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항상 밀리고 있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흥 아닌가?"
바로 재미 때문이었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도미니카 상황은 어떻지?"
"나쁘지 않아. 거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려면 야구선수가 돼서 외국으로 가야 해. 메이저면 더 좋겠지만. 그러니 조금만 먹이를 던져도 덥석 무는 놈들이 많아."
그러던 중, 다른 악마가 이어서 스크레이치에게 물었다.
"한국은 수확이 꽤 괜찮다고 들었는데…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 많은 영혼들이 가고 있다면서?"
"어차피 한국은 여흥삼아 있는 곳에 불과해. 나 하나 있다고 달라질 건 없어."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원수에게 향하는 영혼들 중, 순도 높은 물건들이 내려오는 건 그쪽의 공이 크다는 걸 알고 있어. 이번에 눈독 들이고 있는 녀석이 둘 있다면서?"
그의 물음에 스크레이치의 입가에는 절로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 그 두 녀석?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지. 순수하고 깨끗할수록, 더럽히는 재미가 더 있는 법이니까."
그의 말에 다른 악마들이 감탄했다.
"스크레이치가 이렇게 말하는 영혼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추기경을 봐도 의욕이 앞서지 않는 악마를 이렇게까지 의욕적으로 만들 정도라……."
"누구야? 혹시 우리가 알고 있는 녀석인가?"
그들의 호기심에 스크레이치는 굳이 이름을 숨기지 않았다.
"강동팔, 그리고 한동욱이야. 둘 다 탐나는 영혼이라 패널티를 감수하고 연속으로 계약을 했지."
스크레이치의 말에 다른 악마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 둘?"
"나도 알아. 내 계약자들이 꽤 관심을 가지고 있던데."
"메이저리그로 오는 것이 거의 확정이라면서? 그런데 괜찮겠어? 그동안 네가 계약한 사람들은 메이저 문턱도 넘지 못하고 알아서 자빠졌잖아."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그러니 더 재미가 있는 거야. 그동안 너무 심심했어. 너무 뻔하고, 너무 쉬웠지. 절로 한숨이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발악하고, 발악하고, 또 발악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나설 때가 종종 있으니까."
그의 말에 다른 악마가 말했다.
"그럼 그 둘이 메이저로 넘어오면 같이 작업을 해 보자고. 그렇지 않아도 미국 쪽의 계약자는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쉬우니 빠져나가는 영혼이 가끔은 있어."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말한다.
"모데스. 어차피 넌 그거 신경쓰지 않잖아. 네가 진짜로 노리는 건, 계약이 풀어지고 난 다음, 방심하고 있을 영혼을 포획하는 것이 전문이니까……."
스크레이치의 말에 모데스가 말했다.
"그것도 사냥 방법 중 하나야. 나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것 같지만, 오히려 그동안 이룬 성공에 안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타락하기 마련이니까. 내가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걸어들어 오더군."
모데스는 그 순간이 떠오르는지 절로 크큭 거리며 웃었다. 그리곤 스크레이치를 보며 말했다.
"좌우지간 다음 계획은 어떻게 할 거지? 나처럼 진행할 생각인가? 그럼 내가 많은 걸 가르쳐줄 수 있는데."
그의 말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어. 그것들의 영혼은 생각보다 순수하고 강하며 단순하면서도 아름답지. 계약이 아니면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 데려갈 수 없는 영혼이다. 내가 굳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직접 계약의 서를 작성한 영혼이란 사실을 명심하도록. 적어도 그 영혼의 품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지……."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하고 혀를 끌끌 찼다. 그의 도발적인 말과 행동에 모데스의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 역시 잘나신 스크레이치 장관 나리시군. 도와달라고 하면 우리들의 협정에 의해 도와는 주지. 하지만 중요한 정보는 알려줄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알라고."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떠나려는 모데스.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말한다.
"흥분하지 말게. 우리가 이 유흥을 하는 이유가 있지 않나? 이번에 네가 이기면, 내가 이룬 공적을 네가 다 가져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스크레이치의 말에 모데스가 답했다.
"물론 잘 알고 있지. 너야 말로 그 사실을 잊지 마."
# 각자의 길. 그리고 WBC 1라운드
세 사람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미 예상하고 있는 일. 다만 어느 구단이 어느 선수에게 얼마를 제시하며 영입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과 계약을 하게 된 구단이 알려졌다. 어차피 서로 정해진 기간이 있어서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이들의 계약 소식은 스포츠 신문과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빠르게 알려졌다.
<강동팔, 뉴욕 양키즈와 3년에 5,000만 달러 계약!!> <한동욱,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4년 4,000만 달러 계약 성공!!> <남궁지완, 켄자스시티 로열스와 2년에 1,000만 달러 계약 성공!!>
다만 기사로 나온 연봉은 각 언론 매체마다 달랐다. 어떤 곳은 기본 연봉을 기준으로 제목을 작성하지만, 어떤 곳은 옵션까지 포함하여 작성했기 때문이다.
세세한 옵션은 비공개라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추 알려진 것만 적어도 사람들은 그 기사를 클릭해서 보았다.
그래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강동팔과 한동욱의 연봉은 초대박급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궁지완도 한국선수의 메이저리그 첫 진출치곤 나쁘지 않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들의 구단이 받게 될 포스팅 금액.
<클리블랜드, 지아에 제시한 포스팅 금액은 약 4500만 달러>
남궁지완의 포스팅 금액도 기사로 나왔다. 자그마치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라 다른 때라면 충분히 눈길을 끌었을 금액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사람에 비하여 적은 바람에 상대적으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포스팅 금액을 받은 구단은 간만에 풍족한 실탄(?)으로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특히 제일 많은 포스팅 금액을 받은 지아는 이전의 약한 전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기 위해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켜 나갔다.
그러건 말건, 각자의 팀이 정해진 그들은 한 자리에 모여 내년에 있을 WBC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전에, 동팔은 동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광주에 와 있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동욱의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지금 동팔의 앞에 있는 넓은 상에는 많은 반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물론 동욱의 누나와 여동생이 계속 각종 반찬을 계속 나르며 상에 놓고 있었다.
"차린 게 없다니요. 이렇게 많은데."
그러니 아무리 초대받은 입장이라도 가만히 있어야 되나 안절부절하는 동팔. 심지어 자신을 초대한 동욱도 누나와 여동생과 같이 반찬을 나르고 있었다.
그러니 동팔은 엉덩이가 더 들썩들썩 거렸다.
반찬접시가 상의 대부분을 덮고 나서야 나르는 것이 끝나고, 겨우 다 같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대부분은 먼 곳에서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아는 아가씨가 있다면 동욱에게 소개시켜 달라는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식사시간은 서울에서 먹던 때보다 오래 걸렸다. 식사가 마무리되고 동욱의 방에서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진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팔은 동욱의 방에 놓인, 플레이오프에서 자신이 부러트린 배트가 놓여 있는 것을 봤다.
"어? 설마 이거 그때, 내가 부러트린 거야?"
"응."
배트는 깔끔하게 다시 잘 붙어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부러진 상태에서 붙인 것이라 다시는 경기장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깔끔하게 붙이려 했어도, 작은 금이 가 있는 것까지 숨길 순 없었다.
동팔은 배트에 적힌 축하 문구를 읽었다. 그러자 당시 동욱이 이 배트를 놓지 않고 계속 휘둘렀던 이유를 알았다.
"아, 어머니께 선물받은 배트였구나. 미안……. 나 그런 줄도 모르고 열이 올라서 계속 강하게 던졌네."
"거기서 이게 어떻게 보이냐? 교체 안 한 내 잘못이지."
그리고 동욱은 동팔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곧 결혼한다면서?"
"응. 아, 여기 청첩장."
"벌써 나왔냐?"
동욱은 동팔이 준 청첩장을 받아서 보았다. 그리고 묻는다.
"그런데 왜 결혼이야? 지완이야 이미 결혼한 상태였으니 넘어가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결혼할 생각이 들어?"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을 들켜버리는 바람에…….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동팔이 왜 민희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구구절절하게 말했다. 그리고 동팔의 사연을 들은 동욱은 본인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부럽다. 좋은 사람 만났네. 그걸 알아도 받아주는 사람은 찾기 힘든데."
특히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도 후회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말에 감동까지 받았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을 수 있겠어? 어쩌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으니까 더 빨리 결혼하려는 거야. 미국에 같이 살려면 법적으로도 결혼을 해야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내가 부러운 건, 넌 제수씨한테 우리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그 이야기는 가족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잖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자신이 악마와 계약을 하고, 조건부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동팔의 귀에 거슬리는 건 다른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제수씨라니 무슨 말이야? 우리 나이도 같은데."
"생일은 내가 더 빨라."
"생일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냥 형수님이라고 불러."
"생일 무시하면서 형수님이라고 부르란 건 무슨 심보야."
약간의 투닥거림이 있고 나서, 동욱은 동팔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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