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42화 (142/325)

[142]

한동욱은 여기 올라오기 전, 감독에게 들은 자신이 이번에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적용될 스트라이크 존의 파악이었지?'

뛰어난 투수를 투입하여 도미니카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스트라이크 존의 파악은 끝났다. 하지만 한국에 적용되는 스트라이크 존의 파악은 이제 시작이었다.

휙, 휙~.

한동욱은 배트를 가볍게 휘두른다. 그리고 타석에 서서 홈플레이트를 가볍게 찍어 자신과의 거리를 확인했다.

'달라질 건 없어. 그리고 WBC의 스트라이크 존은 메이저리그와 같아. 한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는 없어. 하지만 현실적인 적용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

같은 리그에 같은 규정을 적용받지만, 스트라이크 존은 항상 주심에 따라 유동적이 된다. 애초에 허공에다 가상의 공간을 생각하고 판정하니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했다.

다만 그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이 된다면, 투수나 타자나 그에 적응하여 플레이가 가능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어느 한 팀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판정이 계속 된다면 주심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실력이든, 윤리적이든지 간에.

한동욱을 상대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보거나 영상으로 본 도미니카의 투수는 고민에 빠졌다.

'배트에 걸리면 무조건 친다고 들었어. 약점인 곳은 없다. 스트라이크 존의 모든 구간은 물론, 벗어나는 공이라도 마찬가지.'

기록만으로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다는 건 저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피할 수만은 없었다.

이번 경기는 결승전에 올라갈 팀을 정할 단판 승부. 그리고 이를 위한 첫 투구였다.

'제일 먼저 확인할 것은 스트라이크 존의 범위.'

타자만이 아니라 투수도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해야 했다. 이미 감독을 통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

그래서 도미니카의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곳을 향해 공을 던졌다.

휙~ 퍽!!

145의 빠른 공. 하지만 한동욱에겐 느리게 보이는 공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목적이 같았기에 일부러 치지 않았다.

분명히 한국의 윤재국이 던졌을 때와 비교하면 거의 같은 코스였다. 하지만 판정은 같지 않았다.

"스트~ 롸잌!!"

같은 공이라도 도미니카 타자는 볼, 한국 타자는 스트라이크로 판정받았다. 이런 판정에 중계진들은 짜증을 냈다.

"지금 보고 있는데, 거의 같은 코스였습니다. 그리고 한동욱 선수도 신장이 좋기에 도미니카 선수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판정은 전혀 다릅니다."

"어제 일본이 당했던 것을 우리 한국 선수가 당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시청자분들은 화가 많이 나실 겁니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기면 오히려 더 기쁜 법 아니겠습니까?"

"그럼 해설위원님께선 우리가 확실히 이긴다고 보시는 겁니까?"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위원은 확고한 말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직 경기가 끝나기 전이라 확정할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한국은 전력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한동욱 선수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왜 휘두르지 않았을까요? 이전, 강동팔 선수나 남궁지완 선수의 공보다 느린 공임에도 불구하고?"

"그야…전에 말씀하신대로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휘두르지 않은 겁니다. 첫 번째 임무가 있는데, 도미니카 투수가 바로 응답해줘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욱 선수의 장기가 있어요. 투 스트라이크에 몰려도 그에겐 전혀 위기가 아닙니다."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군요. 한동욱 선수가 잘하는 것이 있었죠? 천하의 강동팔 선수도 피할 수 없는 그의 장점. 바로 뛰어난 선구안과 타격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것!!"

그의 말에 해설위원도 같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예선에선 보여주지 않았지만, 본선이라면 충분히 보여줄 수 있어요. 솔직히 그거 쓰면 거의 사기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피할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네? 그게 뭔가요?"

"볼넷입니다. 지금은 고의 볼넷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 거르기 위해서 보낼 수 있어요."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럼 한국은 기본적으로 진루를 하고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지금 올라온 투수가 소르스였다면 볼넷이 가능했겠지만, 지금 던지고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거입니다.

자존심이 있다는 말이에요. 아무리 한국 리그에서 괴물 소리 듣는 타자라지만, 메이저리거 보다 약하다는 인식은 아직도 있습니다. 그러니 볼넷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

"그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들이 중계를 하는 사이, 한동욱은 이미 2스트라이크 상태에 몰렸다. 하지만 카운트만 몰렸을 뿐, 오히려 밀리는 느낌은 도미니카의 투수가 받고 있었다.

따악~!!

이번에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코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욱의 배트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이번에도 파울을 날렸다.

그러자 투수는 생각했다.

'대체 언제까지 계속 던지게 만들 샘이지?'

벌써 여섯 번째 투구다. 본선이라 제한 투구 숫자가 늘긴 했지만, 80개가 한계. 자신의 뒤에서 던질 투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려 했다.

하지만 첫 타자부터 여섯 개의 공을 던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험한 공을 제외하고 어떻게든 범타나 헛스윙을 유도하려 했는데…….'

처음 스트라이크를 잡은 건 운에 가까웠다. 사실 서로의 목적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던질 때마다 계속 파울을 날리자 압박은 투수가 받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한국 투수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욱이 또 저거하네. 홈런 유도."

"바꿔 말하면 만만하지 않다는 겁니다. 투수가 허접하다 생각하면 뒤의 타자들을 믿고 안타로 만족하니까요."

"하긴 도미니카도 정규 리그만 없을 뿐이지, 야구 강국 중에 하나니까."

그리고 한국 선수들이 아는 것을 소르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소르스는 감독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볼넷 주고 한동욱 보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한 방 맞습니다."

하지만 한동욱과 직접 상대한 적이 없는 감독과 코치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던지고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거야. 한국 리그 선수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고."

"한국에선 날렸을지 몰라도,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나."

그들의 말에 소르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줬다.

"하지만 몸값은 한동욱이 몇 배 더 많습니다. 데뷔만 안했지 사실 한동욱도 메이저리그 타자들 중에서 탑클래스에 해당하는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소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 경쾌한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따악~!!!

이전의 파울 타구와 달리 더 크고 맑은 소리였다. 그리고 공은 파울지역으로 날아갔을 때와 달리, 더 높고 더 멀리 날아갔다.

"와아~!!!"

비록 남의 나라 야구지만, 홈런자체가 주는 희열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 관중들은 먼 동쪽 나라의 선수가 친 홈런을 보자 큰 환호로 답해 주었다.

"……."

"……."

소르스의 충고를 빨리 듣지 않는 바람에 점수는 1회말부터 1대 0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아웃카운트가 없는 상황에 도미니카 투수가 던진 투구 숫자는 8개나 되었다.

한동욱이 루상을 한 바퀴 돌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반겨주었다.

"시작부터 좋다!!"

"잘 했어!!"

하이파이브를 하고 환호하는 사이, 두 번째 타자가 타석에 올라갔다. 그리고 임인식 감독은 그들을 보다가 코치에게 물었다.

"전쟁에서 이기는 확실한 방법이 있지. 뭔지 알아?"

"네? 그건 전투에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전투에서 항상 이길 수는 없잖아. 하지만 거의 이기게 만드는 방법이 있지."

"그게 뭡니까?"

"간단해. 물량이야! 전쟁을 할 인원, 무기와 탄약, 화력지원을 비롯한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과 장구류.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지고, 적보다 몇 배의 병력으로 싸우면 지는 것이 힘들지."

감독의 말에 코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은 없지. 하지만, 실행하는 나라는 얼마나 될까? 몇 배나 많은 병력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지만, 그게 어려우니 역사적으로 기록이 되는 거야. 현명한 지도자라면, 애초에 그럴 상황이 안 생기도록 만들어야지. 아니면 병력 규모가 적더라도 최정예 군을 육성하거나."

아무리 수천 명이 있어도 무기가 없다면 장갑차 한 대를 이길 수 없고 오히려 학살당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거야. 비록 불리한 상황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상대보다 많아."

투수는 매 이닝마다 한 명 이상 투입할 수 있다.

그리고 타자는 한동욱만으로도 상대 투수의 투구 숫자를 효과적으로 줄이거나, 크게 흔들 수 있다. 거기에 다른 타자들도 한동욱 만큼은 아니지만, 국가대표에 차출이 될 만큼 뛰어난 선구안과 타격능력 및 수비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지금 우리 타자들이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거야. 아마도 동팔이와 지완이의 뛰어난 공을 상대하다보니 생긴 변화겠지."

이전에 일본과의 경기에서 오타니의 공을 처음 상대한 한국의 타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어느 한 선수는 생소했을 뿐이지, 계속 보게 되면 못 상대할 공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그 타자가 뛰어난 타자라서 그렇지 다른 선수들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뛰어난 투수를 상대하면 그에 맞추어 타자들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마련.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WBC의 경기들을 통해서 감독이 직접 확인했다.

"우리 타자들은 동욱이만 있는 게 아냐. 다른 선수들 중에 뛰어난 타자들이 많아. 동욱이의 그늘에 가려졌을 뿐이지."

도미니카의 선수들 전원이 월등한 실력을 지니지 않는 이상, 소모전으로 진행될 경우 유리한 쪽은 한국이었다.

"그러니 도미니카에서 우리를 상대로 믿고 던질 수 있는 투수는 고작해야 둘에서 셋. 하지만 투수 숫자에 막혀 그 이상을 투입하게 되면, 미국에서 가용한 투수가 없게 되지. 그렇다고 여유를 뒀다가는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하게 될 거고……."

수비도 공격도 상대보다 자원이 많다. 거기에 소모되는 것은 상대가 더 빠르다. 그것도 한국이 불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임인식 감독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우리가 상황이 불리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에게 패배가 용납될 수는 없어. 특히 우리가 지닌 선수들 면면을 보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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