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64화 (164/325)

[164]

"애한테 그런 거 가르치지 말고! 좋은 거 좀 가르쳐요!!"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왜? 이것만큼 현실적이고 착한 교육이 어디 있어? 난 우리 아들이 다른 누구한테 맞고 다니는 꼴 절대 못 봐. 물론 때리는 것도 못 보지만."

결국 아빠와 엄마는 교육 관점이 달라 언성이 높아졌다. 이전에는 부모님이 서로 싸우면 무서워서 덜덜 떨던 지미였지만, 지금은 신경을 끄고 야구 중계에 집중했다.

그러다 지미의 눈에는 벤치 클리어링 중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동팔을 보게 되었다.

동팔은 개막전부터 이런 경우가 생길 줄은 몰랐던 터인지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중계 화면을 통해서 미국 전역과 세계에 방송되었다.

동팔의 얼굴을 본 지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저 선수… 누구지? 왠지 어디서 본 거 같은데요."

지미의 말에 부모님이 중계 화면으로 눈을 돌리셨다.

하지만 그땐 이미 중계화면이 다른 선수를 비추고 있었다.

"누구 말이니?"

"그게 동양인이었어요. 중국? 아니, 중국 선수는 없으니 일본인가?"

지미의 말에 아빠가 물었다.

"지미 말대로 양키즈에 중국 선수는 없어. 그리고 아시아 쪽이라면 일본이랑 한국인데… 전에 있던 일본 선수는 다른 팀에 트레이드 됐으니 없지. 그럼 한국인가?"

"한국이요? 아, 전에 전쟁이 나서 폭삭 망한 나라요?"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에서도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은 직접 연관이 된 사람을 제외하면 많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국을 알 의무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한국을 몰라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알아도 필수적인 정보가 아니니 기억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지미의 반응은 미국 학생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자 그의 아빠가 말했다.

"폭삭 망했으면 야구도 못 했겠지. 전쟁으로 완전히 망했지만, 나중에 발전을 많이 해서 프로야구 리그가 있는 나라야. 야구 랭킹에서 3위인 나라란다. 당연히 1위는 미국, 2위는 일본이고."

"네?! 그래요? 정말?"

"그럼 정말이고말고. 지미 학교에도 동양인이 있지 않니?"

"있죠. 하지만 너무 조용해서 말 거는 것이 쉽지 않아요. 다가가려고 해도 저를 피하는 것 같고."

부자의 대화에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아는 얼굴이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스쳐 지나가듯 들었기에 지미의 말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아 엄마는 그 말을 가볍게 넘어갔다.

'야구 보러 온 사람 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는 거겠지. 얼마 전에 옆집에 이사 온 젊은 부부일지도…….'

설마 양키즈에 입단한 선수가 바로 옆에 살 거라는 생각은 지미도, 엄마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메이저리그의 선수는 오직 TV나 경기장에 가야 볼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 야구의 중심지에 서다

개막전에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며 다이나믹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한 동팔. 그리고 이틀 뒤가 되어 이젠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었다.

"다녀올게. 오늘 올 거지?"

"오빠 첫 선발 등판인데 당연히 가야죠. 이미 구단에서 시즌권이랑 오늘 좌석 티켓도 줬어요."

한국 프로리그에서도 선발로 나온 투수의 가족에게 제일 좋고 비싼 좌석 티켓을 줬다.

이것은 선발투수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도 그랬다. 물론 이것은 규정이 아니라 일종의 관행에 가까운 것이라 강제 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희는 양키즈 구단과 협상할 때 이 사항을 문서화해 강제력을 부여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특별히 요청하였을 때, 최대 4장의 티켓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었다.

어쩌다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오게 되었을 때 표가 없을 경우에 대비한 것뿐이었다.

물론 동팔의 연봉에 비하면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으니 구단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거기에 구단에서도 동팔의 가족의 편의를 봐주는데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해주는 조항이었다.

동팔에 대해선 경기 외적인 모든 것을 민희가 알아서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동팔은 가서 갈아입을 필요 없이 양키즈 유니폼을 입고 차에 탔다. 그리고 익숙하게 차를 몰아 오늘 있을 선발 준비를 위해 훈련장으로 떠났다.

민희는 떠나는 동팔을 향해 손을 들고 흔들다가 집안일을 마저 하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어? 양키즈?"

지미가 2층의 자기 방에서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동팔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개막전 중계 화면에서 본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는 동팔을 봤다.

"어… 설마… 그때 그 사람인가?"

아침에 출근하는데 야구 유니폼을 입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그와 관련이 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혹시나 개막전에 봤던 동양인 선수인가 싶었다.

지미는 동팔의 등번호를 확실하게 외워두었다.

"66번이었지? 한 번 찾아볼까?"

제일 좋은 것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수집이었지만 지금 지미는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미!! 언제 내려올 거야!! 버스 기다리게 할 거야?"

"아뇨! 내려가요!!"

아직 학생인 지미는 지금 당장 학교에 가야 했다.

그리고 미국의 특성상 땅이 넓기에 좀 떨어진 곳에선 학교 버스가 필수였다.

당연히 단체로 타야 하니, 한 사람이 늦으면 그 한 사람을 기다리게 되어 늦게 되는 법.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 때문에 기다리게 된 이후에 다가올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지미는 서둘러 내려왔다.

지미는 내려오면서도 생각했다.

'등번호 66번이 누구지?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물어볼까? 혹시 로키는 알고 있을까?'

지미가 버스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키가 버스에 탔다.

"지미."

"로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더니 로키는 지미의 옆자리에 앉았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학생들이 타다 보니 따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로키가 옆에 앉자 지미가 그에게 물었다.

"맞다! 로키! 너 혹시 알아? 양키즈 선수 중에서 등번호가 66번인 동양인 선수… 아니면 코치일까?"

지미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양키즈 팬인 자신도 모든 선수들의 등번호를 아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처음 보는 선수였고, 제일 좋은 수단인 인터넷은 학교나 집에서만 가능했다.

그러자 로키가 말했다.

"66번? 그리고 동양인이라고?"

"응."

"그러면 강동팔 말고는 없어. 이번에 한국에서 영입한 투수잖아. 3선발이니… 오늘 등판할걸?"

"정말?"

"응."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바로 알았어?"

지미의 물음에 로키는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야 마크 형이 벽에 걸어놓은 양키즈 유니폼이 66번이잖아. 그 강동팔이라는 선수의 유니폼."

로키의 말에 지미는 얼마 전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렇지. 너희 형이 그 선수 이야기 듣고 재활한다 했지?"

"응. 그런데 그 선수는 왜?"

"그게… 우리 옆집에……."

지미는 로키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버스가 학교에 도착했다.

"자, 모두 천천히! 안전하게 내리자!"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인솔하는 선생님이 내렸다.

그리고 시동을 완전히 끈 운전기사도 같이 내렸고, 앞뒤를 살피면서 선생님을 도와주었다.

반이 다른 관계로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자 지미가 로키에게 말했다.

"미안. 다음에 이야기할게."

"응. 점심시간에 봐."

***

한편,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마크는 이미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자기 자리에 앉으며 무릎상태를 봤다.

마크의 오른쪽 무릎은 자신의 용돈으로 구입한 보호대로 감싸져 있었다.

다행히 일상생활에는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빨리 뛰려고 하면 이전처럼 힘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아 넘어지거나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마크는 손에 있는 진료비를 확인했다.

수술비는 물론 입원하고 나서 재활까지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혀 있었다.

"젠장… 20만 달러가 넘잖아……."

그 절반인 10만 달러만 해도 원화로 바꾸면 1.2억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이것이 최소금액이라는 것.

진료비 명목에는 진료비와 수술비뿐만 아니라 돈을 뜯어내기 위한 각종 항목이 적혀 있었다.

마크는 이 진료비가 진짜 진료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민간 의료보험에 들었다면… 여기에서 최소 75%. 어쩌면 90% 이상 깎을 수 있을 텐데…….'

그러다보니 미국이 아니라 의학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팔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된 마크.

그가 한국에서의 무릎 수술 비용을 알아본 결과, 최소 1천 달러(약120만원) 내외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건 의료보험이 적용이 되었을 때라 실제로 외국인이 그가 내야 할 돈은 그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왕복 비행기 티켓과 재활하는 사이에 호텔에서만 묵는다 하더라도 미국이 훨씬 비쌌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는 것이 싫은 마크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중요한 상담을 앞에 두고 있었다.

"마크.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너 오늘 진로 상담하잖아."

같은 흑인 친구인 제임스의 물음에 마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몰라. 생각 같아선 계속 야구를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마크의 말에 제임스가 그의 오른쪽 무릎을 봤다.

"수술비는 얼마나 나온대?"

"한 20만 달러 나온다. 적어도 보험에 들었으면 2만 달러 정도로 끝났을지도 몰라."

"뭐?! 20만 달러? 그런데 2만 달러도 장난 아니거든?"

"그래도 어떻게든 넘볼 수는 있잖아."

"그건 그렇지… 어떻게든 1년을 바짝 조이면 모을 수는 있는 돈이니까."

하지만 보험에 들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마크가 야구를 포기했을 경우, 그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야구 안 하면 취업해야 하잖아. 하지만 고교 졸업하고 나서 좋은 직장은 무리니까. 그래도 건설 쪽이 많이 준다더라. 난 거기 갈 건데… 넌?"

"몰라. 하지만 일을 안 할 수도 없으니까 어떻게든 해야지……."

그동안 자신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야구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졸업을 하고 루키리그에 들어가 인정을 받으면서 싱글A와 더블A. 그리고 트리플A까지만 가도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 그는 루키 리그에 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진짜 아깝다… 혹시 너라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그럼 지금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거잖아."

친구의 안타까움은 진심이었다.

야구는 흑인이 미국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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