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포스트시즌 (2)
와일드카드가 끝나면 다음에는 플레이오프를 향한 준플레이오프를 벌인다.
리그 3위 팀과 와일드카드 승리팀의 5전 3선승제.
3위 팀은 이번 리그 3강이자, 지난해 리그와 한국 시리즈 우승팀인 우산, 와일드카드에서 가까스로 올라온 기적의 팀 지아가 맞붙었다.
사람들은 이번 준플레이오프 결과를 이렇게 예상했다.
"당연히 우산이 플레이오프 가겠지."
"가을야구가 불가능하던 지아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야."
"한동욱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가을야구 탈락했지."
심지어 지아의 팬들도 이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
우산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빠르게 진출하든가. 지아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5경기 전부 치르고 떨어지던가.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지만, 결과는 지아의 탈락으로 같았다.
하지만 축구공이 둥글 듯, 야구공도 둥글다.
강한 팀이 항상 승리한다면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때론 전력이 약한 팀이 의외로 연전연승을 한다.
이번에 지아가 그러했다.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구단은 4전 3승 1패로 지아가 되었다.
새로 도입된 포스트시즌 고의 볼넷 방지 규정이 지아에 한해서 큰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우산을 기다리고 있던 RG에겐 갑작스러운 사태였다.
"우산이 올 거라 예상했는데… 완전히 틀렸습니다."
"의외로 지아가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리그 때와 패턴은 비슷하지만 더 강해졌어요."
"전에는 한동욱만 조심하면 됐는데… 지금은 다른 타자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랑 지아는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코치들의 의견에 감독도 동의했다.
"그렇겠지. 우리가 리그에서 준우승한 것은 어디까지나 탄탄한 마운드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한동욱에겐 그게 통하지 않잖아. 동팔이 빼고."
감독의 말에 한 코치가 답했다.
"이번 시즌 우리가 상대한 구단 중, 유일하게 승보다 패가 많은 팀입니다. 동팔이는 다섯 경기에 한 번 나올 수 있지만, 동욱이는 매 경기마다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차이가 큽니다. 첫 3연전 때 우리가 지아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거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RG의 입장에선 지아보다 우산을 상대하는 것이 더 편했다.
적어도 우산의 타자들 중에선 이들의 단단한 방패를 뚫을 강력한 창이 없으니까.
"동팔이가 등판할 때는 걱정할 필요 없지만, 나머지 네 경기가 문제야. 동욱이는 얼추 넘어가도, 다른 녀석들을 막지 못하면 한국 시리즈에 진출할 수 없어. 거기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해."
감독의 말에 투수코치가 답했다.
"다행히 저희는 그 부분에 강점이 있습니다. 동팔이 덕분에 우리 투수들의 구속과 제구력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우산은 동욱이 말고 다른 타자들에게까지 얻어맞았지만, 우리 투수들은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방심하지 않는 이상."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 방심이란 걸 하지 말라는 거야. 그리고 타격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지? 다행히 지아는 마운드가 강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지만."
지아의 입장에선 다행으로 5번이 아닌 4번의 경기로 준플레이오프를 끝냈다.
덕분에 하루의 여유를 가지게 되어 휴식을 취했다.
고작 하루만으로 모든 피로가 사라지고, 체력이 회복되는 건 아니다.
쉬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체력적으론 지아가 불리했다.
그런데 충분히 쉰 RG도 불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그동안 쉬어서 선수들의 경기감각이 떨어졌다. 아무리 연습경기를 해도 실전만큼은 아니잖아."
야구는 찰나의 순간이 큰 결과를 만들어 내는 스포츠다.
실전 감각은 본인의 실력을 얼마나 이끌어낼지 정해주는 중요한 척도다.
감각이 무뎌지면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본인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전에 말한 것처럼 동팔이는 두 번째로 등판한다."
감독이 이렇게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동팔이 선발로 나서면 나머지 선수들의 긴장의 끈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경기감각을 빨리 회복하기 위해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적정한 수준의 긴장을 하는 게 가장 좋은데, 동팔이 선발로 나서면 그게 늦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선 상황을 보며 동팔을 등판시킬 계획이었다.
그때가 되면 RG의 모든 선수들의 몸이 충분히 예열되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때였다.
***
RG가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을 때, 지아에선 선수들과 코치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여기까지 올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어찌 됐든 올라온 건 사실이다. 운도 좋았지만 이것도 결국 너희들이 흘린 땀방울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야."
임기태 감독의 말에 지아의 코치들과 선수들이 말했다.
"감독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감독님 아니었으면 못 왔습니다."
그들의 말에 임기태 감독이 크게 웃었다.
"뭐가 내 덕분이야? 사실 동욱이 덕분이지."
감독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임기태 감독은 한동욱을 보며 말했다.
"동욱아. 처음 입단한 팀이라고 의리 지켜주느라 계속 남아 있어줘서 고맙다. 리그 중반까지 네가 아니었으면 이전에 꼴지 찍었다. 지금처럼 포스트시즌에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
감독의 말에 한동욱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저 혼자 어떻게 다 하겠습니까. 저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그리고 앞에서나 뒤에서나 열심히 노력하신 감독님이 계셨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야구는 팀 스포츠 아닙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선심성 발언이기도 했다.
아무리 감독이 잘하려 해도 선수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소용없었다.
"그렇지. 야구는 팀으로 하는 거지. 동욱이가 절반 이상 했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열심히 노력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왕 플레이오프까지 온 거 한국 시리즈도 노려보자. 이제 우리가 잃어버릴 건 없어. 부상 빼고."
그 말을 하고 임기태 감독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선수들과 코치들도 같이 손을 내밀어 한군데에 모았다.
모두의 손이 모아지자 임기태 감독이 말했다.
"이제 어려울 때에도 참고 기다리며 응원해준 팬들에게 더 큰 보답을 할 때다. 긴장 풀고 무기력한 경기를 보여줄 생각하지 마. 너희들의 모든 것을 불살라라. 화이팅!!"
"화이팅!!"
***
RG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대는 만만치 않다. 리그 전체로 보면 약해 보이지만 후반기에 크게 치고 올라왔다. 지아의 경기력은 우산을 이길 실력이 충분히 있었어. 물론 우리를 이길 순 없겠지."
"하하하!"
임상훈 감독의 마지막 말에 선수들과 코치들이 웃었다. 그들이 웃자 감독도 전과 달리 밝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전력이든 뭐든, 지아는 모든 것을 불사를 거다. 그것이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예의인 걸 기태는 잘 알 거든. 그건 너희들도 잘 알 거라 생각한다."
몇 년 전, RG의 감독은 임기태였다.
처음에 오랜만에 가을야구로 진출시킨 공으로 연임했지만, 다음 년도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스스로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그 이후에 온 감독이 임상훈 감독이었다.
"그렇다고 봐줄 이유는 없어. 우리도 팬들의 응원에 보답해야 한다. 한국 시리즈로 직행하지 못해 아쉽지만,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으니 그 이상을 가야지."
정확히 말하지 않아도 감독이 말하는 이상은 단 하나였다.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는 것 그리고 우승하는 것.
임상훈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같이 손을 내밀어 뭉쳤다.
"리그 우승은 놓쳤지만 한국 시리즈 우승은 남아 있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 올해 우리 야구는 꽤 길게 갈 거다. 전부 화이팅!!"
"화이팅!!"
***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결전이 곧 시작되었다.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한 RG와 지아의 피할 수 없는 결전.
먼저 리그 준우승을 한 RG에게 어드밴티지가 주어져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는 잠실구장에서 진행되었다.
플레이오프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은 여러 가지였다.
"지아가 올라오면서 많이 지쳤지만, 우산을 깨고 올라왔는데… 혹시 모르지 않아?"
"팀 전력으로 따지면 RG가 우위인데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잖아."
"아무래도 한동욱이 걸린단 말이야. RG에 강동팔이 있다지만 투수라서 모든 경기에 올라올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한동욱이 올라올 때마다 던질 수도 없으니……."
"결국 RG의 타선이 지아 마운드를 상대로 얼마나 점수를 뽑아내는지가 관건이겠네. 한동욱과 지아의 화력이냐. 아니면 RG의 화력이냐."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적인 예상은 있었다.
"역시 강동팔이 등판하는 경기는 RG가 승리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한 점 이상만 내면 RG가 승리하는 거잖아."
강동팔이 등판하는 경기에서 RG의 승률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의 결과에 따라 RG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가름할 수 있었다.
1차전, RG에선 이미 정해진 대로 소르스가 선발로 나섰다.
그러자 사람들은 의아했다.
"강동팔이 1선발이 아니네? 나중에 생각하면 제일 먼저 나와야 유리할 텐데?"
"감독은 지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엄한 거 생각하느라 더 중요한 거 놓친 걸 알고 있냐?"
납득할 수 없는 선발 결정에 팬들이 반발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선발의 순서도 중요했다.
나중에 마지막까지 가게 될 경우.
중요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훈 감독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플레이오프 첫 경기는 아슬아슬하게 3대 2로 RG가 승리했다.
준플레이오프와 달리 투수전으로 가게 되어 점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동팔이 선발로 나오는 2차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RG의 우세를 예상했다.
한동욱을 상대할 수 있는 투수는 오성의 남궁지완 그리고 RG의 강동팔이 유일했으니.
경기에 나서기 전.
동욱은 따로 가져온 가방에 있는 배트를 꺼냈다.
배트의 규격은 정해져 있지만 길이와 굵기, 재질의 제한만 있었다.
무게를 끝에 둘지 아니면 중간에 둘지 정하는 밸런스는 선수의 타격 형태와 습관, 실력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달랐다.
타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배트를 따로 구입하여 사용했다.
프로에서 사용하는 배트는 전부 통나무로 만드는 것이라 언제라도 깨질 수 있어 여분의 배트를 항시 준비했다.
한동욱도 여러 개의 배트를 가지고 있었다.
=======================================