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41화 (141/325)

[141]

"플레이 볼~!!"

심판의 경기 시작선언. 그리고 윤재국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와 자세를 취하자, 편파의 선을 확인하기 위한 투구를 던졌다.

경기 시작과 함께 윤재국이 공을 던지기 전, 중계진들이 말했다.

"윤재국 선수가 퍼스트 펭귄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긴 이런 일은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죠. 확정된 것이 없으니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선수가 감당할 수 있거든요. 윤재국 선수라면 개척자이자 희생양과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요. 윤재국 선수는 RG에서 강동팔 선수와 두 용병 투수에 가려졌지만, 다른 팀에 갔다면 에이스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선수죠. 실제로 RG에서 중요한 투수 자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번 국가대표에 발탁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사이, 윤재국이 공을 던졌다.

휙~ 퍽!!

빠르게 꽂힌 공의 코스는 WBC에 맞춘 스트라이크 존에 걸쳤다. 과감하게 몸쪽으로 향한 공.

'이건 거의 스트라이크… 뭐? 손이 안 올라가?'

거의라고 생각했지만, 중계화면에서 나온 공의 궤적은 스트라이크 존 안쪽을 통과했다. 그래도 주심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준결승전에도 손을 쓴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우리가 더 유리해."

스트라이크 존이 줄었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던 윤재국은 당황하지도, 울분을 터트리지도 않았다.

'하……. 하긴 이미 예상한 범위 안쪽이야. 그럼… 이번에는…….'

윤재국이 이어서 던진 공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하지만 중앙으로 오는 것처럼 보였다가 빠져서 도미니카 타자의 배트가 나가고 말았다.

휭~ 퍽!!

"스트~ 라잌!!"

볼이라도 헛스윙을 했으니 당연히 판정은 스트라이크. 이것마저 볼로 판정하면 심판의 자격이 없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상대의 실수로 볼카운트는 1볼 1스트라이크. 2볼을 예상했다가 오히려 여유가 생긴 윤재국. 그래도 그는 자신이 처음 나온 이유를 망각하지 않았다.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하더니, 처음 던진 공보다 존의 더 안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이번에 던진 방향은 위의 바깥쪽.

휙~ 퍽!

아직은 하나의 여유가 있어서 지켜본 타자. 그 덕분에 윤재국은 물론 다른 투수들은 자신이 던져야 할, 한국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트~ 라잌!!"

주심의 선언으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말했다.

"확실히 들어오지 않는 이상 무조건 볼이다 이거지……?"

"걸치면 볼. 안 걸치고 더 안쪽으로 들어와야 스트라이크……."

규정이 규정일 수 있는 건,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의 경우, 정해진 규정이 있지만, 그 규정을 일일이 적용시키는 사람은 주심만이 가능하다.

규정에 의해 경기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한이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절차에 따라 감독도 퇴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주심.

한국팀은 애매한 스트라이크 존으로 따져봐야 오히려 손해를 보는 쪽은 자신들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걸 굳이 애써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불펜에 전해. 존은 걸치지 않고, 더 안쪽으로 들어와야 스트라이크라고."

"알겠습니다."

스트라이크 존이 줄어들었다. 분명히 열세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수단은 동요하지 않았다.

"불리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건 아냐."

"애초에 단 하나의 공으로 승부가 갈릴 상황만 안 만들면 큰 상관없어."

이런 상황에 처음 처한 선수들의 경우, 조금 흔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선수들은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감독님,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미국이 일본을 주로 견제했는데, 이젠 우리를 이렇게까지 견제하다니요."

넘보지 못할 상대가 어느새 자신들을 경계하고 있다. 비록 그 상대를 이기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이 성장했다는 증거가 또 있을까.

"그렇지. 세상 많이 바뀌었지. 전에 그렇게 무시당했었는데……."

이전에도 한국 선수 중에는 메이저리그에 가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리그 출신이라는 꼬리표로 일본조차 진출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전설적인 투수가 일본 리그에 가더니, 거기에서도 압도적인 구위와 성적을 만들었다.

그로인해 일본이 한국 리그를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지만, 메이저리그의 시선은 그저 놀랐다는 정도가 전부.

하지만 그것도 한국 출신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계속 진출하고, 일부 선수들이 크게 성공하자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리고 메이저 출신의 선수들이 한국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 리그 출신의 투수가 맹활약을 했다.

그러던 중에 국제 대회에서 미국을 비롯한 야구 강호를 깨자 이젠 확실히 인식이 바뀌었다.

코치와 감독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지완이 말했다.

"무시당하지 않는 걸로 끝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각인시켜줘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만들 겁니다."

갑작스럽지만, 그의 말에 임인식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각오구나. 젊음이 좋긴 좋아. 그래도 그건 내가 할 수 없으니 너한테 맡겨야 하겠지. 곧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데, 한국 선수의 매운 맛, 제대로 보여줘!"

한국 리그 출신의 선수가 메이저리그 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하면, 그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은 더 빨라진다.

임인식 감독이 바라는 건 그것. 하지만 그는 지완이 그 말을 한 진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감독의 말에 지완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렇게 할 겁니다. 다시는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다시는……."

그리고 그의 진짜 시선은 미국이 아닌, 동팔을 향하고 있었다.

# 세미파이널(2)

도미니카 공화국 감독과 코치들도 이내 한국의 속셈을 알았다.

"설마 한 이닝에 투수 한 명씩?"

"그러지 않고서는 불펜에서 두 명이 몸을 풀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럼 좀 많이 곤란한데. 선발의 공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교체되는 차원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투수와 싸워야 하잖나?"

"그렇긴 합니다만, 솔직히 지금 유리한 쪽은 우리들입니다. 짐작은 했지만, 지금 주심은 한국에게만 스트라이크 존이 짭니다."

그들도 어제 미국과 일본의 경기를 보면서 알고 있었다. 주심이 유난히 미국에게 관대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윤재국의 투구 내용과 주심의 판정을 보면 지금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기분 나빠. 미국이 우리보다 한국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거잖아?"

"하지만 리그 수준 자체로 보면 한국 리그가 더 높은 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도 메이저에 많이 진출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프로리그는 미국과 일본, 한국과 대만이 전부니까요. 그리고 한국 리그도 많이 발전했고, 우리나라 선수도 꽤 가 있는 나라입니다. 소르스도 거기서 활약하고 있죠."

코치의 말에 더그아웃에 같이 앉아 있는 소르스가 보였다. 그는 RG의 2선발로 팀이 한국시리즈로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이 메이저리거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선수가 그런 건 아니다.

당연히 다른 나라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도 포함되고, 한국에서 맹활약을 한 소르스도 차출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히 한국 선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그였기에 감독이 다가와서 물었다.

"지난번에 말해준 건 분명히 좋았어. 하지만 동팔이랑 지완이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감독이 한국과 경기를 하기 전에 물어 본 것은 두명의 괴물 투수에 대한 정보였다. 하지만 소용없게 되자 이제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야 할 시간.

감독의 질문에 소르스가 답했다.

"이건 저도 의외였습니다. 한국의 투수들은 강합니다. 특히 지난 시즌 RG에 있던 투수는 더욱 강해요."

소르스의 말에 옆에 있던 코치가 말했다.

"그거 자기 자랑하는 거야? 너 지금도 RG에 있잖아."

그러자 소르스가 답했다.

"말해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하지만 제가 그 말을 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그건 RG는 그들만의 특별한 훈련을 했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변화는 아니지만, 확실히 실력이 늘어나는 훈련을 하죠. 제구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훈련인데, 동팔이가 알려준 훈련법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즌, RG에 있던 투수들은 전부 제구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동안 소르스는 강속구를 바탕으로 하는 파이어볼러였다. 하지만 강속구에 제구력이 향상되니 RG의 확고한 제 2선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메이저리거를 포함해도 도미니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투수가 되었다.

그런 소르스의 말에 감독과 코치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럼 한국 투수들 중에 RG 출신이 얼마나 되지?"

"한 5명 될 겁니다. 동팔이 포함해서요.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뭔가?"

"선발 타자 라인업입니다. 원래 한동욱이 4번 타자일 텐데, 지금은 1번 타자에요."

"뭐?"

소르스의 지적에 감독과 코치는 전광판을 봤다. 그러자 확실히 1번 타자로 이름이 올라와 있는 한동욱의 이름이 보였다.

"왜 1번 타자에 한동욱이 있지?"

"최고의 타자가 4번 타자에 있지 않는다고? 이건 또 무슨 꿍꿍이야?"

도미니카 공화국의 더그아웃이 한 차례 혼란스러울 때. 한국의 더그아웃에선 여유가 있었다.

"동욱이가 1번 타자인 이유는 단순해. 더 많은 타석에 설 수 있기 때문이거든."

"그래도 4번 타자로 있는 것이 싹쓸이 할 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보통 1번 타자는 진루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 선구안을 가지고 볼넷이든 안타든 출루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2,3번 타자가 높은 타율을 바탕으로 안타를 만들어 진루하거나, 희생타를 날려 진루를 시킨다.

그렇게 주자가 쌓인 상태에서 4번 타자가 나와 장타를 휘두르면 싹쓸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다.

설령 4번 타자가 아웃되더라도, 5번 타자가 이어서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니 1,2번 타자는 리드오프. 3,4,5번 타자는 클린업이라 부르며 팀의 중심 타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 가지 조건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모든 공격이 1번 타순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잖아. 지금 제일 확실한 공격 루트는 동욱이야. 선구안은 물론 파워와 스피드까지 있어. 우리도 동욱이가 타석에 들어서면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지 잘 알잖나."

임인식 감독의 말에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반사신경이 좋아 진루해도 견제사를 당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도루 능력도 있으니 절대 진루시키고 싶지 않죠. 하지만 제대로 상대하려다간 장타나 홈런을 맞게 되니 그럴 수도 없고…… 그나마 상대가 가능한 투수라면 동팔이, 그리고 지완이 정도가 전부인 녀석 아닙니까."

지아 출신이 아닌 이상, 동욱이 타석에 올라올 때마다 머리가 복잡한 경험을 해야 했다.

"어차피 1번 타순부터 계속 공격이 가능하다면, 동욱이를 4번에 뒀겠지. 하지만 지금은 불리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 목적이야. 그것도 전력 누수를 최소화 하면서."

극단적이지만, 비상식적인 운영은 아니었다.

그리고 1회초는 윤재국의 25개에 달하는 투구를 통해 어떻게든 점수를 내지 않고 끝냈다. 그리고 1회초 한국의 공격.

예정된 대로 처음 타석에 올라온 선수는 한동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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