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한편, 웜우드가 저 멀리, 바다 위에서 바로 앞에 보듯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남궁지완.
"흐음… 이상한데……."
이미 그의 눈에는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의 전용적인 표식인 계약의 서가 보인다. 강동팔과 한동욱을 보자마자 계약자임을 알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남궁지완은 아니었다.
"계약의 서도 아니면서 계약을 했다? 그게 가능했던가?"
그러나 분명히 동욱과 동팔을 통해 그렇게 들었다. 그리고 계약을 한 이후, 남궁지완의 능력은 향상되었다.
"이해할 수 없어. 대체 삼촌은 무슨 방법으로 계약을 성공한 거지? 설마 그의 눈을 피할 방법을 찾았나? 아냐, 그건 불가능해. 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없어. 그리고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세상은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들도 넘쳐났겠지."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 사실에 웜우드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음으로 넘기거나, 포기한 건 아니다.
"알아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이야……."
그는 그 말을 하고,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 우승, 그리고 그 이후
지완의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공은 145키로의 속도로 느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속구에 적응이 된 메이저리그의 타자에겐 느리게 느껴졌다.
그러지 않아도 9회말 2아웃 상태. 그리고 볼 카운트는 풀카운트였다. 체력이 떨어질 때라고 봐도 될 상황.
그래서 직구로 던졌지만, 힘이 떨어져 느려진 실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이 상태로 지나가면 틀림없이 스트라이크가 선언되어 삼진으로 이 경기가 끝나게 된다.
그래서 타자는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적어도 가만히 있다가 당하는 것보다 낫고, 변화구라도 배트를 조절하여 맞출 수 있다.
그러나 타자의 예상과 달리 공은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휭~.
결국 헛스윙을 한 타자.
"스트롸잌~ 아웃!!"
주심은 자신의 나라인 미국이 졌음을 선언해야 했지만, 그동안 해온 버릇으로 인해 큰 몸동작으로 마지막 아웃을 선언했다.
주심의 선언에 타자는 후회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어떻게 변화구를 던질 생각을 했지? 남은 투구 숫자도 많지 않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방금 전에는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지완이 던진 공의 갯수는 75개. 그렇지 않아도 풀카운트라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면 볼넷이 된다.
그런 상황에 남은 투수 숫자는 5개 밖에 남지 않게 되고, 남궁지완이 마운드를 내려오면 한국은 완전히 믿고 맡길 투수가 없다.
비록 4대 0으로 이기고 있지만, 미국의 막강한 타선은 그런 점수 차이라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지완은 과감하게 포크볼을 던져 타자를 속이려 했고, 타자는 속았다. 그 결과는 한국의 우승 확정이었다.
타자를 완벽하게 속여 삼진을 잡은 남궁지완은 크게 포효(咆哮)했다.
"됐어!!"
그리고 우승이 확정되자 더그아웃에서 기다렸던 나머지 선수들이 전부 뛰쳐나왔다.
"와아~!!"
"이겼다!!!"
야구에 있어서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WBC를 우승한 소감을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비록 실제 월드컵만큼의 무게는 아니지만, 야구에 있어서 최고의 국제 대회인 것도 사실이니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남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WBC 우승 소식은 전파를 통해 한국으로 바로 전송되었고, 지켜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도 함께 뛰며, 기뻐했다.
***
WBC를 우승한 한국팀은 간단한 인터뷰와 행사를 거쳐 한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지완은 미국에 있는 자신의 팀인 켄자스시티로 가서 캠프에 다시 합류했다.
동팔과 동욱도 그러는 것이 본인과 팀에도 좋다는 걸 알지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동욱은 많은 야구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입국한 뒤, 역시 인터뷰를 하고 해산식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가족들이 있는 광주였다.
집에 들어온 동욱은 제일 먼저 어머니를 찾았다.
"왔어요, 엄마."
엄마도 자랑스러운 아들인 동욱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괜찮은데 뭐하러 한국으로 왔어.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하잖아."
한국과 미국이 한 두 시간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최소 11시간. 동욱의 팀이 있는 클리블랜드는 미국 중부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몸이 재산이고 생명인 선수에게는 여독(餘毒)조차 위험하다. 특히 시차적응을 짧은 시간에 여러 번 한다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간다는 걸 엄마도 모를 수 없었다.
그러니 아들 걱정에 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아들을 야박하게 나무랐다. 그래도 동욱은 엄마가 자신을 보며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웃으며 말했다.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그리고 미국에 가면 올해가 거의 끝날 때가 돼서야 얼굴 볼 수 있잖아요."
"얼굴이야 영상통화로 보면 그만이지."
"직접 보는 거랑, 영상이랑 같나. 나 배고파 엄마. 밥 좀."
이미 다 큰 자식이지만, 아들의 애교에 엄마는 더 이상 야박하게 할 생각이 사라졌다.
"그래, 우리 아들 배고프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렇지 않아도 준비해 놨다."
동욱이 한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길어봐야 이틀이 전부. 동욱도 가능한 빨리 팀에 복귀하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함을 잘 인지하고 있다.
동욱은 엄마를 생각해서 한국에 왔지만, 동팔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결혼 축하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냐?"
바로 민희와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예정된 결혼식이었고, 서류상으로도 부부임을 신고했다. 이것은 여권과 비자 발급을 쉽게 받기 위해서 한 행동.
다만 지완과 혜진과 달리 같이 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미국에서 마련한 집에서 살 예정이니 둘 다 미리 나올 이유가 없었다.
동팔은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질문에 일일이 답해줬다.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내가 바로 팀에 복귀하려면 그게 나아서 그래."
"그래? 그럼 와이프는? 좋아해?"
"오히려 하와이로 가고 싶어 하던데."
"하긴 하와이도 좋은 여행지이긴 하지."
복잡하고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른 두 사람은 폐백을 마치고 식사중인 하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결혼식 자체도 바쁘지만, 그 이전에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연락할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하고, 직접 만나면서 청첩장을 나눠준다.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 중 지방에 계시는 분이 많다면 그에 맞추어 차비를 준비하거나 전세 버스를 대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준비를 혼자 하는 건 아니다. 특히 시합과 대회 준비로 훈련에 전념해야 할 동팔의 경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동팔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렇다고 한들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결국 부모님과 민희가 결혼식의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 후, 동팔과 민희는 호텔에 들어와 겨우 쉴 수 있었다.
"휴~ 두 번 할 생각은 없지만, 진짜 결혼은 두 번 못하겠다."
"저도요……."
결혼식 중에는 인사하는 중이라 쾌활하고 밝게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접대하는 것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서 지쳐있는 걸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 민희는 그대로 동팔의 품에 안겨 침대 위에 있었다.
드디어 다가온 첫날밤. 이전에는 이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빠…나 쉬고 싶어……."
완전히 지쳐서 무언가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동팔도 마찬가지였다. 몸이야 바로 회복시킬 수 있지만, 어차피 새벽이 되면 알아서 발동되고, 굳이 미리 회복시켜봤자 할 것도 없었다.
지금은 그냥 내일 타야 할 비행기를 기다려야 할 때. 그리고 결혼식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그래도 신혼 첫날밤을 그냥 보내기에 무언가 아쉽다. 그래서 거사(?)를 치르지는 못하더라도, 동팔은 민희의 옆에 누워있으면서 그녀의 배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당장 가슴으로 향하기엔 그렇고, 아래로 향하자니 너무 과감했다. 동팔의 고뇌가 느껴지는 행동에 처음에는 가만히 있던 민희. 하지만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자 그녀가 말했다.
"이제 부부잖아요."
많은 것을 함축한 그녀의 말. 그리고 그녀의 말에 동팔의 손은 아래보다 위로 먼저 향했다.
처음으로 향한, 그리고 만져보게 된 여자의 가슴.
한 손에 가득 들어올 정도로 크진 않았다. 하지만 민희의 가슴을 손에 쥐자,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손에 가득 쥐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팔의 손이 스쳐 지나가면 갈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동그란 봉오리의 느낌이 동팔의 뇌리를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제 그 이후는 말로만 듣고, 영상으로만 보던 그런 일의 진행. 그래서 지금 민희가 얼마나 마음을 열어 놓았을지 확인하기 위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게 된 민희의 모습은 곧 다가올 성(性)스러운 순간을 기대하며 가슴을 졸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팔이 가슴을 만지며 마사지를 하자, 혈액순환이 더 잘되었는지 새근새근 잠든 민희의 모습이었다.
피곤해서 잠든 여자를 덮칠 생각 따위가 없는 동팔이라서 더 이상의 진도는 하와이로 미루어야 했다.
운동선수라 민희보다 피곤에 더 저항할 수 있었기에 정신은 멀쩡했다. 이대로 잠에 빠지는 것도 쉽지 않은 동팔. 그래서 잠든 민희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계속 주무르면서 생각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한다…….'
지금 동팔이 걱정하는 것은 민희와의 거룩한 첫날밤의 일이 아니었다. 그건 곧 하와이에서 맞이하게 될 당연한 수순.
동팔이 걱정하는 것은 그보다 더 먼 미래의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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