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43화 (143/325)

[143]

한편, 한국팀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한국의 팬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못지않게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야구팬들이었다.

"오~ 쐤!!"

"빌어먹을 주심 새끼. 지금 뭐하는 거야!!"

그들도 한국이 아니라 도미니카 공화국이 결승에 올라오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한국에게 불리한 스트라이크 존을 형성하고 판정하는 주심을 보자 오히려 열이 받았다.

"우리 미국이 이런 수작을 해서까지 우승해야겠어?"

"고작 아시아에 있는 한 나라가 무서워서? 이건 이겨도 쪽팔려!!"

중계를 보고 있는 야구팬만이 아니라, 직접 보고 있는 관중들도 주심을 향해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이 경기는 미국인이 흥미를 가질 만한 경기가 아니었다. 그저 결승전 상대를 보기 위해 오는 것치곤 입장료가 비쌌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미국팬들이 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양키즈에서 강동팔을 영입했다는데 얼마나 잘 던지는 거야?"

"한동욱이 그렇게 잘 쳤다고 하던데……."

"남궁지완? 한국 리그를 씹어 먹고, 일본 선수를 상대로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고 했었지? 그럼 켄자스의 열혈 팬인 내가 그냥 있을 수 없잖아."

그들 대부분은 동팔을 포함한 세 사람을 영입한 구단의 팬들이었다. 어쩌면 리그가 시작하기 전에 새로 영입한 그들을 직접 볼 유일한 기회였기에 과감히 표를 산 것이다.

하지만 타자인 한동욱을 제외하고, 동팔과 지완이 공을 던지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자 아쉬웠다. 그러나 곧이어 주심의 편파적인 판정에 그들은 분노하게 되었다.

"네가 그러고도 메이저리그 주심이냐!!"

"심판을 네가 왜 봐!!"

"당장 나와!!"

그들의 격렬한 반응에 당황한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선수들이었다.

"어제도 보긴 했지만, 미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의가 투철하네."

"분명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인데도 뭐라 하고 있어."

그들이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하는지 대부분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욕설만큼은 만국공통어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주심도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그리고 욕과 야유를 하는 팬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 모두에게 퇴장명령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주심은 한 번 설정한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바꾸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욱은 안타와 홈런을 놓치지 않았고, 그를 보러 찾아온 클리블랜드 팬들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분명히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다섯 타석 전부 안타랑 홈런을 쳤어."

"도미니카 투수 중에 만만한 투수는 없었을 텐데도 말이지."

"어쩌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지도 몰라……."

그리고 경기의 결과는 3시간 안에 나왔다.

***

미국의 눈에 뻔히 보이지만, 증거가 없는 방해공작으로 인해 한국은 생각보다 고전하게 된다. 하지만 임인식 감독의 작전대로 투수를 매 이닝마다 바꾸다시피 하고, 타격에선 한동욱을 필두로 다른 타자들이 분발하면서 틈을 치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투수로 버티려던 도미니카 공화국이었지만, 약속의 8회가 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7회까지 5대 6의 팽팽한 접전이었다면, 8회에 빅이닝을 만들어내면서 12대 8로 한국이 승리했다.

한국이 결승에 올라왔다는 소식에 작당을 하던 메이저리그 사무국 내, WBC를 직접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 한국이 결승에 올라오다니……."

"올라오는 건 상관이 없어. 진짜 문제는 강동팔과 남궁지완이 안 나왔다는 거지. 아마도 결승전에 두 사람이 올라올 거란 건 뻔한 사실이야."

그들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한국과 도미니카가 혈전을 벌이고, 도미니카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라온 상대는 한국. 거기에 여력을 비축한 상태였다.

11명의 투수를 소모한 한국이라지만, 강동팔과 남궁지완 두 사람을 남겨 오히려 승률을 더 높였다.

"두 사람 다 메이저에 오기로 되어 있으니 사고를 낼 수도 없고……."

"사고를 내고 싶어도 한국팀 자체적으로 보호를 하고 있을 겁니다. 휴식을 취해도 정해진 곳을 벗어나지 않을 거예요."

경기 전에 방해공작을 할 생각도 없지만, 할 수도 없었다. 이미 그 두 사람에게 거액의 포스팅 금액을 지출한 구단이 두 개.

그리고 그만큼 시선이 집중되고, 구단의 집중적인 관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팀도 그렇지만, 이미 두 사람이 속한 구단에서 사람을 붙인 상태야.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부상의 위험이 제일 큰 때가 바로 지금일 테니까. 거액을 주고 영입했는데, 부상으로 쓰지 못하면 이만한 손해가 없잖나."

또한 이후에 메이저리그의 흥행을 생각하면 그 두 사람은 필요했다. 그들이 관리하는 것은 WBC만이 아니다. 오히려 메인인 쪽은 메이저리그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서라도 두 사람에게 손을 대는 것은 어려웠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이번에도 역시 주심으로?"

"그건 기본으로 깔고 가자고. 또 문제는 한동욱이지? 이번 대회에서 타율이 9할을 찍고 있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야?"

여러 나라를 상대하고, 역시 상대의 실력 편차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래도 타자가 타석에 서면 3할을 찍기 어려운 것이 현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동욱은 그동안 타석에서 한 번의 범타를 제외하고 전부 볼넷, 아니면 장단을 포함한 안타와 홈런을 쳤다.

"그래서 각 구단에서 이미 신경쓰고 있는 모양이야. 너무 압도적인 타율이라 단순한 사고인지 아닌지. 그게 이번에 열릴 결승전에서 확실히 규명될 것이 뻔하니 집중해서 보겠지. 적어도 우리 미국 팀은 전원이 메이저리거니까."

메이저리거를 상대로 계속해서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한동욱을 영입한 클리블랜드는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것이다. 반면 다른 팀은 한동욱이라는 타자를 경계하기 위해 고심하게 되겠지만.

"미국이 결승에 진출해서도 그렇지만, 그들을 영입한 구단의 팬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덕분에 결승전 티켓이 생각보다 빨리 매진되었지만."

"반대로 그걸 본 대부분의 팬들의 반발이 심해. 이미 홈페이지엔 이번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 그리고 언론에서도 이 일에 대해 조명하기 시작했어."

은밀하게 일을 꾸미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부 몇몇 사람이나, 피해를 본 나라의 야구 연맹이 이의를 제기하는 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이의를 제기하면 무마하기가 힘들어진다.

특히 자국민의 반응일수록 더욱더 힘들기 마련.

"그건 그나마 좋은 소식이면서 나쁜 소식이군. 그나저나 우리 미국의 우승을 위해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지? 지금까지 한 것이 전부인가?"

"아마도 그럴 거야. 갑자기 한국팀을 실격처리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우승을 해도 우승을 한 것이 아니지. 결승전을 치르지 않고 한 우승이 무슨 의미가 있어? 오히려 이득은 없고 손해만 많아."

그들도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과 도미니카이 경기에서 관중이 보낸 야유를 그들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실력 대 실력으로 가야하는 거군."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아. 결승전은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텐데, 준결승처럼 한다면 분명히 많은 팬들이 WBC에 대한 관심을 버리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를 포함해서 메이저리그 자체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게 될 지도 모르지. 그건 바로 매출이 떨어진다는 말이야."

이젠 주심을 이용한 조작도 불가능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주목할수록 불법적인 요소가 끼어들 틈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불법 도박과 승부조작도 인기가 없는 리그일수록 파고들기 더 좋은 것과 같다.

"원래 바라는 건 도미니카와 결승전을 치르는 거지만, 그게 불가능하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이 이상의 관여는 지금 있는 우리의 자리도 위태롭게 만들 것이 뻔해. 그렇지 않아도 이미 수사국에서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까."

그의 말에 다른 임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론이 좋지 않은 마당에 수사의 칼날이 향해지면 피해는 간접적으로 끝나지 않고,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

"설마 존이? 연방수사국 사람과 끈이 있다고 들은 것 같았는데."

그러자 존을 잘 알고 있는 다른 임원들이 말했다.

"배신한 건 아닐 거야. 그 녀석도 지금 자리를 유지하고 싶으면. 그냥 움직임을 보여주고, 더 이상의 공작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의 행동이겠지. 아마도……."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해. 갑자기 우리가 빠지면, 사무국이 제대로 안 돌아 가. 그렇지 않아도 곧 시즌이 시작되는 와중에 큰일이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거든."

그래서 이번에 내린 그들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공작은 없는 것으로 정한다. 이젠 정말 실력으로 승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렇게 하면 이의를 제기한 일본 연맹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이유가 없겠지."

미국의 완전한 우승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또한 도미니카 보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

준결승이 끝나고, 결승전 전날.

결승전이 열리는 LA에 한 사람이 한국에서 왔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미국 출장을 왔는데……."

그녀는 바로 신지예 기자. 전에 동팔을 취재하면서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면 전담 기자가 되어 미국에 출장을 보내달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동팔을 자연스럽게 취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자였고, 지금 동팔만이 아니라, 동욱과 지완도 같이 진출했다.

그러니 동팔만이 아니라, 이번에 진출한 두 명. 거기에 이미 진출해 있는 다른 한국 선수들에 대한 취재도 병행해야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동팔이 주된 취재 대상이고, 다른 선수는 일정이 될 때 하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들이 있는 팀이 미국 전 지역에 있다. 미국의 면적은 남한의 100배보다 조금 작다. 그러니 한국처럼 여러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여기 저기 왔다갈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전에는 그토록 바라던 미국 출장이다.

일을 하러 가는 거지만, 사실상 미국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 취재라는 이름의 여행을 할 수 있는 곳. 거기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이라 이동비용과 생활비가 지원된다.

순수하게 여행할 수 없고, 취재한 후에 기사를 작성하는 일도 집이나 호텔에서 해야 한다. 그래도 미국을 자비가 아닌 회사돈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것도 사실.

거기에 일 자체가 돌아다니는 것이니 마음먹기에 따라 분위기와 기분이 달라진다.

그렇게 바라던 미국 장기 출장이었지만, 지금 신지예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여기 온 건 좋지만, 민철씨랑 못 보게 되는 게 좀 그러네……."

지예가 바라던 때는 아직 민철과 사귀기 전. 하지만 지금은 미국 출장으로 인해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내가 계속 미국 출장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철 씨보고 일 그만두고 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열심히 돈을 모아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할 때. 그러니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백수가 되면 앞으로의 일정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된다.

둘 다 얻을 수 없다면, 그나마 덜 아쉬운 쪽을 포기하는 선택만이 남았다. 그리고 지금 지예가 선택한 건 지금 당장의 연애보다, 더 먼 미래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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