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20화 (120/325)

[120]

한편, 지완은 오성의 홈구장에서 처음부터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역시나 동팔과 같이, 선발로 등판하기에 과도한 훈련을 하지 않았다. 간단히 몸의 밸런스를 잡고, 감각을 키우는 방향으로 했다.

리그 내내 항상 해오던 방식이었고, 갑자기 바꾸면 감각이 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지완은 물론 감독과 코치들은 중요한 경기라도 더 특별한 것을 추가하거나 빼지 않았다.

지완의 구위라면 굳이 더 실력을 높이기 위해 체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투수인 지완보다 타석에 들어설 타자들이 집중력 있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기본 훈련을 비롯해 오늘 상대할 강동팔을 상대로 안타를 만들기 위한 특훈을 한다. 제일 좋은 건 지완이 직접 공을 전력으로 던져 상대해 보는 것.

하지만 오늘 선발이 지완이어서 그럴 수 없으니 피칭머신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60킬로의 빠른 공을 매번 상대할 수 없었고, 다음에 있을 경기를 생각하면 체력을 생각해 무리할 수 없다.

잠시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 남궁지완.

그는 공을 가볍게 던지면서 얼마 전에 동팔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니, 난 후회해. '차라리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야구가 아닌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라면서.

동팔의 말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진 동팔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네 말을 듣기 전에는 몰랐지만 내가 야구를 완전히 포기했다면 난 민희가 아닌 혜진이랑 같이 오손도손 살았을지도 몰라.

아마 거의 그렇게 되었겠지. 그렇다고 민희가 싫다는 건 아냐. 내가 힘들었을 때 제일 큰 힘이 되어주고, 목숨까지 건 아주 고마운 사람이야. 설령 혜진이가 널 선택해도 상관없어. 어떻게 되든 나는 민희랑 이어지고, 가정을 이루며 소소한 행복 속에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늙어갔겠지.

"

하지만 지완은 그 말을 들은 그 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 말을 떠올리면 불쾌했다.

'뭐? 후회해? 그 생각도 모든 것을 가졌으니 할 수 있는 거야. 지금처럼 성공하지 않았으면 이전의 상태에서 계속 후회와 절망을 하는 삶을 살았을 놈이 무슨…….'

상황이 바뀌면 관점이 변한다.

위치가 달라지면 시점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그러니 지완의 생각도 완전히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동팔의 진심을 거절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전부터 그랬어. 항상 잘난 것처럼 주변의 보지 않은 놈이 누구였는데? 그렇게 살고 행동했으면서 나보고 주변을 보라고? 미친… 자기 분수나 알 것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지 자연스럽게 지완이 공을 던질 때마다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쉭~ 퍽!!

그러자 공을 받고 있던 포수가 말했다.

"지완아, 힘 너무 들어갔다. 천천히 해, 천천히."

그의 말에 남궁지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팔에 대한 생각을 접고, 포수가 말한 대로 천천히. 그러면서 페이스를 조절해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경기에서 상대할, 동팔에 대한 의식을 멈춘 건 아니었다.

"한국 시리즈에서 보자. 거기서 나와 네가 왜 다른지 보여줄 테니까."

그때, 동팔이 했던 말대로 RG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지아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RG로선 상성이 나쁜 팀이라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리고 동팔만이 아니라, RG의 투수들은 대부분 수준이 높다. 그러니 오성으로서도 만만하게 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상대할 준비를 했다.

동팔의 그 말을 떠올리며, 지완은 생각했다.

'뭐? 뭐가 다른지 보여주겠다고?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보여줄 건데? 미친…….'

그리고 전력을 다해 공을 던졌다.

쉭~ 퍽!!

전력을 다한 공은 최고속도를 다시 한 번 만들며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전력을 다한,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끌어올린 지완의 몸은 뿌득거리며 주인이 느끼지 못할 작은 절규를 지르고 있었다.

***

한국 시리즈 2차전이 시작되기 얼마 전.

대구에 와 있던 민희는 여전히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자신이 묵는 방에 예약이 없어 굳이 다른 방을 찾을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의 민희는 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 봐야겠지……?"

결정은 내렸다.

그리고 동팔에게 직접 만나서 전하려 했지만, 이미 동팔은 더그아웃에 들어간 상황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태.

구장에 가는 수밖에 없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서로를 보더라도 규정에 의해 특별히 무언가 아는 척 할 수 없게 된다.

결정을 내렸지만, 자신의 결정을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민희는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많이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있겠지? 오늘 중요한 경기에 선발인데……."

오늘 저녁에 하는 경기. 그리고 다음 날에는 RG의 홈인 잠실에서 3, 4차전을 치른다.

동팔이야 선수단 버스를 통해 올라가면 되지만, 같이 타고 갈 수 없는 민희는 대중교통의 이용을 생각해 다음 날에 올라가야 했다.

결국 체크아웃은 할 수 없는 상황. 민희는 그대로 호텔을 나와 대구 라이온스 파크로 향했다. 혹시라도 몰라 이미 표를 구한 상태. 한국 시리즈라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티켓이었지만, 겨우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희가 구한 것은 제일 자리가 많은 외야석.

동팔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들어갈 수 있는 게 어디야. 더그아웃에 있을 때, 잘 하면 볼 수 있겠지……."

자신이 여기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 자신이 한 결정의 방향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이 입장해서 한산한 입구를 통해 들어가려고 할 때, 그녀를 부른 한 사람이 있었다.

"어? 혹시 민희니?"

"네? 아, 혜진 언니? 아, 맞다. 이미 결혼은 하셨으니 대구에 계시죠."

간만에 본 혜진의 모습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모는 여전했다. 하지만 전과 달리 배가 더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당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지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확실하게 와 닿았다.

무엇보다 오늘은 혜진의 남편인 남궁지완이 선발등판한다. 비록 본인이 받은 적은 없지만, 이런 경우 가족들에게 티켓을 준다는 건 알고 있다.

"혹시 혼자 왔니?"

"네. 그럼 언니도요?"

"응? 시댁이 서울이잖아. 간간히 시부모님께서 오시지만, 서울이랑 대구가 자주 오갈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몸도 편치 않은데 오시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민희의 말에 혜진은 그녀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건 네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서울에서 대구까지 온 누구랑 달리, 난 여기서 살잖니."

"아하하…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저 외야석이라 같이 못 갈 것 같아요. 혹시 필요하면 사람 불러드릴까요?"

민희의 말에 혜진이 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핸드백에서 두 장의 티켓을 꺼내며 말했다.

"구단에선 항상 여유분을 생각해서 기본적으로 두 장을 줘. 같이 갈래? 나 좀 도와 줄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예상치 못한 도움. 그리고 이미 정리가 된 인연이어서 민희는 혜진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그럼요. 그럼 이거 환불하고 올게요."

주변에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금액 그대로 파는 것도 한 가지 방법.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혜진이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민희는 짧은 시간이라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준비하는 혜진을 배려해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같이 입장했다. 그리고 지정된 좌석, 중앙 테이블석에 가는 사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좀 묘~해요. 그렇지 않아요? 서로 상대하는 팀의 선발투수의 아내랑 애인이 같은 자리에 앉는다니."

"이상할 거 있어? 오늘만 그렇지, 올해 모든 경기가 끝나면 다 같은 선수야."

그리고 혜진은 민희를 보며,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싸운다고 여자들까지 싸울 이유는 없지?"

혜진의 말에 민희는 그녀와 같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러네요. 두 사람이 라이벌이라고 우리까지 싸울 이유는 없죠. 어차피 결국 각자 가야 할 길을 가다가 마주치고, 헤어지다가 또 만나고 그런 거죠."

그녀들이 대화하는 사이, 두 사람에게 지정된 좌석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한 번씩 혜진과 민희를 보았다.

"아~ 미인인데 아깝다."

"이미 임자가 확실하게 있어……."

"누구지? 그리고 옆에 있는 여자도 미인이다. 예뻐."

슬쩍 말을 걸기 위해 다가가려 해도, 혜진의 부푼 배를 보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민희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지만, 임신부인 혜진이 걸려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괜히 다가가서 헌팅했다가, 옆에 있던 혜진이 스트레스를 받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앙좌석에 앉을 경제력이면, 최소한의 매너를 지니고 있기 마련.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이 나서서 말릴 수 있었다.

비록 시끄럽지만,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라이온스 파크가 이렇구나. 좋네요. 확실히 최근에 지어진 구장인지 세련되어 있고, 전망도 깨끗하니 좋고."

"나도 간간히 오는데, 확실히 잠실이랑 고척과 차이가 많아."

"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릴 때, 마침 방송카메라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그 카메라에 찍힌 두 사람의 모습이 커다란 전광판에 나왔다.

"어라? 혜진이가?"

당연히 더그아웃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완은 임신을 해서 몸이 불편한 혜진이 오자 놀랐다. 표를 주긴 했지만, 그녀의 몸 상태로 인해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발로 등판하는 이 경기에 그녀가 오자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혼자 여기 오면 많이 불편할 텐데…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많이 친해 보이는데, 내가 모르는 친구인가?'

아직 민희를 보지 못한 지완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 하지만 두 사람을 다 알고 있는 동팔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동팔의 첫 느낌은 반가움이었다.

'아, 이미 애를 가졌다고 들었는데 벌써 배가…….'

간만에 본 혜진의 모습은 어색했다. 하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민희의 모습을 다시 구장에서 보게 되자 반가웠다.

동시에 동팔은 의아했다.

"그런데 왜 저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거지?"

어제 민희가 대구까지 내려와서 만났으니 여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혜진이도 지완과 결혼을 했으니 대구에 있는 건 당연했다.

특히나 오늘은 지완이 선발로 등판하니 구단에서도 표를 줬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서, 친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무언가 굉장히 미묘했다.

전 애인과 현재 애인이 서로의 과거를 알면서도 붙어 있는 모습.

나쁘지 않고 분명히 좋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핸드폰은 따로 보관을 한 상태라 연락을 할 수도 없다.

선발로 나서는 두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짐작이 가는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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