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46화 (146/325)

[146]

"그런데 우리가 잘 나가도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적어도 대표팀에선 안 될 거다. 연맹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칼같이 자를 테니까. 그나마 이렇게 보내준 것도 다행이고. 아마 전보다 더 많은 것 같아, 이번에는."

국제대회에서 연맹이 하는 일은 단순히 서류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표팀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함에 있어서 가능한 최상의 것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포함이 된다.

특히 심리적인 면이 큰 차지를 하는 야구라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 동팔이랑 지완이가 얼마나 통할까? 그리고 동욱이도."

"동욱이는 거의 통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동팔이랑 지완이 공을 상대한 걸 보면 말이죠. 그리고 지완이랑 동팔이도 이번 경기에선 최소한 쉽게 당하진 않을 거예요. 지금 미국팀은 특급 선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을 봐오고 같이 생활하며, 함께 경기를 치른 그들은 이미 이 경기의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가 되던지 간에 우승은 거의 따 놨지? 방심만 하지 않으면."

강팀이 약한 팀을 상대로 해서 제일 큰 위험요소는 상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심이다.

그 방심으로 생긴 틈에 수많은 강팀이 이변의 희생물이 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선수들에게 있어 많은 감회를 주고 있었다.

"그 방심을 우리가 하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이미 스스로 잘 관리하여 여러 번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앞으로 몇 번이 되겠어? 동팔이랑 지완이, 동욱이가 건재할 동안만 가능하겠지."

지금 그들이 방심을 조심해야 할 상황은 한국 야구의 발전과 선수들의 전반적인 기량향상이 아니었다. 오직 투타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세 사람으로 인해서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전, 전력을 다해 도미니카의 타선을 막아 사명을 완수한 투수들은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나설 정도면 거의 끝난 상황이니까, 뭐……."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준비는 하겠지만…그럴 일은 없겠지?"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도, 마운드에 올라 올 두 투수는 더 만만치 않았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같은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 그리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마운드에 오른 쪽은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었다.

오늘 미국의 선발 투수를 보자 선수들이 말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게리 존슨이네."

"특급은 아니더라도 뛰어난 투수잖아. 평균자책점은 3.12. 이 정도면 특급 직전이거나, 특급 아니야?"

"자책점은 그런데 투구 내용이 좋진 않아. 삼진은 그렇다 치고 볼넷 비중이 높으니까. 그래서 던진 투구 숫자에 비해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고. 그래도 자책점이 낮으니 수비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에게 까다롭지. 이건 리그가 아니라 토너먼트. 어떻게 하던지 간에 이기면 우승이니까."

이번에 상대하는 팀은 명실상부한 최강의 팀, 미국이다. 그러니 이전과 다른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국은 미국에게 일격을 먹여 이긴 경우가 있었다. 올림픽 때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을 때도 그랬고, 이전에 했던 WBC나 프리미어12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는 상대의 방심과 한국의 철저한 준비와 분석,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지금은 미국도 한국을 상대로 방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경기에 나온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완전히 자리 잡은 선수가 아니라 분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선발로 올라온 게리 존슨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 선발로 등판한 이상, 팀에서 제일 신뢰할 수 있는 투수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반드시 무실점으로 막아 이번 시즌에서도 통한다는 믿음을 보여줘야 해……. 반드시…….'

그가 WBC에 나오는 이유는 다른 누구보다 실전 감각을 빨리 되찾기 위해서다. 훈련을 하며, 연습경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실전만큼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부상의 위험이 있지만, 국가대표로 선택되었을 때 구단을 상대로 설득에 설득을 하여 나왔다.

그리고 이는 다른 선수들도 대동소이할 뿐이었다. 애초에 최강으로 인정받는 미국이 다른 나라를 상대로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욕을 먹는다.

그럼에도 나오는 건 다른 나라에 메이저리거들이 있고, 그들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상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스윽~ 휙~!!

게리 존슨은 전력으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는 93마일. 150키로를 조금 넘는 속도였다.

강속구를 주로 쓰지 않고, 변화구와 제구력을 바탕으로 하는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강속구에 해당하는 공을 던진다.

'이번에 상대할 타자 중에, 만만한 타자는 없겠지. 그래도 제일 신경써야 할 타자라면 역시 한동욱…….'

그도 이미 한국의 타자들에 대해 조사와 분석을 했다. 어느 공에 강하고, 약한지에 대한 분석은 기본.

각 타자를 상대로 할 때, 사용할 볼 배합의 구상도 이미 끝났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구상이 불가능했다.

'대체 약점이 뭐야? 타격도 타격이지만, 수비능력을 보면 에러가 하나도 없어.'

이번에 클리블랜드로 간 한동욱에 대해 특히 더 살펴봤다. 그동안 한국을 상대했던 모든 팀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역시 게리 존슨도 그들과 같은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한동욱을 상대로 삼진을 넣은 선수는 강동팔과 남궁지완이 전부. 그리고 그때 던진 공을 보면… 내가 던질 수 있는 공이 아니야.'

그때 동팔이 던진 공은 너클볼. 그리고 제일 이상적인 강속구이자 변화구라 할 수 있는 자이로볼이었다.

너클볼이야 메이저리그에서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많다. 실제 경기에서 던지는 건 둘째 치고라도. 하지만 자이로볼은 연습이나 훈련을 할 때도 던지는 투수가 없었다.

실전은 물론 훈련에서도 자이로볼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현재 세계에서 단 한 명. 강동팔뿐이었다.

'그럼 한동욱은 어떻게 하지? 볼넷으로 보내야 하나? 그게 팀으로 보면 더 좋겠지만…….'

게리 존슨은 자신이 이 자리에 선 이유를 생각한다. 단순히 미국이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도 준결승에서 벌어진 주심의 편파적인 판정에 분노하던 한 사람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단 하나. 실전을 통한 자신의 실력의 향상과 감각 회복. 그리고 인정받는 것이다.

'시련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정을 더 받는 것은 상식. 그렇다면…….'

결정을 내린 그는 전광판을 바라본다. 그러자 이번에는 준결승과 달리 4번 타자에 올리고 있는 한동욱의 이름이 보였다.

그리고 첫 이닝에서 게리 존슨은 한국의 1,2,3번 타자를 상대로 아웃카운트를 채웠다. 내용은 범타와 삼진으로 깔끔하게 이닝을 종료하여 그가 왜 메이저리그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

1회초, 한국의 공격이 끝나고 선발투수로 예정된 동팔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어제만 해도 동팔과 지완 중에 누가 선발로 먼저 올라올지 몰랐다. 지금 두 사람의 구위를 보면 비슷했었고, 동시에 선발로 등판하던 선수였다.

그러니 어느 한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는 불펜 겸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임인식 감독은 현명하게 대처했다.

"제비뽑기로 정한다. 이거 뽑아."

둘의 실력차이가 나지 않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어차피 둘이 내일 있을 결승전에서 미국의 막강한 타선을 봉쇄해야 했다.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투구 숫자는 80개였으니 한 선수만으로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제비뽑기의 결과, 선발로 등판하는 사람은 동팔로 정해졌다.

"이걸로 불만 없지? 동팔아, 내일 상대할 타자들은 전부 메이저리거야. 아무리 네가 효율적으로 던진다 해도 소화할 수 있는 이닝에 한계가 있을 거다. 그리고 지완이도 마찬가지. 동팔이 투구 숫자가 60개를 넘으면 불펜에 들어가서 준비해. 몇 이닝을 소화하던지 간에."

투수운용에 대한 대략적인 작전은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남은 것은 코치와 포수가 함께 상대 선수의 분석과 대처에 대한 회의를 했다.

마운드에 오른 동팔은 처음으로 상대할 타자의 정보를 떠올린다.

'1번 타자인 헨리 스미스.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리드오프. 선구안이 뛰어나고, 강속구에 대한 대처도 높다. 따라서 출루율이 좋고, 스피드가 있어서 도루 능력도 탁월. 진루하면 까다로운 타자야. 다만 몸 쪽 공에 약하다는 것. 그리고 장타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약점.'

하지만 리드오프인 1번 타자에게 장타를 기대하는 감독이나 팬들은 많지 않다. 어떻게든 출루하여 득점하는 것이 리드오프가 맡은 팀의 역할.

물론 장타력을 갖춘 리드오프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괜히 한국인인 추신성이 리드오프임에도 불구하고 억 단위의 계약을 한 것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파악을 위한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다른 리그보다 쉬웠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고, 그 기록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철저히 관리한 덕분이었다.

그 이외에도 한국 프로야구 연맹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한 전력분석팀의 노력과 수고가 빠질 수 없었다.

홈페이지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고,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정보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정보를 얻는데 밤낮없이 일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받아, 성과를 이룩해야 할 사람이 바로 선수단. 그 중에 주축이 되는 선수가 동팔이었다.

'동욱이에 비해 어려울 건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했다간 출루를 허용할 수 있는 타자.'

이미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와 조언을 주변으로부터 쉴 새 없이 들었다. 하지만 동팔의 입장에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이전에도 메이저리거 타자를 상대했지만, 전원이 메이저리거인 경우는 처음이야.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절반은 메이저리그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아무리 탑클래스의 선수가 빠졌다고 한들, 미국이 대표팀을 꾸릴 때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뽑지는 않는다.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선수를 뽑는다.

그리고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항상 중계로 보니 잘 다가오지 않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는 그 자체만으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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