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69화 (169/325)

[169]

"당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분명히 그것과 관련된 일이겠군요. 누구입니까? 악마와 계약을 한 가여운 영혼이."

거기에 이미 그는 천사가 여기에 온 목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쪽의 일에 대해서 잘 알지 않고선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천사는 일일이 설명을 할 필요 없이 바로 중요한 사실을 전했다.

"강동팔이라는 사람이다. 그분께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는 영혼 중 하나."

"그렇군요. 강동팔이라… 너무 유명해서 모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도 한국인이니 강동팔을 모를 수 없다.

몇 년 동안 암흑 속에서 재기를 준비하고, 프로에 다시 입단. 그리고 압도적인 피칭으로 한국 리그를 씹어 먹은 다음,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더군다나 그가 모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민희 자매님이 이 교회에 출입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한인끼리 교류를 통해 도움을 얻고자 찾아왔겠죠. 여기서는 흔한 일이니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어쩌면 이것도 그분이 인도하심인지도……."

그의 말에 만나러 온 천사는 여기 오기 전, 전령천사가 한 전언이 떠올랐다.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이미 그분께선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하셨다. 대체 어떤 준비인가 싶었지만…그분의 안배는 보이지 않아도 확실히 움직이고 있었어……."

그 순간엔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을 따르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 왜 하늘의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느낀 경외는 시간이 갈수록 쌓이며 천사의 순종을 더 강하게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상황에 처하면 어느새 또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동팔이란 사람과 마크라는 사람을 만나게 하라. 그리고 웜우드도 같이."

천사는 제일 먼저 알려야 할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그래요? 웜우드도 같이? 하긴 요즘 그의 모습이 안 보인다 했더니 무슨 일을 했나 봅니다."

"하기는 했다. 자신의 남은 모든 힘을 써서 하나의 변곡점을 만들었지."

"변곡점이요?"

그의 물음에 천사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그가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그렇군. 그건 정말 악마들에게 있어 최악의 능력이지. 타인을 위한 희생이야 말로 사랑의 궁극적인 형상 중 하나이니까. 웜우드 녀석, 꽤나 머리를 썼어."

그 말을 할 때, 그들의 뒤에서 웜우드가 나타났다.

"내가 없다고 녀석이라니. 목사가 입이 험해."

웜우드의 말에 그가 말했다.

"안수 받았을 때부터 목사란 타이틀은 의식하지 않았다. 그걸 아는 녀석이 그 말을 하냐?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이런 상황일 땐 알아서 피하더니."

그러자 웜우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야 상황이 좀 급해서. 까딱하면 죽을 뻔 했다고, 삼촌한테."

웜우드의 삼촌은 한 존재밖에 없다.

"스크레이치… 그가 제대로 움직이려는 건가?"

"맞아. 한동욱을 젖혀 놓고 동팔을 집중적으로 마크할 생각인 것 같아. 오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는데… 하마터면 걸릴 뻔 했지. 잡히기 전에 제일 안전한 곳에 와야 하지 않겠어? 여기라면 삼촌도 오는 것을 꺼리니까."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이어서 말했다.

"어느 악마라도 숨이 막힐 듯한 신성이 흐르는 이곳만큼은……."

그 말을 할 때, 웜우드의 목에는 순결한 기운이 어린, 천사의 검 끝이 겨누어졌다. 그러자 웜우드는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어허… 이래서 이런 상황에 오는 건 싫었다니까. 내가 악마이긴 하지만, 지금은 같은 목적을 가진 걸 알면서 왜 이래?"

웜우드의 말에 천사가 말했다.

"네가 악마라는 건 자명한 사실. 그리고 악마는 항상 거짓을 말하지. 너의 행동이 기만이라는 가정은 항상 하고 있다."

"음…그건 뭐 어쩔 수 없지. 악마가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일상이니까. 그래도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증표를 보여라. 버리지 않았다면 있겠지."

"거참…꽉 막히기는……."

웜우드는 그 말을 하고 두 손을 내렸다. 그러면서 두 손을 모으더니 자신의 미약한 힘을 모았다.

파앗.

빛과 함께 나타난 것은 이전에 그가 어떤 존재에게 받은 거대한 낫. 그리고 그 낫을 보자 천사는 검을 거두었다.

"아즈라엘의 낫. 확실하군."

"내가 살아남을 유일한 구멍이지. 버릴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그것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건 언제 진행할 예정인가?"

아즈라엘은 죽음의 천사. 그러니 그 천사의 낫으로 하는 일은 뻔했다.

"누구를 죽이라고 했는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 때는 내가 정해. 이 부분에 있어선 그분께서 나에게 일임하셨고."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 처리할 생각이지? 한 영혼이 악마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선 이것이 최선인 것을 알면서?"

천사의 말에 웜우드가 답했다.

"이거, 이거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까. 삼촌의 계획을 완벽히 방해할 수 있는 때가. 한 영혼이 아니라 더 많은 영혼을 다른 악마들의 손에서 구할 때가 있어."

"그렇다면 말해라. 그 때가 언제인지."

"미안, 이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서 나도 확답할 수 없어. 하지만…적어도 최후의 선을 넘지는 않을 거니까 안심하라고."

웜우드는 그 말을 하며 얄밉게 웃었다. 그의 말과 행동에도 천사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이들이 있는 교회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천사를 만나러 온 목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에 사람이라… 분명히 고민이 많은 성도이겠지. 나는 이만 일하러 가야 하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

그는 그 말을 하고 자신의 책과 연구서적, 각종 자료가 있는 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가 나온 자리에선 천사가 웜우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웜우드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천사는 더 있을 필요가 없어 천상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웜우드가 중얼거렸다.

"좋겠다. 갈 곳도 있고. 나는 이제 갈 곳이 없는데……."

이전부터 악마들의 배신자로 찍혔다. 그래서 악마들이 보이지 않는 곳. 아니면 자신보다 힘이 약한 악마가 있는 곳만 찾아다녀야 했다.

그 중에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악마가 찾아오지 않는 곳. 신성력이 흘러나오는 장소만이 그의 안식처가 되고 말았다.

악마의 안식처가 성지라는 아이러니 속에 웜우드는 낫을 역소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누가 왔는지 볼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웜우드는 문을 통과하며 방을 나왔다. 보통이라면 악마인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악마와의 계약자이거나, 여기 있는 목사처럼 영적인 눈을 가지지 않는 이상은.

그런데 지금 목사와 만나고 있는 여인은 웜우드를 보자 깜짝 놀랐다.

"어? 설마……."

여인이 웜우드를 알아보자 목사도 역시 웜우드를 보았다. 웜우드와 여인의 눈이 마주치자 웜우드는 여인의 이름을 말했다.

"어? 설마…민희?"

"웜…우드?"

예상치 못한 재회에 한 사람과 한 악마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 예기치 못한 인연들

민희가 이 교회에 온 것은 단순했다. 가까우니까.

그리고 만난 사람들은 전부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다. 민희는 그들에게 있어 일단은 처음 온 신자. 아니, 믿는 건 아니었으니 믿게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니 잘 대해주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대해주는 만큼, 민희는 부담스러웠다.

'이러다 못 믿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도움을 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매이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만약 교회에서 자신에게 십일조라던가, 그 외 기타 헌금을 내라고 압박하면 바로 나올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교회에선, 사역자인 목사와 다른 직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압박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희는 시험을 했다.

"사실…제 남편이 뉴욕 양키즈에 있는 강동팔 선수에요."

동팔은 양키즈와 3년에 5천만 달러로 계약을 했다. 단순한 계산만이라면 연봉이 1,800여만 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00억원을 1년에 받는다.

1년에 약 30회의 등판을 한다고 가정하면 한 번 등판할 때마다 받는 돈은 6억보다 많다.

물론 세금으로 인해 실제 수령하는 금액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 비율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그래도 1년에 100억에 가까운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해도 교회에선 동팔의 돈을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것에 더 집중했다.

"정말요? 그럼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

보통 민희의 말을 들으면 허영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민희의 말을 쉽게 믿어주니 사실을 말했어도 민희가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행히 민희의 말을 인정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네요. 작년에 강동팔 선수가 한국 리그에 있을 때, 종종 중계화면에서 보였었는데…그땐 애인이셔서 그랬었구나."

의외로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교회에 있었다.

덕분에 민희는 굳이 동팔을 교회에 데리고 오며 증명시킬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일요일에도 경기에 나가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데리고 올 수도 없었지만.

그 사실을 한국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보자 바로 이렇게 답했다.

'일단 돈을 밝히지 않은 걸 보니 좋은 교회니까 계속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런 교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그리고 따로 알아보니까 이단이나 사이비도 아니더라.'

처음 간 교회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좋은 의미다. 또 다른 교회를 알아보는 방법도 있지만, 한인 사회가 생각보다 좁기 때문에 너무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곤란했다.

그리고 민희가 신을 믿지 않아도 다니는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예배시간에 목사가 해주는 설교가 특별했다.

솔직히 말하면 민희에게 있어서 교회에서 하는 설교의 이미지는 고리타분했다. 항상 같은 이야기에 교훈적인 내용. 그리고 일부인지 상당수인지 통계를 낼 수 없지만, 헌금을 내야 믿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는 목사도 있었다.

그 내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믿음을 증명하는 방법이 돈 이외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틀렸다는 건 단언할 수 있었다.

교회 분위기인지 몰라도 다행히 이 한인 교회의 목사는 돈을 강요하는 설교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 설교할 내용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다만 첫 한 마디만 들어도 지루할 것 같은 내용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목사의 설교는 의외로 깊은 몰입을 하게 만들었다.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왜 하나님은 안식일을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왜 십계명에서 규정을 하여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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