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62화 (162/325)

[162]

일주일에 쉴 수 있는 날은 경기가 없는 단 하루인 것은 미국도 한국과 같다. 하지만 거리와 시차로 인해 그 하루 만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란 어려웠다.

거기에 지역 자원봉사도 해야 하고 팬미팅도 한국보다 자주 있었다.

리그 중간에 길게 쉴 수 있는 때가 있기는 했다.

그건 한국과 마찬가지로 올스타전 때였다.

하지만 올스타전에 출전하면 이틀 이상 쉴 수 있는 유일한 휴가도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과 달리 메이저리그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한국의 올스타전은 걸린 것이 없기에 축제와 비슷해서 그냥 즐기면 되지만 메이저리그의 올스타전은 걸린 것이 있었다.

월드시리즈에서 어느 리그의 팀이 홈 어드밴티지를 얻느냐.

월드시리즈는 한국시리즈와 마찬가지로 7경기를 한다. 공평하게 하려고 해도 한 경기는 한 팀의 홈에서 더 하기 마련이었다.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 올스타전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사소한 이점이라도 얻기 위해서 각 리그의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은 사력을 다 했다.

올스타전에 뽑히면 쉴 시간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플레이를 해야 하니 기진맥진해졌다.

구단의 입장에서 올스타에 자신의 팀의 선수가 뽑히는 것은 그만큼 선수를 잘 뽑았다는 반증이지만, 이후의 일정을 생각하면 상당한 차질이 발생한다.

실력이 없는 선수가 뽑히지도 않지만 뛰어난 선수를 내보내지 못하게 된다면 월드시리즈에서 불리함을 안고 시작해야 했다.

"개막전은 홈에서 열리죠? 이제 사흘 남았나?"

"그렇지."

"아, 혹시 민철 오빠 온다는 거 지예 언니한테 말했어요?"

민희의 그 말을 들은 동팔은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묻는다는 것은 민희가 지예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아니. 형이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깜짝 이벤트라면서."

"네?"

그 말을 하면서 동팔은 과연 민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 건 화를 내기보다 고민을 하는 민희의 반응이었다.

"이벤트라… 그냥 만나는 건 아닐 거겠죠?"

"아니… 나도 자세히는 잘 몰라. 일단 티켓 구해달라고 하셔서 구하긴 했지만……."

"그거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안 그러고 그냥 만나기만 하면 괜히 역효과 나는 거 알고 계실까요?"

민희의 지적에 동팔은 본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이 움찔거렸다.

"말씀드릴까? 아니, 그 전에 내가 한 번 물어보는 것도……."

"아뇨. 오빠 바쁜데 제가 할게요. 남자가 하나든, 둘이든 여자 마음 모르는 건 한 가지 같거든요."

동팔은 민희의 말에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 그냥 이런 건 나보다 민희랑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겠지. 그리고 지예 누나한테도…….'

적임자가 있다면 그에게 맡기고 빠지는 것이 나았다.

리그가 시작되기 전, 유일한 휴식시간 동안 극한의 훈련을 하느라 바빴던 동팔이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았던 걱정 하나를 더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는 평상시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옆집에 아이가 사는데 이름이 지미라던데요."

"그래? 몇 살인데."

"13살이요. 집 자체가 양키즈 팬이래요. 지금은 괜찮지만 오빠 등판하면 얼굴 알아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지금처럼 평온한 삶은 더 이상 없겠지? 다니게 된 교회에서는 아직 몰라?"

"네. 아직은요. 오빠가 유명해져도 저랑 같이 안 가면 제 남편이 누구인지 모를 거예요. 그래도 계속 숨길 수는 없으니 가까운 시간 안에 말해야겠지만."

***

다음 날.

"다녀올게."

"잘 다녀오세요."

꿀맛보다 더 달았어야 할 휴식기간을 처절한 피와 땀으로 채운 동팔은 훈련을 위해 훈련장으로 향했다.

한국은 야구장이 많지 않아 서울 외곽에 있는 구장을 이용하거나, 홈구장에서 훈련을 했다.잠실구장은 우산과 RG가 같이 쓰고, 오전에 행사가 있을 경우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우산과 RG의 대결이 있는 날이면 홈 어드밴티지는 서로 정해진 스케줄대로 진행했다. 이는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프로팀이라면 자체적인 구장을 만들 수 있지만 다른 팀은 무리였다. 반면, 미국은 야구에 관한 인프라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의 야구 인프라도 한국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기반이 잘 잡혀 있다.

단순히 학교팀, 아마팀이 더 많은 차원이 아니었다.

많은 팀이 유지가 되도록 많은 야구장이 지어져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니 메이저리그의 팀은 훈련할 때, 꼭 홈구장에서 할 필요가 없다. 주변에 훈련하기 더 좋은 장소를 만들고 장비는 물론 라커룸과 땀을 씻어줄 샤워시설, 그 외 각종 편의시설도 추가했다.

경기가 열리는 구장에도 의료진이 있지만, 그들은 선수보다 혹시라도 모를 관중들의 부상도 살펴보는 데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곳 훈련장에 있는 의료진은 선수들의 부상에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항상 대기했다.

동팔이 향하는 곳은 양키 스타디움이 아니라 이전부터 훈련을 받은 전용 훈련 구장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거리가 멀지만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위치했기에 차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빠르게 도착한 동팔은 서울과 달리 넉넉한 주차장에 자신의 차를 세우고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헤이. 캉."

"아, 토머스. 빨리 왔네."

"너도. 간만에 휴식이라 푹 쉬었지. 넌?"

"나도 뭐……."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댄 동팔.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양키즈에서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Roster)가 전부 도착했다.

그 사이에 존 지라디 감독과 코치들도 도착을 했다.

모두들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눈 다음 훈련에 돌입했다.

이번 훈련은 평상시와 같이 진행되었다.

스프링캠프 때와 달리 힘든 훈련보다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1선발인 G.C 사바시아는 곧 있을 개막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나 구속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던지는 것에 집중했다.

사바시아는 마운드에 올라와 실전 감각을 더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머지 투수들은 불펜에서 잠시 쉬는 동안 그는 가라앉은 구위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었다.

"후우……."

공식적으로 팀의 3선발인 동팔도 불펜의 마운드에 올라와 있었다.

간단히 심호흡을 한 동팔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을 던졌다.

휭~ 퍽!!

공은 기다리고 있던 포수의 미트 속으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갔다. 뒤에 있는 스피드건에는 동팔의 구속이 찍혔다.

[100.0]

100마일의 구속.

전보다 힘을 조금 뺀 상태에서, 전력이 아니라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차원에서 던졌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이전에 던졌던 최고 구속을 찍었다.

투수코치가 동팔을 보며 말했다.

"캉, 시작부터 전력으로 던지지 마. 처음부터 무리하면 몸 상해."

동팔이 집에서 어떤 훈련을 했는지 모르는 그로선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자 동팔이 말했다.

"힘을 조금 빼고 던졌습니다."

"뭐? 정말? 쉬는 사이 구속이 더 올랐다고? 그게 말이 돼?"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은 제구력을 높이는 것 못지않게 많은 훈련을 필요로 했다.

제구력이라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 높일 수 있지만, 구속은 신체적인 힘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아직 27살의 젊은 동팔이지만, 그래도 구속이 갑자기 높아질 수는 없었다. 동팔이 말했다.

"지금부터 조금씩 힘을 싣겠습니다."

"아… 그래……."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부터 확인하면 됐다.

동팔의 구속이 올랐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주변에 있던 투수들도 훈련을 잠시 멈추고 이곳을 봤다.

스윽~ 휙!!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팔을 휘두른 동팔. 그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여기엔 이들의 눈을 대신해 차이를 알게 해주는 물건이 있었다.

[100.9]

방금 전보다 약 1마일이 더 오른 구속. 확실히 구속이 오르자 코치는 고민에 빠졌다.

'저거 오차가 어떻게 되더라? 그래도 많이는 아니겠지만 어떻게든 속도가 오르긴 오른 것 같은데…….'

그는 오차를 생각해 최소 0.5마일 정도는 더 올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속 동팔이 이어서 공을 던지자 스피드건의 숫자가 점점 높아졌다.

휙~ 퍽.

"오, 이번에는 101마일인데."

"하지만 아직 여유가 있어 보여. 어쩌면 더 오를까?"

"설마 그럴 리가. 고작 며칠 쉬었다고 구속이 오르겠……."

휙~ 퍽!!

"어… 이번엔 101.5마일."

"정말 올랐네. 설마 여기에서 더 오르는 건……."

휙~ 퍽!!

동팔이 이번에 전력을 다해 던졌다. 스피드건에서 나온 숫자는 '102'였다. 보고 있던 투수는 물론 모든 선수와 코치가 놀랐다.

"잠깐,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아? 며칠 사이에 102마일? 2마일 더 올랐다고?"

1마일이 1.61킬로미터임을 감안하면 자그마치 3.22킬로가 더 오른 것이다. 이전에 던졌던 최고 구속은 161킬로였으니 지금 찍힌 대로라면 164.2킬로로 바뀌는 것이다.

최고 구속에서 1킬로 더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올리는 것보다 떨어지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어려웠다.

더군다나 낮은 구속도 아니고 160이 넘는 상황에서 더 끌어올린 것이니 놀라지 않으면 프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놀란 사람은 구속이 올라간 본인이었다.

'어? 설마 이렇게까지?'

생각으로야 165킬로의 구속을 원했다.

하지만 155에서 160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니 165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는 실제로 어떻게든 1마일이라도 더 올렸으면 하고 바랐다.

지금 생각보다 훈련의 성과가 좋았는지 2마일을 끌어올렸다.

구속이 오른 것을 확인하자 코치는 즉시 감독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근처에서 소식을 들은 감독은 바로 동팔을 불렀다.

"캉."

"네."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세. 나머지는 계속 훈련해."

그리고 감독은 동팔을 데리고 훈련장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지예는 지금 민철과 통화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뉴욕이랑 서울의 시차가 14시간 나지? 뉴욕 시간에 14시간을 더해야 하니까…….'

지예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럼 지금 서울은 밤 1시 정도 되겠네. 자고 있을 시간이니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새벽에 전화를 하는 것은 민폐 중 하나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에겐 깊은 단잠은 활력을 넘치게 하는 약과 같았다.

그걸 알는 지예는 민철에게 전화할 생각이 있다가도 사라졌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있다간 외로움에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지예였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일이었다.

"그래. 지금은 기사를 써야지. 그동안 인터뷰한 녹음을 다시 듣고, 기사 쓰고, 또 수정하고… 올리고……."

하지만 지예는 몰랐다. 지금 민철이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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