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54화 (154/325)

[154]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은 서로 밝게 웃으며 좋아했다. 하지만 웃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오랜만에 봤고,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팔에게 있어서 혜진은 자신이 아닌 지완을 선택하고 떠난 사람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앙금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희와 혜진의 사이가 좋다는 것.

또 지완의 말로 인해 혜진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는 것이다. 돈이나 성공, 더 나은 삶을 위해 동팔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동팔은 두 사람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헤어진 그날 이후로 혜진과 만나지 않았고, 이제 겨우 처음으로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에 동팔은 어색한 동작으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 안녕… 잘 지내?"

헤어졌을 때 이후로 처음 만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자신은 재기에 성공했고, 바로 옆에 결혼한 민희가 있다. 그리고 혜진은 지완과 결혼을 했고, 눈앞에 보는 대로 지완과 자신의 아기가 있었다.

"응……."

어색하기는 혜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누구보다 두 사람의 어색함을 잘 이해했기에 민희도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앙금이 거의 남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 동팔에게 이렇게 말했다.

"혜진 언니 아기가 엄청 귀여워요. 한 번 안아볼래요? 갓난아기 때와 달리 더 많이 자라서 괜찮을 거예요. 그렇죠, 언니?"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안다가 깨우는 건 아닐까봐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좋은 방법인 것도 사실.

민희의 말에 혜진이 말했다.

"응. 동팔아… 한 번 안아볼래?"

혜진은 그 말을 하고 카시트에 잠든 아기를 자연스럽게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자 동팔은 주저했다.

"어…, 괜찮을까……? 나, 아기 안는 건 처음인데……. 그런데 아기 이름은?"

"예은이라고 지었어. 남궁예은."

"그렇구나……."

누나보다 먼저 결혼하는 바람에 조카가 없다. 그래서 아기를 안는 건 지금 혜진과의 관계보다 더 어색했다. 그러자 민희가 말했다.

"조심해서 안으면 돼요. 머리를 잘 받치면서 지금 혜진 언니처럼."

민희의 말에 동팔은 어색함을 뒤로 하고 혜진과 지완의 아기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처음하는 거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혜진과 민희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큰 손으로 자그마한 머리를 감싸고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기가 잠시 뒤척였지만,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어때요?"

"어… 가벼워……."

사람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왠지 무겁기도 하고……."

생명의 무게는 아무리 작아도 무겁다. 지금 이 순간 실수해서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면 어떡하냐는 걱정에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히 자신보다 작고 연약한 생명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아기가 동팔의 모든 행동을 구속(拘束)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죠?"

"응……."

잠들었지만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아기의 따듯한 온기가 팔과 가슴을 통해 번져나간다. 분명히 자신의 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마워… 안아줘서."

이미 서로 지완을 통해 오해가 풀렸다고 하지만, 행동과 마음의 어색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아기를 안는 걸 거부하는 건 이전에 헤어지지고 한 말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어색해도 아이를 안아주는 것을 보자 혜진은 저절로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동팔도 아이를 안는 것에 집중하고 난 다음, 아기를 보자 이전의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어디 갈까? 주변에 앉아서 쉴 곳이 있어?"

"가까운 곳에 하나 있어. 비행기 시간은 언제인데."

"그게…다섯 시간 남았지?"

동팔의 물음에 민희는 비행기 티켓을 확인했다.

"네, 그 정도 남았어요. 오가는 시간 생각하면 여기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약…세 시간 정도?"

"그 정도면 이야기하기에 충분하지. 미국이 넓긴 하지만,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언니는 예은이 때문에 멀리 못 나오잖아요. 지완 오빠나 우리 오빠도 같은 아메리칸 리그니까 서로 원정도 많이 할 테니, 기회가 되면 봐요."

그러면서 그들은 혜진의 차에 탔다. 그리고 혜진이 말한대로 멀지 않은 곳에, 하지만 걸어가면 꽤 걸리는 곳에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 도착했다.

"잠깐, 나 예은이 좀……."

차 안에 아기를 혼자 둘 수 없으니 당연히 혜진이 안고 나왔다. 나오면서 아기가 칭얼거리자 익숙하게 다독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예은이라면 딸이지? 나중에 미인이 되겠어."

"그거 그냥 하는 말?"

"아냐. 너도 예쁘지만, 지완이도 남자가 보면 잘 생긴 얼굴이잖아."

동팔은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있게 미남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냈고, 주변의 반응도 어떻게 보면 잘생긴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지완은 그것과 달랐다.

여자가 봐도 잘생겼지만,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 간단히 말해 미남이다.

예은의 엄마인 혜진은 차원이 다른 미모를 지녔다. 하지만 딸의 경우 아빠쪽의 유전자가 강하게 나타나면 엄마와 다른 외모를 가지기 마련. 역변을 경계해야 했다.

그러나 자타공인 미남이 아빠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아~ 확실히 지완이가 잘생기긴 했지. 하지만 처음 봤을 땐 좀 재수 없다고 느꼈었는데……."

혜진의 적나라한 과거의 생각. 하지만 이것도 이미 지완과 동팔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 민희만 몰랐다.

"에~ 그랬어요? 저는 나름 볼만하다 생각했는데… 그럼 나중에 예은이 어떻게 키울 거예요? 모델? 아니면 연예인?"

"예쁘다고 다 연예인하고 모델 할까? 나 봐봐. 그냥 주부잖아."

나쁜 말은 아니지만, 지완의 외모에 대한 뒷담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훈련을 이유로 오지 못한 이상, 뒷담화의 희생양이 되는 건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모르니 상관없는 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 이후에도 그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지완이었다.

"그런데 요즘 몸은 괜찮아?"

"나야 괜찮지. 대회 때 무리한 것도 없는데."

"그렇구나. 넌 다행이네……."

"넌… 이라니? 지완이는 안 좋아?"

동팔의 말에 혜진의 얼굴에는 진한 걱정이 어렸다.

"입단 전에 메디컬 테스트는 통과했어. 하지만 이후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몸에 많은 무리가 가 있는 상태라 위험하다고 했어. 그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생각이 나더라."

극한의 투구로 인한 혹사로 동팔은 프로 입단 후, 마운드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방출 당했다. 그때 함께 하며 같이 힘들어한 사람이 혜진이었다.

그러니 그때 느꼈던 절망을 다시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의사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어. 절대 집에서도 무리하지 말고, 힘쓸 일이 있다면 무조건 사람을 부르라고. 그때 드는 비용은 구단에서 부담할 테니 부담가지지 말라는 말까지."

구단에선 아주 작고 사소한 사고로 중요한 선수가 부상을 입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소한 부상이라면 금방 털고 나오겠지만, 그로인해 몇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가 발생한다.

단순히 회사에 다니는 일반 사람이라면 손끝을 베어 한 두 바늘 꿰매도 일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타이핑을 하는 것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지만 업무를 못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에겐 그렇지 않다.

수영선수라면 다 아물기 전까지 수영장에 들어갈 수 없고, 축구선수도 뛰다가 부딪히며 상처가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손끝에 모든 것이 걸리는 야구라면 말할 것도 없다.

최대한, 최선을 다해 완벽한 몸 상태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오히려 그 약간의 차이로 인해 실투와 실책이 발생하면 팀이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단 한 사람의 사소한 부상도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특히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라면 더욱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니 구단으로선 인부를 부르는 것에 인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실…너 때랑 달리 더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긴 해.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그릇처럼 균형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차라리 무언가 정해진 결과가 나온다면 낙담할 수 있어도 불안함은 줄어든다. 물론 혜진은 지완이 까딱 실수하여 무리하는 바람에 선수생활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혜진의 말에 동팔은 생각했다.

'지완이 받은 능력은 잠재력의 극대화. 하지만 무리하게 되면 결국 나처럼…….'

동팔은 악마의 힘으로 회복의 능력을 얻었다. 하지만 지완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지완이 더 무리하게 되어 동팔이 이전에 당했던 부상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재활을 하려고 해도 혼자선 회복할 길이 없다는 의미.

한 번 깨진 유리잔을 다시 이어붙일 수 없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동팔은 악마와 연관된 일을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민희도 마찬가지.

"지완이도 날 봤으면 알아서 조심하겠지. 나야 겨우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악마와 만나 계약을 한 것이 기적이었다. 하지만 기적에는 대가가 따랐다. 바로 조건부인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면 기적으로 끝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기적은 비극이 된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정말로 안 좋게 되면… 나에게 말해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지도 모르니까."

지완을 바로 옆에 보면서 그를 아는 혜진은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전보다 조금은 친해졌다고 한들, 자존심이 강한 그가 먼저 다가갈 일은 없다.

그래도 혜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고마워. 그 말 해줘서."

그 이후로 한국과 달리 쉽게 만날 수 없기에 그들은 최대한 오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헤어지고, 공항 안에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동팔과 민희.

"지완 오빠… 괜찮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멈추지 않을 것 같은데……."

혜진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도 동팔의 라이벌로 알려진 지완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봤었다.

그리고 그의 꺾이지 않는 승부욕을 알고 있다.

고교시절, 감독이 말리지 않았다면 동팔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공을 던지기 위해, 혹사 이상으로 훈련에 매진했을 지완이란 것을.

그런데 지금은 구단의 의료진이 말리고 있지만, 감독과 같이 그를 강하게 통제할 사람은 없다. 혜진이 있지만, 지금 그녀는 아기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훈련하는 시간에 같이 있을 수 없다.

"절대로 안 멈출 거야. 그건 알고 있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처럼……."

"그래도… 아직 방법이 있다는 게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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