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14화 (114/325)

[114]

"결국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이길 수 없어. 다른 팀이라면 몰라도 지아는 어떻게든 한 점 이상 낼 수 있는 팀이야. 리그에서도 영패가 거의 없다는 게 증거야. 그리고 지난 네 번의 경기로 우리와 달리 지아는 투수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전보다 기회가 더 많을 테니까 결코 놓치지 말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네!!"

앞선 두 경기를 졌기에 분위기가 마냥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유리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앞선 두 경기를 치르면서 임상훈 감독은 불펜 자원을 최대한 아꼈다.

이번 경기에 저축해 놓은 투수 전력을 쏟아부을 준비가 된 것이다.

그건 경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났다.

[아~ RG 또 투수 교체합니다. 구위가 조금 떨어졌다 싶으면 바로 교체를 하는 군요.]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입니다.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반면 지아에선 바꾸고 싶어도 바꿀 투수가 많지 않아요. 지난 두 경기에서 무리하는 바람에 괜히 바꿨다 틈을 보이면 두들겨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까요.]

중계진들의 말대로 RG는 빠른 투수 교체로 타자들이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전력 분석을 통해 각 타자들에게 강한 투수들을 올려 안타를 맞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 했다.

그 덕분에 RG는 7회까지 3실점으로 막는 데 성공했다.

6이닝까지 3실점이면 선발투수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투구다.

다만 그 3실점이 전부 한동욱의 적시타와 홈런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한동욱만 어떻게든 막으면 되는데 방법이 없었다.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피할 방법도 없으니 결국 한동욱의 배트에 걸리고 만다.

게다가 타자들도 동팔이 어렵지, 다른 투수들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물론 RG의 투수들도 뛰어나 쉽게 안타를 만들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한동욱이 만든 틈을 이용하여 비집고 들어갈 실력은 있었다. 지아의 입장에선 동팔이 선발로 나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반면 RG의 팬 입장에선 속이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게 왜 강동팔을 첫 경기에 보내지 않아서 화를 자초해."

"리그 준우승했다고 끝이야?"

그나마 RG가 1점차 리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점 정도는 한동욱이 제대로 받아쳐서 홈런을 만들면 금방 메꾸어질 점수다.

홈런이 쉽지 않지만, 한동욱이라면 확률이 높아지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드를 하고 있어도 RG의 팬들은 조마조마하며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어떻게든 이겨서 한국 시리즈에서 응원 좀 해보자.'

반면 지아의 팬들은 그들과 정반대였다.

'한동욱이 어떻게든 한 방 치면 연장전을 통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의외로 RG를 상대로 잘 막고 있어. 연장전이 되면 체력 문제가 걸리지만 그건 RG도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이번 8회에는 한동욱이 타석에 서.'

그런 상황 속에 RG의 투수가 바뀌었다.

바뀔 투수의 테마곡이 나오자 팬들의 반응은 이제까지와 반대로 바뀌었다.

"어, 어, 어? 설마 정말로 강동팔?"

"불펜이나 마무리로 올라오는 거야? 제1선발이?"

RG 팬들에겐 절대적인 신뢰와 희망을 주지만, 상대 팀에게 있어선 절망의 노래였다.

처음에는 노래가 잘못 나왔나 싶었지만, 불펜에서 강동팔이 나오자 RG의 팬들이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동시에 지아의 팬들은 비명을 질렀다.

"와!! 이 씨……."

"비겁한 놈들. 하필 지금 치트를 쓰냐!!"

두 팀의 반응을 즐기는지 임상훈 감독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이왕이면 동팔이가 나오지 않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면 좋지만 별수 있나."

그의 말에 투구코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동팔이가 첫 경기랑 마지막 경기의 선발이면 좋지만, 그러면 한국 시리즈에 가기도 전에 두 경기를 선발로 뛰니 곤란하죠."

이미 RG는 자신들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확정하고 작전을 준비했다.

지아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장기전을 준비했다.

물론 세 경기를 전부 이기고 진출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두 팀의 상성을 보면 RG가 불리했다.

자신들의 장점인 뛰어난 선발진과 불펜진이 지아의 한동욱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타격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 지아의 투수진에 쉽게 막혔다.

장점은 봉쇄되었는데 단점은 그대로 남게 되니 이들이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선 동팔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 시리즈에서 동팔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선택한 것은 동팔을 두 번째 선발로 올린 후, 마지막 경기에서 추격 조나 마무리로 등판시켜 더 안전하게 진출하는 방법이었다.

임상훈 감독의 바람대로 그 전에 진출을 확정시키면 좋겠지만, 무리라면 그 다음을 대비해야 했다.

결국 RG는 감독과 코치들의 의도대로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가 아닌 1경기 2이닝으로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동팔이 한동욱을 이번에도 막을 수 있느냐. 설령 홈런을 맞아도 우리가 점수를 얼마나 더 낼 것이냐. 그 싸움이 되었어."

"결국 경기를 결정하는 건 선수들이죠. 이젠 우리의 손을 떠났습니다. 믿고 맡기는 수밖에요."

한편, 더그아웃에 있던 한동욱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거… 가지고 나올까? 아니면 말까…….'

지아가 완전히 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리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점수 차이는 고작 1점.

말은 하지 않지만, 선수들은 물론 팬들도 한동욱에게 기대하는 것이 컸다.

그가 부담을 느낄까봐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부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동팔이 올라온 이상, 다른 타자들이 그의 공을 받아쳐 점수를 낼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그 0의 확률을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는 가방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배트 중, 어머니가 주신 배트를 꺼냈다.

소중했기에 잘 쓰지 않은 배트였다.

이번 이닝에 타석에 서는 동욱은 평상시 쓰던 배트 대신 어머니가 주신 배트를 선택했다.

배트를 손에 쥐고, 쓰인 글귀를 읽자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엄마… 될지 안 될지 몰라요. 하지만 엄마가 말씀하신대로 무리하진 않을 겁니다. 그저 최선을 다 할 거야.'

동팔의 구위는 분석한다고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강속구도 강속구지만 변화구의 제구력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것만으로도 공략이 보이지 않는데, 던질 수 있는 변화구의 종류까지 많았다.

확인된 것만 해도 커브에 슬라이더,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면서 선배들과 코치들에게 배운 싱커에 스플리터까지.

마지막으로 삼대 마구라 불리는 구종 중 너클볼과 자이로볼까지 던졌다.

또한 특정한 볼 배합을 쓰지 않았다.

보통 빠른 직구를 던진 후, 힘이 덜 실리는 체인지업을 던져 타이밍을 빼앗는 볼 배합이 정석 중에 하나다.

그러나 동팔은 강속구 다음에 또 강속구를 던지거나, 다른 변화구를 던진다.

볼 배합을 분석해도 특정한 패턴이 없었다.

결국 동팔이 던지는 구종의 파악은 그가 공을 던진 다음에서야 할 수 있다.

무얼 던질지 모르지만 오직 한 구종을 예상하고 세 번 이상의 기회에서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운이 좋으면 맞는 것이고, 아니면 아웃이다.

그런데 동팔은 상대가 노리는 구종을 알아차리고 다른 구종을 던졌다.

힘이 강한 괴수가 인간의 지능을 지녔으니 어떻게 공략할까.

그와 비견되는 동욱이라면 가능했다.

앞서 나선 두 명의 타자는 동팔에게 힘도 쓰지 못하고, 범타로 아웃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타격 연습을 하던 동욱은 생각했다.

'삼진을 잡을 수 있는 녀석이 범타로? 이건 일부러 범타를 유도한 거잖아. 적당한 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빗맞도록 해서 투구 수를 줄이겠다는 것.'

거의 승리가 확정된 상태에서도 다음에 있을 한국 시리즈를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한 점 차이의 아슬아슬한 리드였지만.

아무리 강동팔이 마운드에 있어도, 투아웃인 상태이라도 한동욱이 타석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동시에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같은 생각을 했다.

'이거… 어떻게 공략하지?'

'이거… 어떻게 공략하냐?'

두 사람이 각자 마운드와 타석에서 마주 보자, 응원으로 시끄럽던 잠실구장에 잠깐이지만 침묵이 내려앉았다.

포스트시즌 (3)

맹수 두 마리가 싸우면 주변에 영향이 간다.

영향의 종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일 중요한 변수는 어떤 맹수가 싸우느냐이다.

비루해 보이는 하이에나가 싸우면 주변에선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둘이 싸우는가 보다 하면서 팝콘을 먹으며 관람한다.

물론 동물이 실제로 팝콘을 먹진 않겠지만.

하지만 사자가 싸우면 다르다.

강한 힘과 힘의 충돌.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사자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그 일대가 변한다.

지금 동팔과 동욱의 싸움은 그 차원도 넘었다.

거대한 코끼리가 싸우면 그 여파가 주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주변에 있는 동물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본다.

지금 잠실구장이 그러했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선수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단 두 사람이 겨루는 개인 스포츠가 되었다.

대결의 결과에 따라 두 팀의 명운이 갈렸다.

고대 전쟁에서 일기토를 하여 승부를 보는 것처럼, 지금 두 사람의 싸움으로 인해 한 팀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고, 다른 팀은 올해의 야구를 끝내야 한다.

결과만을 보면 동욱에게 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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