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한편, 민호준은 한 번 밟은 엑셀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주변에 빠른 속도로 많은 차량과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달리다보니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멈추지 못했다.
빠앙~!!
그는 경적소리를 크게 울리며 계속 달렸다. 당연히 미친놈처럼 질주하는 차량을 경찰이 그냥 보고 있을리가 없다.
[앞에 가는 XXXX. 앞에 가는 XXXX. 지금 당장 옆으로 차 대세요. 지금 당장 멈추고 옆으로 차 대세요!!]
이미 경찰차량이 옆에 다가와 사이렌을 크게 울리고 있다. 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민호준은 경찰차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었다.
'어디에 있지? 따돌렸나?'
그런 생각을 하던 때, 그의 뒷자리에서 스크레이치의 목소리가 들였다.
"꽤나 거칠게 운전하는군. 원래 부드러운 남자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자신의 뒷자리에 그의 목소리를 듣자, 민호준은 크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그리고 너무 놀라 운전대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인해 민호준이 탄 차는 오른쪽에 굵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콰앙~!
가로수는 흔들렸지만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민호준의 차량은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집어진 상태로 인도를 향해 떨어졌다.
"꺄아!!"
"으아!!"
인도 위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비명을 지르며 피했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고, 떨어진 곳에는 우연히 사람이 없었다.
휭~ 쾅!!
민호준의 차는 뒤집어진 상태로 떨어졌다. 그리고 안에 있던 민호준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뒤집어진 세상. 그리고 백미러로 보인 스크레이치의 섬뜩한 웃음이었다.
***
한동욱에게 밀렸다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두 번째 강타자였던 민호준의 사고 소식.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 야구계 사람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당연히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팀 전체로 일정을 가지고 찾아가진 않았다.
동팔은 그와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장례식에 안 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그와 공통된 점. 바로 악마와 계약을 한 또 다른 당사자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에 마련된 장례식장에서 동팔은 동욱과 만나게 되었다.
"너도 왔냐?"
"안 올 수가 있겠냐……. 우리도 언제 이렇게 될지 모르는데……."
남은 가족들과 마나 조문을 마친 두 사람은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었다. 국내 공인된 투타의 1인자들이 서로 마주보며 앉으니 절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이곳은 민호준의 장례식장. 그러니 얼굴을 보면 아는 사람끼리 가볍게 인사를 하는 정도지 호들갑을 떨며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더욱 어두운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 다가서기 어려웠다.
"안 좋게 끝났지만, 그래도 최악은 피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
동욱의 말에 동팔이 물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최악이 따로 있어? 그냥 안 좋은 거 아냐?"
그러자 동욱이 말했다.
"죽은 당사자야 그렇겠지만, 남은 사람을 생각해봐. 사고가 나서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니 그 상실감에 힘든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이라면…그 마음이 어떻겠냐?"
"그건……."
솔직히 말하면 동팔은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주변에 그렇게 돌아가시거나 죽은 분이 없었으니까.
그러자 동욱이 말한다.
"사고로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면 슬프지. 자살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털어낼 수는 있지. 하지만 자살은 그렇지 않아. 남은 사람들에게 큰 죄책감을 심어주고 떠나. 그건 시간이 지나도 털어낼 수가 없어. 왜 그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몰았다는 생각에 매몰되도록 만드니까."
"그럼…원한을 품은 사람에게 죄책감을 주려면 자살이 좋은 방법이란 거야?"
"아니. 전혀 반대야. 오히려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만 주고, 정작 원한을 가진 놈들은 그 사람이 자살하건 말건 신경도 안 써. 그리고 고작 죄책감 심어놓는 것에만 써먹는데 자신의 목숨을 버려? 미련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리고 동욱은 앞에 있던 소주 한 잔을 통째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 다음 이어서 말했다.
"믿기 힘들면 그 이후의 결과는 작년에 자살한 민수라는 사람의 주변을 조금만 조사해봐.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
한 사람이 불행히 세상을 떠나도 세상은 세상대로 그냥 흘러가며 또 흘려보낸다.
포스트시즌까지 마치고 나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써 시즌이 끝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가 쉴 틈 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적시장이 형성되고, 정해진 기한 안에 유능하거나 잠재력이 높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자유계약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뛰어난 활약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증명한 선수들에게만 대박이 난다.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쓸쓸히 차가운 겨울을 준비해야 했다.
이전에는 영입하려는 선수는 오직 한국에서, 그리고 한국인만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용병을 데려올 수 있는 지금은 해외리그와 경쟁해야 했다.
그래서 어느 팀의 누가 메이저리그나 일본 리그에 진출하려고 한다. 아니면 그 반대로 어떤 구단이 어느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소문이 전보다 많이 나오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국 리그를 씹어 먹은 세 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거의 확정지은 상태. 그리고 그들에게 걸린 포스팅 금액을 생각하면 다른 선수들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언론이 관심을 가지는 쪽은 국내의 구단이 어떤 선수를 보호명단에 넣어서 안 빼앗기려고 할지.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난 선수가 어느 구단을 선택하여 가게 될 지였다.
자유계약 자격으로 자유를 얻지 않는 이상, 선수 자신이 어느 팀으로 갈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
트레이드가 되는 과정에서 선수의 의지는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노예시장과 같이 선수들을 사고파는 것 같아 비인격적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에 오가는 금액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밀어내게 만든다.
트레이드가 되면서 자신에게 붙은 몸값으로 능력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상대팀의 선수를 데려오게 되면, 그에 대한 보상선수를 받는데, 거기에 선택된다는 것도 역시 인정을 받았다는 것.
단순히 의사를 묻지 않고 거래되는 상황을 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였으니 싫어할 선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든 팀을 떠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새로운 시작에 의미를 두며 다음 시즌에 활약할 각오를 다지는 것이 보통.
무엇보다 트레이드 되는 것이 방출되는 것보다 몇 백배 나았다.
그러니 겉보기는 노예시장과 같은 모습이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계약과 관련된 소식만 들어오지는 않았다. 바로 내년에 있을 세계적인 야구 대회 때문이었다.
그건 4년 마다 있는 큰 대회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었다.
"음…역시나 차출인가……?"
동팔은 오늘 받은 통보를 떠올리면서 절로 이 말이 나왔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각 리그가 아닌, 국가 단위로 출전하는 대회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치 않는 경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질 수 있다는 것.
사실 메이저리그로 진출이 확정된 동팔이 굳이 대회에 나가봐야 얻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경기를 치르는 사이, 부상의 위험을 떠안아야 했다.
그래서 몸이 재산인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철저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세계 야구 대회에 나오지 않는다.
동팔도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애국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군대를 다녀오면서 가당치 않은 부조리를 겪으며, 있던 애국심마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쉽게 찾기 힘들다.
그리고 동팔은 애국심이 더욱 고취되는 쪽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 같은 경우는 부상당해도 회복되니 상관은 없지만……."
동팔은 차마 거절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어제 본 인터넷 기사 때문이었다.
<역대 최고의 드림팀 구성!!!>
참고로 아직 WBC출전 명단이 나오기 전에 나온 기사였다. 그 기사에선 사람들이 좋아할 내용이 전부 다 들어가 있었다.
투수로 따지면 자신과 남궁지완이 있다. 그리고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인 선수도 있었다. 거기에 이번에는 확실한 공격 카드가 있었다.
바로 한동욱이었다.
리그에선 각각 다른 팀에 있어서 서로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인터넷은 물론 언론과 야구팬들은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최강의 원투펀치인 강동팔과 남궁지완. 그리고 강력한 타격 머신이자 홈런기계인 한동욱이 한 팀에서 뛴다면?
거기에 메이저리그의 선수와 국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며 보조한다면?
그래서 지금 인터넷에서 WBC에 대해 검색하면 흥분일색이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우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역대 최강의 선수단 구성!!>
이렇게 큰 기대를 받는 와중에 동팔은 차마 '죄송하지만 저는 빠지겠습니다.' 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사실 참가 확정이고…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려나……?"
일단 제일 만만한(?) 동욱에게 전화를 건 동팔.
"나야, 동욱아."
-어, 그래……. 왜 전화 했어?
"내년에 WBC 있잖아. 너도 당연히 차출되었을 거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참가할 거야? 너 이미 군대 갔다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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