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괜찮습니다. 힘도 잘 들어가고, 계속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코치는 감독에게 받은 명령이 있었다.
"알아. 하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자. 제일 큰 위기도 넘겼잖아."
"하지만……."
"괜찮다니까. 네가 다 던지면 다른 애들은 손가락만 빨라는 거야? 애들도 공을 세울 기회를 줘야지. 경기 감각을 최대한 유지하려면 지금 나오는 게 최선인 건 너도 알잖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팀과 다른 투수를 위해서'라는 말에 동팔도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지금은 연습 경기가 아니라 실제 경기였다.
시간을 오래 끌 수 없기에 동팔은 코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마운드에 올라와 두 명의 타자를 잡고, 한동욱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동팔이 마운드를 내려오자 RG의 팬들은 기립박수로 답했다.
제일 큰 위기를 넘겼고, 큰 부상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라는 의미였다.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다음 더그아웃에 들어온 동팔은 감독과 코치, 선수들의 환영을 받으며 자리에 앉아 팽팽히 당겨진 긴장의 끈을 풀었다.
"휴~ 죽다 살았네."
그러자 그와 친한, 이번 경기 선발 강중근이 동팔의 목을 가볍게 조르며 말했다.
"이야~ 설마 타자 배트를 부러트리는 방법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건 어떻게 안 거야? 소리로 듣고?"
"네. 처음 던졌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만, 공을 쳤을 때 소리가 달라져서 혹시나 해서 시도했습니다."
"그래도 배트를 부러트릴 줄은 몰랐다. 요 녀석아."
"아슬아슬했죠. 계속 금이 가는지 소리가 변해가는 것을 들으니 멈출 수도 없었고요. 동욱이를 상대로 안전하게 가려면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거든요."
"네 공이니까 시도해서 결국 성공한 거지. 나랑 다른 애들이었으면 불가능했어. 동욱이가 이번에 들고 온 배트는 새 걸로 보였는데 결국 부러트렸네. 하긴 새 배트라도 잘못 맞으면 10번도 안 되서 쪼개진다고 하지만."
배트가 부러지면서 타구는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어찌 되었든지 결과는 동욱의 판정승이지만.
이후 RG는 지아를 확실하게 막는 것에 성공하며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었다.
***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난 직후.
지아의 선수들은 허탈했지만 그래도 예상외의 선전으로 결국 플레이오프까지 왔다.
시즌 초반, 포스트시즌 진출도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괄목할 성과였다.
하지만 아무리 예상치 못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경기에 지면 그 순간엔 어깨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추격의 기회를 잃어버린 동욱은 더 큰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선수단 버스에 혼자 올라타 있는데, 임기태 감독이 그에게 직접 찾아왔다.
"네 잘못이 아냐. 잘 했어. 배트가 부러진 건 사고였으니 어쩔 수 없잖아."
감독은 그 말을 하고 손에 쥔 배트를 건넸다.
그것은 한동욱이 마지막 타석에서 쥔, 부러진 배트였다.
언제 주웠는지 쪼개진 헤드 부분과 파편이 전부 맞춰져 있었다.
동욱이 배트를 받자, 임기태 감독은 옆자리에 앉았다.
"분명히 배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안 바꾸나 했는데 이걸 보니까 알겠더라. 어머니께서 선물하신 각별한 물건이니 그런 거겠지. 다 이해한다."
그의 말에 한동욱은 더 몸 둘 바를 몰랐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다는 걸 알았으면 바로 교체해야 했는데……."
자신이 먼저 움직였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어쩌면 한국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임기태 감독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괜찮다니까. 다른 배트를 들었다가 네 마음이 흔들리면? 차라리 네가 집중할 수 있게 배트를 바꾸지 않은 것이 더 나았을 수 있어."
그리고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전에 한 말이지만 그래도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동팔이를 상대로 희망을 가지게 할 수 있는 타자가 한국 프로 리그에서 얼마나 되겠어? 너밖에 없어. 그러니 오늘 일은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지 신경 쓰지 말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 인마."
임기태 감독은 그 말을 하면서 동욱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 주었다.
동욱은 그에게 다시 머리를 숙였다.
"혹시 복구하고 싶으면 나한테 연락해. 잘 해주는 곳 알고 있다. 깔끔하게 붙여 줄 거야."
감독은 그 말을 하고 앞자리로 갔다.
다시 혼자 남은 동욱이 그에게 받은 배트를 봤다.
쪼개졌지만, 떨어진 부분을 이어보자 다행히 잘 맞았다.
헤드 부분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오자 동욱은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엄마…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리하고 말았어……."
***
플레이오프가 끝나면 한국 프로야구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 시리즈가 이어진다.
플레이오프를 치른 선수들은 그 전에 짧지만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가 끝난 오늘.
승리를 축하하고 싶지만, 다음에 있을 7연전을 위해 최대한 자중했다.
빨리 퇴근하게 된 선수들.
동팔도 같이 와 준 민희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빠, 허벅지 정말 괜찮아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걱정하지 마, 세, 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장난스럽게 말하는 동팔.
그의 말투에 민희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찮으면 됐고요. 나중에 운전하다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알죠?"
"그럼. 이 정도는 금방 나아."
"그래도 타박상인데 멍들지 않을까요? 기본적인 조치는 다 했지만 그래도 빨리 회복되어야 할 텐데……."
이제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제일 중요한 결전인 한국 시리즈가 시작된다.
그때 적어도 동팔이 2경기 이상 선발로 나설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플레이오프에서 동팔을 그렇게 아끼지 않았던가.
동팔의 회복은 본인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일 새벽이 되면 다 나을 텐데 뭘…….'
그가 스크레이치와 계약해 받은 능력인 빠른 회복, 어떤 부상이나 피로도 하루면 다 회복하게 된다.
부작용으로 회복되는 만큼 고통이 따라온다는 점이 있지만.
'좌우지간 내일 새벽에 허벅지 엄청 아프겠다… 간만에 마우스피스 준비해야겠어.'
그 생각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동팔은 타구에 맞은 오른쪽 허벅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어?"
처음에는 단순한 경련이라 생각했지만 꿈틀대는 것이 멈추지 않고 더 심해졌다.
심지어 옆에 앉아 있던 민희도 알아차릴 정도였다.
"오빠… 허벅지… 정말 괜찮아?"
"응. 그럼……."
그 말을 한 동팔은 경련이 일어나는 부분에 손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던 허벅지였는데 동팔의 손에 닿자, 극심한 고통이 발생했다.
"으윽!!!"
고통으로 인해 동팔은 절로 몸이 숙여졌다.
격렬한 고통에 그의 얼굴을 한순간에 붉게 변했다.
"오빠, 오빠!!"
동팔이 너무 아파하자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다.
하지만 허벅지의 경련이 심했고, 그의 눈빛과 행동은 연기라고 보기에 너무 적나라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해?'
민희가 당황스러워 할 때, 동팔도 역시 당황스러웠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회복은 새벽에 일어나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이전에 혹사 때마다 회복의 고통으로 인해 새벽마다 깨지 않았던가.
지금은 새벽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허벅지가 급격히 아파오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 즉시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으으……."
동팔이 운전대에 기대어 신음을 뱉어내자 민희는 핸드폰을 꺼냈다.
"오빠. 잠깐만… 지금 119 부를 테니까……."
동팔은 그녀의 핸드폰을 잡아 119를 부르지 못하게 하며 고통 속에서도 이 말을 뱉어냈다.
"나… 괜찮아… 좀만 있으면… 괜찮아지니까……."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지금도 허벅지가 꿈틀대고 있는데!!"
그래도 동팔이 핸드폰을 놓지 않자 민희는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민희는 핸드백에서 날카로운 무언가를 찾았다. 그건 눈썹을 정리할 때 쓰는 눈썹칼이었다.
화장용이지만 동팔의 바지를 자를 만큼 충분히 날카로웠다.
"잠깐만요. 상태 좀 볼게요."
민희는 동팔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바지를 자르려했다.
동팔이 막으려 했지만 허벅지에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너무 아파 움직이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바지를 가른 민희.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르기 전에도 꿈틀거리던 허벅지와 다른 무언가였다.
"어, 어… 오빠…?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허벅지의 멍은 생각보다 빨리 생겼다.
동팔이 타구에 맞은 때는 8회 초다.
경기가 끝나고는 인터뷰와 간단한 자축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의무실에서 허벅지 상태를 확인했을 때, 민희도 같이 있었다.
그때 본 동팔의 허벅지에는 멍이 시퍼렇게 있었다.
직접 맞은 부분에선 붉은 기운까지 보였다.
멍이 사라지는 데 덜리는 시간은 보통 일주일.
그 안에 한국 시리즈의 절반 이상이 진행되니 RG로서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동팔의 허벅지에는 방금 전에 있던 멍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민희는 확실히 보았다.
눈에 보이는 푸른 멍의 면적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마치 마법과 같이 시간을 빨리 되돌리는 것처럼 회복이 되었다.
한 번씩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멍은 더 빠르게 사라져갔다.
믿을 수 없는 광경.
멍이 사라지자 동팔을 무력하게 만든 고통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여파는 남아 있어 동팔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동팔은 허벅지의 멍이 사라진 것을 보자, 지금 급습한 고통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 미안… 이건……."
방금 일어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원래 체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 그렇다고 스크레이치랑 계약한 것도 말할 수 없는데…….'
누가 봐도 정상적이거나 평범한 현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일 아침에 정도에 보여줬으면 회복이 아주 빠른 정도라 하고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직접 보여준 이상, 설령 직접 보지 않더라도 이상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민희야… 나중에… 나중에 말해줄게… 알았어? 응?"
민희는 당혹스러웠다.
빠르게 회복되는 건 좋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에게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도 그렇지만, 무언가 강하게 숨기고 있는 동팔의 표정이 그녀의 마음을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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