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17화 (117/325)

[117]

민희의 결심

다음 날 광주.

포스트시즌이 끝나 한가해진 동욱은 내년을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집을 나서기 전, 그의 엄마가 와서 말했다.

"우리 아들. 이제 미국 가겠네. 계속 못 봐서 어떡하니……."

생각 같아선 한국에서 계속 얼굴을 보며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동욱의 꿈을 알기에 막지는 못하고 이렇게 아쉬움만 토로했다.

어머니의 말에 동욱은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못 만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되든지 간에 1년에 한 번을 올 거고, 그 사이에 화상통화하면 되는 거고."

"화상통화? 그거 국제전화로 하면 돈 엄청 나오잖아."

"그건 제가 돈 많이 벌면 되는 거죠. 아무리 많이 써도 한 달에 천만 원 이상 나오겠어요?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무료로 할 수 있어요. 집이라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와이파이가 집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연로한 엄마가 확실히 안심하며 통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집이었다. 집에는 무선 인터넷을 설치했으니 그의 말대로 거의 무료로 통화할 수 있었다.

"아, 엄마. 오늘 병원 가세요."

"그렇지. 그런데 꼭 갈 필요 있을까? 괜한 돈만 쓰는 것 같아서 영……."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 보자는 거지. 나중에 알아서 후회하는 것보다 낫잖아. 나도 전보다 돈 많이 벌고 있고, 더 벌 수 있으니까 그 걱정하지 말고. 응?"

"그래… 뭐 그런 거라면……."

정기검진이 좋다는 걸 왜 모를까.

다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년부터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한동욱은 연봉이 4배 늘었다. 이후에 받을 상금과 보너스 및 수당을 생각하면 더 들어올 예정이었다. 험하게 살아온 어머니임을 알기에 동욱의 걱정은 당연했다.

이전에 못해드린 것을 생각하면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그럼 저 훈련 갔다 올게요."

"응. 그려. 잘 다녀와."

동욱이 집을 나서고 얼마 뒤, 그의 어머니도 단출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더 예쁘고 깔끔하고 좋은 옷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지 않았다.

딸들이 좋은 옷을 사려고 해도 항상 이 말을 했다.

"나중에 동욱이 결혼하면 그때 가서……."

딸들은 야속했지만 아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생각해주시는 엄마인 걸 알기에 답답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동욱의 어머니 뒤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존재, 스크레이치가 따라가고 있었다.

"……."

스크레이치는 동욱의 어머니를 지키고 있는 두 수호천사를 보면서도 바로 뒤에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악마 장관 스크레이치……."

천사의 물음에 스크레이치는 사실을 말했다.

"단순한 치료일 뿐이야. 너무 경계하지 말라고. 너희들도 정해진 때가 되기 전까지 이 여자의 수명에 손을 댈 수 없잖나."

그의 말에 다른 천사가 말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악마."

천사의 말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미안하지만 난 가능해. 한동욱과 맺은 계약 때문에."

그리곤 하나의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진하고 검은(黑) 안개가 얇게 펴진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스크레이치의 이름과 한동욱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스크레이치는 계약서를 두 천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가 인정한 계약이니 이 또한 계약의 수행. 그러니 막지 말게. 이러는 것이 너희들에게도 나쁜 건 아니지 않나?"

그는 두 천사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행동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통과해 몸에 자신의 기운을 주입하더니 악마답지 않게 그녀의 몸을 치료해 나가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몸에 있는, 죽음의 진행을 늦추고 있었다.

분명 치료라면 치료였다.

하지만 두 천사는 고마워할 수 없었다.

'음흉한 스크레이치…….'

'네놈의 호의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건 다 알고 있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더욱!!'

한편, 저 멀리서 스크레이치가 동욱의 어머니를 치료하는 걸 본 웜우드.

"됐어. 이걸로 한동안 마음대로 움직일 약간의 시간을 얻을 수 있어……."

그리고 웜우드는 공간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

동팔은 그날 끝까지 민희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마와 계약한 흔적을 보여주고 말았다.

'나중에 뭐라고 말해야 하지? 다 말해야 하나? 내가 3년 안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걸?'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잘생긴 남자라도 몇 년 못 산다면? 과연 그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사람이 아닌 돈이 목적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보아온 민희는 그럴 사람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민희가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동시에 동팔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회복이 된 거지? 보통 새벽에 회복되는 거 아니었어?'

하필이면 그때 회복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타박상 정도에, 어차피 새벽에 회복될 것이라 밤중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동팔은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복 능력에 대해 그 악마가 말하지 않은 게 뭐지?'

동팔은 자신이 얻은 회복 능력에 대해 정리해 나갔다.

'먼저 보통 새벽에 회복이 되었어. 하지만 어제 일을 보니 이건 절대적인 법칙이 아냐. 그리고 어떤 부상이라도 낫게 해주지만 심각한 경우엔 회복을 늦게 할 수 있고…….'

이건 아마 1부 리그에서 무릎을 크게 다쳤을 때 겪었다.

인대가 끊어진 상황이었지만 3일에 걸쳐 완전히 치료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루 만에 완쾌될 수 있었다.

동시에 가중되는 고통도 늘어나지만.

본능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회복되는 것을 최대한 늦춘 것이다.

어제는 이전과 다른 패턴으로 나타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전과 달리 훨씬 이른 시각에 회복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알아야 해. 그래야만 그런 불상사를 막을 수 있어.'

민희에게 회복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어제는 불행히 보여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건 동팔이 민희와 가능한 결혼하지 않으려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나에게 남은 삶이 조금밖에 없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매일 회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여줄 수 없어. 하지만 그걸 보게 했으니…….'

동팔은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나고 말았다.

하지만 마냥 불운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새벽만이 아니라 더 빠른 안에 회복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어. 이걸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의외의 제약에서 풀려날지도……."

이것은 그날 선발로 등판했을 경우, 새벽까지 회복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더그아웃에 있는 사이에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즉, 한동욱을 상대로 했을 때 체력의 부담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타이밍을 잘 잡고, 회복 능력을 잘 컨트롤할 수 있다면 매 이닝마다 전력으로 투구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새로운 희망을 본 동팔.

여전히 그의 앞엔 당장 처리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민희한테 어떻게 말하지? 그리고… 어디까지 말해야지?"

단순히 계약을 했다고 하면 온갖 물음이 따라온다.

어떤 존재와 계약했는지, 그 존재가 어째서 동팔을 선택했으며,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기본일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 민희도 동팔과 같이 생각과 마음이 복잡했다.

***

민희는 오늘도 영어 학원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강의를 듣고 있지만 내용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온 내용도 지금하고 있는 걱정으로 금방 사라졌다.

'어제 그건 정말 뭐지? 어떻게 멍이 그렇게 빨리 사라질 수 있는 거야?'

자신이 알고 있는 의학 지식을 총 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대학도 가지 않은 자신이라 의학에 대한 지식은 전부 인터넷으로 찾아봐야 했다.

어려운 단어와 전문적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붙잡고 찾아봤는지 모른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는가 싶어서 찾아봤다.

멍이 생기지 않거나 또는 빠르게 사라지는 체질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동팔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멍이 사라지는 건 없었다.

전부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공상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더 다치지 않고, 한국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에 다 나은 것 좋지만… 그렇게까지 아파야 하는 거야? 그리고 회복하게 된 원인은?'

이해할 수 없기에 온갖 생각이 다 나왔다. 하지만 어느 생각도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중에 통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악마와 계약하는 것도 있지만, 허무맹랑하다 생각했기에 그냥 넘어갔다.

'설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생물학 연구소에서 실험중인 이상한 주사라도 받은 건가?'

그나마 현실 가능한 것이라면 이 정도였다.

회복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대신, 그에 따른 부작용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며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정도 효능이 계속 있게 하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 약물이 지속적으로 주입이 된 상태여야 했다.

하지만 동팔은 어디에도 주사를 맞은 흔적이 없었다.

그날은 주사를 맞을 시간도 없었고, 도핑 테스트에서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하… 정말 어떻게 하지…? 그리고 이젠 슬슬 메이저 구단에서 각종 조건을 두고 계약을 제안할 텐데… 어떻게 계약을 할지도 물어봐야 하는 거고…….'

동팔이 무엇을 원하는지 민희는 알고 있다.

앞으로 3시즌 이내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

그러니 우승이 가능할 정도로 탄탄한 전력이 있는 팀이어야 했다.

'당연히 공수의 밸런스와 전체적으로 봐도 강한 선수와 뛰어난 감독이 있는 팀이면 좋겠지만… 그런 곳은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어. 특히 오빠 몸값이 아주 높아졌으니, 더 무리겠지. 그런 팀은 이미 몸값이 아주 높은 선수가 많으니까…….'

사실상 현재까지 동팔의 매니저는 민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민희가 계약을 조율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아 그리고 메이저구단만이 아니라 RG랑 이야기도 해 봐야 하는데… 으아~!! 이 둘 사이에 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그리고… 그 전에 오빠랑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 하는데… 그걸 물어보려 해도 도무지 입을 열 생각도 않고.'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생각하고 걱정할 것이 산더미였다. 이 모든 계약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동팔의 몸 상태디.

혹시라도 다치거나 부상을 입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게 된다. 그때처럼.

그나마 회복이 빠르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하지만 동팔의 경우 빨라도 너무 빨랐다.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

결국 그날 민희는 강의를 듣는 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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