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26화 (126/325)

[126]

# 우승

한국시리즈 최종전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리그 1,2위를 다툴 투수의 대결이니 당연한 예상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응? 오늘 강동팔이 선발인데도 지명타자야?"

"대타로 나온 적은 있지만, 지명타자로? 그것도 상대는 남궁지완이잖아. 다른 투수도 아니고 남궁지완을 상대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타선을 더 강화해서 상대 투수를 뚫어도 모자를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반 타자보다 조금 떨어지는 동팔을 지명타자로 내보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타선 강화시키면 뭐해? 어차피 한동욱 정도 아니면 저 두 사람의 공을 칠 타자도 거의 없잖아. 있어봐야 우연히 공이 잘 맞아 넘어가는 것 빼면. 그리고 연속적으로 타격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연달아 실책이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겠지."

그의 말대로 아무리 오성과 RG가 타선을 강화시키려 해도, 상대 투수의 공을 칠 타자가 거의 없었다.

중반 이전이라면 RG의 상당한 우세를 점치겠지만, 지금은 2차전과 마찬가지로 투수의 체력과 관련된 변수가 관건.

그러니 타선의 변화가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이런 걱정은 있었다.

"타석에 오르면 쉬지도 못하는데 괜찮을까?"

투수의 체력에 따라 던질 수 있는 투구의 숫자와 막을 수 있는 이닝의 숫자가 달라진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야 더 오래 던질 수 있다는 건 상식.

그들은 동팔이 어쩌면 타격에 성공해서 공격의 물꼬를 트는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관중이 관심을 가지는 건 이런 상황에서 동팔이 얼마나 오래 던질 수 있느냐 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다른 팀의 팬들에 한정되었다. RG의 팬들은 임상훈 감독의 선택에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 제정신이야? 공격할 때마다 쉬게 해줘도 모라를 판에?"

"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 기회를 날려먹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어떻게든 더 나은 타자가 동팔을 대신하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오히려 투수가 제대로 쉬지 못하게 타석에 주기적으로 오르면 유리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RG의 선수들과 코치까지도 임상훈 감독의 결정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저기… 언니… 혹시 감독님의 정신이 좀 이상해지신 걸까요? 아니면 팬들에게 팬 서비스라도 해주려는 걸까요?"

민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혜진은 당황하고 황당해 하는 사람들과 달리 침착했다.

"아니. 그런 것 아냐. 만약 그렇다면 코치들이 강하게 말렸거나, 마지막에 대타 정도가 전부였겠지."

"그렇긴 하지만… 저는 오빠가 대타로 나선 건 봤지만, 지명타자로 나온 건 처음 봤어요."

"나도 그래. 아마도… 원래 지명타자가 있었지만, 동팔이가 원해서 나왔을 거야. 그렇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니까."

"네? 오빠가요? 정말요?"

어쩌면 자신보다 동팔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사람이 혜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확신에 어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내가 아는 동팔이라면 자신을 더 돋보이기 위한 퍼포먼스를 절대로 하지 않아. 그리고 생각보다 허술하지 않고, 확실히 준비된 것이 아니면 실행하지도 않고. 그래서 연습이랑 훈련을 쉬지 않았던 거고."

혜진의 말에 민희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건 그렇죠…….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있어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안 던지니까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 특별한 경우는 상대하는 타자가 한동욱과 같이 방법이 거의 없는 경우였다. 원래는 이전부터 자이로볼과 너클볼을 던질 수 있었지만, 마음대로 제구가 되지 않는 공이라 실전에서 안 던지는 공.

하지만 한동욱을 상대로 해선 평범한(?) 구종으론 힘들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구를 던져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아마… 동팔이 지명타자로 자처한 건 분명히 의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혜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걸 말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이젠 전화도 못 받는 상황이니까……."

그녀의 말에 민희가 물었다.

"그럼 언니는 동팔 오빠가 무슨 의도로 타석에 서려는지 알고 계세요?"

민희의 물음에 혜진이 되물었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난 동팔이가 타석에 들어선 걸 거의 본 적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민희가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렇게 혜진이 말했지만, 민희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뇨, 전 모르겠어요. 오빠가 힘이 좋아서 맞추면 넘길 수 있지만, 상대가 상대다보니……."

확률은 다른 타자들보다 희박했다. 그건 감독은 물론 동팔 자신도 잘 알고 있을 터. 그러했기에 민희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 설마 동팔을 정말로 지명타자의 이름에 올리자 코치들은 당황해하며 감독 앞에서 말했다.

"감독님. 정말로 동팔이를 지명타자로 보내실 겁니까?"

"이미 있던 다른 애들도 생각하셔야죠."

이미 각광을 받고 있는 동팔이 타석에 서면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몇 년 있어도 조명하나 받지 못하고, 대타의 순간을 기다리는 타자들이 있다.

지금 동팔이 대타도 아니고 지명타자로 나서는 것은 그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은 일. 특히나 야구선수로서 한국시리즈에 선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임상훈 감독은 코치들의 조언에도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거야. 그리고 다른 애들보다 동팔이만 가능한 방법이라서 그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코치들의 물음에 임상훈 감독은 주변을 돌아본다. 그리고 코치들을 다 모으더니 좁게 섰다. 그런 후, 그는 코치들에게 지명타자에 왜 동팔을 지목했는지 말해주었다.

그러자 코치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동팔이 체력이 떨어지면 지완이 보다 더 빨리 교체해야 합니다."

"그나마 우리가 오성보다 투수자원이 더 남습니다만……."

"이왕이면 더 안전하게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감독과 동팔의 제안에 주저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코치가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코치도 있었다.

"어차피 어떻게 바뀐다고 한들, 무승부가 되면 8차전을 해야 해. 그럼 타선이 더 강한 오성이 유리하지."

"그러니 계속 투수전으로 가다 0대 0으로 무승부가 되는 것보다, 뭐라도 시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완전히 반대하려던 코치들 중 절반은 완전히 반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선뜻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무승부 이후의 일을 생각하며 뭐 하나라도 도전해 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준비는 철저히 해. 언제 구위가 떨어질지 모르니까 5회부터 불펜 천천히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동팔이가 괜찮을까요? 불펜 준비하는 것 보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괜찮아. 동팔이한테 이미 다 말했어."

그 이외에도 RG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팔이 지명타자인 것을 알게 된 오성의 반응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타도 아니고 지명타자라……."

"이전부터 혼자서 경기를 끝내버린 적이 있지만… 여기에 와서까지?"

리그 후반기에 혼자서 상대 타선을 틀어막고, 이후에 본인이 대타로 나와 장타나 홈런을 쳐 경기를 끝낸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덕분에 도장깨기라는 말이 잠시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대타가 전부였었다.

예상외의 지명타자에 제일 큰 반응을 보일 사람은 남궁지완.

'이 자식… 대체 무슨 꿍꿍이야? 날 가지고 놀려는 거야?'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지완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완전히 숨기는 건 무리였다.

"널 놀리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래도 타자로 나선 이상, 네가 어떻게 할지는 알고 있지?"

오성의 한 선수의 물음에 지완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고 있습니다. 진루할 수 없도록 반드시 막을 겁니다. 어떻게든!"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고, 동팔을 어떻게 할지를 속으로 결심했다.

'어떻게든 삼진으로만…….'

***

한국시리즈는 경기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송 중계를 통해 TV로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동욱은 광주에 있는 집에서 대구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보고 있었다. 동팔이 타석에 들어선 건 이번이 두 번째.

동욱은 동팔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첫 타석은 삼진. 그럼 이번에도… 삼진이겠지? 예정이든 아니든."

그 말을 할 때, 마침 지완이 공을 한 가운데를 향해 꽂아 넣었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타자들이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배트를 휘두른다.

하지만 동팔의 배트는 공이 한 가운데로 왔지만 치지 못하고 헛돌았다.

"흐음……."

동팔의 헛스윙에 동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보기만 했다. 그리고 동팔이 마지막에도 헛스윙을 하며 삼진당하는 것을 봤다.

이번에도 자신의 예상대로 동팔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한가운데 오는 공을 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중계진들이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강동팔 선수. 혹시 한가운데가 아니라 바깥쪽이라 생각했었나요? 좋은 공을 계속 놓칩니다.]

[가운데 오는 건 속임수라 생각한 거겠죠. 본인이 투수이니 좋은 공처럼 보이게 하면서 밖으로 보내지 않습니까?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겁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해요, 단순하게.]

그들의 조언이 있지만, 동팔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동욱은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중계를 듣다가, 화면에서 동팔이 아쉬워하며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확실히 누가 봐도 좋은 공을 놓친 타자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동욱을 중얼거렸다.

"아…자식 생각보다 착실한 녀석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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