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23화 (123/325)

[123]

오늘도 한국 시리즈가 있는 날.

그 세 번째 경기가 잠실구장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어제 선발로 나선 동팔은 빠른 회복을 위해 별다른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새벽에 다 회복한 동팔은 밝게 미소를 지으며 연습 투구를 하고 있었다.

"동팔이 저거… 왜 저래?"

"뭐, 약 잘못 먹었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그러자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전에 그… 민희 씨랑 결혼한다고 합니다. 이번 시즌 끝나면 바로 상견례하고 식장 잡아서 할 거라는데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소식을 들은 동료 선수들은 축하를 해주었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축하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구나… 아직 젊은 녀석이 뭐 하러 무덤에 기어들어가는 건지… 원……."

"결혼하는 순간, 모든 자유는 사라지는데……."

축하를 건네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미혼인 선수들이나 아직도 신혼의 기쁨에 헤어 나오지 못한 일부 유부남들이었고,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결혼한 지 5년 이상이 된 유부남 선수들과 코치들이었다.

앞으로의 숨 막히는 결혼 생활에 대해 알지 못하고 기뻐하는 중생의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유부남이자 베테랑 선수들.

"안 되겠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야기해주겠냐? 내년이면 미국에 가 있을 녀석인데."

"가는 김에 덜 후회하도록 조언해줘야지."

어차피 오늘은 동팔이 공을 많이 던질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동팔의 회복이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전을 준비해야 하니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덕분에 동팔은 훈련에서 바로 빠질 수 있었다.

"동팔아. 이야기 좀 하자. 너 조만간 민희 씨랑 결혼한다면서?"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피었구나? 다 이해한다. 그땐 다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결혼하게 되면 겪게 될 아주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아뇨… 뭔가요?"

"그건 말이야… 바로 용돈을 받는다는 거야."

용돈은 좋은 것이라는 게 보통의 생각.

그야 어린 시절을 포함해 학생 때 받는 용돈은 주된 수입이자 부수입이며 유일한 수입 통로이니 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는 순간 용돈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네? 그게 왜요?"

동팔이 이해를 못 하자 선배가 주구장창 설명을 시작했다.

"연봉을 일이천 받든, 억대를 받든 그건 상관없어. 지금 결혼한 선수들을 보면 전부 마누라한테 용돈을 받는데, 보통 30만원이야. 심지어 20만원 받는 사람도 있어. 이상하지 않냐? 돈은 내가 버는데… 그 돈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네?"

예상치 못한 선배들의 푸념.

그들은 동팔에게 하려고 했던 진짜 조언을 했다.

"그러니까… 사고 싶은 거 있으면 결혼 전에 미리 사 놔. 안 그러면 마누라한테 허락받고 사야 해. 처음에는 허락할 것처럼 말하지만, 이내 사면 안 되는 이유를 주구장창 말하는데… 이길 수가 없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언어적인 능력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우월하다. 당연히 말싸움을 하면 남자가 여자를 이기기 쉽지 않다.

그럴 경우 못된 남자는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말싸움에 이기면 이기는 게 아냐. 차라리 지는 것보다 더 한 지옥이 닥치지."

그의 말에 유부남 선수들이 하나같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자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옥은 지옥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옥의 종료가 달라."

"짧게 끝나는 지옥이 있는 반면, 오래가는 지옥이 있지."

"제일 먼저… 먹는 게 부실해져. 시리얼에 우유만 나와도 진수성찬이다."

"형님은 그렇게 나왔습니까? 저는 접시에 반찬 이름 적은 메모지만 달랑 있었어요."

그 이후로 자신이 겪은 온갖 시련(?)과 지옥(?)의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곧 결혼할 동팔을 걱정한 것이기도 했지만 과연 결혼하려는 동팔에게 해도 되는 말인지 의심스럽긴 했다.

선배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짧게 그리고 전부 다 말하자 동팔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그건 이미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어요. 과연 결혼을 빨리 할 필요가 있냐면서……."

하긴 자신들이 있기 전에, 그보다 더 오래 결혼 생활을 하신 아버지가 계셨다.

동팔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결혼은 자유를 투자해 행복을 거두는 장치라고."

그의 말에 선배들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말했다.

"응? 자유를 투자해……."

"행복을 거두는 장치? 결혼이?"

전혀 생소한 말에 의아해 하자 동팔이 말을 이었다.

"네. 비록 결혼 전에 마음대로 하던 것을 자유롭게 하지 못할 거라면서… 하지만 그만큼 행복할 수 있게 된다고 하셨죠."

동팔의 말에 한 선배가 말했다.

"하지만 자유가 없는 만큼 행복해지는 건 아니잖아."

분명히 자신이 할 것을 포기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다고 해서 전부 행복한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가 기러기 아빠.

가정을 위해 그들과 떨어져서 열심히 돈을 벌지만, 그 끝은 가족들의 환대가 아닌 배척인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 부분도 말씀해주셨어요. 투자이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그리고 실수하면 쏟아붓는 만큼 행복을 거둘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조심해서 그리고 확실하게 투자하라고 하셨어요. 안 그러면 하지 않느니만 못 하니, 지혜롭고 용기 있게 해야 한다면서……."

동팔의 말에 유부남 선배들의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으음… 하긴 그렇지… 괜히 까딱 실수했다간……."

"역시나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건가… 우리와 차원이 달라……."

그동안 자유가 없음에 불평하고 한탄했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걸로 아버님 이야기는 끝?"

"아뇨. 그 다음에 계속 이야기하셨어요."

동팔은 그 말을 하고, 그때를 떠올렸다.

"자유는 시간이랑 에너지처럼 제한되어 있어. 그러니 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지만 낭비해서도 안 돼.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나 혼자 희생하는 게 아냐.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고 있어. 네 엄마라도 여자다. 예쁜 옷 입고 싶고,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지 않겠니? 하지만 그거 다 포기하고, 너희들 뒷바라지하면서 악착같이 돈 모아 집 한 채 얻을 수 있었다.

"

아버지는 그 말씀을 하시곤 집을 한 번 둘러보셨다.

이전에는 단순히 집이었지만, 동팔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자 그 집 하나를 얻기 위해 고생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니 항상 이렇게 생각해라. 내가 힘든 만큼 네 안 사람도 힘들다고. 그리고 보이지 않을 뿐이지 너 이상으로 희생하고 있다고. 안 그러면… 넌 끝까지 다른 사람의 헌신을 보지 못하게 될 거다. 그리고 그건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동팔은 아버지가 말한 파국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가정이 깨지거나 완전히 갈라서는 이혼임을.

동팔 아버지의 말을 전해들은 유부남 선배들은 순간 울컥했다.

"윽… 갑자기 왜 눈물이……."

"그렇지… 왜 하필 어제 내가 그 말을 해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 가는 발언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자신들이 한 실수가 무엇인지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집에 가면 잘해줘야지…….'

'가만 보니… 결혼한 이후로 자기 옷 사는 걸 보지 못했네. 한국 시리즈 끝나면 쇼핑이라도 같이 가줘야겠어. 아니면 돈 쥐어주든가.'

남자가 여자의 쇼핑에 함께하겠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 중 하나였다.

불타오르게 사랑하는 연애 시절에도 고난이도의 퀘스트가 바로 여친과 쇼핑하기.

그런데 동팔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들로 하여금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할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막상 현실로 닥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건 뒤로 하고,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에 코치가 다가왔다.

"야. 너희들 뭐 해? 그리고 왜 갑자기 콧등을 누르냐? 단체로 코피 났어?"

상황을 모르는 코치의 말에 한 선수가 다가와서 말했다.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얼마 후, 그 선수가 코치에게 설명하자 코치도 유부남 선수들이 보였던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 반응은 마치 전염병처럼 RG 선수들과 코치들, 심지어 감독에게도 번져 나갔다.

한국 시리즈 최종전

한국 시리즈는 한국 야구 토너먼트 중 최고의 토너먼트이자 결승전이다. 총 7번의 경기를 치르고 4선승을 한 팀이 한국 시리즈 우승을 한다.

당연히 어느 팀이라도 최대한 덜 치르고 네 번 먼저 승리를 거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한국 시리즈에서 맞붙는다는 것은 서로의 전력차이가 적은 두 팀이 겨룬다는 의미.

40년에 근접한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한 팀이 내리 4승을 하여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는 몇 번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6차전이 진행되는 동안 엎치락뒤치락 하며 승패를 주고받은 결과, 3승 3패로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내일 있을 7차전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기 마련.

이번에는 2차전에서 승부를 겨루었던 동팔과 지완의 선발등판이 다시 한 번 예정되었다.

중요한 일전(一戰)을 앞둔 동팔.

그는 오성의 홈구장인 대구에 있었다.

묵고 있는 호텔방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신 음이 끊기고, 상대방이 받았다.

―여보세요.

"응. 나야. 동팔이."

상대방은 애인인 민희가 아니라 남자인 한동욱.

그가 시리즈 7차전을 앞두고 그동안 숙적과 같이 대결했던 자신에게 전화를 하자 그는 의아했다.

―응? 동팔이?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네 번호 였지? 왜 전화했어? 약 올리려면 이미 한참 지나갔는데.

"그러려고 전화한 거 아니거든? 그냥 요즘 일 진행은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볼 것도 있고."

―일 진행? 아, 메이저리그? 당연히 구단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잖아. 날 비싸게 팔고, 그 돈으로 좋은 선수 영입하겠다! 그것밖에 더 있어?

"그야 그렇겠지. 지아 상황이 그리 좋은 건 아니니까."

―그럼 물어볼 게 뭔데?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선발이지? 투수인 네가 타자인 나한테 뭘 알고 싶은 거야? 설마… 타자의 입장에서 오성 타자들을 어떻게 공략하는 것이 좋을지?

동욱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비슷하긴 한데… 그럴 필요는 없어. 이미 여러 번 상대했고, 굳이 더 알 필요도 없으니까."

―그럼 뭐가 알고 싶은 건데? 비슷하다면서?

동욱이 순간 오늘 오성의 선발투수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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