 경과를 봐야 하는데…그러지 않고 있으니……. 아마 형편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코치의 말에 감독이 혀를 찼다.

"유망주 하나가 부상으로 낙마했군. 수술비용도 못 대는 상황이라면 이미 끝났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그 유망주의 수술비용을 대줄 생각은 없다. 유망주는 어디까지나 유망주에 불과할 뿐.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개화하기 시작하거나 이미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였다.

미래가 불확실한 유망주는 투자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고작 몇 달러 차이로 유능한 선수를 영입하지 못하면 큰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돈 자체의 손해가 아닌, 기회 상실이라는 손해를.

***

한편, 교회에선 민희가 목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계약의 서로 한 계약은 해지가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분께서 인정하신 계약. 그리고 본인의 자유의지가 확고히 서린 계약이라서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겁니다."

혹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민희에게 목사의 말은 죽음의 선고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우리 오빠는 3년 뒤에…악마에게 살해당하는 건가요?"

그러자 목사가 답했다.

"꼭 그렇지만 않다는 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조건을 만족하면 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조건이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상, 확률은 많이 올라갔습니다."

적어도 한국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되었다면, 애초에 월드시리즈 우승 확률은 0% 확정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기를 쓰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는 것 아니었던가.

동팔도, 동욱도. 그리고 지완도.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동팔 선수는 더 유리한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나, 웜우드."

목사의 말에 웜우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야 그렇지. 지금 그에겐 다른 사람에게 없는 능력이 있으니까. 내 모든 힘을 쏟아 부어서 만든 그 능력이."

웜우드의 그 말에 민희가 물었다.

"그래봐야 다른 사람의 부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끝이잖아요. 그것도 평상시보다 두 배는 더 아프게."

이왕이면 사용하고 싶지 않은 능력이었다. 물론 그 유용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민희는 동팔이 더 아픈 건 싫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목사가 말했다.

"지금 민희 자매님의 심정을 다 이해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저도 아이가 있는 아빠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보면 저 역시 마음이 아픈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민희는 짜증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동팔 선수의 능력은 아주 유용합니다. 그리고 그도 알고 있으니 더 큰 고통이 가중되는 것을 알면서도 각오하고 받아들인 것이겠죠. 계약의 서를 작성하는 것도 그렇지만, 다시 수정하는 것도 본인의 자유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럼…얼마나 유용하다는 거죠?"

"간단합니다.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는데,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합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사의 물음에 민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정답을 말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다른 사람과 같이 하면 되겠…아, 설마?"

목사님의 질문에 답하는 순간, 지금 그녀는 동팔의 새로운 능력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동팔 선수는 부상으로 인해 방출되었고, 좌절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부상으로 인한 절망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죠."

"네… 당연히……."

이전에 동팔이 훈련하던 레슨장에 몰려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본 동팔은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야구공에 사인을 해주고, 지금 처해진 상황에서도 공을 잘 던지는 노하우를 일일이 알려주었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기에 할 수 있는 수고와 노력이었다.

"그래서 동팔 선수만 가능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회복했을 때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내가 고통을 겪음으로써 상대방이 회복한다고 한들, 그 고통을 감내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민희 자매라면, 아니 저라도 제 가족이 아닌 이상,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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