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59화 (159/325)

[159]

며칠이라도 헤어진 시간만큼 쌓인 것이 많았다.

이는 동팔은 물론 민희도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입맞춤으로 시작한 두 사람이 행위는 거실과 방, 화장실을 거쳤다.

잠시 쉬는 것 같아도 금방 서로가 다시 이어졌다.

이들의 최종 종착지의 장소는 침대 위.

두 사람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서로를 안아주고 있었다.

"오빠. 물어볼 게 있어요."

"응? 뭔데?"

"오빠가 저한테 사 달라고 한 거 있잖아요. 그건 대체 왜… 사두라고 하신 거예요?"

민희의 물음에 동팔은 순간 움찔했다.

서로의 몸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붙어 있었기에 민희도 동팔의 반응을 그대로 느꼈다.

"그건……."

동팔은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한 집에 사는 이상,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동팔은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여기에서 하는 훈련이 어떤 것인지를.

단순히 극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 그 이상으로 해야 했고, 한계를 초월하는 바람에 인대와 힘줄이 끊어지고, 근육은 파열될 것이다.

사실 훈련이라기보다는 혹사 이상의 미련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미련한 행동이 아닌 이유는 오직 하나.

하루 안에, 천천히 하면 사흘 안에 모든 부상으로부터 완벽하게 회복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회복하고 나면 이전보다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동팔은 일주일 만에 최고 구속을 5키로 높일 수 있었다.

동팔의 말에 이번에는 민희의 몸이 떨렸다.

서로의 몸이 맞닿아 있었기에 이번에는 동팔이 민희의 반응을 그대로 느꼈다.

"꼭… 해야 해요……?"

"응.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면 할 필요 없겠지. 이미 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메이저리그야. 내 공이 느린 건 아니지만… 이 정도 구속(球速)으론 작년처럼 압도적인 기록을 낼 수 없어."

"그건 알지만……."

민희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지도 않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그녀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피칭을 해도 정규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어. 하지만 월드시리즈야. 챔피언십도 쉽지 않아. 아니, 지역 리그 우승도 장담할 수 없어."

동팔이 3년 이후에도 살아 있기 위해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압도적인 피칭을 했어도 정규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지만 메이저리그 수준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10개 구단에서의 우승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두 개의 리그가 있고, 그중에 동팔이 속한 아메리칸 리그와 다른 리그인 내셔널 리그엔 각각 15개의 팀이 있다.

단순히 생각해도 메이저구단 15개의 팀에서 우승하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 정규 리그 우승보다 어려웠다.

거기에 야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또한 동팔이 힘든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이번 시즌에는 동욱이도, 지완이도 적이야. 거기에 계약자가 우리 셋만 있다는 보장도 없지. 오히려 더 많은 계약자가 있을 거야. 그들과의 경쟁을 해야 해."

난이도가 높아져도 너무 높아졌다.

100마일의 강속구라면 한국에서 충분히 통할 구속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선 쉽게 볼 수 있는 공이었다.

그러니 동팔이 지금 더욱 보완해야 할 것이 구속을 더 높이 끌어올리는 것뿐이었다.

지금 당장은 시속 161킬로미터인 구속을 최소 165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리그가 시작되기 전인 지금이 절대적인 호기(好機)였다.

# 악마 모데스

동팔이 집에 돌아온 그날 밤.

하루하루가 소중한 동팔이었지만 그날 바로 극한의 훈련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 밤부터 할 거예요?"

민희의 물음에 동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은 너한테 집중할래."

동팔이 민희에게 다시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

민희도 그에게 응하며 그날 밤 내내 그를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어젯밤 많은 체력을 소모했지만 기분 좋은 소모였다. 그리고 오늘은 극한의 훈련을 하기로 한 날.

'하루 종일 하는 건 무리야. 아니, 무리는 아니겠지. 어떻게든 회복이 되니까… 하지만… 민희한테는 무리이니…….'

민희는 자신이 아파하면 역시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었고, 동팔 역시 민희가 힘들어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동팔이 한 선택은 이것이었다.

"하드한 훈련은 이틀에 한 번. 그리고 나머지는 제구력에 집중해하면 되겠지."

즉, 하루는 강속구 훈련. 그리고 다음 날은 변화구를 비롯한 제구력 위주의 훈련을 하기로 했다.

구속이 올라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실투가 되어 두들겨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준비할 것이 있었다.

"일단 지하실에 훈련 장비랑 시설을 만들고 보자. 다행히 크게 준비할 건 없어 보이네."

동팔이 훈련할 때 필요한 것은 공을 던질 긴 공간과 마운드의 높이에 맞춘 발판이 필요했다.

그 다음으로는 빠른 속도로 날아올 쇠공을 받아줄 두텁고 튼튼한 표적판과, 변화구의 제구를 위해서 야구공보다 조금 큰 고리가 달린 막대와 받침대가 필요했다.

"오늘 할 훈련이 강속구니까… 마운드 높이의 튼튼한 발판이랑… 표적판만 하면 되겠다."

마운드라고 해서 실제 구장처럼 흙과 모래로만 쌓을 필요가 없었다.

동팔은 튼튼한 나무 상자를 많이 가져와 바닥부터 빈틈없이 쌓은 후에 그 위로 흙을 가져와 부었다.

상당한 양이었다.

나무 상자를 쌓는 것만으로도 오전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후에 미리 주문한 흙을 옮기는 것은 나무 상자를 옮기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을 써야 했다.

그래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의 도움으로 한 포대를 옮길 때마다 몸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또한 동팔 혼자만 포대를 날랐고, 흙을 쏟지 않았다.

"여기에 두면 됩니까."

"네. 맞습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어려우면 사람을 부르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선수인 동팔이 스스로의 몸을 보호해야 했다.

또한 시간을 아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혼자서 나르는 것보다는 세 명이 나르면 일이 더 빨리 끝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오후 중반이 되자 지하실에 구장과 같은 높이의 마운드가 만들어졌다.

동팔은 그 위에서 평상시와 같이 투구를 했다.

텅. 푸욱.

아래가 나무 상자로 채워져서 그런지 강하게 발을 디디면 빈 소리가 나왔다.

야구공이 빨리 날아와도 푹신한 라텍스 매트리스에 부드럽게 묻혀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비록 발을 디딜 때 빈 소리가 났지만 그건 이미 알고 있었고,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됐어. 강하게 발을 디뎌도 충분히 버틸 수 있으면 돼."

나무 상자를 쌓을 때도 신중했지만 쌓을 때마다 못을 박았다.

다만 바닥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못을 박지 못했지만 상관이 없었다.

흙의 무게가 꽤 무거웠고, 나무 상자 전체의 무게도 상당했다.

그러니 동팔이 강하게 발을 디디며 투구를 해도 밀리지 않았다.

마운드가 완성되고 난 다음은 민희가 사놓은 완충제로 표적판을 만들어야 했다.

애초에 강속구의 속력을 높이는 것이라 맞은편 벽의 아래에서 윗부분까지 설치하면 되었다.

다만 강하게 던지면 소리도 크게 났다.

그렇다고 방음벽을 설치하자니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 노력도 많이 들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맞을 때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받아줄 완충제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하나의 재료로만 만들지 않기로 했다.

벽에 붙이는 건 단단하고 튼튼한, 타이어와 같은 고무판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그보다 조금 덜 단단한, 도장이나 어린이 집의 바닥에서 사용하는 매트를 붙였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작업으로 라텍스 100%의 부드러운 매트리스를 사서 붙였다.

잠자기에 좋은 매트리스였지만 동팔이 원하는 방음이 잘 되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소재였다.

만약 동팔이 일반적인 회사원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이럴 때 좋았다.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투자였다.

모든 작업을 마쳤을 때에는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고생했어요. 여기. 마실 거요."

"고마워."

동팔은 민희가 가져다준 시원한 과일 주스를 단번에 마셔버렸다.

"오빠… 그러면 머리가……."

"으음……."

동팔은 갑자기 차가운 것이 들어와 혈관이 수축하는 바람에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오래 가지 않는 두통이라 바로 회복할 수 있었다.

"휴우… 죽다 살았네."

"목이 많이 말랐나 봐요. 그렇게 급하게 마시고… 미리 말해주지."

"그러게."

동팔이 컵을 민희에게 주었다.

그러자 민희는 컵을 받아들고 지하실에 있는 연습장을 둘러보았다.

"어머! 생각보다 빨리 잘 만들어졌네요."

"응. 한 번 던져봤는데 괜찮더라고. 혹시 소리 들렸어?"

"아뇨. 전혀 안 들렸어요."

"그럼 방음은 걱정할 필요 없겠다. 혹시 그거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훈련장은 잘 만들어진 듯했다.

동팔은 잠시 쉰 다음 민희가 만들어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이내 상당히 긴장한 얼굴로 다시 지하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던질 것은 방금 전처럼 야구공이 아니었다.

야구공과 같은 크기긴 했지만 온전히 통짜 쇠로 만들어진 공이었다.

"후우……."

돌로 된 공을 던졌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무거운 쇠공이었다.

그때도 몇 번 던지지 않아도 인대와 힘줄이 끊어졌다.

이후에 점점 회복하며 다시 붙으면서 내구도는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자 본능적인 두려움에 동팔은 몸이 살짝 떨려왔다.

이대로 쇠공을 놓고 다시 올라가 사랑하는 민희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그리고 앞으로 지켜야 할 것을 생각하니 도망칠 수가 없었다.

'남은 시간은 잘해봐야 3년. 그 안에 반드시 월드시리즈 우승을…….'

그러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와 월드시리즈 우승은 만만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기록을 남긴 한국에서도 정규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면 아주 작은 확률조차 낮아지거나 없어졌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은 다시 쇠로 된 공을 강하게 쥐었다.

"가자.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

***

소리가 안 들려서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안 들리지 몰라도 지하실 문 앞의 거실에선 동팔이 공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공이 매트릭스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동팔이 발을 디딜 때 나는 소리였다.

텅!!

"……."

또한 들려오는 소리는 동팔이 발 디디는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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