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39화 (139/325)

[139]

# 세미파이널(1)

한국과 일본이 속한 2라운드의 조는 시작하기 전에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한국, 일본, 쿠바, 네덜란드.

어느 한 나라라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이었으며, 메이저리그에 꾸준히 선수를 배출하는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어느 나라가 미국에서 열리는 준결승전에 진출해도 이변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오히려 이변은 전승(全勝)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이었다.

결국 나머지 세 팀이 물고 물리며 끝까지 방심할 수 없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었다.

그리고 다른 조에서 준결승에 올라온 나라는 주최국인 미국과 전 우승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이었다.

예선 1,2라운드가 끝나고 준결승에 진출한 4개국은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한 회의장.

이곳에선 WBC를 준비했고, 진행하는 핵심 위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하는 기본적인 회의는 준결승과 결승의 준비다.

하지만 오늘의 회의 주제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한국이 의외로 전승으로 올라왔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리라 보는데."

"확실히 예상 외였습니다. 설마 12점 차이의 대승으로 눌러버릴 줄은 몰랐죠. 하지만 한국팀 자체가 강한 건 아닙니다. 세 사람이 유달리 강해서 그럴 뿐입니다."

그의 말에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 세 사람은 한국인 아닌가? 그들이 국적을 바꾼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가 중요해. 언제까지 우리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미국이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할 수 있는 거야!!"

처음에는 월드컵과 같이 세계인이 주목하는 대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구는 축구와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저변이 빈약하다.

하지만 이건 두 종목의 특성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축구는 일정한 면적의 운동장과 공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어쩔 때는 좁은 곳에서 작은 공으로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야구는 아니다.

축구장보다 더 넓은 구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야구공만 있으면 안 된다. 공을 칠 배트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준비다.

덤으로 수비하는 사람들은 글러브를 준비해야 한다. 없어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닥에 튕기는 공도 아니고,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를 맨손으로 잡았다간 뼈가 부러진다.

특히나 포수는 예외 없다. 전력으로 던지는 공을 안전하게 잡기 위해선 두터운 포수 미트가 필수, 그리고 몸과 얼굴에 맞을 경우를 대비해 보호구가 필수였다.

준비할 것이 많고, 그마저도 비싼 장비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가난한 나라에서도 할 수 있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어느 정도 사는 나라에서나 겨우 할 수 있는 스포츠다.

거기에 가난한 나라에선 빈민층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축구였다. 그건 축구를 잘 해서 외국의 명문 구단으로 영입되는 것.

그러면 그와 그의 가족은 상상하지도 못하던 돈을 벌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

이러 저런 이유로 WBC는 야구의 월드컵과 같았지만, 월드컵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미국이 우승해야 체면이 서. 일본이야 어떻게든 이길 수 있고, 다른 나라도 깜짝 스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번에는 우승이라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한국에서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튀어나왔는지 원……."

그의 말에 다른 임원이 말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들 전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는 겁니다. 그들이 활약을 하면, 그로 인한 수입의 증가도 예상할 수 있어요. 특히 중계권 계약에서 한국 방송사들이 달려들 것이 뻔합니다."

그의 말에 또 다른 임원들이 말했다.

"확실히 경쟁이 있으니 더 많은 돈을 받고 팔 수 있겠지. 하지만 코딱지 만한 나라에서 아무리 비싸게 사려고 한들 한계가 있어. 일본처럼 인구가 1억을 넘는 것도 아니라 광고효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광고주들이 투자할 돈도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잖나. 전체적으로 보면 푼돈에 불과해."

"그리고 중요한 건 돈이 아니야. 이번 대회에 우리 미국이 우승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단 말이지. 이번에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렇지 않아도 보지 않는 대회를 누가 더 보려고 하겠어? 한국이 그 세 명으로 우승하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다른 대부분의 임원들도 같은 생각인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세가 미국의 우승을 향하자 다른 임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대진표는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한국이 결승에 올라오지 않는 이상, 마주치지 않아요. 거기에 우리는 한국보다 하루 더 쉬고 결승전을 치르게 하면 됩니다. 일본과의 경기를 하루 당기도록 하죠."

"그냥 말하면 안 될 것 같고, 이유는 있어야 하겠죠?"

"그건 구장 상태라는 이유를 대도록 하죠.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보수작업을 했는데, 일정이 조금 꼬였다고 말하면 됩니다. 아니, 그건 좀 이상하니 올해 리그 준비를 위해서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의 말에 회의를 주관하던 임원이 반색하며 말했다.

"그 방법이 있었군. 반발이야 일어나겠지만, 크진 않으니 그렇게 갑시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먼저 일본을 넘어야 우승할 수 있어."

그의 물음에 다른 임원이 보고했다.

"지금은 일본이 한국보다 상대하기 수월하니 사실상 결승에 진출하는 쪽은 우리입니다."

그러자 다른 임원이 물어봤다.

"그럼 일본은 거의 이긴 것이라고 봐도 될까?"

"그건 아니야. 오타니라는 투수가 선발로 올라올 예정이라더군. 그 선수라면 메이저에서도 특급으로 분류되는 투수지. 하지만 우리 미국팀에 그만한 투수가 없어. 평균적인 실력이라면 우리가 우월하지만, 대부분의 특급 투수들은 구단에서 차출을 반대했거든."

그의 말에 다른 임원들이 투덜거렸다.

"몸 되게 사리기는……. 그거 때문에 WBC의 무게가 떨어지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우리가 우승해야 해. 그래야 무게가 있고, 명예가 있어야 선수들도 나오기 위해 구단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대진표는 손 볼 수 없고, 다시 투구 숫자를 줄일 수도 없어.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하는 것도 아니니 다시 규정을 바꾸는 건 늦어도 한참 늦었는데?"

그러자 다른 임원이 말했다.

"당연히 다 방법이 있지. 야구는 섬세하고 세밀한 스포츠야. 약간의 차이만 만들면 우리에게 충분히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어. 스트라이크 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말에 다른 임원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설마 스트라이크 존을 늘렸다 줄였다 하겠다는 건가? 상대팀은 늘리고, 미국 타자들에겐 관대하게?"

공 하나 가지고 승패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투구의 결과가 겹치고 또 겹치면 승패에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투구의 내용을 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스트라이크 존.

존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지만, 벗어나면 볼이 된다. 그러니 존이 상대적으로 어느 한 팀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면 승패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은 조작은, 어느 한 팀이 일방적으로 강하지 않다면, 불리한 쪽이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도록 만든다.

그들의 말에 한국의 중계권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했던 임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지금 심판을 매수하자는 거야!! 그게 말이 돼? 그런 짓을 했다간 후폭풍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

하지만 그의 외침에도 다른 임원들은 요동하지 않았다.

"진정하라고, 존. 메이저리그에서도 선수나 심판의 성향에 따라 아주 조금 차이가 있어. 그 정도는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선수나 팬들이나."

뻔뻔한 그의 말에 다른 임원들도 동의했다.

"어차피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그 정도 미묘한 차이는 의심을 할 수 있어도 증거가 없으면 소용없거든."

그들의 말에 소리쳤던 임원, 존이 말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WBC의 권위와 명예가 떨어집니다. 자신만의 대회를 만들고, 혼자 우승하기 위해 다른 팀을 이용하는 대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처음에는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참여하려는 나라가 의욕을 보이지 않게 되어 사라지게 될 텐데도?"

그의 말에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이 말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미국의 우승이 더 중요해. 그렇지 않아도 떨어진 미국인들의 관심을 올리려면 우승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지? 있으면 말해보게. 다른 나라가 우승하는 것을 본 잔치의 주인공은 어떤 기분일까?"

그러자 존이 말했다.

"그런 팀을 만들지 못한 미국팀이 문제 아닙니까? 미국인 중에 특급 투수와 타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의 참여를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쪼잔하게 낚시질만 하면서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부상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고, 참여한 선수의 국가가 승리하면 구단에서도 이득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의 말에 다른 임원이 말했다.

"그럴 만한 돈이 없어. 상금보다 선수 몇 명의 몸값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야."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이전에 했지.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목하는 대회가 아니니 중계료가 낮고, 팔릴 나라도 적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더 자금을 투입할 수 있겠나?"

그러자 존이 답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말로 이 대회를 크게 키우고 싶다면 투자를 해야 합니다. 지금이야 손실을 보겠지만, 뛰어난 선수들이 공정한 경기를 한다면 반드시……."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임원이 말했다.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은 없어. 지금 중요한 건 바로 지금 큰 손실을 보지 않고, 우리나라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중계권료를 더 높이는 것이야. 우리가 괜히 우리 미국의 우승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애국심? 단순히 애국심으로 움직였다면, 그쪽의 말대로 철저히 공정하게 운영해야 되겠지. 하지만 이 대회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돈이라고, 돈!!"

그의 말에 다른 임원들은 반박하지 않고,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반응에 존은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군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는데."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회의실을 나오면서 말했다.

"이 추악한 회의에 동참할 생각은 없습니다. 외부로 발설할 생각도 없지만, 진정 우리나라와 야구를 생각한다면 지금 생각하는 계획을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쾅!!

그는 그 말을 남기고 회의실 문을 거칠게 닫고 나왔다. 하지만 그의 반응에도 다른 임원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고 말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친구구만."

"그러면서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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