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37화 (137/325)

[137]

"다음에 오타니를 괴롭힌 한동욱인데 지금 상태로 괜찮을까?"

"그래도 기록을 보면 삼진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범타로 아웃되는 경우도 많고."

단순히 기록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 관중들은 최대한 행복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한동욱에 대해 현미경 분석을 한 일본 감독과 코치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삼진을 당해도 어쩌다 당하는 삼진이지……. 강동팔이 아니면 저 선수에게 삼진을 먹인 투수는 없었어."

"범타 유도. 또는 볼넷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는데… 최근 범타 비율을 보면 그것도 힘들어. 후반기만 보면 타율이 7할을 넘어 8할 찍기 직전까지 갔으니까."

리그 전체 기록으로 보면 그래도 노릴 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석하면 할수록 공략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한동욱에 대한 대처는 직접 상대해본 오타니에게 물어봐야 했다.

"오타니, 너라면 한동욱을 어떻게 상대하겠어?"

코치의 물음에 다른 선수들도 오타니를 보았다. 오타니는 잠시 고민했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사기만 떨어질 수 있는데…….'

하지만 괜한 희망을 주는 것도 이후의 부작용을 생각하면 지양해야 했다. 그래서 오타니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이번에 상대했다면 볼넷으로 보내겠습니다. 정규리그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뚫어 보겠지만, 제한이 있으니 그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최고 투수가 상대를 인정했다. 그러니 다른 선수가 더 말해 뭘 할까. 그래서 코치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볼넷으로 보내.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밀어내서 만루가 되더라도 한동욱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한 방법까지 사인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볼넷 허용?'

코치가 전한 정확한 내용은 고의 볼넷. 하지만 투수는 단순히 볼넷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가 대참사의 시작이었다.

'그럼 아래쪽으로 향하는 공으로…….'

던지는 공은 커브. 포크볼만큼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던진 오타니의 150에 달하는 포크볼은 사기에 가까운 구위.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공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휙~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나 포수의 글러브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동욱은 날아오는 공의 구위와 궤적의 파악을 끝냈다.

'아래로 향하는 커브. 그리고 이번에도 볼넷으로 나올 것이 뻔해. 그렇다면…….'

밀어내기로 만루를 만드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한동욱은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자신은 계속 견제를 당할 것이고, 볼넷만 많이 얻으며 WBC를 끝낼 생각도 없다.

비록 자신이 원하는 공은 아니지만, 못 칠 공도 아니었다.

휭~ 따악!!!

단순히 공을 때리는 것으로 타격이 끝나지 않는다. 공을 칠 때, 어느 방향으로 향하며 치는지가 중요했다.

지금 동욱이 한 타격은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형태. 그리고 이전부터 키워온 힘과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타구를 더 높게, 그리고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가게 만들었다.

"오, 오~ 큽니다, 큽니다~!! 홈런!! 역시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한동욱입니다!!"

"이것으로 3대 0!! 우리가 먼저 앞서나갑니다."

한동욱의 홈런으로 열도는 침묵에 빠졌다. 반면 반도에선 한동욱의 홈런이 터지자, 크고 작은 함성도 같이 터졌다.

"됐다!!"

"이겼다!!"

아직 4회말 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이번 한일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동팔이 3이닝까지 던진 공의 개수는 고작해야 25개. 지금 페이스만 유지해도 6이닝까지 50개. 최대 70개까지 생각할 경우, 잘 하면 8이닝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

이미 강동팔의 압도적인 구위를 바로 앞에서 본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구위가 떨어지지 않고 일본의 타자들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국민이 동팔을 안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 이닝에서 한국은 한동욱의 3점포를 시작으로, 모두 합해 7점을 뽑아내며 빅이닝을 만들었다.

일본에게 있어 악몽으로 기록될 4회초가 끝나자, 그들은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한숨마저도 단 한 사람으로 인해 꽉 막히고 말았다.

"읏차. 이제 내가 잘 해야겠네."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 동팔은 마음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새웠다. 그리고 같이 필드로 나가면서 동욱에게 말했다.

"동욱아, 잘 부탁한다."

"응? 응……."

동욱은 동팔이 왜 자신에게 그 말을 하고 마운드에 올라갔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알아차렸다.

"저 자식… 설마……?"

그리고 동욱의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

일본의 1번 타자인 스즈키는 이번에도 상대하게 된 동팔을 날카롭게 살펴보고 있었다.

'투구품은 달라지지 않아. 차이가 있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워. 폼이 달라도 같은 구종이 날아오고, 폼이 같아도 전혀 다른 공이 날아와.'

1회초에 단 한 번 맞붙었다. 그 전에 한국 투수 중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선수라 이전부터 따로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하지만 분석하면 할수록 상대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같은 투구폼. 거기에 다양한 구종을 섭렵. 직구 구속은 160을 넘고, 제구 또한 완벽…….'

이미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오타니의 공을 여러 번 상대해본 스즈키. 그의 강속구와 빠르고 절묘한 포크볼에 배트가 헛돌았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동팔의 구위가 오타니에 비견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회초에 처음 상대했을 때,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던질 수 있는 공은 포심과 투심,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가 주력구. 거기에 스플리터와 싱커는 물론, 마구라 불리는 너클볼과 자이로볼까지…….'

빠른 공을 상대하는 타자들이 전부 반사신경이 빠른 건 아니다. 전부 상대의 공을 보고, 예측하며 친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던질 수 있는 구종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그걸 감안하여 투수가 던질 공을 예상하고, 볼의 배합을 예상한다. 그리고 여러 번의 기회에서 단 하나가 걸리면 안타나 홈런이 되는 것이다.

보통 한 경기에 세 번,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한 타석에 타격을 하는 기회는 적게 한 번, 많으면 5번 이상 배트를 휘두를 수 있다.

그 중에 두 번 아웃되고, 단 한 번의 타석에서 안타를 치면 3할 3푼 3리의 타율을 얻는다.

보통 3할 이상의 타율이 강타자의 기준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타자가 투수를 상대로 한 경기에 한 번의 안타를 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점수를 내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타자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다. 투수의 입장에선 각기 다른 성향의 타자 아홉 명을 연달아서 상대해야 한다.

그 중에 연속적으로 안타를 허용하거나, 실책 및 볼넷으로 출루시키게 되면 점수가 날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니 투수가 뛰어나면 점수가 날 확률은 줄어들기 마련.

어디까지나 야구가 팀으로 하는 스포츠지만, 동시에 투수놀음이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스즈키는 자신이 점수를 낼 생각은 없었다. 홈런을 많이 치기도 했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으니 그가 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 하나.

'진루…… 어떻게든 진루해야 해. 볼넷이면 좋고, 좋은 공이 오면 반드시…….'

그 각오를 다지며 배트를 강하게 쥐는 스즈키. 반면 각오를 세우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와 달리 동팔은 여유가 있었다.

'저렇게 힘주다 똥 나오는 거 아냐?'

본인은 한 없이 진지하지만, 보는 입장에선 조금 웃겼고, 또한 안쓰러웠다.

동팔도 일본의 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는 건 알고 있다. 한동욱이 유난히 강해서 그렇지, 그를 제외하고 양국 타자의 느낌을 비교하면 일본이 한수 위였다.

하지만 임인식 감독의 말대로 실력이 높으면 승률은 오르지만, 승패를 결정짓는 건 아니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방심을 하면 무너지는 것이 야구.

물론 실력이 월등하게 차이가 나면 실책이 일어날 기회도 생기기 않겠지만, 지금 여기에 모인 나라 중에서 약한 팀은 없다.

이전이라면 방심을 이용해서 승패를 뒤집었다면, 지금은 일본도 한국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한국으로선 일본을 상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 여전히 도전자의 입장에 있는 한국으로선 방심은 꿈도 꿔선 안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압도적인 구위를 보여주고 있는 동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동욱이 만큼 강한 타자가 있는 건 아니니까……."

이미 점수를 크게 냈지만, 이 점수를 끝까지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자신 이후에 올라오는 투수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기회를 일본의 타자들이 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동팔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럼…슬슬 시작해 볼까.'

그 계획을 위해 동팔은 이전과 달리, 조금 느린공을 던졌다.

'기회!!'

휙~ 따악!!

전보다 느린 동팔의 공을 보자, 스즈키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예상되는 궤적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고, 타격에 성공했다.

"와!!"

힘을 제대로 실어 만들어낸 강습형 타구.

동팔을 상대로 첫 안타가 나왔다는 생각에 일본팬들은 폭죽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물에 잠긴 폭죽처럼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타구가 향한 곳은 유격수 한동욱이 지키고 있는 곳. 이미 타구를 보자마자, 어디로 향할지 알아차린 동욱은 빠른 동작으로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슬라이딩을 통해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를 잡은 한동욱은 즉시 일어나 1루로 송구했다.

촤악~.

전력으로 달리던 스즈키였지만, 날아가는 공보다 빠를 수 없었다.

턱.

"아웃!"

결국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잡은 동팔. 그리고 동욱은 흙으로 더러워진 옷을 털며 생각했다.

'이 자식… 나보고 잘 부탁한다고 한 이유가 설마…….'

지금 동팔에게 있어 제일 효율적인 투구는 삼진이 아니다. 삼구삼진은 쉽지 않다. 한국의 타자를 상대로 무결점 이닝을 달성하는 것이 어려운 마당에 일본 타자를 상대로 삼구삼진을 노린다면 평균적으로 공을 4~5회 던져야 한다.

그러면 한 이닝을 끝내는데 필요한 공은 12~15개. 남은 투구 개수가 45개임을 감안하면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동팔이 더 효율적인 투구를 하기 위해선 단 하나만 남는다. 바로 범타를 이용한 아웃카운트 사냥.

그러면 최소 공 3개만으로 한 이닝을 지우는 삼구 삼자범퇴가 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것도 쉬운 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선 범타 유도를 잘 하는 투수. 그리고 어떤 타구라도 잡을 수 있는 수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동팔로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수비가 유격수로 와 있었다. 평상시라면 생각하지 않을 범타 유도였지만, 극도의 효율적인 투구를 위해선 그를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니 동팔은 공을 던질 때, 항상 타구가 동욱을 향하도록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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