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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도 하와이에 오기 전에 여러 가지로 알아봤다. 여행 책자는 물론 인터넷을 통해 하와이에 다녀 온 사람들의 경험담도 필수로 찾아봤다.
하지만 그때의 정보와 지금의 정보는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었다. 책자가 나왔을 때의 하와이와 블로그에 나왔을 때의 하와이. 그리고 지금 당장의 하와이가 다르다.
전에는 있었을 레스토랑이나 축제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장소를 옮겼을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차이일지 몰라도, 예정에 없던 변수는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점도 되지만 반대로 생각보다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해변에 들어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알려졌는지 모르겠지만, 해상안전국 친구가 한 말을 들어보니 온난화 현상? 그걸로 인해 상어가 출몰하고 있답니다.
주변에 범고래도 있다면 큰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요. 지금은 좀 떨어진 곳이지만, 언제 안으로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아, 주의사항에 있지만 얼마 전에 비가 크게 왔습니다. 그러니 제가 적어놓은 쪽은 가능한 안 가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무너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도로가 많이 미끄러워졌어요. 지금보다 이틀 뒤에 가시는 걸 추천하겠습니다.
"
필립이 적어 놓은 갈 만한 장소는 많이 알려진 곳이라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아닌, 한적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한가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아서 동팔과 민희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이렇게 좋은 걸 주셨는데,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말일지 모른다. 공무원인 필립의 월급보다 자신의 연봉이 몇 백배 더 많다. 하지만 여기는 본토와 좀 떨어져 있다고 해도 미국이다.
그리고 아무리 동팔이 돈을 많이 벌어도 필립은 그에게 얻어먹을 생각으로 부른 것이 아니다.
"아니요. 제가 사겠습니다. 저는 미스터 캉과 가족분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쁩니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이 살 생각이었다. 그리고 동팔이 마냥 얻어먹기 미안한 것을 알기에 또 다른 부탁을 했다.
"대신 야구공이랑 배트에 사인을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덤으로 기념사진까지."
그러면서 가지고 온 유성매직과 공, 배트를 내밀었다. 필립의 부탁에 동팔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정말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 말을 하면서 동팔은 야구공과 배트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필립과 제인, 잭의 이름을 적으며 축하 및 고마움의 말도 적었다.
"충분합니다. 잭이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미스터 캉이 엄청나게 유명해지면 좋아할 겁니다."
미국에서 스포츠 영웅은 정말로 영웅대우를 받는다. 단순히 잘해서가 아니라, 행동과 성품도 따라주면 신성하게 여길 정도의 대우와 평가 및 예우를 받게 된다.
이는 순직한 경찰이나 소방관, 전사한 군인 다음이라 생각해도 된다. 적어도 미국 전역(全域)은 아니지만, 소속된 팀의 지역에선 대통령보다 더 큰 인기와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마음속에 영웅이 된다.
무엇보다 재기에 성공한 이야기가 있다면 영웅이 될 수 있는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된다.
하지만 필립의 말대로 어린 아이인 잭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앞에 있는 디저트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인 제인과, 언제 엄마가 될지 모르지만, 아이를 좋아하는 민희가 잭을 보며 귀여워했다.
그러는 사이, 헤리는 동팔에게 슬쩍 야구공을 내밀며 부탁했다.
"저기… 저도 사인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유명인과 직접 만나 식사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덤으로 사인볼을 얻을 수 있으면 더 좋으니 사온 야구공.
그래도 야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어서 부탁하는 것이 조금 민망했다. 그리고 친구인 필립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 자네 미식축구 매니아잖아. 그런데 왜 야구공이야? 설마 이제부터 야구 보려고?"
그의 말에 헤리는 민망함에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야구에 관심은 없지만 미스터 캉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려고……."
단번에 좋아하는 스포츠를 버리고 다른 것으로 갈아타는 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고선 힘든 법. 동팔도 그건 알고 있었고, 그걸 떠나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나 보증을 서는 것도 아니고 사인 한 번 하는 것이라면.
***
필립 가족과 헤리와의 저녁식사를 마치자 인증샷으로 사진을 찍은 후에 헤어졌다. 아이인 잭이 좀 더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필립 부부와 헤리는 동팔과 민희가 신혼여행 중임을 알기에 잭을 달래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아쉽지만 출국하는 건 아니니 하와이를 떠날 때 만나 뵙진 못하겠군요. 그럼 이번 시즌에서 건투를 바라겠습니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고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좋죠. 하하하."
저녁이 되었고, 다른 관광객처럼 쇼핑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미국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은 반면, 두 사람은 뉴욕으로 가서 살게 된다.
그리고 굳이 선물을 사들고 다시 한국에 갈 필요도 없어 밤중에 갈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자연경관도 아침에 해 뜨는 절경을 보러 가는 것이라도 보통 새벽에 일어나서 간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저녁을 먹은 직후.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는 그들이 향하는 곳은 결국 하와이에서 계속 묶을 호텔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긴 비행시간을 지나, 체력이 회복할 틈도 없이 한낮에 첫날밤의 의식을 길고 강하게 치렀다.
그리곤 바로 저녁을 먹기 위해 나온 상태. 비록 배는 채웠지만 몸이 지쳐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좀 쉴까?"
"네……."
밖에 잠시 산책하듯 돌아온 그들은 호텔방에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옷을 벗고 편하게 침대 위에 누웠다.
속옷차림으로 누웠지만, 이미 결혼식을 한 이후에 같은 침대에서 자기 시작해서 어색하지 않았다.
민희가 동팔의 팔에 기대며 쉰다. 그리고 동팔도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동팔은 마냥 편하게 쉴 수 없었다.
"민희야……."
"네."
"알지… 어떤 상황인지……."
계약자가 아니면서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민희다. 동팔은 앞으로 3시즌 이내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죽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동팔만이 아니라 동욱과 지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민희가 아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 곧 다가올, 앞으로 지긋지긋하게 겪어야 할 일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그거 줄까요?"
"응… 심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동팔의 말에 민희는 가방에서 마우스피스를 꺼냈다. 이미 많이 사용했는지 마우스피스에는 동팔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동팔은 민희가 주는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몸의 빠른 회복이었다.
웜우드가 회복능력의 발동에 대해 설명해준 이후, 원하는 타이밍에 적절한 회복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필립의 연락을 받고 나왔을 때는 회복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하는 방향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회복의 고통으로 인해 새벽에 깨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나름 익숙해진 지금은 회복능력의 발현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능력의 발현의 유무를 결정하는, 스위치 형태는 확실히 제어했다.
으득, 뿌드득…….
회복능력을 발현시키자, 동팔의 몸이 요동쳤다.
회복을 위해 근육은 주변의 피를 빨아들였다가 다시 토해낸다. 격렬하게 돌고 도는 혈액은 혈관을 압박하며 찢어질듯이 팽창했다.
하지만 회복의 힘으로 인해 터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동팔에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뼈나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는 것.
회복해야 하는 부분은 몸에 쌓인 피로. 특히 근육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회복이 될 때,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한 부분이지만, 그것도 맨 정신에 버티라고 하면 피해야 할 고통이었다.
근육이 의도하지 않게 힘이 강하게 들어가며 경련을 일으킨다. 그리고 제어가 되지 않는 몸에 고통은 뇌를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동팔만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는 민희도 괴로웠다.
'차라리…내가 아팠으면…….'
본인이 아픈 건 당연히 싫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건 더 싫다. 그리고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켜보는 건 더욱더 싫었다.
지금의 민희가 그랬다.
회복의 고통에 힘겨워 하는 동팔을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때는 이를 강하게 물며 버티니 손에 들어가는 힘도 강해진다.
지금 상태에서 손을 잡았다간 민희의 손이 부러진다. 그러니 손을 잡는 것조차 해줄 수 없었다.
이것이 앞으로 민희가 3년 동안 감당해야 할 무력함의 무게였다. 이번에는 평상시와 달리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조차 민희에게 있어서 길고 길었다.
"후우……."
확실히 몸은 나아졌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민희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좀 나아졌나요?"
민희는 동팔의 입에서 마우스피스를 빼냈다. 그리고 몸은 회복했지만, 마음이 지친 동팔을 안아준다.
분명히 자신보다 작은 몸에 가느다란 민희였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 동팔은 자신의 모든 것이 그녀의 품안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깊고 강한 안정을 느끼며 동팔이 말했다.
"고마워……."
그의 작은 말 한마디는 그녀의 가슴 한 가운데를 떠나지 않고 뜨겁게 울렸다.
"아니에요… 오빠……."
그러면서 민희는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드는 동팔을 가슴의 품안으로 더 깊게 끌어안았다. 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타향살이 시작
신혼여행의 순간은 환상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동팔과 민희가 다음으로 들린 곳은 뉴욕이 아니라 지완과 혜진이 가 있는 캔자스시티였다.
가능한 동팔이 빠른 시간 안으로 팀의 훈련에 동참해야 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있는 시간은 잠시 쉴 수 있는 6시간 정도.
하지만 이미 약속을 했기에 서로가 만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지완은 이번 시즌을 준비하느라 훈련 중이어서 나오지 못했다.
아기가 있어 멀리 나오지 못하는 혜진이라 두 사람은 공항에서 지완과 혜진이 사는 집의 주변까지 가야 했다.
그리고 근처에 오자 혜진이 차를 타고 마중 나왔다. 집에 아기를 혼자 둘 수 없어 카시트에 곤히 자고 있는 아기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혜진이 차에서 내리자 민희가 크게 반가워하며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응, 결혼식은 잘 했어? 하와이는?"
"잘 했어요. 역시 하와이는 하와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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