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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동팔이가 얻은 능력은 오직 회복능력뿐이었지? 나처럼 신경전달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죽었지만 민호준처럼 강한 힘을 얻은 것도 아니야. 그럼…회복능력을 바탕으로 쉬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구위를 얻지 못했어.'
그렇게 보면 동팔도 노력하는 천재다.
본인은 노력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노력도 본인의 재능이 없으면 지금의 구위와 실력을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채는 강도를 조절해서 궤적을 조절하는 건 아무리 베테랑 투수라도 쉽지 않은 일. 그게 노력만 한다고 가능하다면, 프로 투수들이 제구력 난조로 고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동팔이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악마와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지금의 실력을 가졌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동욱은 동팔의 재능이 부러웠다. 신체적인 제약에 의해 악마와 계약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더.
하지만 감탄은 감탄이고 지금은 승부의 때.
무엇보다 지금 한국의 가장 강력한 공격카드는 바로 자신이었다. 국가대표로 뽑힌 타자들 중에 만만한 타자는 없지만, 공격과 수비에 있어 자신이 제일 뛰어나다는 자각은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력에 맞게, 많은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지고 있었다.
'오타니가 우투수였지? 그럼… 이번에는 좌타로 가면 되겠어.'
스위치히터인 한동욱은 우투에게 유리한 좌타(포수 기준 오른쪽)쪽에 섰다. 보통 반대쪽에 서던 것과 다르자 일본 더그아웃에선 약간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있었다.
"왜 평상시의 반대쪽에 섰지?"
"스위치히터라고 해도 익숙한 쪽에 서는 것이 보통일 텐데."
통상적으로 우투수에 강한 타자는 좌타자다. 하지만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다. 무엇보다 오타니의 경우, 좌타자든, 우타자든 가리지 않고 강했으니 의미는 더 없었다.
그래도 변화를 주는 이유는 있었다.
"예상된 상황을 일부러 벗어나면 순간 흔들리기 마련이야. 흔들리지 않아도 이후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지. 그 정도면 충분해. 다른 선수도 아니고 한동욱을 상대로 한다면 부담을 더 느낄 수밖에 없겠지."
임인식 감독의 말에 옆에 있던 코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동욱이를 잘 모르고, 대범하게 나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동욱이 아무리 강한 타자로 이름을 올려도 어디까지나 한국 리그에 한해서다. 오타니라는 선수가 뛰어난 투수에 한국을 무시하지 않는다 해도, 한동욱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기존에 조사한 것과 다른 행동을 해도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특히 강동팔과 비교할 수 있는 구위를 지닌 투수라면 당연히 자신감 또한 강하다.
그래도 임인식 감독은 걱정하지 않았다.
"대범하게? 그렇게 나오려면 나오라고 해. 동욱이는 투수 입장에서 정말 상대할 수 없는 괴수 중에 괴수야. 그런데 문제가 있어. 뭔지 알아?"
"뭡니까?"
"직접 상대하기 전까진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아무리 기록을 살펴봐도 모르는 그것을."
임인식 감독이 그 말을 했을 때, 마침 한동욱이 오타니의 투구를 받아쳤다.
따악~!!
이번에 친 타구는 파울. 제대로 맞지 않은 타구에 일본의 반응은 안도의 한숨. 그리고 무시였다.
"그럼 그렇지. 오타니 공을 쉽게 치겠어?"
"오타니가 어떤 투수인데…… 처음 상대하면 구위에 놀라 당황할 거야. 다 이해하지, 이해해."
하지만 한국팀의 더그아웃에선 파울 타구를 보며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한동욱을 상대해본 투수들은 절로 이 말이 튀어나왔다.
"동욱이 저거 또 저러네……."
"동욱이의 사냥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사냥감은 오타니."
"강판되진 않겠지만, 잘 가라. 이건 동욱이를 상대하는 투수들의 신고식 같은 거니까."
그들은 동욱이 어떤 방식으로 투수를 상대하는지 잘 알고 있다. 특히 끈질긴 승부를 계속해서 해왔던 동팔은 절대로 모를 수 없었다.
"동욱이 저 자식…설마 이번에도 홈런 노리는 거야? 날 처음 상대했을 때처럼?"
동욱은 자신이 원하는 공을 유도하기 위해 계속해서 커트한다. 아무리 빠른 강속구라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신경반응 속도를 가졌으니 어떻게든 칠 수 있었다.
"우리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지. 적어도 투구수 제한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2라운드의 경우, 한 경기에 한 명의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의 개수는 70개밖에 없어. 한동욱한테만 10개 이상 소모할 수 없으니 승부의 압박을 받게 될 거야. 저 녀석이라면 혼자서 20개 이상 던질 수 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 볼넷 아니면 정면승부."
따악~!!
남궁지완이 그 말을 할 때, 이번에도 낮게 오는 공을 쳐서 파울 지역으로 날려 보낸 한동욱. 그리고 그에게 던진 공의 숫자만 10개에 다다르자 오타니는 한국 선수들의 예상대로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었다.
'떨어지는 포크볼? 아니면 직구 승부?'
이제 1이닝을 지우고, 두 번째 이닝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벌써 20개의 공을 소비하면, 이후의 과정에서 일본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포크볼을 던져 속일지. 아니면 빠른 공으로 삼진을 잡을지 선택해야 했다. 낮은 공은 무조건 파울 처리를 하니, 제한되었다.
결정의 순간은 짧았다.
휙~!!
오타니의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공의 회전방향과 속도를 통해 궤적을 예상한 한동욱은 아쉬워했다.
'젠장, 포크볼!!'
땅으로 떨어지는 공을 치려고 해 봤자 아웃카운트만 올라간다. 그러니 동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볼넷을 골라서 진루하는 것이었다.
툭~ 퍽!
동욱의 예상대로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포수는 블로킹을 해서 공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결국 볼넷으로 걸어 나간 동욱.
이 승부를 보면서 일본팀은 소름이 끼쳤다.
"150의 포크볼을 참았어?"
"참은 것 같지 않습니다. 이미 볼인 것을 알고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으로 보긴 했지만, 정말 미친 선구안입니다."
동시에 한국팀에선 소름이 끼치진 않았지만, 오타니의 선택에 난감했다.
"포크볼이라……. 직구의 승부보다 어떻게든 속이겠다는 거잖아? 힘도 강한 괴물이 꾀도 잘 쓰다니… 상대하기 힘들겠는데요."
동팔의 말대로 단순히 힘만으로 밀어붙이는 투수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니 한동욱까진 아니더라도, 뛰어난 선구안을 지니지 않으면 상대가 힘들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동팔의 말에 다른 선수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팔이 네가 그 말을 해?"
"너도 똑같아, 이 자식아."
"직구도 빠른 놈이, 변화구를 뭘 그렇게 많이 던져서 삼진을 밥 먹듯이, 아니 물마시듯 잡냐?"
가볍게 웃으며 지나가지만, 이번에 일어난 한동욱과 오타니의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여파는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한동욱에게 많은 공을 던진 오타니는 이후에 올라오는 타자를 상대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번 이닝에서 실점하진 않았지만, 2이닝만에 던진 투구숫자는 35개. 2라운드에서 던질 수 있는 최대인 70개의 절반이었다.
이렇게 되니 일본팀의 감독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타니를 3이닝만 투입하고 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계속 던지게 해야 하나?"
이건 감독만이 아닌, 코치들과 모든 선수들이 같이 하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자국팀을 응원하러 찾아 온 일본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많지만, 오타니만큼 믿을 수 있는 투수가 없잖아. 이대로 한국이 유리하게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 목적은 본선 진출이야. 여기서 오타니가 무리하면 다음 경기는 어떻게 하게? 룰이 이상하게 바뀌어서 투수들이 전부 짧게 던지고 가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렸는데?"
현재 상태로 보면 오타니가 던질 수 있는 최대 이닝은 4이닝. 잘해야 5회초에 올라와 아웃카운트 하나 겨우 잡으면 끝난다.
반면 2회말에 올라온 동팔은 15개의 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각자가 사용할 수 있는 철벽의 내구도가 다르니 불안해지는 쪽은 일본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걱정한대로 오타니는 오래 던지지 못했다.
4회초에 오타니가 아닌 다른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오자 한국의 중계진들은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다.
"아~ 오타니 선수, 결국 3이닝까지 던지고 내려왔습니다. 역시 투구 숫자가 걸리는 거겠죠?"
"50개 넘게 던지면 사흘을 쉬게 하니 바로 앞에서 멈춘 거죠. 일본 감독이 과감한 선택을 한 겁니다. 한일전의 결과를 거의 포기하는 대신 본선에 반드시 올라가겠다는 의지의 표시입니다."
"그래도 올라온 투수도 만만한 투수는 아니에요. 강동팔 선수와 남궁지완 선수를 보니 가볍게 느껴지지만, 일본 리그에서 평균 자책점이 2점대인 에이스 투수입니다."
"투수 강국인 일본에서 내놓을 수 있는 투수이니 뛰어난 투수입니다. 한국 타자들이 만만히 볼 선수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상대적인 것이 좀 있죠?"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 타자들은 오타니의 공에 익숙해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그보다 떨어지는 공을 보면 쉽게 보일 겁니다. 그리고 오타니 선수가 특별해서 그렇지, 이전에 한국 타자들이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은 거두었습니다. 상대하지 못할 건 없어요."
기본적인 정보를 말한 중계진. 그리고 캐스터는 해설위원에게 물어봤다.
"그럼 이번 이닝은 어떻게 흘러갈 거라 예상하시나요?"
"이전과 다르게 흘러가겠죠. 범타나 삼진이 없을 수 없지만, 그래도 쉽게 끝내지 못할 겁니다. 한국 선수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거예요. 그리고 주자가 나가 있는 상태에서 한동욱 선수의 타석이 되면 그땐, 일본의 악몽이 시작될 겁니다."
"그런데 마침 세 번째 타석이 한동욱 선수의 타석이죠? 볼넷으로 나갔고, 다른 타자들은 범타나 삼진으로 물러났으니까요."
"그 전에 앞선 두 타자가 나가느냐, 아니냐가 이번에 점수를 얼마나 낼지를 결정할 겁니다."
중계진들이 중계를 하는 사이,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올라와서 그런지 조금 긴장한 투수는 제구력 난조로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석에 오른 신해민이 놓치지 않았다.
따악!!
단타로 1루에 진루한 신해민. 오타니가 나온 이후 제대로 된 첫 안타의 주인공이었다.
일본에서 진행되어 한국의 첫 안타에 기뻐하는 관중은 교민 이외에는 없었다. 그래도 한국팀의 더그아웃에선 손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이제 시작이다."
"병살만 조심하면……."
그 다음은 한국팀의 결전 병기 중 하나인 한동욱이 타석에 들어선다. 한 점으로 끝날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달아날지 결정된다.
신해민이 1루에서 흔들자,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투수가 더 크게 흔들렸다. 포수가 나와서 한 차례 진정시켰지만, 한 번 흔들린 멘탈은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3번 타자를 볼넷으로 보내자 일본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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