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58화 (158/325)

[158]

사실 동팔이 3선발에 바로 올라간 것도 투수들 사이에 미묘한 경쟁과 질투가 있었다. 남자들 사이이고, 동팔의 구위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다.

투수들이라고 선발의 자리가 좋지 않겠는가. 메이저리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 선발로 등판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투수도 많다.

아니, 불펜에서 대기만 하다가 올라오지도 못하고 마이너로 가는 선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 극동에 있는 투수가 잘 한다고, 오자마자 선발의 자리에 있게 된다면 불만과 질투가 안 생기는 것이 어려웠다.

말석의 선발자리도 그러할 진데, 3선발이라면? 거기에 1선발로 바로 된다면? 감독은 실력대로 자리를 정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동팔과 대화가 잘 되니 친해질 기회가 많다. 그러니 대화가 부족해 오해가 쌓일 부분도 적었다.

폭탄이 쌓이고 있지만, 동시에 폭탄을 하나하나 해체 해가고 있는 동팔.

"지금이야 널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프로는 실력과 기록으로 모든 것을 말하니까 힘 내."

"네……."

"그럼 다시 일하자. 3선발로 확정이 된 상태인데, 기분은 어때? 그리고 각오는?"

지예의 질문에 동팔은 정말로 솔직하게 답했다.

"꿈에서 그리던 메이저리그. 거기에 양키즈라는 강팀에서 바로 3선발 이라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게 좋죠. 그래도 언젠가 반드시 1선발의 자리에 오르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래서 최종 목표는?"

그녀의 질문에 동팔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퀘스트 목표를 말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팀의 명예와 업적을 떠나서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팔의 말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전부 이렇게 생각한다.

"역시 목표는 크면 클수록 좋지. 리그 챔피언만이 아니라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는 것이야 말로 열심히 뛰고 있는 모든 선수들의 시즌 목표니까."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내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이게 가 봐야겠다. 오늘 뉴욕으로 가지?"

"네, 가서 바로 집으로 가려고요."

"하긴 신혼인데 너무 떨어져 있었어. 전화만 하니까 힘들지? 나도 민철씨 못 보고 전화만 하니까 미칠 것 같아. 거기에 너희랑 달리 시차도 크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힘들진 않았다. 혼자만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결혼한 다른 선수들도 자신과 같이 있었다.

다만 그들이 경우 따로 떨어지니 자유롭다면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만 그건 그들이 경우이고, 신혼인 자신과 한창 연애중인 지예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 할 일 끝났으니 나도 뉴욕에 있는 집에 가야지. 잘 하면 같은 비행기 타겠다."

"뉴욕에는 아직 호텔에서 묵고 계시죠?"

"응, 장기 투숙으로 해서 생각보다 싸게. 하지만 계속 있어야 하니까 조만간 회사에서 특파원이 묵을 집을 구할 것 같아. 계속해서 돈이 나가는 것 보다 해외 지부도 제대로 만들 겸 집을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참에 저희 집에 가실래요? 민희도 좋아할텐데."

동팔의 말에 지예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간만에 만나서 좋아할 텐데 내가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그 다음날이면 몰라도 오늘이나 내일은 안 돼. 신혼집에 가는 건 최대한 사양하는 것이 예의이자 배려거든. 호호홍~."

그렇게 말을 하지만 지예의 눈빛은 무언가 의미심장했다. 지금 동팔이 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하게 될 일을 떠올리며 지예는 일부러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예의 표정을 보자 동팔의 얼굴은 절로 홍당무가 되었다. 급격히 붉게 변한 동팔의 얼굴을 보자 지예는 장난치듯이 말했다.

"역시 동팔이는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군대도 갔다 오고, 나이도 알만큼 먹었으면서. 민철 오빠처럼 잡아먹는 맛이 있을 거 같아."

아주 위험한 발언에 동팔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누, 누나."

"걱정 마. 임자 있는 사람은 안 건드려. 나도 지금은 임자가 있으니 다른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사귀는 기간 동안은 민철만의 여자로 있을 생각인 지예.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는 민철을 보지 못하자 허전한 것을 숨길 순 없었다.

"휴… 내가 무슨 말을 했담. 미안하지만 방금 한 말은 잊어 줘. 내가 무슨 주책인지……."

본인도 외로움으로 머리가 돌아갔음을 인지하고 동팔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동팔이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동팔은 생각했다.

'사실 민철이 형이 뉴욕에 오기로 했는데 말해도 될까?'

동팔은 이미 민철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건 바로 자신이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등판하는 날, 직접 보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동팔은 크게 놀랐다. 당연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마음만으로 충분히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민철이 말했다.

'설마 네 경기 하나 보자고 뉴욕에 가겠냐? 당연히 출장이지 출장. 이번에 기술 협력 관련해서 미국 출장을 가게 됐어. 한 1년 정도.'

결국 민철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동팔이 등판하는 경기의 티켓을 대신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부탁할 사람이 동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바로 앞에 있는 지예에게 부탁만 해도 바로 들어줄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민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종의 깜짝 선물이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난다는 것. 낭만적이지 않냐?'

정말로 낭만적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건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팔은 민철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통화하는 목소리만으로 이번 이벤트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민철이 형, 그러다 지예 누나한테 왜 미리 연락 안 했냐며 구박당해도 모르는 척 할 겁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면 분명히 알고 있었을 자신에게도 지예가 성질을 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옆에 민희가 있으면 그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지지만, 역으로 민희가 동조하였을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바쁜 와중에도 메이저리그 첫 선발경기를 봐 주러 오는 것은 고맙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는 것이 상책.

그 이후로 민철과 통화하면서 스틸러스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여전히 지금도 열심히 응원중이고, 동팔의 첫 경기를 직접 가서 볼 수는 없지만, 본방을 반드시 사수하겠다고 했다.

민철과의 간만의 통화에 동팔은 무언가 마음이 따듯해지고,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프로에 입단한 이후, 리그에 집중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했다. 그리고 이어서 WBC로 인해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동팔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었다.

***

"훈련받느라 고생 많았어."

"토머스도."

뉴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각자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갔다. 그리고 일부 지친 선수의 가족들이 공항에 이미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 중에는 민희도 있었다.

"오빠."

"민희야."

며칠 만이지만, 신혼인 그들에게 있어 길고 긴 시간이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다른 선수의 부부처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서로 강하게 안으며 서로에게 애정을 표시했다.

"많이 기다렸어?"

"아뇨. 어차피 오는 시간 아는데요, 뭘."

그리곤 그들은 주차장에 있는, 이번에 민희가 구입한 차에 탔다.

"이 차야? 생각보다 크다."

"네, 알게 된 이모가 미국에선 이런 종류가 생활하는데 더 좋다고 하셨거든요."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민희가 구입한 차량은 대형 SUV차량이었다. 확실히 힘이 좋아 보였고, 실제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갈 때 많은 짐을 실었어도 느려지지 않았다.

민희는 운전석에 타, 시동을 걸고 익숙하게 핸들을 돌렸다.

"오빠 차는 구장에 있다고 했었죠?"

"응. 모레 다시 가게 되면, 이번에는 민희랑 같이 가봐야 할 것 같아."

동팔이 차가 구장에 있으니, 민희가 동팔을 데리고 가야 했다. 그래야만 민희가 다시 차를 가지고 집에 갈 수 있고, 남아있는 동팔도 본인의 차를 가지고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죠. 그렇지 않아도 양키 스타디움을 제대로 보고 싶었거든요. 전엔 다른 일 때문에 주변만 보고 갔었고."

차가 밀리지 않는 곳을 골라서 뉴욕시를 빠르게 빠져나와 1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이야~ 정말로 집이구나. 그런데 아직 정말 집이라는 느낌은 안 든다."

"어쩌겠어요. 신혼여행 끝나고, 여기서 하루만 있다가 캠프 가셨는데."

하룻밤만 보낸 집(house)이 과연 자신의 집(home)이라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빨리 느끼게 해주는 방법은 있었다.

"읍."

집에 도착하고 들어와 문을 잠그자마자, 동팔은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터트렸다. 동팔의 갑작스럽고 강한 키스에 민희는 당황했지만, 깊고 강렬한 키스에 자신의 모든 것을 동팔에게 의지해 나갔다.

***

"응? 처음 보는 사람이네. 남자?"

한편, 옆집에 사는 소년 지미는 민희가 차를 타고 오자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동팔과 같이 오는 것을 보자 간단하게 생각했다.

"아~ 부부구나."

이제 밤이 되어가는 시간에 둘이 같은 집에 익숙하게 들어온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소년의 생각일 뿐.

음란마귀가 씌인 사람이 이 장면을 보면 불륜의 현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대놓고 자신의 집에 외간남자를 들이는 간 큰 여자라며 일부러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순수한 소년인 지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지미의 벽에는 뉴욕양키즈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지미가 어느 팀의 팬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지미의 가족. 특히 아빠가 양키즈의 팬이라 자연스럽게 아들인 지미도 양키즈의 팬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고, 숙제 및 친구들과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

문화권이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봐도 명확하게 누구인지 인식하는 게 어렵다.

서양권의 사람들은 동양권을 비롯하여 중동권과 아프리카 및 다른 인종의 얼굴을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동양권 사람들도 서구권과 중동권, 아프리카 흑인들의 얼굴을 구별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지미는 바로 옆에, 양키스에서 영입한 제 3선발 투수가 살고 있다는 것을 보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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