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45화 (145/325)

[145]

"오… 설마 저걸 다…… 아! 정말 다 통과시켰군요. 120? 120마일은 아닌 것 같고, 킬로미터 단위인가요?"

"네, 한국은 마일이 아니라 미터 단위를 쓰니 맞을 겁니다. 120이면 75마일 정도 될 겁니다."

"75마일로 던져서 완벽히 제어하는 것도 쉽진 않죠. 어, 이번 영상은 뭔가요?"

이어서 나오는 영상은 동팔이 한국에서 올스타전을 했을 때 영상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세 개의 고리를 쉽게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상을 보니 강동팔 선수의 제구력이 무척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원하는 코스로 보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요? 이런 투수를 상대할 타자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한 한동욱 선수만이 강동팔 선수를 상대로 유일하게 홈런을 친 타자입니다. 반대로 무삼진 기록을 세워나가던 한동욱 선수를 삼진 시킨 선수가 강동팔 선수죠. 지난 리그 기록을 보면 한동욱 선수에게 안타와 홈런을 맞았지만, 유이하게 삼진을 시킨 선수도 강동팔, 남궁지완 선수입니다."

"그럼 엄청난 대결이 종종 있었겠습니다. 서로를 상대할 선수가 많지 않으니 관심도 많이 받았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한국 리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 선수가 이번 메이저리그에 오게 되었죠. 그들이 과연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활약을 하여 구단의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쪽 더그아웃을 보면 세 선수가 입단한 팬들이 많이 보입니다. 뉴욕 양키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캔자스시티 로얄스. 이 세 유니폼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군요."

"지역 팬이 아니더라도 LA에 계신 분들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거기에 상대는 전원 메이저리거인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이 경기를 통해 세 선수의 실력이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통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록만을 통한 간접비교가 아니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죠. 그리고 이미 중계 화면에선 각 구단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앤드류가 그 말을 할 때, 마침 이미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각 카메라가 중요한 인물들을 보여주었다.

"다른 구단의 감독도 있지만, 주로 코치가 많이 보입니다. 저기 제 친구인 마크가 보이는 군요. 레이커스의 투수 코치로 있죠."

"세 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에서 온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선수라면 미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사례가 있으니 정확한 파악을 하려고 온 걸 거예요. 김정호라던가, 여기 LA에 있는 류현민 선수의 경우처럼 말이죠. 그리고 직접 보는 것만큼 믿을 수 있는 건 또 없으니까요."

"그럼 앤드류는 오늘 결승전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고 봅니까?"

"이미 오늘 올라올 투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방금 보여드린 강동팔과 남궁지완 선수입니다. 한국에 남은 투수는 사실 두 명 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그 두 명이 너무 막강합니다. 두 사람을 상대로 우리나라 선수가 얼마나 칠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으로는 조금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 선수의 컨디션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앤드류는 앞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지금 미국팀에 있는 타자 중에 특급이라 볼 수 있는 타자가 없습니다. 해당 선수는 구단이 출전하는 것을 막았으니까요.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어려울 겁니다. 물론 분석한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걸 기대어야 할 겁니다."

"미국 시민으로서 자국팀에 대해 안 좋은 예견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듣고 보니 확실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투수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전원 메이저리거지만, 특급 투수는 이번에 전부 빠졌죠?"

"그게 굉장히 아쉬운 점입니다. 거쇼와 뱅가너가 있다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요. 물론 그렇게 되면 한국팀에 있어선 재앙이 되겠죠. 그들의 공을 제대로 칠 수 있는 타자는 사실상 한 선수뿐이니까요."

"그 선수는 바로 한동욱 선수겠군요. 그나저나 이번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더라도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다. 바로 세 선수를 영입한 구단의 팬들일 겁니다. 그들이 이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면…어떻게 될까요?"

데이비드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앤드류는 단호히 말했다.

"당연히 월드시리즈 우승이 더 가까워지는 겁니다."

***

한편, WBC결승이 시작되기 전에 각 메이저 구단의 선수들은 스프링캠프를 통해 몸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 특급 선수가 가지 않은 관계로 인해 모든 특급 선수들은 구단의 지원과 함께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더불어 개인 기록의 향상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특별한 몇몇 선수들이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4번 타자인 지미 테일러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른 선수가 다가와서 물었다.

"지금 WBC에서 엄청난 루키가 온다는데 들었어? 너 못지않다던데?"

그의 말에 지미가 답했다.

"그래? 그래도 한국 수준이 낮잖아."

"그걸 감안해도 그래. 아무리 너라도 한국 리그에서 7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할 수 있겠어? 거긴 트리플 A보다 낫다고."

동료이 말에도 지미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메이저보다 수준이 낮은 건 맞잖아. 거기라면 7할도 어려울 건 없어."

"하긴 네 타율이 4할을 넘어가니까 불가능하진 않겠지. 트리플에선 8할을 찍었던 너인데."

"알았으면 훈련에 집중 해. 월드시리즈 우승은 만만한 게 아냐."

"오케이, 오케이."

동료는 그 말을 하고, 다시 자신의 훈련에 집중했다. 그 사이 지미는 생각했다.

'아무리 한국이라도 7할에 가까운 타율이라고? 그럼 나와 같이 악마와 계약이라도 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이미 악마와 계약을 함으로 특별한 힘을 얻은 그였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예상이었다.

그리고 비단 그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씨애틀 마리너스의 제 1선발인 헤럴드 트럼프는 지금 하고 있는 WBC결승 중계를 보고 있었다.

"한동욱, 남궁지완…… 그리고 강동팔……."

그는 중계진이 설명해준 그들의 기록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각자 영입된 구단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전부 다른 팀이잖아."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에선 전혀 아쉬움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사냥감을 발견한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세한 계약 조건을 모르겠지만…작은 나라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그러니… 내가 편하게 해줄게. 아~주 편하게… 죽음이란 안식으로……."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듯이 TV를 껐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는 악마.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자신의 계약자를 보며 물었다.

"간만에 보네, 모데스."

그는 스크레이치와 같은 상위 악마 중 하나였다. 그리고 스크레이치를 비롯한 악마들의 유흥에 함께 하는 고위 악마였다.

평범한 미국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의 얼굴과 모습,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헤럴드는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헤럴드의 인사에 모데스가 답했다.

"그렇군, 헤럴드.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나?"

"계약 조건을 완수한 뒤로 잘 지내고 있지. 자네가 준 힘으로 세상 참 쉽게 사니 좋아."

"그런가? 하지만 네 얼굴을 보면 좋아보이진 않던데. 지금은 아니지만."

헤럴드는 모데스의 말대로 계약조건을 완수하여 더 이상 계약으로 영혼을 저당 잡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모데스는 그의 주변을 쉽게 떠나지 않고 있었다.

다시 계약을 하여 영혼을 취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좋지. 악마와 섣불리 계약해서 시한부 인생이 된 놈들이 실패해서 느낄 절망을 생각하면."

헤럴드는 그 말을 하며, 아주 밝고 해맑게 웃었다.

상대의 불행은 자신의 기쁨. 그리고 상대의 절망은 자신의 쾌락이 되었다. 특히 자신이 겪을 뻔한 절망이었으니 그 기분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걸 생각하면 절로 흥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반응에 모데스도 기뻐했다.

"좋군. 확실히 네가 겪을 뻔한 절망을 안겨 줘야 제 맛이지. 혼자 당하면 억울하잖아?"

그의 동조에 헤럴드는 더욱 기뻐했다.

"맞아. 혼자 이런 것을 겪는 건 불공평하지. 저 녀석들한테도 내가 겪을 뻔한 절망을 맛봐야 공평한 거야. 그렇고말고."

그의 말에 모데스는 생각했다.

'그렇게 순수하고 원수의 마음에 들던 영혼이 이렇게까지 악마들의 마음에 쏙 들게 변할 줄이야. 그것도 고작 5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그가 헤럴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그의 영혼은 악마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타락했다.

어차피 지옥을 향해 돌진하는 그에게 굳이 계약을 해가며 더 타락시켜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영혼을 끌어들일 수 있는데 뭐하러 더 힘든 일을 고집할까.

모데스가 스크레이치에게 한 말대로, 굳이 계약 자체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계약은 영혼을 타락시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면서 모데스는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이 녀석을 이용해서 스크레이치를 도와주면 이전에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거야. 충분히…….'

***

자국팀이 결승전에 진출해서인지 한산해 보이던 준결승전과 달리 관중석이 꽉 찼다. 그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선수들은 전처럼 조용히 말할 수 없었다.

"확실히 결승전은 결승전이구나."

"자국팀이 올라왔는데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겠죠."

"그건 동양이나 아시아 쪽 나라 사람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서양도 마찬가진가?"

"동양에 비해 덜하다 뿐이지 관심이 없겠어요? 그래도 표를 사고 들어올 정도면 팬이 아니고선 안 될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특별히 관심을 받는 세 명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이미 미국에 오자마자, 동팔과 지완, 동욱은 자신의 팀에서 보낸 의료진도 같이 합류했다.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데려온 선수가 리그에 써 먹지도 못하고 부상으로 아웃되면 그만한 손해가 없는 법.

비록 미국 밖에선 사람의 문제로(담당 의료진이 가족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 등) 보내지 못했지만, 미국에 와 있는 이상 그들에게 부담될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동안 다른 선수들이 받지 못하는 호사를 세 사람은 누리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훈련을 받고 난 다음, 관리를 따로 받는다. 전부 한국 야구연맹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속 마사지사나 의료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동팔과 동욱, 지완은 예외였다.

그들을 영입한 구단에서 보낸 사람들은 그들이 훈련을 마치자마자, 상태를 확인하고 몸의 피로와 빠른 회복을 위해 전담 요원이 붙는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부러워하는 다른 선수들. 그러나 그들은 질투하지 않았다. 애초에 질투라는 것은 쉽게 생기는 것 같지만, 너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면 질투가 아닌 경외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 사람이 받는 대우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각자의 실력을 높이는 것. 그래서 높은 연봉과 몸값으로 이런 대우가 저절로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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