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61화 (161/325)

[161]

"거기에 보이는 사람의 이름은 항상 같았어. 그러니까 더 미치겠는 거야. 계속 다른 것이 보이면 미쳤구나 싶어서 정신병원에 연락하겠지만. 그러기엔 좀 그렇고."

로키의 말에 지미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봤다.

"뭐라고 그러는데? 어쩌면 정말로 심령현상을 목격한 것일 수 있잖아."

"야, 그런 말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 형이 갑자기 영매가 되는 건 싫어."

"그래도 영매가 돈은 잘 번다고 하더라. 사이비 말고 진짜 영매는. 그래서 마크 형이 본다는 그 유령의 이름은 뭔데?"

지미의 계속되는 물음에 로키가 그 이름을 말했다.

"모데스. 처음에 그 말을 하던데, 요즘은 그 말을 말하지 않으려고 해. 이름 자체에 힘이 있다나 뭐라나… 헛것을 보는 것도 정교하게 본다니까."

"고생이 많구나. 힘 내.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 간다. 조심히 들어가."

"응. 너도."

하지만 두 소년은 몰랐다.

단순히 환각만 보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상황이란 사실을.

***

로키의 형인 마크 루스는 포기하지 않고 재활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크가 다친 부분은 무릎. 그래서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면서 다른 부분을 훈련해야 했다.

이전이라면 전신을 쫙 펴서 푸시업을 했겠지만, 지금은 바닥에 부드러운 천을 깔고 그 위에 무릎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했다.

'104, 105, 106…….'

손을 어깨 넓이로만 두고 하지 않았다. 넓게 펴서 하다가, 그 다음에는 손을 모은 상태로 했다.

팔과 등, 가슴의 근력을 키운 다음엔 하체 운동을 했다. 하지만 오른쪽 무릎의 인대가 끊어진 상태라 이번에도 일반적인 운동은 할 수 없었다.

그는 허벅지의 근력을 높이기 위해 벽에 고정한 고무 밴드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리를 들어올렸다.

오른쪽 허벅지는 무난하게 했지만 정작 왼쪽 허벅지를 할 때가 어려웠다.

"젠장,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오른쪽 다리로 지탱하자니 다친 무릎에 무리가 갔다. 정작 멀쩡한 왼쪽 다리를 운동할 수 없게 되자 마크는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 나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마크는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수건을 쌓았다.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지는 것 같자 자화자찬을 했다.

"이러면 되겠지? 역시 난 천재야."

의자 위에 다친 무릎을 올려놓고 왼쪽 무릎 위로 고무밴드를 걸었다. 그렇게 오른쪽 허벅지 운동을 했던 것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당겨지는 고무의 탄력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쿵!

"억!!"

어떻게든 다친 곳이 더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소란이 일어나자 난리가 난 곳은 집 안이 아니라 아랫집이었다.

"조용히 안 해!! 아파트 다 무너지겠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아파트는 소시민들의 주거공간이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선 아파트만큼 효율적인 건물이 없었다.

마크도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바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방음이 안 되는 건물이라 마크의 소리는 아랫집에 바로 전달되었다. 마크가 바로 사과하니 소리칠 명분이 사라진 아랫집은 그저 작은 소리로 뭐라뭐라 불만을 말했다.

그 작은 소리도 바닥에 쓰러진 마크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젠장… 누군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나……."

생각보다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거실의 벽엔 그가 붙여 놓은 한 선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양키즈 유니폼을 입은 동팔의 사진.

그리고 그 옆에는 그동안 숨겨 놓은 비상금으로 산 동팔의 등번호 66번이 찍힌 양키즈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보며 마크는 중얼거렸다.

"저 사람도 해냈잖아. 나라고 못하겠어?"

동생 로키의 말대로 마크는 동팔의 이야기를 듣고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준비했다.

그러던 그의 옆에 한 존재가 나타났다.

"모두가 저기 있는 강동팔이 되는 건 아니야. 넌 예외가 되고 싶겠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이미 부모님은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마크와 로키 아래에 있는 다른 아이들의 생활을 위해서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다. 지금도 일을 하기 위해 밖에 계셨다.

집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한 아이들이 전부인데 동생들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놀러간 상황이라 집에 있는 사람은 마크, 자신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의 옆에 갑자기 나타난 존재. 갑자기 옆에 나타났지만 마크는 놀라지 않고 그의 이름을 말했다.

"또 네 녀석이야? 악마 모데스. 이번에도 계약을 하자고 온 거야? 내 영혼이라는 칩을 걸고 도박을 하자는 그거?"

마크의 말에 모데스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으면 됐어. 계약을 하겠나? 그러면 지금 너의 무릎 부상을 당장 회복시켜 주지. 그리고 네 능력을 더 강화해 메이저리그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가지게 할 수도 있어."

"아~ 그 대신 난 5년 이내에 죽겠지. 그것도 영혼을 강탈당하는 방식으로."

이에 모데스가 말했다.

"빠져나갈 구멍은 있어. 말했잖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 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월드시리즈 우승이 쉽나? 나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질해도 할 수 없어."

"맞아. 그렇지. 하지만 운 좋게 강한 팀에 스카우트되면 확률은 높아지는 건 알고 있잖나. 네가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우승에 편승하면 그만이야."

"그 팀에 속할 확률은 기본만 3%야. 확률이 너무 낮잖아. 위험해서 싫어."

마크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모데스는 짜증내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럼 계속 이렇게 살려고?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 넌데 언제까지 속 편하게 재활에 집중할 수 있을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돈도 없지. 그리고 너만 한 유망주 정도는 미국만 봐도 얼마나 많은지 알고 그런 말을 하나? 10만 명이야 10만 명."

한 해 야구 선수가 되려하는 미국 고교생의 숫자가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 극소수만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거나, 어쩌면 못하기도 한다.

"그 10만 명 중에 메이저리그에 발을 디딜 실력을 얻게 해주겠다는 게 그렇게도 싫어? 이건 0.001%의 확률을 뚫고 가는 거라고. 앞으로 가족 걱정을 해야지. 네 미래도."

흑인이 미국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건 대체적으로 3가지 방법이 있다.

힙합 래퍼가 되든가, 갱이나 마피아가 되든가 아니면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인기 있는 스포츠의 선수가.

그게 아니면 미국에서 흑인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연기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지만 백인 연기자에 비해 출연료가 적었다.

흑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나왔다.

모데스의 유혹이 통했는지 마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한부 인생이 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둘까? 그러면 부모님이랑 동생들도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메이저리거의 연봉은 트리플 A와 비교할 수 없었다. 잠깐 사이 받는 연봉을 생각하면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는 것은 단 1년이면 충분했다.

그때 마크의 눈에 동팔의 사진이 들어왔다.

마크의 가슴이 다시 희망으로 힘차게 뛰었다.

"됐어. 필요 없으니까. 꺼져."

마크는 그 말을 하고 모데스가 있는 곳을 노려봤다.

봤을 때는 이미 그곳에 모데스는 없었다.

대신 아무것도 없는 곳을 노려보며 이야기하는 형을 두려운 눈빛으로 보는 자신의 동생, 로키가 있었다.

"어… 미안. 아무것도 아냐. 미안……."

이미 집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기에 마크는 바로 사과하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한들, 이미 무서워하는 로키 속의 두려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방에 들어가면서 마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악마 새끼. 또 이렇게 놀려먹어?'

마크는 그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바람에 로키가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솔직히 그의 유혹과 제안에 잠시 마음이 끌려간 것이 컸다.

마크는 자신의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서 기도했다.

'오… 하나님… 제발 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그리고 제발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저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때, 마크의 머릿속에 동팔의 모습이 떠올랐다.

벽에 걸린 사진과 66번의 유니폼이 강하고 선명하게 머릿속을 채웠지만 마크는 그 생각을 바로 지웠다.

'젠장. 그걸 자꾸 봐서 그런가? 왜 자꾸 동팔의 사진과 유니폼이 떠오르는 거야?'

당시 마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때 든 생각이 그의 기도와 바람을 이루어줄 계시와 같았다는 것을.

# 강철의 응원

스프링캠프 이후와 리그 시작 전까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전에 다시 구장에 와서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휴가는 더욱 짧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동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있었다.

"끄으으……."

이미 어제 혹사를 넘는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5번을 던지기도 힘들었지만 불과 며칠도 안 되는 사이 15번까지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동팔의 손과 팔, 등과 허리의 근육과 힘줄, 인대가 더 강해졌다. 정확히 얼마나 더 빨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휙~ 퍽!!

동팔이 평범한 야구공을 던져보자 적어도 이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전보다 확실히 더 빨라졌어. 그리고 더… 가벼운 느낌."

단순히 손바닥의 힘만이 아니라 악력도 늘어 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공을 챌 수 있었다. 덕분에 속도가 빨라졌어도 제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 하는 훈련은 근력을 키우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제구력의 유지를 위한 변화구 훈련이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것이 있었다.

"식사하세요."

"응. 알았어."

바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강도 높은 훈련을 하기 전에 움직이기 위한 연료를 보충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스포츠카라도 기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오늘은 인대와 근육이 끊어질 정도로 혹사하는 훈련도 아니라서 민희도 마음이 가벼웠다.

동팔은 식탁에 앉기 전 손을 씻었다.

자리에 앉자 민희가 말했다.

"훈련도 오늘로 끝이죠? 내일부터 구장에 출근하고."

"그렇지. 짧지만 리그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여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통 주 6회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미국이 워낙 넓고 지역 리그끼리 맞붙는 경기도 있다.

시차도 존재하고 오가는 거리가 길어 이동하는 것에만 피로가 크게 쌓였다. 당연히 한국보다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한국처럼 홈경기를 할 때마다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홈 3연전을 마치자마자 원정을 가기 위해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할 때가 자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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