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으윽……."
무거운 공을 있는 힘껏 던지는 바람에 동팔의 손과 팔, 등이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관절의 고통에 동팔은 소리를 죽이려 해도 죽이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나오는 고통의 신음은 지하실을 맴돌아 문을 통해 거실 밖으로 튀어 나왔다.
지하실에서 들리는 동팔의 신음소리에 민희는 울음이 튀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눈물까지 나오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동팔의 신음소리가 나오길 몇 번 반복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자 민희는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닦았다.
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충혈된 눈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안 좋은 것 같은데…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민희는 미리 준비한 압박붕대를 가지고 지하 훈련실로 내려갔다.
"오빠! 괜찮아요?"
민희가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른손을 잡고, 주저앉아 부들부들 떠는 동팔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그의 오른손을 본 민희는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윽!!"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이 늘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을 참기 위해 이빨을 꽉 물며 겨우 버티는 동팔을 볼 수 있었다.
민희가 재빨리 동팔에게 다가갔다.
"아프겠지만… 일단 고정할게요."
민희는 그 말을 하고 동팔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고 빠르게 받치더니 손바닥을 펴게 만들었다.
"으윽……!!"
민희의 말에 각오했던 동팔이지만 고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손을 빼지 않았다.
늘어진 상태로 계속 있으면 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었다.
민희는 가능한 빨리 압박붕대로 동팔이 손가락을 고정시켰다.
완전히 주먹을 쥐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공을 잡은 모양대로.
붕대를 묶는 과정이 많이 아팠는지 동팔의 입에서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붕대로 손가락이 고정되자 고통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후우… 후우… 고마워……."
"아뇨… 뭘 이 정도 가지고……."
부상의 고통은 줄었지만 이대로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음에 있을 회복의 고통이 찾아올 차례였다.
"민희야. 가능한 빨리 해야 고통의 강도가 줄어들어. 미안한데… 마우스피스 좀 가져다줄래?"
"아, 네……."
민희가 거실로 나가 새로 산 마우스피스를 가지고 왔다.
동팔은 입에 마우스피스를 물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빠른 회복이 중요한 건 아니야… 천천히 강도를 조절해야 해…….'
이전에 겪은 극한의 고통은 한 번에 빨리 치료하려고 하다 보니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새벽까지 못해도 7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루에 회복할 수 있는 부상의 최소한의 양은 전체의 3분의 1이야. 하지만 지금 회복해야 할 양은… 내일 할 것을 생각하면 80%까지는 회복해야 해.'
나머지 20%는 내일 아침에 회복시켜야 했다.
전에 산속에서 했을 때처럼 하루에 100%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적은 80%였다.
거기에 새벽의 한두 시간 안에 끝내지 않고, 8시간에 걸쳐 천천히 회복한다.
그렇게 하면 그때보다 고통의 강도는 20% 정도가 줄어들 것이다.
거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동팔은 자신의 회복속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오늘 한 훈련은 오직 쇠공을 몇 번 던진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회복의 고통도 끊어진 손바닥의 인대와 팔, 일부 등의 근육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쉽게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끄으읍~!!!"
동팔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바로 회복에 전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복할 때의 고통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나마 방음이 되는 지하실에서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사이에도 민희는 혹시 동팔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
한편, 동팔의 옆집의 아이인 지미는 넓은 곳에서 친구와 공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지미와 같이 13살인 로키라는 흑인 소년이 힘차게 공을 던졌다.
공은 지미의 주변을 향해 날아갔고, 지미는 재빠르게 공을 잡았다.
휙~ 퍽.
"나이스!!"
지미가 깔끔하게 공을 잡자 친구인 로키가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지미도 로키를 향해 공을 던졌다.
하지만 로키의 정확한 송구와 달리 지미의 공은 로키의 키를 넘어가려고 했다.
"어어……?"
예상한 곳으로 공이 가지 않자 지미는 당황했다.
하지만 로키는 펄쩍 뛰더니 가까스로 지미가 던진 공을 잡았다.
휙~ 퍽!
"나이스!!!"
로키가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공을 잡자 이번에는 지미가 좋아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체력이 거의 떨어질 때까지 공을 던지며 놀았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두 사람은 가게로 가서 시원한 캔 탄산음료를 사 마셨다.
"캬아! 좋다."
"역시 이 맛이지!"
운동 후에 먹는 시원한 탄산음료 또는 이온음료만큼 달콤한 것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 이후, 이제 두 사람은 집에 가야 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어두워지면 치안이 더 불안해지고, 특히 아이들의 경우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로키! 너 빨리 가야지? 그렇지 않아도 경찰들이 흑인은 안 좋게 대하잖아."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인이 아닌 남자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흑백 인종 갈등이 일어나며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그나마 국제적인 도시가 있는 뉴욕이라 인종차별이 적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야지. 어두운 밤에 흑인 소년이 한 명 어슬렁거리면 안 좋게 보잖아."
이미 로키도 몇 번 겪었기에 길을 서두르려고 했다.
그 전에 로키가 지미에게 말했다.
"미안해. 이번에도 내가 얻어먹고."
로키는 슬럼가에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은 아니었다.
뉴욕시 주변에 살긴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것은 매 한가지였다.
로키의 말에 지미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기는. 지금이야 우리 집이 더 잘 살고, 용돈도 받는 내가 사야지."
그리고 이어서 야구공을 보여주며 말했다.
"대신 이제 곧 프로가 될 너희 형이 잘되면… 상황은 역전될걸? 그러면 내가 너한테 얻어먹을 거야. 지금 사 주는 건 그때를 위한 투자고."
민감한 사춘기의 나이였고, 흑백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 지미는 로키가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또한 그것이 지미의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미의 말에 로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게… 잘 안 될 것 같아. 사실 형이 시합 중에 무리하다가 다쳤거든."
로키의 말에 지미의 얼굴에 떠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지미가 깜짝 놀라며 걱정했다.
"뭐?! 어쩌다가?"
"그게… 상대 타자의 타구를 잡으려 달리다가 점프했는데… 그때 무리하는 바람에… 무릎에 무리가 갔대. 그래서 치료를 받으려 했는데 돈이 보통 많이 들어야지."
"아……."
미국의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약을 먹여주는 이유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고, 물을 전해주는 것에도 돈을 받았다.
치료비와 진료비는 물론 약값도 마찬가지.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민간 의료 보험에 들면 모든 것을 보험회사에 맡긴다.
그렇게 되면 병원과 보험회사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칼자루를 병원이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칼자루는 보험회사가 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돈을 지불할 의무가 아닌, 권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듣기에는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보험회사는 병원이 제시한 진료비 명목을 꼼꼼하게 따지며 불합리한 요구를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간다.
그렇게 되면 병원이 받을 수 있는 돈은 소송비만큼 줄어들게 된다.
거기에 소송이 진행되는 만큼 진료비를 받아내지 못하니 그만큼의 기회비용도 잃게 된다.
그러니 병원은 싸워봐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기보다, 보험회사 측에서 요구한 것을 받아들여 진료비를 깎는다.
그 이후에 보험회사는 회원에게 알려준다.
이번에 내야 할 진료비가 이 정도였는데, 그중에 상당수를 깎아서 그보다 훨씬 낮은 진료비를 내게 되었다 라면서.
그래서 깎은 진료비가 어쩔 때는 99%에 달할 경우도 있었다.
즉, 원래 내야 할 진료비가 10,000 달러였다면 100달러로 끝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의료보험은 정부에서 주도하지 않고, 민간에서 한다.
즉,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빈민이나 서민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에선 빈민이 병에 걸리거나 크게 다치면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병을 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이라도 다치거나 병들면 그대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미국의 빈민 또는 서민의 삶이었다.
안타깝게도 로키의 가정이 그러했다.
"진료 한 번 받고는… 더 이상 낼 돈이 없어. 아, 그렇다고 너희 집에 부탁하겠다는 건 아냐. 그럴 염치도 없고."
"그럼 진료는 받았구나?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그게… 아마 프로로 뛰는 건 불가능할 것 같대. 인대가 끊어졌는데 다시 수술하면 모를까. 지금 우리 집은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프로에 데뷔한 것도 아니라서… 지원해줄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면 할수록 지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내 지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냐. 포기하기엔 일러. 그… 누구더라…? 양키즈에 입단한 동양인 투수가 그랬잖아. 부상으로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다시 복귀했지. 그 사람… 이름이… 아, 뭐였더라? 캉… 뭐였는데……."
지미의 말에 로키가 답했다.
"강동팔? 사실 형이 그 말을 하긴 했어. 야구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긴 그렇겠지. 힘든 우리 집에 유일한 희망이 형이었는데… 갑자기 포기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그게 쉽게 되겠어?"
로키는 그 말을 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자 지미가 손바닥으로 로키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야! 넌 형이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네가 포기하면 어떻게 해!!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지미의 말에도 로키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상황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해. 지금 형은 환각까지 본다니까?"
"환각? 막 이상한 게 보이는 거?"
"응. 아무도 없는데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나…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미쳐서 날뛴다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당장 사라지라면서."
로키의 말을 들은 지미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강동팔? 나도, 형도, 부모님도. 그 사람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가졌어. 길고 긴 터널을 지나가더라도 꿈과 희망을 이룬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강동팔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형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노력하는 모습이 볼 때야 좋았지.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사람이 미쳤어. 지금도 우리 눈치가 이상하니까 조용히 있는 거지… 종종 아무도 없는 거실이나 소파를 바라보면 막 섬뜩하다니까?
"
그 말을 하는 로키는 정말로 무서웠는지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었다.
로키의 말에 지미도 보통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