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민희의 말에 동팔은 그녀를 안아들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 야해질 거야. 그러니 각오해."
그러면서 동팔은 윙크를 했다. 연애기간에도 보지 못한 동팔의 윙크에 민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졌다.
"오빠, 그게 뭐… 꺄~!!"
민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팔은 그녀를 안은 상태로 화장실로 갔다. 적어도 호텔을 예약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아 화장실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한 가족이 뛰어놀 수 있을 욕조가 있었고, 아직 물은 받아져 있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리고 민희도 거부하지 않은 이상.
이 다음에 있을 일은 뻔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커다란 욕조에 따듯한 물이 채워지는 사이,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붙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입맞춤이 진행되면서 둘 다 문명의 꺼풀을 서로 벗기며 순수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갔다.
***
필립은 오늘의 업무를 마치자 다른 사람과 인수인계를 마치고 공항을 나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여 간단히 씻은 후, 동팔에게 연락을 하여 만났다.
그는 동팔을 만나면 제일 먼저 인사를 하고, 방금 산 야구공에 사인을 부탁하려고 했다. 그러나 필립이 동팔을 만나서 한 말은 이것이었다.
"어…미스터 캉? 몸 괜찮아요? 많이 피곤해 보여요."
입국심사대에서 봤을 때와 달리 무언가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그의 옆에 있는 민희도 뭔가 피곤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동팔에 비해 피부가 더 윤기가 흘렀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좀 있으면 회복이 될 거예요. 아직 식사를 못해서……."
곧 저녁시간이 되니 배가 고프겠다고 생각하는 필립.
"아, 그렇군요. 여기저기 다니면 피곤하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광객들은 모르는 좋은 식당을 알고 있어요. 거기로 가시면 됩니다."
그 말을 하며 앞장서는 필립.
하지만 유부남인 그는 지금 동팔이 왜 피곤한지 알고 있었다.
'여자가 미인이기도 한데…설마…….'
동팔이 민희가 너무 좋아서 무리를 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른다. 누가 원해서 무리를 하게 되었는지는 오직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
그래도 운동선수인 동팔이 피곤할 정도라면 민희의 체력도 의외로 뛰어날지 몰랐다.
한편, 필립과 함께 가면서 동팔은 서서히 체력을 회복시켜 나갔다.
'으음… 확실히 회복의 능력이 이럴 때도 좋구나…….'
WBC을 거치며 회복 능력을 조절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단번에 회복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했다간 강한 고통으로 인해 길거리에서 발작을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은 체력을 회복시킬 수 없지만,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이것도 될까 했지만, 가능하니 다행이니… 아니었으면… 으윽!'
그러면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떠올렸다.
'분명히 처음은 내가 주도를 했었는데…….'
둘 다 이런 건 처음이라 어색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남자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게 된 민희가 부끄러워하는 사이, 동팔이 주도적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된 남자. 그리고 처음으로 남자를 경험하게 된 여자. 그래서 첫 관계를 마쳤을 땐, 어색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에 아파하던 민희였지만, 나중에 진정이 되자 적극적이 된 사람은 오히려 그녀였다. 결국 초반에는 동팔이 주도를 했지만, 나중엔 민희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가 체력이 떨어져 진정이 된 상태.
민희가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생각보다 많이 지쳐있었다. 그러니 동팔의 옆에 가면서 그에게 기대며 걷는 중이었다.
자세한 것은 몰라도, 민희가 동팔에게 기대며 가는 신혼부부의 모습에 필립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
"사실 저에게 아들이 있어요. 아내에게 말해서 그곳으로 오라고 했는데 괜찮겠습니까?"
"안 될게 있겠습니까. 저도 보고 싶은걸요."
그는 가는 사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느 학교를 다녔으며, 지금 하와이에 있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말했다.
"양키즈는 제가 뉴욕에 태어나서 좋아한 팀입니다."
"연고지란 것이 무시는 못하죠."
"그런데 지금은 하와이에 발령받아서 직접 보러갈 수 없는 게 너무 아쉽죠. 그나마 가까운 LA로 원정을 오더라도 가는 것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미스터 캉을 직접 볼 수 있으니 정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아는 얼굴과 만나게 되었다.
"아, 헤리. 여기서 또 만나네."
"네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는 길이 여기잖아. 당연히 이쪽으로 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는 동팔과 민희의 입국심사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동팔을 보자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것이 신혼여행을 온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배려하고 있었다.
"또 만나게 되는군요. 사실 유명인이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아 따로 왔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이 친구가 여기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스터 스필버그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스티븐이랑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스필버그."
그냥 아는 사람과 만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합류한 헤리 스필버그. 그리고 친한 친구인 필립과 함께 필립이 안내하는 식당으로 동행했다.
그리고 식당에 도착하자 그가 물었다.
"혹시 닭고기 좋아하시나요?"
"닭고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럼 미세스 캉은?"
"당연히 좋죠."
두 사람의 말에 필립은 좋아했다.
"역시 심슨의 말이 맞았어. 소나 돼지와 달리 닭고기는 인류 평화의 상징이야."
그리고 그는 이어서 중요한 것을 체크했다.
"따로 알레르기가 없다면 제가 알아서 시키겠습니다."
필립은 그 말을 하더니 바로 웨이터를 호출하여 주문을 했다. 그러고 나자 헤리가 따졌다.
"잠깐, 나는?"
"넌 알아서 시켜. 여기 한두 번 와 본 것도 아니고."
"이 자식이 친구라고… 헤이!!"
아주 친하지 않고서야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 헤리는 필립에게 화를 내는 척 하더니, 바로 웨이터를 불러 자신이 먹을 저녁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이야기하는 사이, 필립이 말했던 아내와 5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필립의 아내인 제인 존슨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잭이에요."
"안녕하세요. 강동팔입니다. 이쪽은 저의 아내인 이민희입니다. 안녕, 잭."
"안녕하세요~ 해야지."
엄마의 가르침으로 잭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 귀엽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어색해 하는 잭. 그래도 귀여운 아이의 행동에 분위기는 더 부드럽고 화기애애해졌다.
이후에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미스터 캉. 전에 한 번 알아봤는데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재기했다면서요? 거의 몇 년 동안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WBC에서 동팔의 압도적인 피칭을 본 그는 동팔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이나 양키즈 구단의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제일 많이 올려진 건 한국에서의 기록과 구위, 던질 수 있는 구종과 최고 구속 정도였다.
하지만 동팔이 프로에 들어오자마자 실전 등판도 하지 못하고 부상으로 인해서 1년 만에 방출된 이야기.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에 아마추어 리그 우승을 통해서 재기했다는 내용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모든 것을 알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참다못한 필립은 주변에 아는 한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한국에 있는 인터넷 신문 기사를 영어로 읽어달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계속 기사를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고, 번역을 부탁하자니 너무 미안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한글은 하루 만에 익혔지만, 한국어는 한국에서 살지 않는 이상 그 많은 어감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그래서 필립이 아는 건 단편적인 것이 전부. 하지만 그 당사자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궁금한 것을 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지금도 젊지만, 더 어렸을 땐 제 몸이 언제나 건강할거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대회에서 계속 무리하는 바람에 그 여파로 어깨와 팔, 등의 근육이 파열되었고 아무리 재활을 해도 회복이 더뎠습니다."
동팔의 이야기는 요리가 나온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5년 간의 일을 불과 몇 마디만으로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디저트가 나올 때가 되자, 동팔의 이야기는 겨우 마무리될 수 있었다. 동팔의 이야기에 질문을 한 필립은 물론 그의 아내인 제인. 그리고 덩달아 같이 온 헤리도 뭐라 말해야할지 몰랐다.
"정말 힘든 시간을 버티고 왔군요."
"나라면 처음부터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봤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불법도박으로 승부 조작에 휩쓸릴 뻔 했는데도 잘 돼서 다행이에요."
그들이 말에 동팔은 옆에 앉은 민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한다.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일도 했습니다. 누나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 좋은 만남이 있었죠. 그때 민희를 못 만났다면 이렇게 이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평상시에도, 힘들 때도, 항상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에요."
애정이 넘치는 동팔의 말과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필립이 뭔가 생각났는지 종이 한 장을 동팔에게 주며 말했다.
"신혼여행인데 갑자기 함께 해달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대신 이거 드릴게요. 하와이에서 여행하면 좋은 곳이랑, 싸고 맛있는 레스토랑. 그리고 현지인만 아는 좋은 장소 및 주의사항입니다."
필립도 자신이 지금 두 사람과 저녁식사를 하는 건 의도치 않은 민폐임을 알고 있다. 처음에는 좋아서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가자 신혼여행에 끼어드는 것이 과연 두 사람을 배려한 것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 않으면 무시하는 것이 되니 필립이 선택한 것은 이후의 여행에 필요한 좋은 정보의 제공이었다.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안에는 좋은 정보들이 필립의 손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러자 동팔이 받기 전에 헤리가 중간에 낚아챘다.
"이 친구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헤리는 빼곡한 정보를 빠르게 확인해 나갔다. 그런 후, 헤리는 동팔에게 종이를 주며 말했다.
"틀린 곳이 거의 없군요. 그리고 적어놓은 유의사항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조심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즐겁게 여행 와서 사고로 크게 다치면 안 되잖아요."
헤리의 말에 동팔과 민희가 필립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민희가 많이 조사를 했지만, 저는 이런 저런 일이 많아서 신경을 못 썼거든요."
"고마워요. 신경 써 주셔서. 보니까 실용적인 정보가 더 자세하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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