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다행이라 말하지만, 민희의 눈빛은 다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응. 방법은 있어. 하지만 그것도 지완이 스스로 마음을 열고 다가오지 않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그렇게 두 사람은 지완과 혜진에 대한 걱정을 안고, 뉴욕으로 향했다. 하지만 당시 두 사람은 몰랐다.
뉴욕에 도착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들의 바로 앞에 현실적인 걱정이 닥쳐온다는 것을.
***
야구에 전념하면 될 동팔은 뉴욕에 도착하더라도 바로 걱정할 것은 없다. 뉴욕 주에 있는 집에 도착한 이후,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 민희는 제일 먼저 이 걱정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슈퍼가 어디 있지? 그리고 다른 가게는?"
한국이라도 처음 이사를 간 곳은 익숙하지 않다. 생필품을 파는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외 식당이나 철물점을 비롯하여 다른 가게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주변 지리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 기본. 하지만 민희는 그 기본적인 과정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영어는 할 줄 알지만…이웃을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실수해서 우습게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민희. 그래도 계속 집안에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돼. 어떻게든 빨리 적응해야지. 그리고 이곳은 치안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물론 조심할 건 조심해야겠고……."
민희는 미국에 가기 전, 이미 미국 출장경험이 많은 김대리에게 주의해야 할 것을 물어봤다. 그러자 김대리가 제일 먼저 알려준 건 이것이었다.
'경찰이 다가와서 뭐라고 하면 무조건 가만히 있어. 그리고 지시한대로만 이행을 해.'
그건 당연한 사항인데 왜 그걸 제일 먼저 말했나 싶은 민희. 그리고 그런 민희가 걱정스러웠는지 김대리는 문제를 냈다.
'민희야. 만약에 네가 운전을 하다가 과속을 했어. 그리고 경찰차가 따라 붙어서 세웠다고 치자. 그리고 경찰이 다가오면 뭐부터 할 거야?'
'그야 면허증 확인을 하려고 할 테니 미리 면허증을…….'
'안 돼!!! 절대로 안 돼!! 내 이럴까봐 걱정해서 말하길 잘 했지…….'
'네? 그러면 안 돼요? 왜요?'
민희는 자신의 물음에 답한 김대리의 말에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너 그러면 총 맞아 죽어.'
'네?'
면허증 꺼내려다가 총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민희. 그러자 김대리가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줬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총기 소지가 허가된단 말이야. 그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죠.'
'그런데 경찰이 세웠는데, 그 사람이 운전석 옆에 있는 보관함에서 무언가 꺼내고 있어. 그게 면허증인지 총인지 그 경찰이 알 수 있을까?'
'그건…모르겠죠……? 그런데 설마 정말로 총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경찰에 단속되었다고 총을 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민희는 미국이 한국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당연히 속도위반에 걸렸다고 총을 쏘겠어? 하지만 그 사람이 지명수배중인 범인이라면? 거기에 흉악범에 걸리면 사형이 확정된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총으로 경찰을 죽인 다음 도망치는 걸 선택하겠지. 하지만 경찰은 자신이 단속을 한 사람이 평범한 시민인지, 수배중인 흉악범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잖아.'
'그, 그렇죠.'
'거기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은 알지? 자신이 당하거나, 옆에 동료가 그렇게 당하는 걸 보면 그들이라고 총을 안 쏘겠어? 쏘지 않으려 해도 상대방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고. 괜히 한국에서처럼 경찰을 배려한답시고 먼저 행동하다가, 먼저 골로 간다.'
'네…….'
확실히 김대리가 민희를 보고 제일 먼저 알려준 주의사항다웠다. 그래서 경찰을 보면 다른 행동하지 말고, 무조건 하라는 것만 하라는 건 확실히 각인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사고에 가까운 일이니 넘어가고, 평상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구했다. 그러자 유능한 김대리는 이번에도 도움을 주었다.
'일단 주변에 코리아타운이 있다면 거길 가봐. 그리고 한인회나 한인 교회가 있다면 거기를 가.'
그러자 민희가 말했다.
'네? 저 교회 안 다니는데요?'
'상관없어. 오히려 안 다니는 사람이라면 더 반겨주니까.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을 알고 싶어서 왔다고 말해도 돼.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와주는 것 자체로 반겨줘. 종교적인 열심이든 뭐든.'
'그래도…믿지도 않을 건데 도움만 받기는 좀 그래요…….'
'그건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처음에 도움을 받아도, 나중에 네가 그곳에 익숙해지면 너도 도울 것이 있을 거야. 아마 돈은 너네가 제일 잘 벌 텐데 뭘.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돈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처음 온 사람에게 헌금 달라고 할 정도면 있어봐야 좋을 곳 아니니까, 다른 교회 알아보면 돼.'
김대리의 조언으로 민희는 결혼하기 전부터 인터넷을 이용하여 근방에 있는 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냥 교회가 아니라 한국인이 많은 교회를 찾아왔고, 리스트를 작성했다.
찾아가기 전 민희가 걱정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혹시 이상한 사이비 같은 곳은 아니겠지?'
친구 중에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교회에 열심이면서도 틀에 박힌 사고를 가지지 않은 친구라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통해 들은 경고가 있었다.
'민희야. 미국이라고 다 좋은 교회가 있는 건 아냐. 한국도 그렇지만 사이비나 이단 교회가 있으니까 조심해. 나중에 교회 정해지만 알려 줘. 내가 따로 조사해줄 테니까.'
그냥 적응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싶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들었다.
집을 팽개치고 종교활동에만 미친듯이 하고, 부모도 무시하며 악마취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대학교로 진학한 친구들 중에, 그런 문제를 겪진 않았지만, 목격했다는 것을 들었으니 절로 조심하기 마련.
일단 민희가 찾아가려는 교회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한인교회였다. 사실 거기 말고도 다른 교회와 성당을 지나쳤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그러다보니 의도치 않은 문제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거… 생각보다 멀잖아……?"
한국보다 미국이 더 넓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생각보다 넓은 집을 얻었어도, 서울보다 더 싼 값이라는 것에 놀라진 않았다.
다시 돌아가긴 너무 와 버린 민희. 일단 제일 가까운 한인 교회에 들리고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민희는 캔자스시티에서 혜진이 왜 차를 타고 왔는지 아픈 두 다리를 통해 알았다.
"일단… 집에 가면 차부터 사자고 하자……. 오빠 차만 있으면 안 되겠어……."
동팔이 차를 가지고 있는 거야 구장으로부터 출퇴근을 하니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차가 없이 있다간 정말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다.
서울처럼 편의시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 이상, 차가 없으면 물건 사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
한편, 민희가 크게 변한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할 무렵.
동팔은 아직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캠프에서 훈련을 한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같이 훈련을 받는 동료의 피부색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이 외국 선수들이라 어색한 사이지만, 조금은 더 익숙한 사람도 있었다.
"캉, 오랜만이야."
"아, 토머스. WBC 때 보고 처음 보네."
동팔이 WBC 준비 훈련에 들어가기 전, 이미 양키즈의 스프링 캠프에 합류한 상태였다. 그리고 구단에서 훈련을 받다가 WBC로 나온 이후, 첫 훈련이다.
동팔은 결혼으로 인해 바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WBC에 출전한 다른 선수들은 끝나자마자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바로 돌아왔다.
"어때, 결혼하니까 좋아? 얼마나 좋아?"
동팔과 비슷한 또래인 그는 바로 앞에서 장난스럽게 허리를 돌렸다. 그의 장난과 농담에 동팔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좋지. 너도 결혼하면 알거야."
"그래? 아빠는 다른 말씀하시던데. 결혼하는 순간 네 인생이 끝나니까, 최대한 자유를 누리다 가라고."
"그래도 가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네."
"그건 그래. 결혼하지 말라고 해도, 손자 낳지 말라는 건 아니겠지."
동팔이 또래에 비해 빨리 결혼해서 그렇지, 비슷한 또래 중에 결혼한 사람은 지완이가 전부였다.
동팔을 포함하여 선수들은 코치가 와서 훈련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알아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 중에 동팔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역시 WBC에서 맞상대한 토머스였다.
"나 좀 봐주지 그랬어. 네 공이 갑자기 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실전이랑 훈련이랑 상황이 같겠어. 치지 못한 사람이 잘못이지 뭘."
"아냐, 아무래도 네 공이 너무 좋은 게 나쁜 것 같아. 그런 공은 처음이라고."
"슬라이더에 당하면 다른 건 어떻게 하게?"
"너랑 상대할 일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다른 팀 타자들이나 신경 쓰겠지. 이제 난 몰라."
상대팀에 있을 땐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은 투수가 강동팔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같은 팀에 있는 이상, 무엇보다 든든한 투수였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었다. 이는 토머스를 포함한 뉴욕 양키즈 선수들도 마찬가지.
그나마 훈련할 때, 동팔의 공을 보자 상당수가 시선을 바꿨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WBC에서 실전 상태(?)의 동팔을 직접 상대해본 토머스는 다른 선수들보다 제일 먼저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다.
강속구도 강속구지만, 방금 전에 한 말대로 빠르게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서 떨어지는, 포크볼이라 생각될 커브와 빠르면서도 움직임이 큰 투심.
그 외에도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과 역시 강속구를 이용한 스플리터로 인해 미국의 타자들은 동팔에게 애를 먹었다.
강속구를 던지면 보통 체인지업을 대비해서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 그런데 강속구를 던진 후 또 강속구를 던지거나, 체인지업을 생각하지만 스플리터는 또 다르다.
단순히 속도를 죽여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과 달리 스플리터는 빠르게 날아오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강속구와 투구폼 및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같은 구종이라 동팔을 상대하는 타자는 세 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느릴 경우는 체인지업. 그리고 빠를 경우는 직구도 포함되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예상을 하더라도 최소한 세 가지를 봐야 하니 그들은 동팔을 상대할 때 머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동팔이 아무렇게 던지는 것도 아니다.
동팔은 타자의 성향을 생각하여 공격적인 타자면 체인지업을 주로 던진다. 그리고 신중하다면 빠르게 날아가는 직구나 스플리터를 던져 가만히 있다가 삼진을 당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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