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50화 (150/325)

[150]

이틀 전, WBC에서 우승을 확정하고 선수단에서 서로 축하한 그 이후.

다음날 바로 한국으로 갈 예정인 그들은 빠르게 자신들의 방으로 가서 쉬거나 막간의 여흥을 즐겼다.

물론 그 전에 감독과 코치들이 절대로 도박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중에 동팔과 동욱, 지완이 선택한 것은 휴식이었다.

어차피 미국에 있을 세 사람이라 굳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걸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팔이 있는 방에 모여 있었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뻔히 알고 있지? 첫 단계를 넘어갔으니, 그 다음 단계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어?"

동욱의 말에 동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 하지만 문제는 우리들 몸값이 너무 뛰었어. 과연 어느 팀이 한국 선수를 두 명 이상 쓰려고 하겠냐?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한국 선수는 여전히 판촉용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고.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이미 동팔도 이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서로의 계약 조건은 같다. 이제 3시즌 안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

팀 스포츠이고, 누군가 먼저 우승하면 다른 사람이 죽는 조항이 없다. 거기에 같은 팀에 있다가 우승하면 계약 조건이 완성되어 전부 악마의 족쇄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려면 당연히 같은 팀에 소속되어 분발하면, 혼자서 하는 것보다 성공확률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왜 꼭 그래야 하지? 어차피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 이 상황에서 같은 팀에 들어가는 것이 쉬울까? 그렇게 하려면 몸값을 낮춰야 하는데, 그건 고의로 실수해야 가능하지. 그럼 방출이 빠를까? 아니면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빠를까."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실력과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을 얻는다. 그러니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데려와도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방출이라는 결과도 나오게 된다.

"나는 괜히 위험하게 나갈 생각 없어. 애초에 계약을 한 니들이 실수한 거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 나도 내가 한 것에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으니까."

지완은 그 말을 하고 동팔의 방에서 나왔다. 도저히 받아들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완의 행동에 동욱이 물었다.

"대표팀 하면서 친해진 줄 알았는데, 너희 둘 아직도 서먹하냐?"

두 사람의 과거를 얼추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동욱의 물음에 동팔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여자 문제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네 말대로 대표팀으로 같이 훈련받으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친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싫어도 살기 위해선 협력하는 것이 사람이야. 오월동주라는 말이 그냥 있겠냐. 그리고…너 그거 알고 있냐? 증오는 애정에 비례한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왜?"

"알고 있는 녀석이 아직도 지완이가 널 싫어하는지 몰라?"

아쉽게도 동팔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무시당해서 기분 나빴다는 것은 알고 있어."

"단순히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목숨과 영혼이 위험한 상황 속에도 이러는 건 이해가 가고?"

"으음…그건……."

동욱의 지적에 동팔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다. 동팔의 반응에 동욱이 말했다.

"됐다. 하긴 영웅으로 있다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니까."

많은 의미가 담긴 그의 말.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우승할 확률은 높지 않아. 메이저리그의 팀은 전부 30개. 그러니 기본적으로 깔고 갈 확률은 3.3%야. 그래도 전력의 차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가 있는 팀은 그나마 지역리그에서 1,2위를 노리거나 준하는 팀이니 확률은 더 오르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5~10%정도."

동욱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그 확률은 어떻게 계산한 거야?"

"내가 일일이 계산했겠어? 당연히 도박사들이 계산한 확률이지."

그리고 동욱의 말은 이어졌다.

"우리가 모여도 그 확률을 계산하면… 아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지만, 잘 해봐야 30%를 넘길 수 없어.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은 50% 이상이라 보더라도, 월드시리즈에서 이길 확률은 잘 해야 60%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데? 우리도 보통 사람은 아니잖아? 계약을 하는 바람에 특별한 힘을 가졌고, 특급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우리잖아."

그러자 동욱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넌 우리만 계약한 줄 알아? 그 녀석들이 한국에만 있냐? 미국엔 없을 것 같아? 그리고 그 한 녀석만 계약을 하겠어?"

"잠깐… 그럼 설마…우리 말고도 계약자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있다는 거겠네?"

"분명히 우리와 같이 탑클래스 안에 들어가는 선수겠지. 오타니처럼 모든 선수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도 힘든데, 그들을 상대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이 쉽겠냐?"

이미 그것은 동팔도 깊이 생각해 본 사안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투수가 있어도, 그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셋이 한 팀에 있으면 메이저리거인 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할 수 있어. 이번 대표팀 경기가 확실히 증명을 해줬지. 다만 정말로 탑클래스의 선수들이 없어서 그 이상의 실험을 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통한다는 거야."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데 지완이 말대로 쉽지 않아. 어정쩡하게 몸값을 낮추려다 오히려 방출되면 최악이 되니까. 그렇다고 그 녀석이 계속 상대팀에 있게 되면 그만큼 우리들의 생존확률은 줄어들어. 우리가 같은 팀에 있든, 없든."

지완이 계속 저 상태로 있겠다면 쳐 내서 자신들의 생존을 우선시 하겠다는 동욱의 말에 동팔이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그리고 그건 이번 시즌이 끝나고 나온 결과를 보고, 이적시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 선택해도 늦지 않아. 우리 셋이 어느 팀으로 같이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맞추어 우리 스스로 몸값을 낮추면 되잖아."

동팔의 말에 동욱이 현실을 말했다.

"우리가 몸값을 낮추면 뭐해? 구단에서 우리한테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데. 우리가 낮추려 해도, 구단이 막을 거야. 그리고 단순히 투자한 돈을 떠나서, 다른 팀으로 가게 되면 치명적인 비수로 돌아올 우리를 쉽게 놔주겠다. 적어도 우리보다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기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싼 선수를 영입하려 하겠지."

구단과 선수들이 바라는 시즌의 제일 큰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큰 명예가 주어진다.

그리고 높은 인지도는 더 많은 팬들을 끌어 모으고, 구단의 입장에서 이는 곧 탄탄한 재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 한 팀에 모이려 해도 쉽지 않을 거야. 정말로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은……."

동욱은 그 말을 하고 동팔의 방에서 나왔다. 결국 그 날은 서로 아무런 것도 정하지 못하고 회의가 끝났다.

하지만 그건 동욱과 지완의 경우였다. 동욱도 방을 나오고 혼자 있게 되자, 웜우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제야 혼자군."

"웜우드? 여긴 왜?"

조력자이기도 하지만, 악마인 그가 나타나자 동팔은 경계했다. 그래도 웜우드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왜긴 왜겠어. 다 볼일이 있어서 그렇지."

웜우드는 그 말을 하고 자신의 품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그의 힘으로 뭉쳐진 결정. 그리고 모양은 만년필의 펜촉과 같이 생겼고, 검은 색이었다.

"요즘 확실히 느끼고 있지? 혼자선 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말에 동팔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동팔의 반응에 웜우드가 말했다.

"필요를 느끼고 있다면 다행이고. 그래서 좋은 것을 주려고 왔지. 혼자가 아니게 해줄 수 있는 힘을."

"네? 그게 무슨……."

"간단히 말해 계약을 갱신하는 거야. 정확하게 말하면 옵션의 추가가 되겠지만."

"계약에 옵션을 추가한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은 해. 하지만 계약 자체를 무효화할 수는 없어. 계약의 서는 생각보다 질기고,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네가 죽거든. 그래서 할 거야 말거야? 나 시간 없으니까 빨리 결정해."

동팔은 갑작스러운 웜우드의 제안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 귀에 확실히 들어왔다.

"대체 무슨 옵션을 추가하려는 겁니까?"

"그건 말이지……."

시간이 없기에 웜우드의 설명은 짧았다. 하지만 짧은 설명만으로도 그가 어떤 옵션을 넣을 것인지 아는 건 충분했다.

"부작용은요?"

"그건 고통이 두 배가 된다는 것? 당연히 옵션 조항을 발동했을 때에 한해서야. 미안하지만, 일종이 풍선효과라 생각하면 돼. 한 쪽을 강화하는 만큼, 부작용도 있기 마련. 그리고 내 힘으론 삼촌의 계약을 수정하려면 내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가능하거든."

그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접니까? 동욱이가 더 뛰어나지 않나요?"

"아, 그거? 확실히 동욱이 더 뛰어나긴 하지. 받은 능력도 좋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도. 거기에 분석도 좋아서 제일 좋은 방향이 어딘지를 알아. 하지만 거기까지야. 그 녀석은 혼자인 것을 고수하는 바람에 사람이 모이지 않지만, 너는 그렇지 않거든."

이건 그동안 웜우드가 동팔을 지켜보면서 느끼고 확신한 것이다.

"넌 확실히 손해 보면서 사는 녀석이야.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라도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도와주지. RG에 있었던 때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어."

동팔이 RG에 있을 때, 선후배들과 친해지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그 덕에 다른 투수들과 타자들의 노하우도 받게 되었지만, 그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동욱이에 대한 건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니 말하지 않을게. 좌우지간 내가 이 힘을 사용해서 계약의 옵션을 추가하는 건 한 번 밖에 없어. 삼촌의 계획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니 고민을 많이 했지. 그리고 제일 좋은 대상으로 네가 낫다고 판단한 거야. 이유는 방금 전에 말한 그대로. 그래서 할 건가? 말건가."

웜우드의 말에 동팔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유용한 능력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죠. 받아들이겠습니다."

"빠른 판단이라서 좋군. 그럼 바로 이행하지. 계약에 변동이 생기면 삼촌이 알아차려서 바로 오게 되니 갑자기 사라져도 야속하게 생각하지 마."

웜우드는 그 말을 하고, 동팔의 심장을 감싸고 있는 계약의 서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기운으로 만든 펜촉으로 계약의 서에 새로운 옵션의 내용을 써 넣었다.

그 순간을 짧았다. 웜우드의 펜촉에 닿자마자, 새로운 내용이 새겨졌다.

"이후의 능력은 네가 알아서 사용하라고. 행운아 씨."

옵션이 제대로 적혀졌음을 확인한 웜우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그리고 그가 한 말대로 바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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