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설마… 회복 능력이 발동하는 조건이 그것이었을 줄이야…….'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갑자기 회복 능력이 발현되는 바람에 민희와 예상치 못한 갈등이 있었다.
다행히 좋게 마무리되었고,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 것처럼 두 사람은 빠르게 결혼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앞으로의 행보에 혹시라도 모를 변수를 줄이기 위해 회복 능력이 발현된 이유를 빨리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걸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준 존재는 다름 아닌 어젯밤에 다가온 웜우드였다.
***
어젯밤, 동팔은 곧 있을 선발에 대한 부담감도 부담감이었지만 회복 능력에 대한 걱정에 빠져 있었다.
가족들이 전부 잠에 빠져 있을 때 웜우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큰일 잘 처리했다면서? 축하해."
천연덕스러운 웜우드의 말에 동팔은 순간 이마에 십자 혈관이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
"지금 장난해? 그쪽이 말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잘 넘어갔을 것 같아? 뭐라고 변명할 생각이었는데?"
"……."
가만히 생각해보니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그 순간을 넘어가도 껄끄러웠을걸? 안 그래?"
"……."
"한 번 생긴 의심을 걷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잖아.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두 사람이 헤어지면… 나로서도 곤란했어."
웜우드가 약 올리듯 빙긋 웃었다.
'짜증나… 어떻게든 저 얼굴을 한 방 때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게다가 맞는 말만 해서 더 열 받아.'
사람과 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형체가 없는 악마였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그래도 좋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온 거야. 얼마 전 있었던 예기치 못한 일로 걱정이 많았지?"
웜우드의 말에 동팔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을 말했다.
"설마… 회복 능력에 대한 겁니까?"
"응. 맞아. 회복 능력의 발현 조건을 알려주려고."
"알고 있으면 진즉에 알려주지. 왜 지금 온 건데?"
동팔의 물음에 웜우드가 말했다.
"넌 모르겠지만 난 지금 너희들을 만날 때마다 목숨 걸고 만나고 있거든. 지금 삼촌이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온 거야. 이번에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간단하게 하자."
아쉽게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웜우드였다.
그가 말하지 않으면 단번에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그거 좋지. 그래서 회복 능력은 언제 발현되는 건데?"
"간단해. 네가 원하면 이루어지는 거야. 주문이나 말은 필요 없고… 오직 진심으로만."
웜우드가 말한 해답에 동팔은 의아했다.
"그럼 이전부터 다른 시간에 발현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자 웜우드가 말했다.
"방금 말했잖아. 진심이어야 한다고. 단순히 강함 염원이 아닌, 너의 깊은 마음에서 원해야 가능한 거야."
"……?"
웜우드의 말에 동팔은 오히려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설명하면 오래 걸리는데… 뭐가 좋으려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단서만 알려줄게. 나중에 알아서 파악해라.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낫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안 돼. 전에 산에서 능력이 발현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야. 너무 아프니까 아프고 싶지 않아서."
웜우드의 힌트에 동팔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었다.
"그건 넘어가고. 만약 그게 없다면 무조건 새벽에 회복되도록 세팅된 겁니까?"
"그렇지."
"그런데… 계약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동팔의 물음에 웜우드는 동팔이 심장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네 심장에 있는 계약의 서 때문이야. 넌 보지 못하지만… 나와 같은 악마나 천사들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웜우드의 눈에는 검은 악마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얇은 막과 같은 것이 보였다. 또한 악마의 검은(黑) 글씨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의 말에 동팔은 자신의 심장이 있는 가슴을 보았다.
하지만 웜우드의 말대로 계약서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지도 못 하는 걸 뭐 하러 보려고 해. 보더라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정해진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그 계약의 서가 네 심장을 강하게 조여 죽게 만드니까."
웜우드는 그 말을 끝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내가 한 말, 곰곰이 잘 생각하면서 분석해보라고. 많은 정보가 담겨 있거든. 그럼 난 이만……."
웜우드는 동팔이 뭐라 채 말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웜우드가 사라진 곳을 보며 동팔은 중얼거렸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래도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그리고 마침 이를 실행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바로 앞에 있었다.
***
동팔이 괜히 불펜에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던진 것이 아니었다.
10번의 전력투구를 하고 난 다음, 동팔은 마음속으로 깊고 강하게 염원했다.
'나아라… 제발 나아라… 제발…….'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웜우드가 거짓말을?'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동시에 웜우드가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바로는.
그러다 동팔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자 조급해졌다.
'이거 어떻게든 빠진 체력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웜우드의 말을 믿고 전력을 다했는데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번 경기에서 지완에게 체력적으로 밀릴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비를 믿고 범타 유도를 하기에 오성의 타자들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동팔은 몸의 변화를 느꼈다.
부르르르.
팔과 등에 작은 경련이 이어졌다.
분명히 아팠지만 새벽에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작았다.
"동팔아! 괜찮아?"
"네? 아, 네… 괜찮습니다."
아프긴 했지만 분명히 괜찮았다.
'이 느낌은 분명히… 회복될 때 느꼈던 그 느낌…….'
얼마 던지지도 않았는데 경련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짧은 경련이 끝나자 동팔은 아팠던 부위를 혼자서 체크했다.
이내 동팔은 확신할 수 있었다.
"됐어……."
몸 상태가 완벽하리만큼 아침에 일어났던 상태로 다시 돌아왔다.
'설마 정말로 될 줄이야. 그리고 진심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이런 것인가?'
단순히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강한 집중력은 기본이고, 정말로 자신의 진심(盡心)으로 원해야 했다.
지금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급한 상황이 되니, 아픈 것보다 낫는 것을 택한 것처럼. 그리고 그때와 같이 빨리 회복되어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게 하려던 것처럼.
이로써 동팔은 이전에 걱정했던, 한 경기에서 모든 공에 전력을 다할 수 없었던 패널티가 사라지게 되었다.
투수로서 체력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오늘 남궁지완을 상대할 때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팔은 처음부터 투수로서 그를 이길 생각이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
그것을 위해 제일 중요한 관문을 넘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감독의 허락이었다.
"동팔아. 오늘은 지명 타자로 나갈 거니까 계속 준비해. 대신 9번 타순이야."
"네. 알겠습니다."
물론 제한 조건은 있었다.
"구위가 조금이라도 떨어진다 싶으면 바로 교체할 거다. 알겠지?"
지금은 아주 중요한 경기.
리그 준우승을 놓친 이상, 한국 시리즈 우승이라도 얻어야 했으니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의 말에 동팔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물론입니다."
이것으로 남은 것은 단 하나…….
'타석에 서서 지완이의 공을 치는 것뿐…….'
투수로서 각자의 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직접 맞상대하는 투수와 타자의 관계라면 충분히 승패를 겨룰 수 있었다.
그리고 동팔이 굳이 타자로 나서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타자로서 연습한 기간은 길지 않아. 그러니 네가 악마의 능력으로 얻은 구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네가 생각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겠어. 반드시……!!'
확실히 뛰어난 회복 능력 덕분에 자신의 구위가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타격 능력은 악마의 능력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설령 있더라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전문 타자가 아닌 자신에게 통타(痛打)를 허용하면 지완이 조금은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동팔은 지명 타자로서(비록 9번 타순이었지만) 타석에 서는 모험을 감행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닌, 지완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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