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38화 (138/325)

[138]

먼저 던지는 공은 느리게 보여 먹음직스러운 공이었다. 하지만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가면 휘어지며 정타가 되지 않도록 한다.

동시에 회전 방향에 신경을 쓰지만, 우타자의 경우는 당겨서 치게 하고, 좌타자의 경우는 밀어치게 만든다.

그러면 1,2루 사이가 아니라 2,3루 사이. 즉 유격수가 있는 자리를 향해 타구가 나가고 만다. 바로 이렇게.

따악~!!

정타에서 빗나간 타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동욱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다. 이번에도 힘이 실려 빠르게 나가는 타구였지만, 한동욱의 글러브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동욱에게는 다행히 슬라이딩을 할 필요가 없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가볍게 송구를 하여 이번에도 단 하나의 공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연속으로 두 타자가 공 하나에 아웃되자 일본의 더그아웃은 물론 관중들도 흔들렸다. 그들은 지금 전광판에 있는, 동팔이 던진 공의 개수를 보았다.

"지금까지 27개밖에 안 던졌어?"

"3과 2/3이닝이나 됐는데도?"

"이러다 정말 공 70개로 9이닝을 끝내는 거 아냐?"

설마 설마하는 사람들. 일본팬들에겐 절로 다리에 힘이 풀릴 상황이지만, 한국팬들에겐 절로 흥에 겨울 상황이었다.

"아주 끝내라! 끝내!!"

"공 70개 안으로 9이닝을 끝낼 수 있으면 더 통쾌하지."

야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와 점수로 이길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그것도 영봉승이라면 더욱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니 세 번째 올라오는 일본의 타자는 더 위축되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야 해. 어떻게든…, 반드시…….'

이런 상황에 먹기 좋은 공이 들어오자 저절로 배트가 움직였다.

따악~!!

하지만 이번에는 한동욱이 아닌 동팔을 향해 타구가 날아갔다.

"……!!"

한동욱이 있는 곳을 향해 가도록 유도했지만, 운이 안 좋았는지 의도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팔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펑고를 할 때, 자주 오는 타구. 그리고 그동안 해온 훈련으로 인해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였다.

동팔은 침착하게 바닥에 튕긴 공을 잡았다. 그가 잡았을 때, 타자는 1루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 아직 절반밖에 가지 못했다.

덕분에 동팔은 여유 있게 1루로 송구했다.

"아웃!"

가볍게 아웃카운트를 채운 한국팀은 곧바로 공수교대를 했다. 이번 이닝에서 동팔이 던진 공은 고작 3개. 반면 일본은 5회초에 세 번째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오고 있었다.

***

한일전은 압도적으로 한국이 주도했다. 8회말까지 점수는 12대 0.

4회초에 큰 점수를 얻으며, 이후로도 꾸준하게 한두 점씩 추가해 나갔다. 하지만 일본은 강동팔이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벽 앞에 단 한 번의 진루도 허용받지 못했다.

자연히 9회초, 한국의 공격이 끝나자 일본의 마지막 공격기회가 남았다. 그래도 일본팬들은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이번에 강동팔이 제한투구수를 거의 채웠으니까 다른 투수로 교체되겠지?"

"그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기회는 있을 거야……."

4회에 타자들이 공 하나에 아웃된 것을 보자, 일본에서 전략을 바로 바꿨다. 스트라이크든 뭐든 어떤 공이 오더라도 2개 이상을 지켜본 다음 배트를 휘두른 것이다.

투구수의 제한을 이용하여 동팔로 하여금 빨리 마운드에서 내려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8회말이 되었을 때, 동팔이 던진 공의 개수는 69개였다.

동팔도 상대가 지켜보는 것으로 나오는 것을 보자 처음과 두 번째 공을 무조건 스트라이크로. 마지막엔 스트라이크나 변화구를 던져 삼진을 유도했다.

한 명의 투수로 인해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더 던질 수 있어도 규정에 의해 던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동팔 다음에 어떤 투수가 올라오느냐에 따라 일본으로선 승리의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긴장하고 있었다.

"임인식 감독이 다음 투수로 누구를 올려 보낼까?"

"그래도 최고의 마무리를 올려 보낼 거야. 실력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도, 까딱하면 한 이닝에 다 따라잡힐 수 있으니까."

9회말 2아웃이 되어도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아웃카운트가 완전히 채워져야 그때 끝났다며 안도할 수 있는 것이 야구.

만약 예상치 못한 참사(일본 입장에선 기적)가 일어나 지게 된다면 공격기회를 전부 잃은 한국팀은 끝내기 패배를 당하게 된다.

지금이야 흐름이 한국에 있지만, 일본이 물꼬를 틀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일본이 싫더라도 야구에 있어서 한 수 위라는 건 인정해야 했다.

모든 사람이 긴장하고 있는 그때, 정작 당사자인 한국팀은 여유가 있었다. 특히 이번에 마운드를 내려온 동팔은 다음에 올라올 투수를 보며 말했다.

"정말 마무리해도 괜찮겠어? 다음에 있을 경기에 선발이잖아."

그러자 9회말을 책임질 투수, 남궁지완이 말했다.

"10개 이내로 끝낼 거야. 넘어가면 다른 사람이 올라오면 되는 걸 가지고 무슨……."

이번에 올라오는 마무리투수는 예상을 벗어나 남궁지완이었다. 그리고 공수교대를 하면서 전광판과 중계화면을 통해 그의 이름을 본 한국 사람은 크게 환호했다.

"끝났다!!!"

"게임 끝!!!"

"사요나라, 일본!!! 하하하하하!!!"

리그 전체적인 기록으로 보면 동팔에 밀린다. 하지만 후반기에 보여준 남궁지완의 구위는 동팔과 비견되거나 동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반면, 동팔에 대해서만 집중하던 일본팬들은 혹시라도 모를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일본 더그아웃에선 무거운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적막에 숨이 막혀 있을 그때, 일본팀의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가자. 포기하면 될 것도 안 돼……."

그래도 감독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선수를 독려했다. 하지만 감독은 속으로 이빨을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잔인한 놈들…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야 했나?'

그는 혹시라도 모를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한국팀의 의지를 느꼈다.

강동팔이라는 강하고 튼튼한 끈에 손이 묶인 상태에서 한동욱이라는 몽둥이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발버둥이라도 치려고 했지만, 그 발마저 동팔과 동급이라 평가받는 남궁지완이라는 끈에 묶이고 말았다.

정말로 사지가 묶인 상태에서 일방적인 구타를 당한 일본 야구팀.

결국 그날 일본의 9회말은 남궁지완의 삼진 3개로 완전히 막히고 말았다.

***

경기 후.

일본을 대파한 한국은 큰 환희 속에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대승을 거둔 임인식 감독은 환희와 거리가 있었다.

그 모습에 다음 경기를 준비하던 코치가 물었다.

"감독님, 오늘 이긴 게 안 기쁘신가요? 표정이 조금 어두워 보입니다."

그러자 임인식 감독이 말했다.

"기쁘지 않기는, 아주 기쁘지. 어려운 상대를 이겼으니 안 기쁜게 말이 되나. 다만 역시나 걱정이 앞서서 그래."

"걱정이요?"

"그래, 걱정이지. 솔직히 생각해보자고. 오늘 승리는 동팔이랑 동욱이. 그리고 지완이가 있어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어. 만약 그 세 사람이 없고, 일본은 오타니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러면 과연 승산은 얼마나 있었을까?"

임인식 감독의 질문에 코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쉽게 지지는 않겠지만… 역시 이기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승부는 끝나기 전까지 모르는 것이 상식이다. 당연히 승패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확률로 따지면 코치가 말한대로 이기는 건 쉽지 않다.

"아마 잘 봐야 40% 정도? 애초에 기반이 되는 인프라가 다르니 어쩔 수 없지. 일본에서도 오타니 같은 선수가 나오는 건 사고에 가깝지만, 그보다 조금 못한 선수는 계속 발굴되고 있잖나."

"그건 감독님 말씀대로 어쩔 수 없습니다. 인프라 규모 자체가 달라요. 일본의 고교 야구팀은 4,000개에 달합니다. 고작 50개 정도 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죠. 아마추어 야구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있는 야구장의 숫자를 따지면 더 합니다."

쉽게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으면 동호회가 생겨도 야구를 하는 건 어렵다. 자연스럽게 아마 야구팀은 쉽게 흩어지고,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팀당 평균 30명으로 생각하면 일본은 1만 2천명의 고교 선수들이 프로를 준비하고 있어.

그 중에 대학에 들어가 실력을 키우고, 일부는 바로 프로에 들어오겠지. 하지만 한국은 잘 해야 1,000명? 그리고 모든 고교 선수들이 프로에 가려고 하는 건 아니니 숫자는 더 줄어들 것이 당연해. 하지만 프로 구단 숫자는 일본과 같은 10개.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아 인재를 찾는 것도 어렵고, 키워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부상의 위험도 피해야 하고.

"

아쉬워하는 감독의 말에 코치도 아쉬워하며 말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야구에만 투자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비인기 종목은 올림픽 아니면 각광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메달 따고 연금으로 버티는 것이 몇 안 되는 희망이죠. 그래도 야구는 억대 연봉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종목이지 않습니까. 다른 종목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것이 뻔합니다."

코치의 말에 임인식 감독이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냥 아쉬워서 하는 말이지. 인구가 겨우 5천만 넘어가는 나라가 모든 스포츠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없는 건 잘 알아. 중국처럼 15억이 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능하겠어."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이 작은 나라에, 기반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저 세 사람이 나온 건 대단한 거지. 이전에도 뛰어난 선수가 종종 나왔었지만, 저 세 사람은 특별해. 하지만… 야구는 몇몇 사람으로만 하는 건 아니야. 세 명 덕분에 이후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지만, 바꿔 말해 그 셋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거든."

"결국 사람에 가려 안주하지 않고, 이 기회를 이용해 시스템을 보완할 기회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세 사람 덕분에 인기가 많은 야구가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더 얻게 되겠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결국 10년 뒤, 국제대회의 성적으로 결과를 증명하게 될 거고."

그 말을 하고, 임인식 감독은 코치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10년 뒤는 10년 뒤고, 우리는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야. 우리의 목적이 무언지 알고 있지?"

감독의 물음에 코치들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우승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답변에 감독이 말했다.

"그럼 다음 상대인 네덜란드에 대한 분석을 오늘 안으로 끝내, 어설프게 했다가 져서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오늘 대승은 의미가 없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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