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34화 (134/325)

[134]

# 2라운드(1)

민희는 지금 극도의 갈등에 휩싸였다.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작은 조각 케이크 하나. 작은 포크로 끝을 조금만 떠서 입에 가져가면, 달달한 치즈의 향과 맛. 그리고 시원한 식감이 미각을 기분 좋게 자극할 것이다.

먹어보지 못했다면 유혹도 심하지 않겠지만, 민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치즈 케이크를 먹어 보았기에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주 오는 이 카페에 오면 항상 이것을 시켰다. 하지만 민희는 자신이 시킨 조각 케이크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말한다.

"민희 이제 곧 결혼하지?"

"아쉽겠다. 좋아하는 것도 못 먹고."

친구들의 말대로 민희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눈앞에 좋아하는 것을 두고도 먹지 못하는 모습에 신기해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먹어, 민희야. 굳이 코르셋을 조일 필요 있어?"

그녀가 말하는 코르셋은 여성을 향한 편견과 그 편견에 얽인 여성의 모습을 의미했다. 그건 민희도 알고 있다. 단순히 날씬한 여자가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민희의 친구는 민희가 왜 안 먹는 건지 모르고 있었다.

"코르셋이건 뭐건, 내 알바 아니거든. 난 그냥 예뻐 보이고 싶어.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순간이고 사진도 많이 찍을 건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지만, 스스로 억압……."

친구의 말이 더 나오기 전에 민희가 잘랐다.

"닥쳐 X년아. 그냥 내가 하고 싶다고. 남자가 멋져 보이고 싶어 하는 거랑, 여자가 예뻐 보이려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데 코르셋이건 뭐건 뭔 상관이야."

그렇지 않아도 먹을 거 먹지 못해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친구라는 년이 오해를 하다못해 잘못된 인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니 화가 났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민희 성격 나왔다."

"하긴 민희도 전에 성깔 장난 아니었지? 동팔 오빠 만나기 전까지 막나갔잖아."

민희의 오랜 친구들이라 그녀의 성격과 과거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인연은 인연인가 봐. 전에 동팔 오빠 애인 있었잖아. 엄청 예뻤지? 언제 헤어지고, 또 너랑 언제 또 만났어?"

민희는 친구들과의 수다를 통해 그동안 만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줬다. 그리고 덤으로 혜진의 근래 상황도 이야기해줬다.

"혜진 언니는 두 달 전에 애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아이랑 같이 있어. 이제 곧 나와서 시댁에 있을 예정이래."

"그건 어떻게 알았어?"

설마 이전의 애인이라 따로 조사했나 싶었던 친구들. 하지만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너희 만나기 전에 만나고 왔어. 애기도 두 달 지나니까 엄청 예쁘더라. 지완 오빠도 잘 생기긴 했지만, 딸이니까 엄마 닮았으면 싶어."

"만… 나고 왔어? 그 언니를?"

"응. 애를 낳았어도 여전히 예쁘더라고. 역시 유전자가 우월해서 그런가?"

여전히 혜진의 미모에 감탄하는 민희. 하지만 민희의 친구들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너 진짜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지금 남편 될 남자의 전 애인이랑 친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그러자 민희가 되물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서로 노리는 것도 없고, 이미 다 정리가 된 상황인데 꼭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남편이 야구선수인 공통점도 있으니 이런 저런 일로 자주 만나게 될 텐테, 그때도 어색하게 있을 필요 없잖아? 그리고 말이야, 혜진 언니가 왜 예쁜지 집에 놀러갔을 때 알겠더라고."

예뻐지고 싶은 것은 여자의 본능이라고 했다. 물론 남자도 멋있어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외모보다 능력에 비중을 두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인지 민희의 말을 듣자 그녀들은 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뭔데? 특별히 어떤 화장품 쓰니?"

"피부 관리 비결이 있어?"

"분명히 그 언니라면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거야."

민희와 오랜 친구였기에, 그녀들도 혜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의 애인이라는 말에 적의와 투지를 불태웠던 그녀들.

하지만 혜진을 직접 보고 나자 민희에게 절대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혜진과 싸우기보다 민희를 위로했던 친구들이었다.

혜진의 미모는 그녀들도 넘볼 엄두가 나지 않으니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러자 민희가 말했다.

"확실히 특별하긴 하더라. 음식이. 담백해도 너무 담백해. 맵고 짠걸 안 먹으니 피부가 좋지."

"응?"

"화장품은 거의 안 쓰시던데. 오히려 명품이 없고, 쓰는 것도 단순해. 단지 클랜징할 때 신경써서 닦는 정도?"

그녀들은 민희의 말을 듣자 현실을 알았다.

"그럼…그건 유전자가 우월해서 그런 거야?"

"하긴 그 얼굴이 만들어진다고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얼굴만은 아니지… 몸매도……."

"키는 유전자라고 치지만 그 몸매는 진짜……."

적어도 자신들이 혜진과 비견되는 미모를 얻기 위해선 다시 태어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미인의 기준은 피부지?"

"피부가 좋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잖아. 나도 일단 입맛을 좀 바꿀까?"

"나도 이야기 들어보니 서울에서 아토피로 고생하던 선배가 공기 좋고 물 좋은 제주도로 가니 싹 나았다더라. 역시 환경에 따라 피부 상태가 달라지는 건지도 몰라."

"헬스장 트레이너가 맵고 짠 음식은 피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였나? 살이 안 빠지는 거랑 연관도 있을 것 같고……."

무얼 먹느냐에 따라 피부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녀들도 잘 아는 사실. 그래도 사정상 시골에 가서 살 수는 없으니 먹는 것만 바꿀 수 있었다.

그러자 민희가 또 다른 사실을 말해줬다.

"그게 가능할까? 가서 하루 동안 있어 봤는데,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어. 입맛이 담백해도 너무 담백해. 소금이 거의 안 들어간 것 같았거든. 처음에는 지완 오빠도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적응해서 괜찮다더라. 그래도 다시 갈 생각은 없어. 아니 가더라도 시켜먹을 거야."

민희의 결의에 친구들은 식단 조절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친구가 물었다.

"야, 그건 그거고 웨딩 촬영은 했어?"

"곧 결혼식인데 당연히 했지. 왜?"

"웨딩 촬영을 꼭 결혼식 전에 하란 법이 있나? 난 네가 곧 미국에 간다니까 거기서도 촬영할 줄 알았지."

"미국이라고 달라질 거 있나. 그냥 사람 사는 곳이 거의 비슷하지 뭐……. 적응은 해야겠지만……."

그러자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으아… 나도 미국가고 싶다. 적어도 거기선 야근이 많진 않겠지."

"야근은 시켜도 되는데 돈이나 주고 시키든가. 지금은 남녀를 떠나서 완전히 노예야 노예. 부당한 건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꼰대를 보면 입을 비틀어버리고 싶다니까."

"지금은 좀 그렇고, 어디 가서 살아? 동팔 오빠가 어디랑 계약했다고 했었지?"

그러자 민희가 답해줬다.

"뉴욕 양키즈랑."

"뉴욕? 정말로? 거기서 가는 거야? 맨해튼에서?"

"뉴욕이라도 맨해튼이 전부는 아니잖아. 도시에서 살기는 좀 그렇고, 위험하다고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기로 했어. 이미 구단에서 집을 알아봐주고 있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해."

이미 E-메일을 통해서 연락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구단에서 알아봐준 집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적당한 후보를 추리고 있었다.

"그럼 집은 전세? 아니면 월세?"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형태라서 없어. 월세 아니면 사야지. 다행히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저택은 안 되겠지만, 적당히 관리하면 괜찮을 집으로 사려고."

이것이 잭팟을 터트린 선수의 여유였다. 그리고 민희의 말에 친구들은 정말로, 진심을 담아 부러워했다.

"좋겠다~ 집을 사니, 안 사니 하는 말을 하고."

"민희가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우리랑 같이 늙어가면서 결혼 걱정, 집 걱정, 자식 걱정하며 살 줄 알았는데."

그녀들의 말에 민희는 장난치듯, 일부러 콧대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게 남자를 잘 만났어야지. 적어도 목숨을 걸 각오를 해. 그리고 혹시 뉴욕에 오면 전화해라. 뉴욕에 놀러 와서 숙식비용이 안 드는게 어디야. 그렇지?"

어떻게 보면 천박해 보이는 말이겠지만, 그녀가 동팔의 돈을 보고 목숨을 건 것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동팔을 좋아했었고, 설령 동팔이 야구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할 생각이었다.

"정말? 그러면야 고맙지."

"언제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연락할게."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동팔 오빠 지금 뭐 해? 먼저 미국에 가 있는 거야? 훈련 때문에?"

그러자 민희가 말했다.

"너 야구에 관심이 없구나. 지금 WBC라고 세계적인 야구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갔잖아. 내일이 2차 예선? 아니 최종예선이라고 해야 하나? 그거 일본에서 하니까 거기 가 있어."

"아~ 맞다.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들었었는데 잊어먹었네. 그럼 본선은 어디하고 하는데?"

"미국에서 주최하니 미국에서 하겠지. 아마도 본선에 갈 거 같은데, 그래서 걱정이야. 분명히 미국에서 경기한 후, 결혼하러 다시 한국에 온 다음, 다시 미국으로 가거든."

민희의 말에 친구들이 걱정했다.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이? 시차적응 되겠어?"

"여독이 치사량으로 쌓이겠다, 야."

친구들의 걱정에 민희는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친다. 하지만 민희는 친구들처럼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면 다 회복된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그 회복능력을 얻는 대가로 조건적인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오랜 친구들에게 그걸 말한다고 한들 과연 믿을까?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민희는 애써 웃으며 생각했다.

'이 외로움을…오빠는 2년 동안… 버텼다는 거겠지?'

의도된 건 아니었지만, 민희는 친구들과 만나면서 동팔의 심정을 일부나마 이해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민희는 바란다.

'부디…모든 일이 잘 해결되기를…….'

***

한편, 1라운드가 끝나고 하루의 휴식을 거쳐 바로 2라운드가 시작된다.

한국 대표팀은 1라운드에선 한국에서 경기를 치렀지만, 2라운드는 일본에서 진행된다.

어차피 시차가 나 봐야 한 시간이 전부였고, 거리상으로도 가까운 옆 나라였다.

한국이 속한 조에서 2라운드에 진출한 팀은 한국과 쿠바. 그리고 다른 조에서 올라온 나라는 일본과 네덜란드였다.

모두가 예상한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심심한 느낌이 들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한대로 강한 팀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 제일 긴장할 팀은 한국과 일본. 한일전의 특성상, 다른 경기를 지더라도 한일전 만큼은 지면 안 되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그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사건이 생긴 시간은 1라운드가 끝나고, 2라운드가 시작되는 사이의 단 하루였다.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역시나 야구에 대한 열의와 인기가 높은 일본이라 방송국에서 일본대표팀과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일본팀의 주장이 한 말이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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