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15화 (115/325)

[115]

'홈런. 그 이외에는 절대로 불가…….'

안타도 좋은 결과지만 승리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후에 설 다른 타자가 안타나 홈런을 칠 가능성이 사실상 없었다.

과정을 생각하면 동팔도 쉽지 않았다.

'어떤 공을 던져야 할까? 시즌 초반과 달리 이젠 걸치면 무조건 치고 퍼 올리는데…….'

분명히 한동욱은 홈런을 생각하고 배트를 힘차게 휘두를 것이다.

거기다 어정쩡한 변화구를 던지면 먹잇감이 되고, 강속구도 반응 속도가 빠른 한동욱에게는 큰 장점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 170까지 던지면 모를까… 이젠 배트에 닿지 않은 곳에 고의 볼넷을 던지면 퇴장이니 그것도 안 되고…….'

물론 감독의 입장에선 불펜 투수 중 하나를 버리고 한동욱을 볼넷으로 보내는 걸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 불펜 투수의 상한 자존심과 따라올 비난에 두고두고 괴로울 것이다.

다행히 임상훈 감독은 강동팔이 있어 명예롭지 않은 선택을 강요받지 않았다.

타선에서도 어떻게든 점수를 내서 숨을 쉴 여유가 있었다.

동팔은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 한동욱에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을 분류하고 있었다.

'느린 곳은 절대로 불가능. 시즌 중에 너클볼을 던졌을 때 처음에 통했지만, 그 이후론 제대로 맞아서 넘어갔다. 아무리 급격한 변화를 가지는 변화구라도 느리면 무의미해. 그렇기에 커브도 봉쇄당했어.'

한동욱을 상대로 통할지도 모를 공은 급격히 제한되고 있었다.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은 느려서 역시 불가능. 그럼 빠른 슬라이더와 전력을 다한 포심 패스트볼. 그리고 투심과 자이로볼 정도려나? 싱킹 패스트볼이랑 스플리터도 있지만 주력구라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이 상황에서 던질 수 없어.'

확실히 한동욱을 상대로는 구종을 제한받는다.

하지만 동팔은 한동욱 역시 제한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는 RG의 감독과 코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욱이는 무조건 홈런을 노리겠지. 그리고 연장전으로 간 다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막고 다시 한동욱을 세워서 홈런으로 이긴다."

"생각대로 이루어지면 좋은 계획이겠지만, 문제는 운적인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안타도 아니고 홈런을 기대하는 것. 그것도 연타석 홈런은 좀 무리죠.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유리한 쪽은 우리입니다."

"맞아. 유리한 건 우리야. 지아랑 달리 우리는 여전히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많아. 지아에서 믿고 맡길 만한 투수는 고작해야 한 명이야. 문제는 너무 터무니없는 확률이 아니란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 다른 타자도 아니고 한동욱이라면 이 확률이 꽤 높죠. 그리고 이번에 홈런을 치면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지아가 우리를 이기려면 이 방법 말곤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 아닙니까."

결국 한동욱의 홈런만이 지아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특히나 지고 있는 상황이라 비기지 못하면 연장전조차 가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한동욱이 노리는 공도 제한적이야. 쉽지 않은 승부가 되겠어."

"어쩔 수 있나요. 스위트스폿에 제대로 맞추려면."

그들의 예상대로 한동욱이 노리는 공과 코스는 제한되어 있었다.

동팔은 끝까지 그 점을 이용해야 했다.

첫 단계는 유리한 볼카운트로 끌고 가는 것.

쉭~!!

'아래? 하지만.'

낮은 공이라 노리는 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치지 않으면 그대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따악!!

한동욱은 일부러 빗겨 쳐 파울 지역을 향해 공을 날렸다.

지금 한동욱이 원하는 것은 장타가 아닌 홈런이었다.

그는 뻔히 보이지만 피할 수 없는 함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던지면 던질수록 불리한 쪽은 동팔이야. 내가 원하는 공을 던지기 전까지 오는 모든 공을 파울로 날려주지.'

볼은 던질 수 없다.

지금 RG가 바라는 것은 한동욱이 홈런을 치지 못하게만 하는 것.

다른 말로 삼진이면 좋고, 범타도 좋다.

그리고 장타든, 단타든 안타라도 상관없다.

고의만 아니면 상관없는 볼넷도 좋다.

결과적으로 보면 철저히 한동욱이 불리했지만 RG는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따악!! 따악!!

조금이라도 배트에 걸린다 싶으면 무조건 쳐서 파울로 만드는 한동욱.

파울로 만드는 스트라이크는 2개까지만 유효하고, 그 이후로는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으니 투구 숫자를 이론상으론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다.

총 7번의 강속구을 받아쳐 파울로 만들자 RG의 팬들은 더욱 조마조마해졌다.

"으아… 이러다 정말로 넘어가는 거 아니겠지?"

"야, 불길하게 그걸 왜 말로 하냐."

파울 타구가 전부 관중석으로 가버리니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다.

던지면 던질수록 불리한 쪽은 투수인 동팔이다.

'역시나 이런 작전으로 나오잖아. 내가 처음 당했던 그 작전대로…….'

이번 시즌 자신의 첫 피홈런을 이렇게 당했다.

사냥감인 줄 알았더니 사냥을 당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동팔은 더욱 신중했다.

'다른 타자라면 한순간의 실수가 날 가능성이 높으니 이대로 가겠지. 하지만 한동욱은 예외야. 나와 같은 힘을 가졌으니 실수를 기대할 수 없어.'

모르는 사람은 한동욱이 언제 실수를 할까 그리고 동팔이 언제 실투를 하게 될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종류는 다르지만 악마와의 계약으로 특별한 힘을 얻은 두 사람. 자신은 뛰어난 회복력 그리고 한동욱은 아주 빠른 신경 전달 속도.

아무리 빠른 강속구를 던져도 한동욱의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고 타격하는 속도도 빨라 계속 공을 던져도 파울 볼로 만들 능력이 있었다.

한동욱이 원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높은 공이다.

그걸 알기에 동팔은 낮은 공을 주로 던졌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체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을 동팔도 알고 있었다.

그 승부처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쪽은 한동욱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한동욱이 원하는 공을 던졌을 때 그가 칠 수 있으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던 공이 오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할 것이라 최소 장타에서 홈런이 될 확률이 높았다.

따악!

그러던 중 동팔은 동욱이 8번째 파울을 날릴 때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 뭐지? 소리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사실 절묘한 볼넷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맞붙지 않으면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에 최대한 안정적으로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그래서 동욱에게 통하는 강속구 그리고 빠른 변화구를 계속해서 던졌다.

아래쪽은 물론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몸 쪽으로도 던졌다.

동팔은 포수에게 공을 받으며 생각했다.

'설마 동욱이 배트가?'

동팔은 혹시나 하며 동욱의 배트를 봤다.

다른 배트에 비해 깨끗했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설마 선물 받은 배트? 그럼… 좀 미안하게 됐네.'

상대의 약점 파악이 끝났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상대가 먼저 알아차리기 전에.

쉭~ 따악!

쉭~ 따악!

동팔은 동욱이 원하지 않는 방향인. 동시에 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로 아웃될 코스를 향해 강속구를 뿌렸다.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뿌리는 강속구는 전부 그의 최고 속도인 161킬로에 달했다.

그러자 RG에선 걱정이 시작됐다.

"지금 전력으로 던져서 13개 입니다."

"나중에 힘 떨어지면 곤란한데……."

무언가 동팔이 노리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그러다 코치 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따악!

"잠깐. 지금 맞았을 때 소리가 좀 이상하지 않아? 맑은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깨지는 것 같은……."

다른 사람들도 다음에 있을 타격에 귀를 집중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귀가 아닌,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빠각!!

나무 깨지는 소리가 나며 한동욱의 배트가 부러졌다.

배트가 부러진 이상, 동욱이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가 나갈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에 타구가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상태.

힘이 실리지 않은 타구는 멀리 뻗지 못하고 내야를 튕겼다.

공은 자세를 마무리하고 있던 동팔의 허벅지를 향해 날아갔다.

퍽!

"윽!!"

전처럼 뼈나 관절이 아닌, 근육이 많은 부위라 부상을 당했을 때처럼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타구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였다.

턱, 휙!

3루수 히네신스가 달려와 유격수가 잡기 전에 먼저 잡고 빠르게 1루를 향해 송구했다.

턱.

"세이프!"

빠르게 던졌지만 달려들어간 한동욱을 잡지 못했다.

결국 홈런이 아닌 단타로 끝이 나고 말았다.

한동욱의 홈런을 막았지만 RG에선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야! 당장 동팔이 상태 확인해. 어서!!"

"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타구가 동팔의 허벅지를 때렸다.

부상 위험이 낮은 부위지만 그래도 근육통을 비롯해 파열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불펜에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준비하고 있던 애들은 누구야."

"이규민이랑 김정우입니다."

"동팔이 상태 보고 교체해. 그리고 규민이 올려 보내라."

"알겠습니다."

제일 큰 고비는 넘어갔다.

부상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동팔이 계속 공을 던졌다간 나중에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설령 괜찮더라도 그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이제 남은 지아의 타선 정도는 동팔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동팔아. 괜찮아? 발 좀 디뎌봐."

"네."

맞았을 때 놀라긴 했지만 아프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기껏해야 타박상 정도겠지. 이 정도야 금방 회복하니까.'

관절의 인대가 끊어진 것도 아니고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다.

단순 타박상이라면 흔히 겪는 일이다.

문제는 지금 공을 던질 수 있는 상태인가 그리고 공을 던지더라도 통증에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는가였다.

발을 몇 차례 디뎌보고, 코치가 보는 앞에서 간단히 공을 던져본 동팔이 느낀 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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