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33화 (133/325)

[133]

<1라운드 55개, 2라운드 70개, 3라운드 이상 80개. 최소 10개에서 15개가 줄어들다> <투수자원이 풍족한 국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규정> <참가국들의 대대적인 반발!!> <이번 규정 변화가 한국팀에 미칠 영향은?>

규정이 미국에게 철저히 유리하게 바뀐 것도 화가 난다. 하지만 동시에 일방적인 통보와 같은 방식이라 더 큰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규정은 출전하는 선수단에서도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론과 여론의 극렬한 반응과 달리 생각보다 차분했다.

"이거 대놓고 자기네 나라 우승하겠다~ 그 말이네?"

"우리는 그냥 들러리만 서라? 그건가?"

"지네들 입장에선 속이 타겠지. 나름 미국이 자신있는 종목으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전부 다른 나라가 우승했잖아. 대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미국 말고 다른 나라는 전부 들러리취급이었어."

그냥 올게 왔다는 분위기였다. 다만 군대 문제가 걸린 선수들은 조마조마하고 있었지만, 선배들은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줬다.

"뛰어난 투수의 숫자가 많을수록 유리한 규정이야. 당연히 미국에 제일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이 조항은 우리한테도 유리해. 적어도 미국을 만나기 전까진."

"그런데 우리가 미국을 언제 만나겠어? 당연히 본선 무대인 준결승에 가야 만날 수 있어. 그러니 결국 우리가 있는 예선 쪽에선 우리나라랑 일본이 준결승에 진출할 거라 생각된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대회라니… 정말 김이 샌다, 김이 새."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대책 없이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 WBC 대표팀을 이끄는 임인식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았다. 그리고 이번 규정에 대해 말을 했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것들이 우승하려고 작당을 했다. 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잖아."

임인식 감독은 동팔과 지완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이번에 수정된 규정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유리해. 사실 우리에겐 일본의 오타니를 제외하면 최강의 원투펀치가 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전부 동팔과 지완을 바라봤다.

"거기에 투수만 보강된 것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타격기계이자 홈런 공장장도 있어."

이번에는 전부 한동욱을 바라보았다. 감독의 말대로 이번 대표팀에선 날고기는 선수들이 있지만, 그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세 사람이 있었다.

"적어도 동욱이가 자꾸 파울로 커트하면 상대 투수는 계속 바뀔 거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우리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팀은 일본 정도가 전부야. 쿠바가 약하진 않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물론 코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최강의 원투펀치가 있고, 최강의 타자가 있어도 야구는 그 셋 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냐. 수비에서 에러내지 않고, 범타 유도할 때마다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 전부 소용없어."

임인식 감독이 그 말을 할 때, 선수들은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응? 수비? 에러?'

'설마… 설마 이제부터 하는 훈련은 설마…….'

과도하지 않는 이상, 훈련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나고, 실수가 줄어드는 법. 그리고 선수들은 뛰어난 직감으로 다음에 나올 감독의 말을 예측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주력으로 하는 훈련은 수비훈련이다. 지금 당장 펑고 준비 해."

결국 이리저리 뛰며 숨이 차오르는 훈련이 예정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 오늘은 특히 얼마 전에 화나 감독이셨던 이성근 감독님이 직접 오셨다.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도 너희들을 위해 헌신하실 각오로 오셨으니 허투로 할 생각은 하지 마."

한 번 펑고를 하면 해가 져도 조명을 켜서까지 시키는 감독이다. 심지어 펑고 만으로 숨이 막히게 만들며 기절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으로 선수들에게 유명한 감독.

그의 펑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둘 밖에 없다. 정말로 기절해서 실려 나가거나, 아니면 이성근 감독이 만족할 때까지 버티든가 였다.

'시바…….'

'ㅈ됐다…….'

'제대했으니 그냥 그만두면 안 될까?'

임인식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을 보며 감독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하다보면 빠실 생각도 들지 못하겠지만……."

***

펑고 훈련은 힘들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의 수비에 있어서 펑고는 시작이자 끝이다.

타격을 하는 사람은 펑고배트를 들고 공을 친다. 숙련된 타자일수록 타구의 방향은 물론 높이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타자가 타격을 하며 공을 날리면, 지정된 위치에 있는 내야수와 외야수는 타구에 맞추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실제 경기라면 자신의 바로 앞에 공이 온다. 하지만 펑고 훈련은 어디까지나 훈련. 그러니 수비가 받기 좋게 공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악~!!

맑고 고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타구. 그리고 타구는 수비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을 향해 간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내야수는 몸을 날리면서까지 글러브를 뻗어 공을 잡는다.

턱.

공을 잡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주자가 달렸을 경우를 가정해야 하고, 병살플레이나 삼중살을 연습하기 위해 정해진 곳을 향해 송구한다.

단순히 공을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쉬운 훈련이 아니다.

타구가 되기 전, 수비들은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올지 모르니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적당히 벌린다.

그리고 타구의 방향을 확인하자마자, 공을 잡기 위해 달려야 한다. 달린 후에 잡으면 그 다음에 하는 것은 송구.

고도의 집중력과 동시에 빠른 달리기. 그리고 송구를 위해 공을 제대로 잡아야 하고, 그 공을 던져야 한다.

그러니 펑고를 하면 사람이 축 늘어진 녹초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중고등학생 때에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 자주 당하는 훈련이지만, 프로가 되면 잘 하지 않는 훈련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훈련을 WBC 대표팀이 입에서 단내가 나와도 쉬지 못하고 계속 해야 했다.

'젠장… 쉬고 싶어…….'

'갑자기 극기훈련이라니…….'

다행이라면 군사훈련도 아니라(사실 군사 훈련도 몸 상태를 봐가며 시키는 것이 현재 추세다) 적당한 수분과 영양분을 계속 보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선수들의 눈빛이 죽어가며 무언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훈련을 관리하는 이성근 감독은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해? 자세 안 잡아?"

따악!!

심지어 본인이 직접 타격을 하며 훈련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젠장!!'

'나 절대로 저 감독 있는 팀에 안 들어가!!'

그러나 선수들의 불만은 결코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하는 훈련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야구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그에게 대들었다간 그 이후에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걸 잘 아는 이성근 감독은 선수들을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고작 이걸로 지쳐? 그리고 너 몇 번 놓쳤어? 연속으로 20번 못 잡으면 나랑 여기서 살 줄 알아!!"

따악!!

이성근 감독의 협박이 통한 걸까. 펑고를 하면서 제일 많은 실수를 하던 선수가 제일 깔끔하게 잡았다. 그리고 역시 마운드에 서서 같이 수비 훈련을 하던 동팔은 안도했다.

'휴…….'

하지만 동팔이 안심하긴 일렀다.

"야, 강동팔!! 넋 놓고 있지 마!! 메이저가면 니 공 칠 타자가 널려 있어 이 자식아!!"

따악!!

그동안 자신의 공을 칠 타자가 한국 리그에선 한동욱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 한동욱도 홈런이 아니면 점수를 내지 못해서 장타만을 노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실제 경기에서 동팔이 수비를 할 때가 거의 없었다. 있었다면,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가 전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펑고를 하며 수비 훈련을 하게 되었으니 처음에는 많이 허둥대었다. 덕분에 동팔은 투수 중에서 이성근 감독에게 제일 많은 욕을 먹은 투수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착실하게 훈련을 받아서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이자, 욕을 더 먹었다.

'잘 했는데 왜?'

당시 동팔은 몰랐다. 오히려 잘 했기 때문에 더욱더 성장시키기 위해 다그쳤다는 사실을.

그렇게 대표팀은 다른 훈련보다 수비훈련에 집중하며 어서 빨리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것은 경기를 이기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목적에 또 다른 목적이 추가되었다.

'적어도 대회를 시작하면 펑고를 이렇게까지 하진 않겠지!!!'

바로 펑고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도 극한으로 당하는 펑고를…….

***

시간은 빠르게 흘러 WBC 1라운드가 시작되는 날.

아무리 혹독하게 하는 훈련이라도 경기가 얼마 남지 않으면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야 한다. 지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하면 훈련한 성과를 보여주기도 전에 무너지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며칠 전부터 체력을 키우는 훈련과 감각을 유지하는 정도로 훈련을 했다. 그리고 6일간 3경기가 진행되는 1라운드 일정.

국가대표 경기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많은 야구팬들이 고척 돔구장으로 향했다.

"이번엔 1라운드는 통과하겠지? 한 번은 1라운드 통과도 못 했잖아."

"역대 최강의 드림팀인데 본선까진 갈 거야. 그리고 1라운드에선 강팀이라고 해 봐야 대만이랑 쿠바지?"

"옆에 일본은 네덜란드랑 같이 진출할걸. 우리 쪽은 우리랑 쿠바."

이번에 뽑힌 대한민국의 선수단이 워낙 강하니 야구팬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만약에 걱정이 있다면 단 하나.

"그런데 방심하다가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정도였다.

그러나 팬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바로 펑고 고문(拷問, 顧問) 이성근 감독이 남긴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실책하는 새끼, 나랑 한 번 펑고 하면서 하루 종일 오붓하게 놀아보자.'

그러니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실책은 펑고, 실책은 펑고……."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말하는 선수들. 그리고 그 효과는 굉장했다.

투구수의 제한에 걸려 동팔이나 지완이 많이 던질 수는 없다.

이번에 바뀐 규정으로 1라운드에서 던질 수 있는 투구숫자는 55개. 그리고 50개 이상 투구했을 경우 4일간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30개 이상 투구한 경우, 하루를 쉬어야 했다.

그러니 동팔과 지완이 선발로 나서면 반드시 50개 안으로 투구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완전히 막지 못할 경우, 타격을 허용하기 마련.

따악~!!

하지만 그 타구마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호수비로 안타를 지웠다.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한동욱의 만루 홈런.

결국 대한민국은 1라운드 세 경기 전부, 많은 점수 차이와 완봉승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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