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28화 (128/325)

[128]

어제, 동욱은 동팔에게 혜진이 하던 물음을 그대로 그에게 던졌다.

-야, 너라면 제일 중요한 순간에 어떤 공을 던질 거야?

"그야 당연히 제일 자신 있는 공이지."

-그럼 그 자신 있는 구종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데?

"그건 상대하는 타자가 제일 못 치는 공… 이니까……."

동욱의 말을 듣자, 동팔은 그가 왜 제일 잘 치는 공을 일부러 못 치라고 한 것인지 알았다.

-다른 때라면 통하지 않는 방법이야. 오히려 미련한 방법이지. 하지만 한국시리즈 최종전에 단 한 점으로 승부가 갈리는 상황. 그것도 연장전이라 더 이상의 기회조차 없게 될 상황이라면… 과연 지완이는 무슨 공을 던질까?

지금 상태에선 알 수 없다.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는 질문. 하지만 동욱은 그 전에 지완이 던질 수밖에 없는 구종과 궤적을 미리 유도해야 했다.

그 구종은 동팔이 제일 잘 칠 수 있는 구종이어야 했다.

-물론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도 확률은 반반이겠지. 그래도 지완이를 상대로 반의 확률을 가지고 있다는게 어디야?

거기까지가 일반적인 경우. 하지만 지금 동팔과 지완의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녀석은 너한테 상당히 앙금이 있는 거 같더라. 그럼 유도하는 건 더욱 쉬워지지. 야구는 생각보다 심리적인 스포츠니까.

지완이라면 반드시 동팔을 농락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농락하며 가지고 노는 것은 굉장한 쾌감을 만들어 낸다.

한 번 맛 들린 쾌감을 놓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이라면 무리였다.

무엇보다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건 야구의 기본. 명확한 약점이라면 철저히 이용하려는 유혹이 더욱 강해지니까.

***

이미 여기까지 모든 것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쪽은 동팔 자신. 그리고 지금 지완이 어떤 공을 던질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팔은 확신한다.

'한 가운데 직구. 확실해!!'

그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있었다. 그리고 동팔과 같이 혜진도 확신하고 있었다.

***

"위험해. 분명히 빠른 직구. 한 가운데로 향하는 공을 던질 거야."

"네? 지금 중요한 순간인데도요?"

중요한 순간에 어느 투수가 한 가운데로 향하는 공을 던질까? 평상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선택이다. 하지만 혜진은 확신했다.

"지완이는 생각보다 모험을 하지 않는 성격이야. 그러니 제일 안정적으로 아웃을 잡을 공을 던질 것이 분명해."

지금까지 동팔이 제일 못 치는 공으로 느껴지는 것은 한 가운데로 향하는 빠른 직구. 그리고 말을 할 수 없지만 혜진은 그렇게 생각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또 있었다.

'지완이는 동팔이를 향한 집착이 강해. 본인은 모르지만 그 집착 때문에… 위험한 공을 던질 거야. 속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혜진이 예상하대로, 그리고 동팔의 의도한대로 지완은 한 가운데를 향해 공을 꽂아 넣었다.

쉭~!!

빠르게 날아오는 직구. 그리고 원하는 코스로 들어온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동팔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철저히 함정을 파 놓았어도, 원하는 공이 왔을 때 칠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운도 따라주어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동팔은 물론 RG의 감독과 코치들은 지완이 한 가운데로 향하는 공을 던져도 좋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동팔이 그 공을 얼마나 잘 치느냐에 달렸다.

휙~ 따악!!

완전하지 않아도, 원하는 지점에 거의 정확하게 맞췄다. 그리고 회복능력을 얻은 이후로, 산속에서 무거운 배트를 휘두른 노력이 빛을 발했다.

공을 던지는 것이나, 치는 것에는 팔과 등, 몸통의 근육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주로 쓰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에 뛰어난 투수가 꼭 강타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타자로서 근력과 유연성을 계속 향상시켜온 동팔은 아무리 빨리 날아오는 공이라도 밀리지 않았다.

그동안 동팔이 쉽게 홈런을 칠 수 없었던 것은 제대로 된 타격을 할 때가 많지 않았기 때문. 그러니 민호준 만큼의 힘은 아니지만, 동팔에게 제대로 맞으면 타구가 잠실구장이라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좁은 라이온스 파크라면 홈런은 더 쉽다.

[오~ 큽니다, 큽니다!! 설마 홈런~ 홈런~!!!]

중계진의 정렬적인 중계가 이어졌다. 그리고 동팔이 공을 넘기는 순간에 이미 모든 RG의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씨바… 나 완전 소름!!"

"이거 하나 노리려고 한 거였어?!!!"

평상시 리그에선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방법.

하지만 한국시리즈라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오늘 이후 경기가 없다는 상황에서만 사용가능한 속임수였다.

동팔이 루상을 돌 때, RG의 더그아웃은 이미 승리를 자축할 준비를 했다.

"됐어!!"

"거의 끝났다!!"

생각 같아선 전부 뛰어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10회초. 지금 점수를 내더라도 10회말 오성의 공격이 남아 있었다.

흥분한 선수들과 달리 감독과 코치들은 그 가운데서도 침착하게 행동했다.

"아직 끝난 건 아냐. 동팔이 상태는?"

"다행히 멀쩡합니다. 이제 다음 경기도 없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10회말에 등판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불펜 대기시켜."

"알겠습니다."

이미 8회를 넘어갈 때부터 준비를 시켜놓아서 당장 투수가 바뀐다 한들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무게감과 구위가 떨어지니 동팔과 같이 100%에 가까운 안심을 할 수는 없다.

한편, 동팔이 루상을 가볍게 도는 사이에 지완은 이빨을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제길…완전히 속았어…….'

설마 이런 방법으로 자신에게 홈런을 때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동팔이 홈런을 날리자, 그동안 그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던 쾌감이 부끄러움과 민망함, 분노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넘어간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동팔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선수들은 그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동팔의 홈런으로 점수는 1대 0.

이런 상황에서도 오성의 팬들은 희망이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10회말에 동팔이 또 올라오지 않겠지?"

"다른 투수가 올라오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길 수 있어……."

"제발, 제발……."

하지만 그들은 지금 남궁지완이 10회초까지 계속 공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동팔에게 한 방 맞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남궁지완. 그리고 이제 정말로 오성의 마지막 공격 기회가 왔다.

하지만 마운드에 오른 사람은 오성의 팬들이 제일 싫어할 사람인 동팔이었다.

"하……."

"끝났네……."

체력이 떨어졌다면 모를까, 9회말의 구위를 생각하면 그건 무리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르지만, 동팔은 타격을 하기 전에 이미 몸을 회복시킨 상태.

매 이닝, 더그아웃에서 쉴 때마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또 집중하여 몸을 회복시켰다. 물론 처음하는 것이라 쉽진 않았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회복이 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무한의 투구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처음 던질 때와 같은 몸 상태로 전력을 다한 투구로 오성의 공격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결과는 당연히 RG의 승리.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 WBC 준비

"받을 걸 가지러 왔네."

스크레이치의 그 말에 집으로 들어가려던 민호준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 쳤다.

"버, 벌써……?"

시즌이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스크레이치가 자신의 영혼을 가져가려 할까.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벌써라니? 난 5년씩이나 기다렸는데……. 그리고 바로 지금…월드시리즈가 끝나지 않았나?"

"큭!"

계약 당사자인 민호준이 그걸 모를 리 없다. 다만 죽음의 순간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자 당황하는 건 누구라도 당연한 일.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전반기 때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타율. 특히나 150이상의 강속구에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인해 메이저구단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후반기 이후엔 의욕이 극도로 떨어졌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타석에 오르니 기록도 좋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슬럼프라 생각하고 말하지만, 그의 상황을 아는 사람은 악마와 계약을 한 극소수의 사람뿐.

그렇다고 동팔이나 동욱이 민호준을 동정하더라도, 도와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강한 힘을 얻는 순간부터, 그들과 같이 피땀 흘려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고 있다가 생긴 일. 즉, 자신의 방심과 방임이 죽음이라는 형태로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있었다.

스크레이치가 한 걸음 다가오면, 민호준은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 하지만, 둘의 거리는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었다.

스크레이치는 장난하듯 웃으며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먹잇감을 노리는 웃음에 민호준은 소름이 끼쳤고, 도망치려고 해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스크레이치가 한 걸음 다가오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

그가 보이지 않자 의아하면서도, 다행이라 생각하던 찰나. 민호준은 자신의 옆에서 그의 음성을 들었다.

"어딜 보는가?"

"으아아아~!!!"

공포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자신이 공포영화의 주인공. 아니 주인공이 아니라 희생자 중에 한 사람이 된 민호준.

사이코패스와 같이 사람도 아니고, 형체도 없는 악마가 자신의 영혼을 거두기 위해 다가온다. 어떻게 피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당할 수도 없었다.

민호준은 비명을 지르며 스크레이치와 멀어지기 위해 도망쳤다. 하지만 스크레이치는 도망치는 민호준을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도망치는 민호준의 절규를 즐기듯 음미하고 있었다.

"좋은 소리……. 역시 사냥감은 팔딱팔딱 거리며 도망치는 것일수록 맛이 좋은 법이지……."

언제라도 잡을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유흥과 재미를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민호준은 단순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스크레이치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차가 있는 곳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다행히 차에 타기 전까지 스크레이치가 중간에 가로막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시동을 걸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서 열쇠를 넣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민호준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살아있기 위해 어떻게든 시동을 걸었다.

강하게 밟은 엑셀로 바퀴는 바닥과 빠르게 마찰하며 차를 급격히 발진시켰다.

끼이이익~!! 부우웅~.

호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차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민호준의 차량이 지나간 자리에 스크레이치가 천천히 걸어갔다.

"그럼… 이번엔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어 볼… 응?"

스크레이치는 민호준이 공포로 이성을 잃어 폭주하듯 운전하길 원했다. 그러면 당연히 사고가 크게 날 것이 분명하고, 이는 곧 더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마련.

그리고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인해 생긴 상실과 절망을 적절히 이용할 생각인 스크레이치. 하지만 스크레이치는 민호준이 주차장을 완전히 빠져나가기도 전에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이런… 그자가 간섭하기 시작했군……. 이번에 얻을 이득은 많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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