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회의는 그대로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첫 희생양은 미국이 준결승에서 상대하게 된 일본이었다.
휙~ 퍽!!
이미 도착한 미국에서 임인식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선수들은 중계로 나오는 미국과 일본의 경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던진 오타니의 공을 보자 투수들은 생각했다.
'스트라이크.'
'좀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이건 거의 스트라이크인데…….'
오타니가 던진 공의 코스는 명확히 스트라이크 존을 걸쳐서 들어왔다. 심지어 중계 화면에서 보여주는 스트라이크 존에서도 통과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저게 볼이라고?"
"말이 돼?"
"방금 전, 제임스가 던진 거랑 거의 같은 코스였는데? 오히려 더 안쪽이었잖아."
믿을 수 없는 주심의 판정에 임인식 감독이 말했다.
"어차피 예견된 일 중 하나일 뿐이야. 준결승에도 이러면 결승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면 관중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이미 여러 사람이 주심한데 욕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자기 팀에게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동팔의 말에 임인식 감독이 답했다.
"본인도 잘못을 알고 있으니 퇴장을 못 시키는 거겠지. 만약 일반적인 메이저리그에서 저렇게 행동하변 바로 퇴장명령이 나올 수 있어. 만약 퇴장시켰다면 여파가 커지니까 못 하는 거야."
그의 말에 코치들이 이어서 말했다.
"지금 보다시피 일본이 당하고 있는 걸, 우리라고 안 당할 수는 없어. 결승전이니 대놓고 못하겠지만, 그래도 미묘한 차이를 두고 저놈들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일관되게 유지할 거다.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스크라이크는 좁아지지만, 상대는 아니야. 오히려 넓어지니 타자들도 볼넷을 고를 생각은 가능한 버리고, 칠 수 있는 공을 치는 것이 좋아."
그러자 한동욱이 말했다.
"저는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볼넷을 고르지 않고, 일단 배트를 휘두르면 그게 놈들이 원하는 방향일 수 있습니다. 관중들에게 삼진쇼를 보여주면서 희열을 느끼게 하겠죠."
한동욱의 말에 다른 타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동욱이 말대로 미국엔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전부야. 특급은 빠졌다고 하지만, 클래스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이런데 우리가 느긋하게 볼넷을 고를 여유가 있을까? 동욱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쉽게 삼진을 당할 수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정정당당히 한들 실력으로 보면 자신들이 불리했다. 그런 와중에 심판마저 미국에 유리하게 판정한다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지금이야 미국에 유리하게 나오지만, 과연 저들이 준결승전에서도 가만히 있을까? 준결승이랑 결승 사이에 하루 쉬는 것이 고작이야. 나라면 강력한 우승 후보인 우리를 견제하겠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따지면 도미니카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국이 스스로 강력한 우승후보라 말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바로 동팔과 동욱, 지완이라는 사기 캐릭터가 셋이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당연히 우리가 동팔이나, 지완이. 둘 중 하나를 완벽히 소모하길 바랄 거다. 그리고 둘 중 남은 투수를 상대로 질질 끌어 최대 투구수에 도달하게 하겠지. 안타깝지만, 피할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이야."
임인식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절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그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끝난 건 아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얼굴이 그 모양이 되면 어떻게 하냐? 그리고 방법이 거의 없다고 했지, 없는 건 아니다. 대신…너희들의 동의. 특히 투수들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야."
그의 말에 선수들. 특히 그가 말한 투수들은 전부 임인식 감독을 봤다.
"이길 수 있다면 불법적인 것 빼고 전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쇼. 따르겠습니다."
각오가 느껴지는 그들의 말과 분위기. 그러자 임인식 감독이 그들에게 곧 있을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 쓸 작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다음날.
미국과 일본의 경기는 6대 4로 미국이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하루 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결승전을 준비할 때, 한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준결승이 시작되었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중계진은 어제 있었던 미국과 일본의 경기를 말했다.
"어제 경기를 보신 분들은 걱정이 많을 겁니다. 일본은 오타니를 선발로 내새우면서까지 결의를 보였습니다만, 스트라이크 존이 너무 미묘했어요."
"확실히 어제 경기를 분석한 결과, 존이 일본에게 불리했습니다. 같은 코스로 간 공이었지만, 일본에겐 스트라이크, 미국 선수에겐 볼이 선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 연맹에서 따졌습니다만, 주최측에서는 주심의 재량이며,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규정에 어긋나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스트라이크 존의 경우, 존에 걸치게 되면 판정이 애매한 건 맞습니다.
"
"그래도 너무 일방적으로 일본이 불리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걸치면 미국은 볼, 일본은 스트라이크니까요."
"하지만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 안입니다. 그동안 WBC를 하면서 정작 주최국인 미국이 우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진표도 그랬었습니다. 한 대회에서 두 팀이 세 번이나 만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그때 우리가 일본을 두 번 이겼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기지 못해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스트라이크 존도 전에 말이 많았었죠.
"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물었다.
"그럼 해설위원님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그야 실력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힘이 없으니 스포츠에서도 불리한 판정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적을 거둔 건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그 노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야비한 속임수를 계속 쓰면 실력이 늘어날 수 없습니다."
"사실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가 미국보다 나은 건 없지 않습니까? 미국은 전부 메이저리거 입니다."
"맞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거로만 구성된 팀이 전부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동안의 기록이 그걸 증명하고 있어요. 또 미국은 이번에 1위로 본선에 올라왔지만 한 번의 패배가 있지 않았습니까? 틈은 있습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와 한국 리그의 차이도 중요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야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시라면 대부분 아는 것이긴 하지만, 잘 모르실 입문자 분들께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위원은 앞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답했다.
"그건 말이죠. 간단히 말하면 메이저리그는 힘, 파워입니다. 160의 강속구를 힘이 강한 타자가 홈런을 치는 장면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변화구와 도루 및 작전이 특화되어 있어요. 메이저리그가 힘의 야구라면, 한국 야구는 발의 야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메이저 출신 선수들이 한국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건 아닙니다. 팀에 적응하는 것과 대인관계. 그리고 외로움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 및 성실함과 방심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적응할 수 있는 겁니다. 리그의 분위기가 다르면 거기에 적응하는 것도 선수의 능력이거든요.
우리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단순히 실력만 보기보다, 그 선수가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강동팔 선수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물었다.
"네? 강동팔 선수가 메이저에 간 것은 뛰어난 실력 때문 아닌가요?"
"당연히 그것도 있습니다. 동시에 뛰어난 옵션이 있는데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다른 나라에 적응하는 건 배우는 것도 있지만, 직접 부딪히면서 겪어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경험하는데 말이 통해야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거지요. 그 점에서 양키즈 구단이 좋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중계를 하는 사이, 한국의 수비가 시작되었다.
"한국이 1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홈 어드밴티지가 주어져 먼저 수비하고, 나중에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올라온 투수는 의외인데요. 강동팔 선수나 남궁지완 선수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초반에 둘 중 하나를 투입해 이닝을 소화하고, 한동욱 선수를 필두로 하여 점수를 내는 방향이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지금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는 윤재국이었다. 예상과 다른 선발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더그아웃에서도 약간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보였다.
"캉이나 남궁이 아니라고?"
"윤…재국? 이런 선수가 있었나?"
그동안 도미니카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선수는 가장 경계해야 할 강동팔, 한동욱, 남궁지완이었다. 그러니 다른 투수들에 대한 분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노릇.
부산스러운 도미니카 공화국의 더그아웃을 보며 임인식 감독이 말했다.
"분명히 제일 경계해야 할 선수인 건 맞지만, 꼭 그 선수를 선발로 내세운다는 보장은 없지. 야구에서 제일 위협이 되는 것은 상대방의 뛰어난 투수도 있지만, 파악이 안 된 선수도 마찬가지지."
감독의 말에 코치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 선수를 이전부터 파악했습니다. 처음부터 준결승 상대 전부를 파악해 왔으니 시간이 맞출 수 있었죠."
이미 도미니카 공화국 타자들의 장단점 분석이 끝났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상성이 좋은 투수들을 언제 투입할지에 대한 계획도 끝났다.
단순히 하나의 계획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감안하여 짜 놓았다.
"우리 투수들은 전부 13명. 동팔이랑 지완이가 빠져도 11명이지. 한 명이 한 이닝만 감당해도 충분하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쪽의 불펜에서 다음에 던질 투수 두 명이 가볍게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도미니카의 감독과 코치들은 더 혼란스러웠다.
"대체 한국애들 생각은 뭐야?"
"벌써부터 불펜을 가동시켜? 선발이 공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황은 선발을 향해, 넌 믿을 수 없으니 다음 투수를 준비하겠다는 표시가 된다. 당연히 선발투수는 이런 상황이 되면 굉장히 불편하다.
그러나 선발로 올라와 가볍게 시험 투구를 하는 윤재국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이미 이렇게 하기로 했어. 내가 최소 감당해야 할 이닝은 한 이닝. 하지만 내 구위가 계속 통하면 주자 2명이 나갈 때까지 던질 수 있어.'
그것이 임인식 감독이 투수들에게 한 부탁이었다.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서 투수들에게 짧고 강하게 던지라고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강동팔과 남궁지완은 포함되지 않았다.
'너희도 알다시피 결승전 선발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거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은 불펜으로 대기하다가 타이밍 봐서 교체할 거야.'
바꿔 말하면 결승전에 다른 투수들이 마운드에 올라올 일은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렇게 극단적인 부탁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솔직히 미국과 결승에서 잘 할 자신은 없어. 특히 스트라이크 존에 장난을 치면 더욱 더. 하지만 동팔이랑 지완이라면… 그 틈을 뚫을 수 있어.'
주연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자신의 실력과 주변의 상황은 자신들을 향해 주연이 되지 말라고 한다.
아쉽게도 그건 자신들도 받아들인 현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번 대회에 있는 자신의 사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최대한 이닝을 소화한다. 미국은 우리보다 상대하기 편한 도미니카가 올라오길 바라고 있을 거야. 그러니…내가 한 이닝밖에 못 던지더라도 완벽하게 던져야 해.'
동팔과 지완을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의 사명은 힘을 모아서 한국을 결승전에 올리는 것. 그러기 위해선 실점을 최소화 하고, 타자들이 어떻게든 점수를 내야 한다.
그 조건 중에 하나인 무실점을 향해 매 투구마다 전력을 다 해야 했다.
윤재국은 곧 경기 시작을 선언할 주심을 본다. 과연 자신들의 걱정대로 그가 스트라이크 존으로 장난을 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애매한 건 그렇다 치지만, 한복판에 오는 것까지 볼을 선언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되면 이건 미국 심판들 전체적인 자질의 문제로 이어지게 되니까.'
국제적인 대회에 이목이 많이 집중된다면 판정을 편파적으로 하는 것에 한계가 생긴다. 그리고 불리한 쪽인 한국은 그 점을 유용하게 이용해야 했다.
그 선을 알기 위해선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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